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네시 윌리엄스의 희곡으로 유명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여주인공 블랑쉬 뒤부아는 극의 말미에서 완전히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채 의사의 지시에 따르며 이렇게말한다. "나는 오랫동안 다른 사람들의 친절에 의지해 살아왔어요." 물론 나는 모든 면에서 블랑쉬 뒤부아와 다르지만,
이 대사는 내 마음을 저민다.

. 다독, 다작, 다상량이라는 오래된 교훈을 반복해서 이야별것 없기하며 학생들이 왼발 옮기고 오른발 옮기는 걸음마를 지켜보는 것, 그러면서 간혹 넘어지지 않도록 붙잡는 것뿐이다.

출판계약서에 작가는 ‘갑‘이라고 쓰여 있지만 천만의 말씀, 우리는 갑이 아니다. 갑질을 할 수 있는 사람은0.00001% 정도의 작가를 빼면 존재하지 않는다. 아마 당신이나 나는 죽을 때까지 을로 살 확률이 높다. 내가 쓰려는책에 대해 이해도도 깊고 열성이 넘치는 명민한 편집자를만나서 함께 책을 만들어가게 된다면 작가 인생에서 손으로꼽을 만한 행복한 시간이 되겠지만 한창 초짜라거나 격무에지쳐서 위에서 하라는 일을 기계적으로 하는, 또는 의욕은넘치는데 실력이 안 되는 편집자를 만났다면 이런 말을 죽도록 듣게 될 것이다. "작가님, 잘 모르겠지만 이건 좀 아닌것 같아요." 이런 소리를 대여섯 번 이상 듣게 되면, 자기도모르게 미치고 팔짝 뛰게 될 거라고 내가 장담한다. 나는 경력이 20년 차를 넘어가고 나서도 책 표지, 심지어는 책 제목 선정 과정에서도 배제된 적이 있다. 편집부에서 알아서결정해 버리고 완성본을 보냈기에 당시 나는 시중에 책이풀린 후에야 내 책이 어떻게 생겼고 제목이 뭐라고 지어졌는지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여기서는 도대체 뭘 쓸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노동은 하루하루 계속되었다. 운동장에 우두커니서 있는 말들이 마실 물을 가득 채우고 저녁에 먹을 건초를 정리해 둔 후 마사를 청소하고 말들이 여기저기 싼 똥을또 치운다. 나중에는 말들이 똥 만드는 자판기로 보일 정도였다. 하필 때는 여름, 작열하는 햇살 아래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똥을 치우다 보면 카뮈의 이방인이 이해될 정도였다.
그래, 오죽이나 해가 뜨거웠으면…………

엄마에게 작가가 되고 싶다고 처음 말했을 때, 엄마는걸레로 방바닥을 훔치고 있었다. 내 말에 아무런 대꾸가 없어서 나는 한 번 더 말했다. "엄마, 나는 작가가 되고 싶어."
아마도 열한 살 즈음이었을 것이다.
엄마는 걸레질을 멈추더니 바닥에 시선을 둔 채로 말했다.
"작가는 배고픈 직업이야. 다른 걸 해."

센터를 돌아다녔고, 미배정 물건이 담긴박스 근처를 항구의 갈매기처럼 맴돌았다. 그땐 그게 나의삶이었고, 소설은 영적인 것에 가까웠다.

나는 그들이도대체 무슨 돈으로 먹고사는지 궁금했다. 모두 가까스로버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에 대한 기대가 높지 않으니 소설을 쓰다가 슬럼프에 빠질 정도로 좌절하는 일은 매우 드물다. 완드성하면 그걸로 충분하다. 단, 쓸 땐 나의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 이후의 일은 신의 뜻대로, 그것이 나의 기본자세다.

