됐다.
그는 평화주의자의 관점에서 볼 때 개미들의 전투 장면이 불필요하다고 했다. 개미는 경쟁자인 흰개미와도 전쟁을 벌이지만 동족끼리도 싸운다고, 그것이 있는 그대로의자연의 모습이라고 아무리 항변해 봤자 소용없었다. 스타니슬라스는 내 의견을 일축하면서 어차피 서사에 조금도도움이 안 되는 장면들이라고 단정했다.
결국 전투 장면을 모두 빼야 했다. ‘살람보』에서 영감받아 그 장면들을 공들여 쓴 나로서는 가슴이 찢어지는 일이었다.

책은 1991년 3월에 공식 출간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당시 독특한 국제 정세 속에서 언론의 관심이 모두 아버지 조지 부시와 사담 후세인에게 쏠렸던 탓에, 대중은 피에르 살랭제와 에리크 로랑이 공저한 베스트셀러 『걸프전, 그 비밀문서』외 다른 책에는 관심이 없었다. ‘개미』출간을 불과며칠 앞둔 1991년 2월 28일에 1차 걸프전이 끝난 것은 내겐 천운이었다

독자들에게도 강력히 권하고 싶다. 지금 몸과 마음의 문제를 겪고 있다면 당장 글을 써보라고 글을 쓰는 순간 당신을 짓누르던 중압감이 사라지는 게 느껴질 것이다.
「빨리 두 번째 책을 쓰기 시작해. 그러지 않으면 사람들에게 잊힐 거야. 확 타오르고 꺼져 버리는 건 아무 의미가없어.」친구 렌의 조언을 나는 귀담아들었다.

요가가 탄생한 지혜의 나라, 영성의 의미를 깨닫게 해준인도라는 나라가 갑자기 달라 보였다.
타지마할에 도착해서도 가장 <낭만적인 유럽 도시들인베네치아와 프라하에서 느꼈던 것과 똑같은 불편함을 느꼈다.

여행에서 돌아오고 몇 달 후 조나탕이 태어났다. 부모가인도로 신혼여행을 다녀왔기 때문인지 아기는 침착성을 타고났다. 조나탕은 웬만한 일에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쿨한 아이로 자랐다. 가끔 아이를 보면 인도 현자의 환생이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든 아니든 엄마의 강한개성과 아빠의 호기심을 물려받은 아이는 세상일에 무한한관심을 보였다. 무엇보다 삶에의 열정을 지닌 아이였다. 부모가 자식에게 그보다 뭘 더 바라겠나.

프랑스의 생물학자 장바티스트 드라마르크는 루이 16세때 모든 식물종의 목록을 만들어 내놓으며 세상에 이름을알렸다. 그는 식물 표본에 대한 관찰을 통해 소위 <생물 변이설〉을 주창했다. 모든 좋은 자신이 속한 환경의 영향을받아 변화하며, 그런 적응 과정에서 획득한 형질은 다음 세대에 유전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암잘라그가 토마토 학교를 통해 보여 준 것이 바로 그 점이었다.

라마르크 이론의 열렬한 옹호자인 제라르의 영향을 받아나 역시 오랫동안 푸대접을 받아 온 그 영웅적 이론에 매료되었다. 특히 라마르크 철학이 내포한 중요한 정치적 함의를 발견했다. 우리는 누구나 노력을 통해 변화하고 진화할수 있으며, 후손 또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 반면 다윈의관점에서는 모든 것이 유전자 조합이라는 우연에 달려 있다. 과학계에 새로운 흐름으로 등장한 <후생 유전>은 라마르크가 주장한 생물 변이설의 다른 이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환경이 DNA를 변화시킨다.

나중에 나 역시 <신> 3부작을 통해 <라마르크 학과 철학을 설파했다. 그 작품의 밑바탕에는 제라르의 가르침이 깔려 있다. 외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끊임없이 변화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누구나 출생 배경과 무관하게 성공할 수 있다. 시련은 우리를 진화시킬 수도 있고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모든 것은 선택과 노력에 달렸다.
의식적으로 행동하고 외부 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변화를 시도한다면 얼마든지 제라르의 토마토처럼 더 많은 염분을 견딜 수 있을 것이다.

