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보다 약간 늦게, 안재찬을 중심으로 한 또다른 시인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앞서 말한 시인들의 긴장·갈등 · 대립의 구조를 완벽하게 해소시켰다. 가령 자연 대 문명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들은 그 두 대립항 중에서 문명을 아예 없있을 뿐만 아니라, 자연을 가공의 자연으로 대체시켰고, 따라서 완벽한 가공의 조화만이 남게 되었다.

그러나 이 모든 현상들은 엄밀히 따지자면 적어도 지금까지는 과보다 공대에 속하며, 우리 시단에 실보다는 득得으로 작용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러나 그것들이 이미 대세를 이루고 주류를 이룬 마당에는, 이제 그것들은 긍정적인 역할보다는 부정적인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그러한 현상들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압도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그만큼 사실은 우리가 잃은 게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잃은 것은 무엇이며, 산문화라는 한 요인으로 귀속시킬 수 있는 그 모든 부정적인 현상들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은 무엇일까? 내가 보기엔, 그것은 서정성의 회복일 것 같다. 아니 서정성의 회복이라기보다는 우리 당대의 새로운 서정성의 표출일 것이다.
그리고 가령, 기형도의 「그 집 앞」과 같은 시에서 그러한 새로운 서정성의 한 잠재태를 (이제는 잠재태로서 끝날 수밖에 없지만) 우리는 엿볼 수 있다. (1989)

그렇다. 1980년대는(그보다 더욱. 1970년대는 나에겐하나의 가위눌림이었다. 물론 그 가위눌림이 나에게는 사회사적인 것보다는 개인사적인 것으로 편입될 수 있는 경우가훨씬 더 많았다. 그러나 그 경우에도, 나의 개인사적인 시들도 사회사적인 요인들로 소급되는 게 많았다. 물론 내겐 사회사적인 안목이 부족하고, 내가 개인사적인 노래에 더 능하다는 것은 확실한 사실이다.

이젠 여자도 시민이라는 자각을 갖자. 이제는 여자들이가족 관계 내에서만 존재하기를 벗어나 사회적 관계 속에서존재해야 한다. 여자들 역시 적극적인 사회 구성원이 되어야 하고 사회 전체의 정의와 안녕을 지키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하며 거기에 필요한 것들을 실천해야 하므로. (1995)

그때까지도 나는 죽는다는 게 정확히 무엇인지 알지 못했고, 내가 잘 아는 누군가가 죽는 일을 당한 적도 없었지만,
나 어릴 적부터 알아왔던 일중이 아저씨가 벼난가리 안에들어가 죽었다는 것은, 그가 죽었다는 사실 때문만이 아니라, 벼난가리 안에서 죽었다는 사실 때문에 내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어린 나이이긴 했지만, 벼날가리는 알맞은 죽음의 장소가 아닌 것 같은, 죽어가는 이에게 합당한 예우받는 죽음의 장소가 아닌 불경스러운 장소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난다는 것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다. 그 환상이새를 동경하게 만들고, 비행기를 만들어냈다. 그런데 그런환상을 만들어내는 것은 뭘까. 아마도 그것은 먼 곳에 대한동경 혹은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 대한 꿈, 뭐 그런 것이 아닐까?

여행 안내원의 설명이 스피커로 울려나오는 가운데 강변을 스쳐가는 그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아름다운 건물들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뱃전 바로 아래 강물로 옮겼을 때 나는 신기한 것을 보았다. 이름은 모르지만 아마도 오리류가분명한 새떼가 배를 따라오고 있었다. 가끔씩 빙그르르 돌기도 하면서 따라오는 그 새들을 바라보면서 어쩌면 저렇게유유자적하고 가볍고 편안해 보일까. 사람들도 아래로 아래로 무겁게 끄집어내리는 삶의 중력에 시달리지 않고 저렇게가볍게 스르르 미끄러져가듯 살 수는 없는 걸까, 아마 그런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을 것이다.