이 모든 일들에도 불구하고 나는 소설을 사랑한다. 그래서 가끔, 아니 자주 가족에게 미안하다. 내가 돈을 더 많이벌면 그들의 삶이 한층 더 풍족해질 수 있을 것이기에희생당한 나무에게도 미안하다. 종이가 아까운 글을 쓰진 않았는지 반성하게 되므로

한국고용정보원이 2020년에 내놓은 『2018 한국의 직업정보』를 살펴보면 어쨌거나 시인은 직업으로 분류되어 있다. 근로 시간이 짧은 직업 상위 30개 중 하나이며, 공간 자율성이 높은 직업 상위 20개 중 하나이다. 그리고 평균 소득이 가장 낮은 직업 50개 중 하나로, 2위이다. 1위를 놓치는 때가 별로 없었는데 2018년에 설문에 응답한 30명 중에아주 잘나가는 시인들이 있었던 모양인지 평균 연 소득이 1,209만 원으로 뛰어버렸다.

이 내용을 바탕으로 11년간 그가 인세로 벌어들인 돈을 살펴보면 도합 2,450만 원가량이다.

여러분은 어떤가. 등단 11년차의 잘 나가는 시인 S의 수익을 보고도 S처럼 전업 시인으로 비루하게 살기를 꿈꾸는가? 아니면 그렇게는 못 살 것 같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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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가 느끼는 불편한 감정들 그리고 패턴화되어계속 반복되는 부정적인 일들은 대개 어린 시절에서 출발합니다.
양육자와 안정적인 애착 관계를 형성하지 못했거나, 자라는 동안있는 그대로 감정을 표현했을 때 수용받지 못해 그것이 고착되어성인이 되어서도 힘든 순간들, 또래 집단에서 거절당하고따돌림을 당했던 기억, 부모님의 싸움에 늘 무섭고 불안에 떨어야했던 시간들. 그 어린 나이에 멈춰 울고 있는 내면아이가 떠나지못하고 성인이 되어서도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합니다.

이렇게 지금의 나를이해하기 위해 과거의 나를 안아주는 시간도 마음을 들여다보는글쓰기에 아주 중요한 시간이 되리라 믿습니다.

이렇게 내가 나를 이해하는 가능성의 문을 더 많이열어둘수록 우리가 쓸 수 있는 내 마음의 이야기는 더 커질것입니다. 사고를 추적하는 연습을 통해 내가 나를 얼마나이해하고 있는지,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는지 스스로를 가늠하는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의 글쓰기를 진심을 다해응원합니다. 그로 인해 궁극적으로 당신의 마음이 편안해지기를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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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하나의 언어밖에 구사하지 못하죠. 인간중심적인 시선과 사고는 언어의 폭을 좁게 하고, 결국 유연하지못한 글을 쓰게 해요. 우리는 외부와 연결됨과 동시에 그것을자유자재로 응용하여 내면을 확장하거나 자신만의 언어를 구축할수 있어요. 언어의 한계가 곧 내 세계의 한계라는 말이 있듯, 저는가능한 한 많은 언어를 습득하고 더 많은 세상을 보기 원해요.
그것만이 세상과 연결되는 유일한 방식 같아요. 세상에는 안다고믿는 것보다 알아가야 할 게 너무 많아요.

말씨나 솜씨, 글씨, 마음씨 같은 단어가 있어요. 현상 뒤에품고 있는 씨앗들이죠. 분명 어떤 사실 속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공들여 가꾼 무엇이 숨어 있어요. 조심스러운 대화 속에도 타인에대한 배려가 담겨 있고, 한 접시의 음식이 나오기까지 시간과정성을 다한 마음이라든가, 허리를 세우고 숨을 참은 채 한 글자한 글자 눌러쓰는 자세에서도 설핏 떨어져내린 씨앗이 있어요.
마음씨라는 말 속엔 정성과 태도가 있어요. 그런 것을 바라보고쓰려고 노력해요. 그러다 보면 단순히 글을 쓰는 게 아니라글솜씨가 좋아질 수 있지 않을까요.