최면 상태에서도 사고는 여전히 작동 중이었던 것이다.
나는 내가 하는 최면이라는 경험을 관찰자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최면사가 내 <정신의 하드 디스크> 속 파일들에는 살짝 손을 대게 놔뒀지만 핵심 프로그램에는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가령 어릴 때 엄마가 벌레에 물리면 긁지 말라고 했던 말 같은 것. 따라서 최면사는 내 의지에 반해 어떤 행동도 강제할 수가 없었다. 나는 최면 상태에서도자유 의지를 상실하지 않았다

소설은 독자에게 머릿속에서 펼쳐지는 영화의 감독이 되라고 한다. 이 때문에 소설은 영화보다 훨씬 위력적이다.
‘영화가 관객에게 영화 속 이미지를 받아들이는 수동적인역할을 맡긴다면, 소설은 독자에게 스스로 장면을 만들어낼 것을 적극적인 역할을 할 것을 주문한다. 소설 독자는스스로 주인공을 캐스팅하고 카메라 숏의 스케일을 결정하고, 음악과 음향 효과를 만들고, 조명을 선택한다.
<설명하기보다 보여 주는 이야기가 좋은 소설이다. 이를 위해 설명적인 대화는 최소화하고 상황만 독자에게 제시해 스스로 장면을 연출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사인받을 책을 내밀며 많은 독자가 이렇게 말했다. 「우리아이가 책이라면 질색인데, 이걸 읽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한마디 적어 주시겠어요?」 나는 고심하다 이렇게 적었다.
<이 책은 절대 읽지 말것.>

솔직히 고백하자면, 『타나토노트』를 쓴 가장 큰 이유는내 존재의 마지막 날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였다. 〈좋아, 지금 내가 죽는 건 비극이 아니야, 이건 다른 세계로의 이행에 불과해〉, 이런 생각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있을까? 그러기 위해선 죽음을 끝이 아니라 <테라 인코그니타(미지의 세계)>에 도달하기 위한 하나의 단계로 봐야했다. 콜럼버스가 수평선 너머의 세계로 탐험을 떠나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듯이 등장인물들이 죽음을 전혀 <특별하지 않은〉 새로운 개척지로 바라보게 만들어야 했다.

우연이었는지 필연이었는지 모르지만 마침 그 일본인 편집자의 가정부가 한국 여성이었다. 그녀는 개미』 출간이무산된 이유를 듣고 집주인에게 자신이 한국어 번역본을얼마나 재밌게 읽었는지 얘기해 줬다. 일본인 출판사 대표는 그제야 번역이 뭔가 미심쩍다고 판단해 진상 파악에 나섰고, 결국 도카타는 자신이 랭보 시로 덧칠하는 바람에 줄거리가 뒤죽박죽된 것 같다고 실토했다.

나는 아프리카에서 르루 교수한테 들었던 말을 수시로머리에 떠올렸다. <판단하지 말고 이해하기 위해 애쓸 것일본에서는 내 책이 큰 호응을 받지 못했다. 무엇보다 나는일본을 다녀온 뒤에 한국이라는 나라를 전보다 더 많이 사랑하게 되었다.

우리가 돼지고기 맛을 좋아하는 이유는 조상들의 식인풍습이 유전자에 남아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콩키스타도르들을 따라 멕시코에 다녀온 한 스페인 수도사가 인육을 먹어 보니 돼지고기와 맛이 비슷하더라는 말을 했다는것을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난다.