물위에 그냥 두둥실 떠 있거나 스르르 미끄러져 떠다니는오리들을 볼 때마다 얼마나 한가롭고 여유 있고 가볍고 편안한 삶인가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런데 그 물밑으로 보이지 않게 그들은 중노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새에 대한 나의 환상은 그때 깨어졌다. 그 이후로 나는 하늘에서 날아가는 새들을 보면서 그들의 자유로움을 그리기보다는 그들 날갯짓의 중노동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한다. 쉬운 삶이란 없다. 어떤 존재든 혼신을 다해서 살아가는 것이4. (1996)

태어나면서부터 우리는 공포와 더불어 공포를 이겨내는법을 배우지, 걷기 시작하는 아이는 숱하게 쓰러지는 과정을 통해서 완전하게 걸을 수 있는 기술을 습득하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공포를 체험하게 되고, 이것은 원시적 기억으로서 우리 뇌의 메모리 칩 안 어디엔가 저장되고, 이런 식의다른 많은 과정을 거치면서 나라는 아이덴티티 개념을 쌓아가지, 어떤 면에서는 나라는 아이덴티티 자체가 공포라는울타리를 만들게 하는지도 몰라. 나라는 아이덴티티 자체가 나 아닌 타자, 나 아닌 세계를 상정하게 되니까. 나를 세움으로써 나 아닌 것을 세우고, 그럼으로써 거기엔 공격, 희생, 아니면 공격이나 희생의 위장된 형태인 거짓 사랑(우리가 흔히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는)이나 증오라는 작용이 생겨나니까.

그 용과 싸울 필요가 없다고 해서 대면할 필요가 없는 것은 아니야. 똑바로 대면하고서, 그리고 그것이 바로 자기 자신이 만들어놓은 환영이라는 것을 확인한 후, 그것을 지워버리는 거지. 대면하지 않는 이상은 그것이 내가만든 환영임을 알 수 없고, 그런 가운데 그 용의 환상은 점점 더 커지면서 실제적인 힘을 행사하게 되니까.

내가 몇 가지 신비 체계를 공부한 것은 발병 (1998년, 시집 연인들』을 펴내던 과정 중) 5년 전부터였다. 몇 가지 체계를 기웃거려보면서(그것도 학자 머리가 아니라서 시인 머리로서 직감이 더 많이 이용되는 공부였다) 그 속에서 놀이를 하고 더 나아가 그 체계들 사이의 연관성을 캐어보는 유희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역시 머리가 나빠서인지 별 소득은 얻지 못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해소되지 않는 의구심뿐이었다.

나를 병에 지치게 한 것들에서 손을 뗀 지금 나는 무엇을해야 할까. 시는 그대로 쓸 것이고, 그러나 문학으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는 나는 이미 옛날의 내가 아니어서 다른 꿈을슬쩍 품고 있기도 하다. 그것은 어떤 시원성에 젖줄을대고 있는 푸근하고 아름답고 신비하고 이상하고 슬픈 설화형식의 아주 짧은 소설들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다.
(2010)

사진들에는 각기 타이틀이 붙어 있었는데 첫번째는 ‘묘향산‘이라는 제목이었다. 삼림이 우거진 묘향산 숲 전체에서거대한 안개가 힘차게 뿜어올라오고 있었고 그 신비한 흰안개의 아름다움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꿈속에서 내마음은 그 하얗고 힘차고 거대한 안개 군단이 나의 내부에서 용솟음쳐오르는 원자력 에너지임을 감지하고 있었다. 신비주의 공부를 하게 되면, 겉으로는 사람이 의젓해지고 듬직해지는데 속으로는 이 세상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을 어떤거대한 힘을 느끼게 되어 일상생활에 초연해지기 마련이다.
특이한 점은 꿈속의 내 의식이 그 힘(안개)을 원자력 에너지라고 명명했다는 점이었다.

그 세 장으로 이루어진 꿈을 꾼 이후 처음에는 슬며시 힘이 솟았지만 시간이 흘러갈수록, 특히 압록강 오리알의 신화는 너무도 과대망상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뭐냐. 나의 깊은 무의식이 서양 신비주의 공부는 이러저러한 위험이 있으니 압록강 오리알이 아니라 낙동강 오리알 신세를 면하려면 그 공부를 이제 그만두라고 알려주는게 아닌가 하는 뜻으로 해석되었다. 그래서 우리의 깊은 무의식은 꿈 조작을 통해서 자기 의식에게 넌지시 뭔가를 알려준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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