삶에는 보이지 않는 장면이 도처에 숨겨져 있고,
보물찾기하듯 그것을 찾아보는 것은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점이라 생각해요. 그렇게 수집한 것들과 함께 나만의 고유한언어를 구축하는 것. 쓰고자 하는 사람의 시선과 태도야말로글쓰기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준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요.
그리하여 저는 무엇을 어떻게 쓸까, 가 아니라 살아오며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느꼈는지에 초점을 맞추려 해요. 아무도모르게 외롭게 다져온 내공이 가장 중요한 글감이 되니까요.
아무나 글을 쓸 수는 있지만, 타인과 어떤 차이를 만들어가는 건아무나 할 수 없는 작업이겠지요. 누군가는 그 과정을 통해 훌륭한문장력을 가질 수 있어요. 제게는 문장력보다 통찰력을 갖는 것이더 중요한 힘이에요. 저는 그 방향으로 나아가보려고 하는 것같아요.

한 편의 글을 완성하기까지 하루가 걸렸다면, 글감을얻기까지 어쩌면 우리는 평생이 다 동반되어야 할지도 몰라요.
눈앞에 놓여 있는 삶을 사랑의 시선으로 꼼꼼히 들여다보아야하니까요. 그런데 그것이 삶을 살아가는 단단한 자세가되어줍니다.

만약 아무것도 쓸 수 없다면 가만히 바라보아도 좋아요. 그시간을 애쓰기보다는 그냥 지나가보는 거예요. 쓰지 않더라도꾸준히 바라보면서요. 내 주변을 둘러싼 가장 가까운 장면부터창문 너머 저 멀리 펼쳐진 이야기를. 무언가를 내 의지로 쓰려고하기보다는 외부가 내게 들려주는 말을 가만히 들어보는 거예요.
의자에 오래 앉아 고민하는 것보다 문을 열고 나가 조금 걸어보는것도 좋아요. 삶은 테이블 위에 없고 삶 속에 있으니까요. 삶에서의발견은 분명 살아 있는 문장을 쓰게 해요.

다행히도 저는 절망보다 희망을 더 믿는 편이에요. 눈앞에놓여 있는 좌절보다는 보이지 않는, 아주 실금 같은 몽상과 희망을믿는 편이에요. 이런 용기는 삶의 태도에서 나오고, 글은 그지구력으로 써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망하거나 비교하고 회피하기보다, 조금 더큰 각오로 계속해서 밀고 나가보는 거예요. 그 과정에서 글이라는성과보다 훨씬 더 큰 것을 얻게 되어요. 글이 아닌 나의 성장과아름다운 삶을요.

‘나에게 선명하게 남는 말‘로 시를 시작합니다. 어떤 이유로든그 문장이 저의 마음에 닿았다는 뜻이고, 하얀 종이에 다소느닷없이 시작되어도 괜찮을 거 같습니다.

얼굴을 간질이는 햇살에 눈이 떠졌다. 오랜만의 휴일. 새로운프로젝트를 시작한 이후로 가장 간절했던 시간이다. 여유를 부릴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 해도, 일의 끝을 보기 전까지는 시간을온전히 쉼의 영역으로 가져갈 수 없었으니까. 계속해서 생각은마무리 짓지 못한 일에 머물러 외투 주머니에는 항상 두통약이있어야만 했다. 비과학적인 해석일지 모르지만, 생각이 나아가지못하고 고민의 벽에 가로막힐 때면 어김없이 두통이 시작됐다.
마치 머릿속 어딘가를 꽉 막아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러나오늘은 주머니를 살필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전인 지금은 가장 평평한 기분이니까.

물론 글을 쓰는 순간들은 대부분 매우 괴로웠다. 마음을문자로 옮기는 일은 그 자체로 고통을 수반하는 일이기도 하고,
담고자 했던 것들이 대체로 기쁜 순간보다는 나와 내 주변,
사회와 세상의 아픈 구석인 경우가 많아 그렇기도 하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이 넓은 세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만으로그건 감내할 만한 고통이었고, 동시에 기쁨이었다.