부침을 거듭하면서 작가라는 직업이 단거리 경주가 아닌마라톤임을 깨닫게 되었다. <한 방> 터뜨리는 게 중요한 게아니라, 규칙적인 리듬을 유지하면서 지치지 않고 꾸준히쓰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내게는 끊임없는 자기 쇄신을통해 독자들에게 새로움을 선사할 의무가 있다.
그때부터 매년 10월 첫 번째 수요일에 새 책을 선보이기로 나 자신과 약속했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엄격한 글쓰기 규칙을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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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요가를 통한 수행은 포기해야만 했다.
그때 여름 캠프에서 헤어진 후 다시 자크를 만나진 못했지만, 그의 가르침은 훗날 주인공들이 의식적인 유체이탈상태에서 천국에 도달하기 위해 우주를 항해하는 내용인소설 타나토노트」의 바탕이 되었다.

신문 창간을 통해 나는 열다섯 살에 무에서유를창조하는 경험을 했다. 오래된 낡은 체계에서 벗어나려면 자신만의 새로운 체계를 세워야 하며 남들에게 휘둘리지 않으려면 진취적으로 사고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신문을 함께 만들던 파브리스가 그즈음 소개해 준 책 한권은 문학의 신세계를 열어 줬다. 바로 아이작 아시모프의『파운데이션』 작가는 단순한 재미를 뛰어넘어 인류의 진화에 대한 논리적 관점을 제시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미래가 그것을 일관성 있게 상상하는 이들의 것이라고확신하게 되었다. 아시모프 덕분에 현실의 뉴스를 나만의시각으로 읽어 내고 그에 따른 후속 시나리오를 상상할 수있게 되었다. 체스에서 말의 움직임과 위치에 따라 게임의시나리오가 달라지듯이, 현실에 미래의 여러 가능성이 내포되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철학자들이 <지혜를 향한 사랑>이라는 어원적 뜻을지닌 철학을 하는 게 아니라, 암기해 놓은 문구로 이뤄진지식을 과시해 다른 사람들에게 멋지게 보이는 걸 더 중요하게 여기는 건 아닌지 의문을 품게 되었다.

그저 놀라웠다. 다비드가 얘기하는 동안 우리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궁금해하느라 근심 걱정을 싹 잊고 있었다. 노란 테니스공 하나를 갖고 싶어 하는 이유가 대체 뭘까? 그 궁금증하나에 사로잡혀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떠보니 날씨가 화창했다. 아래쪽 대피소가 시야에 들어올 만큼 맑은 날씨에 하산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허기진 상태에서 첫 번째 대피소 일행과 합류해먹은 아침은 꿀맛이었다. 좌절감과 기다림이 충족감을 배가해 준다는 증거겠지

「앞으로 보조 교사 일은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저한테 맞지 않는 것 같아요. 말씀 감사히 들었습니다. 방금 정치의세계가 작동하는 원리를 얼핏 깨달은 것 같아요.」그 일은 내가 힘의 관계가 지배하거나 위계질서가 엄격한 조직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 그 긴장감 넘치던 경험은 나중에 소설에서 비슷한 장면을 묘사할 때 적잖은 도움이 되었다.

〈소설가가 되는 비결은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아침 같은시간에 글을 쓰는 것이다.》열일곱 살에 읽은 인터뷰 기사에서 (고등학교 과학 계열진학에 실패한 내게 큰 위로가 되어 준 소설들을 쓴 작가프레데리크 다르는 이렇게 말했다.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철저한 시간 관리가 필수인데, 그 자신은 매일 아침 네 시간씩 글을 쓴다는 것이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마음으로 다시 버전 C를 완성했다.
심장 수술이야 한 번 실패하면 그걸로 끝이지만 소설은얼마든지 다시 쓸 수 있다. 그게 글쓰기의 최대 장점이다.
당시 틈틈이 읽던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살람보』에 등장하는 전투 장면들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그해 가을에 수강한 형법과 민법, 혼인법 강의에서 교수들은 입양, 이혼, 상속, 가정폭력, 이웃과의 재산권 분쟁 등등 다양한 분야를 다뤘다.
그런데 알면 알수록 법이라는 것은 결국 이해관계가 상충할 때 쩨쩨한 상대방보다 내가 더 이익을 취할 방법을 찾아내는 기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듄』은 단순히 소설이 아니라 하나의 물리적 경험이다.
그 책에는 말을 하는 등장인물의 머릿속 생각이 글로 적혀있다. 독자 입장에서는 아주 긴 대화를 읽게 되는 셈인데,
이를 통해 말 뒤에 감춰진 인물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
과학자 출신인 저자 프랭크 허버트는 장기간 사막에서 사구()의 움직임을 연구한 내용을 바탕으로 물이 전혀 없는 생태계를 상상해 낸다. 전권을 단숨에 읽어 내려가며 나는 궁금함을 떨칠 수가 없었다. 한 사람의 말과 생각 사이에는얼마만큼의 간극이 존재하는 걸까?

나는 이야기 전체에 불안감을 깔고 긴장감을 높일 목적으로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더욱 섬세하게 다듬었다.
소설을 여러 번 고쳐 쓰는 습관은 그때 시작되어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나는 그런 작업을 상대가 가진 구슬의색깔과 배치를 정확히 맞추기 위해 여러 조합을 시도해야하는 <마스터마인드> 보드게임처럼 생각하며 한다.

독자의 흥미를 끌기 위해선 이렇게 해야 한다.
1) 독자에게 이야기의 대략적인 밑그림을 보여 준다.
2) 중요한 뭔가를 계속 숨긴 채 서사를 전개해 나간다.
3) 독자가 흥미를 잃지 않게 자잘한 요소를 조금씩 드러내 보여 준다.
4) 마지막에 가서 한 방에 해답을 제시함으로써 놀라움을 선사한다.

5) 놀라움 속에 마술이 끝나는 것으로 등장인물들의 여정이 마무리되면, 이야기 전체의 극적 효과를 높이는 동시에 피날레를 장식할 마지막 터치를 추가한다. 일명 〈체리장식 효과>.

로스앤젤레스에서 우리는 내 사촌 누나 애비의 집에 머물렀다. 애비는 할리우드에서 소품 담당자로 일했고 매형은 SF 드라마 「V」의 시나리오 작가였다. 한번은 외출했다열쇠를 잃어버리는 바람에 창문을 넘어 누나 집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소총과 권총으로 무장한 다섯명의 노인이 나타나 우리를 제지하는 게 아닌가. 그 민간순찰대가 목줄로 붙잡고 있던 맹견들이 우리를 향해 사납게 짖어 댔다. 순찰대원들은 자초지종을 듣고 누나한테 전화를 걸어 확인한 뒤에야 우리를 놓아줬다. 대서양 건너편에서는 안전 문제를 절대 가볍게 다루지 않는다는 걸 그때알게 되었다.

파리 10구의 스트라스부르 대로 16번지, 엘리베이터 없는 건물 7층의 15제곱미터짜리 지붕밑 하녀 방을 얻었다.
체가 얇아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더운 그 집에는 욕조가 딸린 작은 욕실이 하나 있는 대신 화장실은 복도의 공용화장실을 써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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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지품을 다시 배낭에 챙겨 넣으면서 나는 이번 계제에내 단점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위급한 상황에서 당황하지 않는 것은 큰 단점이라고 급박한 상황에서는 쥘리처럼 몸을 떨고 비명을 지르며 우는 게 상식인데,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았으니 사람들이 내 말을 믿어줄 리가 있나.

침낭에서 몸을 뺀 뒤 눈을 끔뻑이며 텐트 밖으로 나갔다.
친구들이 둘러서서 구경거리 대하듯 나를 쳐다봤다.
간밤에 일행 중 유일하게 나만 잠을 잤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자초지종을 들려주고 돌아가는 생명의 은인의 뒷모습을보며 생각했다. 죽음은 이렇게 불시에 찾아오는 거구나.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나서 눈을 감았다. 삶의 매 순간을값어치 있게 쓰기로 결심했다.

엄마는 나를 데려가는 곳 어디에서든 종이와 크레용을갖다 달라고 했다. 내가 종이에 아무렇게나 끼적거려 놓으면 엄마는 대단한 벽화 작품이라도 되는 양 모아뒀다가 사람들에게 자랑하곤 했다. 솔직히 그림에 큰 소질은 없었지만, 매일같이 그리다 보니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나만의 스타일을 만들어 내게 되었다. 규칙적으로 반복하다 보니 그림이 주는 기쁨도 알게 되었다.