당신만의 달리기와 결과를 알 수 없는 새로운 산책을 온마음으로 응원하며 투명한 유리컵과 퍼즐, 창가의 바람과 곶감을이제 당신 앞에 건넨다. 아, 어떤 질문이 들었을지 모를 쪽지하나도

"너는 자꾸 결론을 정해놓고 가려고 해. Not-Knowing의상태에서 출발해야 Knowing이 나오는 거야. 지금은 절대로 알 수없는 거라고. 일단 계속 써! 이해했어?"

글을 통해 과거의 나와 미래의 내가 연결된다는 게 가끔은신비롭게 느껴진다. 지금 쓰는 글은 나중에 또 무엇이 될까? 내서랍 속에 잠든 쓰다 만 노트들도 언젠가는 이야기가 되어 세상밖으로 나오게 될까?

그래서 나는 외부로 향해 있는 시선을 ‘나’로 돌리는 작업에 관심이 많다.

"우리, 잘 쓰려고 하지 말아요. 책이라는 말이 부담을 준다면인쇄물이라는 말로 바꿔보면 어떨까요? 그리고 아무에게도 주지말고 우리끼리만 교환해요.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이아니라 나를 위한 기록집이라고, 내가 보려고 만드는 거라고생각해봐요. 우리가 하려던 건 내가 써온 일기를 모아서 다시 한번보는 거예요." 나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자기만의 이야기를 스스로 열고 닫아본 사람은 계속해서이야기를 짓는 것 같다. 쓸모가 없을 거라고 생각한 조각들이하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것. 그것을 몸으로 느껴보면, 창작의결과가 아닌 과정의 재미를 느끼고 나면, 그 사람은 계속 창작하는사람‘으로 살아간다고 믿는다. 나는 모든 사람이 창작자의정체성을 지니고 살아갔으면 좋겠다. 모든 사람이 창작하는직업을 갖기 바란다는 말은 아니다. 꼭 전문적인 작가가 되지않더라도, 많이 팔리는 책을 쓰지 못해도, 살면서 나의 이야기를쓰고 한번씩 마감하는 루틴을 갖는다는 건 꽤 매력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예술철학자 맥신 그린(Maxine Greene)이 자주 한말이다. ‘나‘라는 사람은 아직 현재진행형이고 새로운 가능성은언제나 열려 있다는 것이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도 이와 비슷하다.
나의 세계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고, 내 안에 닫혀 있는 문을계속해서 열어보고 싶다. 글을 쓸 때마다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너는 이 이야기를 왜 하고 싶어?‘ 그렇게 묻고 답하다 보면 내가모르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 그이야기가 내게 왜 중요했는지 알게 된다.

그렇게 해서 저는 한 줄에서 두 줄, 두 줄에서 다섯 줄 쭉문장을 이어붙여 한 편의 글을 만들어나갔습니다. 감정에서글감을 찾다보니 하루 중에 겪는 일, 만나는 모든 사람이 나에게오면 글이 될 수 있었어요. 거기서 중요한 점은 내가 그 사건과사람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대한 관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것입니다. 인간은 대개 자신의 감정에 취하면 객관적으로스스로를 보기 어렵습니다. 누가 옆에서 ‘너 지금 뭔가에 홀린 것같아. 정신 차려!‘라고 일깨워줄 때가 아니고서야 판단력이 흐려져내가 무얼 하는지조차 모를 때가 있지요. 하지만 글로 남겨둔기록은 거짓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럴 때일수록 남겨둔 문장은마음을 추측해보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보통 제가 마음을 들여다보는 글을 쓸 때는 ‘현실직시 - 감정 알아차리기 - 감정의 이유 찾기 - 스스로를 이해하고객관화하기‘의 과정을 거치고 있어요.