나는 시를 암송할 줄도 세계 각국의 수도와 유명한 강의이름, 역사에 길이 남을 전투의 날짜를 기억할 줄도 모르는아이였다. 그때부터 이미 모자란 기억력을 상상력으로 대체하려 했던 것 같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있으면 무조건 그림으로 그려 놓거나 상세한 디테일까지 적어 놓곤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생각이 솟구치는 순간 사라진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 조립품에 화룡점정 격인 장치를 하나 추가했다.
우리 집 바로 옆에 있던 폴사바티에 대학교 쓰레기장에서여전히 작동하는 레이저 빔 프로젝터를 주워 와 부착한 것이다. 어둠 속에서 레이저 불빛이 폴리스티렌에 닿으면서연기를 내는 광경은 또래 친구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1

해변으로 휴가를 가면 가족 중 유일하게 아버지만 빨간색 부표들을 지나 멀리까지 헤엄쳐 나가곤 했다. 내 눈에아버지는 한계를 모르는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바다를 헤엄쳐 다른 대륙으로 건너갈 기세였다. 아버지를 보면서 어린 나는 뒤돌아보지 않고 멀리 나아가는 사람이야말로 진정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는우리가 속한 정상 세계를 비틀어 바라보는 『단추 전쟁』의 시각이 은연중에 ‘개미」에 영향을 미쳤으리라 생각한다. 그 이야기 속 아이들은 어른의 눈높이에서는 보이지 않는 사건들이 벌어지는 낮은 세계, 일종의 평행 세계에 살았던 셈이니까.

벼룩의 추억은 인간의 발에서 출발해 머리 꼭대기에도달하는 대장정을 벼룩의 일인칭 시점으로 쓴 이야기다.
양말을 빠져나온 벼룩은 장딴지 털을 헤치고 기어오르면서바지 속 세상을 만난다. 배꼽 우물에 빠지는 사고를 당하지만 가까스로 빠져나와 셔츠 속 세상을 주유한다. 길을 잃고헤매다 귓바퀴에 빠진 벼룩은 탈출하다가 거대한 새끼손가락의 공격을 받는다. 압사 직전 가까스로 살아남지만 손가락 부대에 추격당하고 만다. 적들은 주변을 긁어 대며 거리를 좁혀 온다. 천운으로 살아나 마침내 머리 꼭대기에 이른벼룩은 머리카락 정글 속에서 헤매다 야생 머릿니 부족과조우한다. 그는 환한 빛이 비치는 높은 곳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면서야 비로소 자신이 누군지, 그리고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된다

강직 척추염을 앓는 환자들이 몸을 수직으로 세운 채 잘수 있는 해먹 침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천장에고리를 걸어 해먹을 고정해 놓고 머리는 위로, 발은 아래로향하게 한 상태에서 잠을 자는 침대라고 했다. 머리가 위로향하는 것만 다를 뿐 박쥐처럼 매달려 자는 것은 매일반인셈이었다. 물론 달가운 자세는 아니지만 그래도 최악은 아니라고 어린 나는 생각했다.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을 쓰기 시작한때가 바로 그 무렵이다. 나는 미셸 비달이 들려주는 얘기들을 두꺼운 노트 한 권에 빠짐없이 적었다. 꼭 기억하고 싶은 신기하고 환상적인 이야기들을

고등학교를 과학 계열로 진학하기를 희망했던 내가 매우중요한 시험을 앞두자 걱정이 되었는지, 부모님이 수학 과외를 시켜 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시험 준비를 위해 만난과외 선생님 덕분에 따분하다고 생각했던 과목에 뜻밖의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과학자의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일 것 같던 수학이 역설적이게도 개미와 천문학에 이어 새로운 열정의 대상이 되었다.

그사이 현실의 삶은 위기로 치닫고 있었다.
물에 빠졌을 때 밑바닥까지 가라앉아야 비로소 바닥을차고 위로 솟구칠 에너지가 생기는 걸까.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고등학교 과학 계열 진학에 실패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강직 척추염까지 재발해 몸이 마비되었던 그해에 내 삶의 모든 문제를 한 방에 해결해 준 인물을 만나게되었다.

가부좌를 튼 자크가 눈을 감았다. 어깨를 펴고 등을 꼿꼿이 세운 상태에서 배를 안으로 집어넣었다. 호흡이 점차 느려지더니 어느 순간 숨소리마저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모기가 눈꺼풀에 내려와 앉는데도 아무런 요동을 하지 않는걸 보고 나는 그가 깊은 명상에 들어갔다고 확신했다.
그의 몸은 마치 물건 같아서 속에 사람이 없는 것처럼느껴졌다.

자크의 차분함은 전염성이 강했다. 그와 함께 있다 보니나 또한 긴장이 풀리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자크는 모든 동작을 의식적으로 해야 한다고 했다. 가령음식을 입으로 가져가기 전에 먼저 냄새 맡기. 오랫동안 천천히 씹으면서 맛을 음미하기. 소화 기관을 타고 내려가는음식의 움직임을 느껴 보기. 몸속으로 들어온 공기가 폐를부풀리고 콧구멍을 통해 밖으로 빠져나가는 과정을 세심하게 지각하기. 발이 땅에 닿을 때의 감촉을 느끼며 걷기. 하나의 대상에 시선을 집중해 보기. 미술 작품을 감상하듯 주변 세계를 바라보기. 사물을 대할 때 경중과 가치를 따지거나 비교하지 말고 세계라는 작품의 구성 요소로 받아들이며 온전히 그것의 형태와 특징을 음미하기

정말로 그동안 갇혀 있던 육신의 껍데기에서 정신이 서서히 떨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나비가 고치를 벗듯이〈바깥의 나〉는 가벼웠고 손으로 만져지지 않았다.
나는 밖에서, 그리고 위에서 나를 관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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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에 접어들자마자 갑자기 뒤에서 외마디 비명이 들려왔다. 안이슬인 것 같았다. 나는 주위를 빠르게 살펴 상황을 판단하고 안전한 곳에 정차한 후 나동그라진 자전거와 안이슬을 향해 잽싸게 뛰어갔다. 새하얀 반바지 아래드러난 동그란 무릎에 아스팔트 바닥에 쏠린 자국이 나있고 그 위로 핏방울들이 조금씩 맺혀 있었다.

사이클이란 말이야. 그간의 마일리지가 말해주는 거란다. 아무리 키가 크고, 근육질이고, 다리가 길고, 좋은 바이크에 좋은 저지를 입어봤자, 삼년 넘게 탄 내 실력엔 절대 못 당한단다. 나는 내 허벅지 속 근육에 대한 자부심이있단다. 삼단 고음의 맛을 좀 봐라. 아주 호되게 한번 당해봐라. 나는 바쁘게 페달을 밟아 아이유고개의 첫번째 업힐을 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 말을 끝으로 두번의 짧은 통화가 끝났다. 입에서 새하얀 입김이 나오는 걸 눈으로 보고서야 내가 한숨을 깊게 내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직 아무것도 하지않았는데 벌써 허기가 졌고, 그 사실이 갑자기 견딜 수 없을 만큼 싫어졌다. 이렇게 중요한 일을 앞두고서 왜 배도고프고, 요의도 밀려오고, 심지어는 이와중에 잠까지 오려 하는지...… 내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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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보다 약간 늦게, 안재찬을 중심으로 한 또다른 시인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앞서 말한 시인들의 긴장·갈등 · 대립의 구조를 완벽하게 해소시켰다. 가령 자연 대 문명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들은 그 두 대립항 중에서 문명을 아예 없있을 뿐만 아니라, 자연을 가공의 자연으로 대체시켰고, 따라서 완벽한 가공의 조화만이 남게 되었다.