글을 쓸 때는 보통 ‘계획하기‘ 단계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글쓰기를 계획할 때는 무엇에 대해 쓸 것인가(주제), 이 글을 왜쓰는 것인가(목적), 이 글은 누가 읽을 것인가(독자), 이렇게 세부분에 대한 고민이 충분히 이루어져야 합니다. 저는 흔들리는 제마음에 대해 쓰면서 고요한 호수 같은 마음을 만들고 싶었고, 저와비슷한 어려움을 가진 독자들에게 닿기를 바라며 글을 썼습니다.
글쓰기에는 왕도도 없고 정답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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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질문이 이어지고 가볍게 충돌할 때, 인물의 성격과배경은 조금씩 더 명확해진다. 결과적으로 나는 예상치 않은 VR멀미와의 만남을 통해 구상 중인 소설의 주요 인물이 좀처럼거절을 못 하는 성격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저는 즐거워서 그림을 그립니다, 라는 말이 찡했다.
마티스가 말했던 ‘봄날의 기쁨’이 담긴 말을 직접 듣는 호사스러운순간이었다. 나는 그 화가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돌아서자마자나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이용해 메모를 남겨두었다. 누군가의도를 가지고 구성해놓은 극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처럼관람의 시작과 끝이 뱅그르르 돌아서 손을 마주한 듯한 순간들을잊지 않기 위하여. 또한 언제든 다시 삶에서, 혹은 소설 속에서만나기 위하여.

거저 가는 시간이 없다.
면목이 없습니다.
그 말을 너무 남발하지는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면목이 있으나 없으나 시간은 간다.
충동섬에 전시된 충동들을 상상했다.
형상을 가진 충동들과 그것들이 모인 섬이라는 공간.
해안절벽과 파도를 쓸 수 있으리란 생각으로그 발상을 발전시켜 소설화하고자 했는데,
안 했다.

마음이 네모반듯하게 접힌 게 아니라 종이학처럼 접힌 것 같았다.

마음과 유리가 마음도 유리도.
뭔가 잘 설명해내는 나를 상상해보기도 하고.
좀 더 성실한 나를 상상해보기도 한다.
뭔가 생각하고. 뭔가 잊고, 캘린더를 살피고 뚫어져라.
눈이 피곤해지면 눈을 감고 잠이 들거나.
꿈에서 충동섬까지 가거나.
바다에 모래를 던지거나.
모래로 바다를 만들거나.
돌을 줍고, 돌에 이름을 붙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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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상태는 오감으로 느껴야 하는 만큼 사람의 손길이 :요한 관측의 영역이지만 이제는 기상위성이 내려다본 구름 영상을 받아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일기도에서 구름 기호가 하나둘 사라져가는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도심의 바쁜 일과 중에눈앞의 숙제나 걱정에 쪼들리다 보면 하늘을 쳐다볼 여유가 없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하늘에는 프레임에 갇힌 풍경이나 아이맥스 영화와는 비견할 수 없는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자연이 주는 소소한 즐거움은 늘 우리 곁에 있다.

태양은 공평하게 사방으로 빛을 내보내지만 땅이 받는 일사랑은 지역마다 다르다. 지구가 둥글게 생긴 탓이다. 적도 지역은햇빛의 부국이고 극지는 햇빛의 빈국이다. 한쪽은 쌓여가는 부를시키고자 하고 다른 쪽은 부족한 부를 빼앗아 오기를 꾀한다. 그사이에 첨예한 대치 전선이 펼쳐진다. 전선은 남북으로 오르락내리락하면서 그 한가운데에서 국지전이 일어난다. 눈이나 비가 내그리고 바람이 잦아들면 전선은 다시 소강상태로 접어든다. 전선이곳곳에 남겨둔 생채기는 이 땅의 곳곳에 고루 에너지를 나누어주기 위해 햇빛이 연출한 날씨의 드라마일 뿐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같은 서부 해안가 도시나 튀르키예의 앙카라를 비롯한 지중해 도시는 한반도와 같은 중위도권에 속해 있음에도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여름이 건조하다. 그래서 이 도시들은 한여름 태양 아래에서도 그리 덥지 않다는 느낌을 준다. 습도가 낮으면 땀을 통해 금방 체내의 열이 빠져나간다. 해수욕을 즐기다 뭍으로 나오거나 그늘 속으로 들어가면 금방 서늘하게 느끼는 것도 같은 이유다. 한편 겨울철에는 해풍이 불어와 추위가 그리 심하지 않고 대신 비가 자주 내린다.