그러나 이 모든 현상들은 엄밀히 따지자면 적어도 지금까지는 과보다 공대에 속하며, 우리 시단에 실보다는 득得으로 작용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러나 그것들이 이미 대세를 이루고 주류를 이룬 마당에는, 이제 그것들은 긍정적인 역할보다는 부정적인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그러한 현상들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압도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그만큼 사실은 우리가 잃은 게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잃은 것은 무엇이며, 산문화라는 한 요인으로 귀속시킬 수 있는 그 모든 부정적인 현상들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은 무엇일까? 내가 보기엔, 그것은 서정성의 회복일 것 같다. 아니 서정성의 회복이라기보다는 우리 당대의 새로운 서정성의 표출일 것이다.
그리고 가령, 기형도의 「그 집 앞」과 같은 시에서 그러한 새로운 서정성의 한 잠재태를 (이제는 잠재태로서 끝날 수밖에 없지만) 우리는 엿볼 수 있다. (1989)

그렇다. 1980년대는(그보다 더욱. 1970년대는 나에겐하나의 가위눌림이었다. 물론 그 가위눌림이 나에게는 사회사적인 것보다는 개인사적인 것으로 편입될 수 있는 경우가훨씬 더 많았다. 그러나 그 경우에도, 나의 개인사적인 시들도 사회사적인 요인들로 소급되는 게 많았다. 물론 내겐 사회사적인 안목이 부족하고, 내가 개인사적인 노래에 더 능하다는 것은 확실한 사실이다.

이젠 여자도 시민이라는 자각을 갖자. 이제는 여자들이가족 관계 내에서만 존재하기를 벗어나 사회적 관계 속에서존재해야 한다. 여자들 역시 적극적인 사회 구성원이 되어야 하고 사회 전체의 정의와 안녕을 지키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하며 거기에 필요한 것들을 실천해야 하므로. (1995)

그때까지도 나는 죽는다는 게 정확히 무엇인지 알지 못했고, 내가 잘 아는 누군가가 죽는 일을 당한 적도 없었지만,
나 어릴 적부터 알아왔던 일중이 아저씨가 벼난가리 안에들어가 죽었다는 것은, 그가 죽었다는 사실 때문만이 아니라, 벼난가리 안에서 죽었다는 사실 때문에 내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어린 나이이긴 했지만, 벼날가리는 알맞은 죽음의 장소가 아닌 것 같은, 죽어가는 이에게 합당한 예우받는 죽음의 장소가 아닌 불경스러운 장소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난다는 것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다. 그 환상이새를 동경하게 만들고, 비행기를 만들어냈다. 그런데 그런환상을 만들어내는 것은 뭘까. 아마도 그것은 먼 곳에 대한동경 혹은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 대한 꿈, 뭐 그런 것이 아닐까?

여행 안내원의 설명이 스피커로 울려나오는 가운데 강변을 스쳐가는 그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아름다운 건물들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뱃전 바로 아래 강물로 옮겼을 때 나는 신기한 것을 보았다. 이름은 모르지만 아마도 오리류가분명한 새떼가 배를 따라오고 있었다. 가끔씩 빙그르르 돌기도 하면서 따라오는 그 새들을 바라보면서 어쩌면 저렇게유유자적하고 가볍고 편안해 보일까. 사람들도 아래로 아래로 무겁게 끄집어내리는 삶의 중력에 시달리지 않고 저렇게가볍게 스르르 미끄러져가듯 살 수는 없는 걸까, 아마 그런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을 것이다.