한편 겨울이 되면 일사량이 줄어들면서 육지가 바다보다 빨 식는다. 이번에는 바다에서 상승한 공기가 육지에서 하강한다.
대륙에는 고기압이 발달하고 바다에는 저기압이 형성된다. 아시아 대륙의 동쪽 끝에 있는 우리나라는 겨울이면 시베리아고기압의 영향으로 대륙의 차고 건조한 공기가 유입한다. 반면 샌프란시스코는 북태평양 고위도에 놓인 알류샨저기압의 영향으로 남서풍이 불고 추적추적 비가 오는 겨울 날씨를 보인다. 지중해 도시들은 북대서양의 아이슬란드저기압의 영향으로 서풍을 타고온화한 바다의 해풍이 들어온다. 그 덕분에 기온도 영상에 머무르고 비가 자주 오는 날씨를 보인다.

폭풍의 한가운데에서는 거센 바람에 얼굴을 들기조차 어렵고 눈앞은 캄캄하다. 뮤지컬 <회전목마(Carousel)>에서 네티는 사랑하는 남편을 잃고 상심하는 줄리를 위로하며, <당신은 절대 혼자 걷는 게 아니에요(You‘ll Never Walk Alone)>를 불러준다. "…………폭풍우 속을 헤맬지라도 어둠을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게 맞서 걸어요. 폭풍우의 끝자락에 가면 종달새가 달콤하게 은빛 노래를 들려주리니." 갑자기 불행이 덮치더라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고개를 들고 전진한다면 도움의 손길도 자연히 뒤따라올 것이다. 어두운 터널도 끝이 있듯이 폭풍이 지나간 후에는 하늘이 다시 열리고 햇살이 비친다.

그렇다면 수증기가 가장 적은 곳은 어디일까? 사람의 손이닿지 않는 차디찬 우주다. 별과 별 사이의 우주 공간은 물질이 거의 없는 텅 빈 곳이다. 지구의 대기는 중력으로 지구 표면에 달라붙어 있다. 대기 중에서 가벼운 기체일수록 좀 더 외계로 뻗어나가 지표면에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우주와의 경계를 형성한다. 이 지점부터는 수증기가 전혀 없는 가장 건조한 곳이다.
설령 수증기를 이곳에 가져다 놓는다고 해도 워낙 낮은 기온 탓모두 얼음이 되어 습도는 여전히 0퍼센트다. 밤하늘에 보이는혜성의 꼬리는 대부분 얼음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 주변에서 수증기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태양 덕분에 지구상의 기후구라는 대기의 질서가 유지된다. 열대지방에서는 햇빛을 듬뿍 받아 상승하는 공기가 연일스콜을 쏟아내며 열대우림기후를 가져오지만, 인접한 아열대에서는 바로 그 공기가 수레바퀴가 돌아가듯 하강하며 건조한 사막기후를 만들어낸다. 햇빛의 힘으로 대기가 지구상의 습한 지역과건조한 지역을 갈라놓는 것이다. 에어컨을 구동하는 동안 뜨거운바깥 공기는 한사코 실내 공기와 섞이려 하지만 전기의 힘이 실내의 차가운 공기와 바깥 공기의 기온 차를 벌려놓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하나의 기포는 오랜 여정 끝에 극지에 당도한다. 우선 하나의 눈송이가 만들어지는 것 자체가 예사롭지 않다. 머리 위에 방금 내려앉은 눈송이는 구름 속에서 100만분의 1의 경쟁률을 뚫고 내려온 행운아다. 구름 안의 작은 방울이 100만 개 이상 모여야 하나의 눈송이가 되기 때문이다. 구름 안에서 주변의 수증기나 과냉각 물방울이나 다른 얼음 결정을 먹으면서 100만 배나 덩치를 키운 것이다.

지상에 내려온 다음에도 눈송이끼리의 경쟁은 계속된다. 작은 눈송이에서 기화한 수증기는 큰 눈송이에 달라붙는다. 그렇게큰 눈송이는 살이 통통해지면서 점점 커지고 작은 눈송이는 쪼그라들다가 이내 사라진다. 그런가 하면 결정의 모양이 복잡한 눈송이의 표면에서도 별이나 바늘처럼 볼록 튀어나온 곳은 표면장력이 커서 쉽게 수증기가 기화하는 반면 움푹 파인 곳은 표면장력이 작아 주변의 수증기가 쉽게 달라붙는다. 이렇게 빈틈이 메워지면서 현란한 별 모양이었던 눈송이는 점차 둥그스름하고 볼품없고 평범한 모습으로 변해간다.

뇌우리나라에 흔한 함박눈과 달리 타이거 산림지대에서 극지까지의 추운 지방에는 가루눈이 내린다. 차이콥스키의 발레곡<호두까기인형>에서 마법에 걸린 클라라는 꿈속에서 여러 나라를 여행하다가 어느 순간 눈의 나라에 당도한다. 이곳에는 전나무처럼 뾰족한 나무들이 빽빽한 숲속에 가루눈이 사뿐히 내린다.
나무도 들판도 온통 눈으로 하얗게 빛난다. 초록 조명 사이에서군무를 추는 발레리나들은 마치 눈송이처럼 사뿐사뿐 내려앉다가 다시 바람에 날아오르고 이내 곧 정숙하게 설원 위에 미끄러져서 잠을 청한다. 눈의 요정이 있다면 이런 곳에 머무르지 않을까.

날씨 전선에 안전지대는 없다. 밤낮 없이 아무 때나 찾아오는 불청객을 맞이하느라 기상예보 본부에는 24시간 불이 꺼지지않는다. 남서쪽 해상에서 들어온 비구름이 물러나나 싶으면, 북서쪽에서 찬 공기가 밀려와 큰 눈을 뿌린다. 한파가 누그러든다 싶으면 황사가 날아들고 먼지 농도가 올라간다.

기상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갈 것 같으면 평소보다 서둘러 야간 근무지로 향한다. 낮에 잠깐 선잠이 들었다가 깨어서인지 머리는 둔기로 얻어맞은 듯이 여전히 멍하다. 밤새 자료와 씨름하며 여기저기 기상특보를 발표하고 새벽 5시에 정규 일기예보를내보내고 나면 무거워진 눈꺼풀 사이로 졸음을 참느라 또 한 차례 전쟁을 치러야 한다.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애써 태연하게 일근 조와 교대하면서도 속으로는 다음번 야근에는 어떤 날씨가 날괴롭힐지 걱정이 앞선다.

대기를 구성하는 기체들은 각자의 온도에 따라 끊임없이 적외선을 방출하며 에너지를 잃는다. 어디선가 에너지를 받지 못하면 대기의 온도는 계속 떨어지게 된다. 하지만 대기층을 통과한햇빛이 지면을 달구면 지면의 온도가 올라가고 지면 부근에서 난류가 일어난다. 이 난류가 지면의 열을 대기로 끌어올려 대기를다시 덥혀준다. 햇빛이 지면과 가까운 아래쪽에서부터 대기의 온도를 높여주는 것이다.

산은 우리 민족이 이 땅에 터를 잡고 살기 오래전부터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바람이 땅의 지세에 순응하여 흘러왔듯이이 땅도 대기의 숨결을 받아들였다. 오랜 세월 이 땅은 바람이 부는 대로, 비나 눈을 맞는 대로 깎이면서 그렇게 다듬어져왔다. 완만한 언덕을 오를 때는 부드러운 비와 이슬을 느낄 수 있고, 가파암반 기슭을 오르는 동안에는 바람의 거친 손자국을 그려볼수 있을 것이다. 등반을 하다 보면 하루 동안에도 여러 개의 기후대를 통과하게 된다. 마주치는 동식물과 토양의 미생물은 날씨에적응한 그들만의 삶을 속삭인다. 우리는 산의 날씨가 특이한 것에 놀라지만 날씨는 자연의 원리에 따라 산과 그곳에 머무는 생명과 조화롭게 공존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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