물위에 그냥 두둥실 떠 있거나 스르르 미끄러져 떠다니는오리들을 볼 때마다 얼마나 한가롭고 여유 있고 가볍고 편안한 삶인가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런데 그 물밑으로 보이지 않게 그들은 중노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새에 대한 나의 환상은 그때 깨어졌다. 그 이후로 나는 하늘에서 날아가는 새들을 보면서 그들의 자유로움을 그리기보다는 그들 날갯짓의 중노동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한다. 쉬운 삶이란 없다. 어떤 존재든 혼신을 다해서 살아가는 것이4. (1996)

태어나면서부터 우리는 공포와 더불어 공포를 이겨내는법을 배우지, 걷기 시작하는 아이는 숱하게 쓰러지는 과정을 통해서 완전하게 걸을 수 있는 기술을 습득하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공포를 체험하게 되고, 이것은 원시적 기억으로서 우리 뇌의 메모리 칩 안 어디엔가 저장되고, 이런 식의다른 많은 과정을 거치면서 나라는 아이덴티티 개념을 쌓아가지, 어떤 면에서는 나라는 아이덴티티 자체가 공포라는울타리를 만들게 하는지도 몰라. 나라는 아이덴티티 자체가 나 아닌 타자, 나 아닌 세계를 상정하게 되니까. 나를 세움으로써 나 아닌 것을 세우고, 그럼으로써 거기엔 공격, 희생, 아니면 공격이나 희생의 위장된 형태인 거짓 사랑(우리가 흔히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는)이나 증오라는 작용이 생겨나니까.

그 용과 싸울 필요가 없다고 해서 대면할 필요가 없는 것은 아니야. 똑바로 대면하고서, 그리고 그것이 바로 자기 자신이 만들어놓은 환영이라는 것을 확인한 후, 그것을 지워버리는 거지. 대면하지 않는 이상은 그것이 내가만든 환영임을 알 수 없고, 그런 가운데 그 용의 환상은 점점 더 커지면서 실제적인 힘을 행사하게 되니까.

내가 몇 가지 신비 체계를 공부한 것은 발병 (1998년, 시집 연인들』을 펴내던 과정 중) 5년 전부터였다. 몇 가지 체계를 기웃거려보면서(그것도 학자 머리가 아니라서 시인 머리로서 직감이 더 많이 이용되는 공부였다) 그 속에서 놀이를 하고 더 나아가 그 체계들 사이의 연관성을 캐어보는 유희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역시 머리가 나빠서인지 별 소득은 얻지 못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해소되지 않는 의구심뿐이었다.

나를 병에 지치게 한 것들에서 손을 뗀 지금 나는 무엇을해야 할까. 시는 그대로 쓸 것이고, 그러나 문학으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는 나는 이미 옛날의 내가 아니어서 다른 꿈을슬쩍 품고 있기도 하다. 그것은 어떤 시원성에 젖줄을대고 있는 푸근하고 아름답고 신비하고 이상하고 슬픈 설화형식의 아주 짧은 소설들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다.
(2010)

사진들에는 각기 타이틀이 붙어 있었는데 첫번째는 ‘묘향산‘이라는 제목이었다. 삼림이 우거진 묘향산 숲 전체에서거대한 안개가 힘차게 뿜어올라오고 있었고 그 신비한 흰안개의 아름다움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꿈속에서 내마음은 그 하얗고 힘차고 거대한 안개 군단이 나의 내부에서 용솟음쳐오르는 원자력 에너지임을 감지하고 있었다. 신비주의 공부를 하게 되면, 겉으로는 사람이 의젓해지고 듬직해지는데 속으로는 이 세상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을 어떤거대한 힘을 느끼게 되어 일상생활에 초연해지기 마련이다.
특이한 점은 꿈속의 내 의식이 그 힘(안개)을 원자력 에너지라고 명명했다는 점이었다.

그 세 장으로 이루어진 꿈을 꾼 이후 처음에는 슬며시 힘이 솟았지만 시간이 흘러갈수록, 특히 압록강 오리알의 신화는 너무도 과대망상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뭐냐. 나의 깊은 무의식이 서양 신비주의 공부는 이러저러한 위험이 있으니 압록강 오리알이 아니라 낙동강 오리알 신세를 면하려면 그 공부를 이제 그만두라고 알려주는게 아닌가 하는 뜻으로 해석되었다. 그래서 우리의 깊은 무의식은 꿈 조작을 통해서 자기 의식에게 넌지시 뭔가를 알려준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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