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소바를 다 먹고 해가 지는 천변을 오래 걸었다.
Y가 꿈에서 봤다는 하늘이 꼭 이랬을까? 나는 지난 어버이날 먼저 전화를 걸어온 엄마가 수화기를 붙잡고 아이처럼 울었던 일에 대해 얘기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안좋은 일이든, 안 좋은 마음이든 자식이 신경 쓸까 봐 무조건 숨기려고만 하던 엄마가 이제는 올 일이 생기면 자식에게 먼저 전화해서 "오늘은 내가 마이 싫다" 말하게 되었다고 그런데 나는 그게 반갑다고 엄마가 충분히 약해진게, 평생 기댈 줄을 모르고 살았다면 더 속상했을 텐데, 이제 나는 우는 부모를 달래주어야 하는 나이가 되었고 그게 좋다고, Y를 집에 데려다주고 혼자 돌아오는 길,
그 말이 계속 생각났다.
"꿈에서도 시간이 없는 거야"
생각하다 보면 끝내 슬퍼지는 말.

누군가 편한 삶을 가지는 데에는 얼마큼의 행운이 따라야 하는 걸까. 두 사람이 원하는 것은 늘 작은 것들뿐인데. 어제 집 앞의 다이소에 갔을 때 값싼 물건들 사이를 걸으며 신중하게 필요한 걸 고르던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지금 쓰는 알로에 젤은 시장에서 8,000원이 넘는데 여기는 3,000원밖에 하지 않는다고 반색하며 세 개를고르던 표정. 저녁을 먹고 후식으로 속이 노란 수박을 내어왔을 때 집에 돌아가서 심어보겠다고 수박씨를 휴지에 감싸 챙기던 아빠의 모습. 침대에 누워 여기선 산이 내려다보여 참 좋다고 말하던 모습, 꿈도 없이 곤한 잠을 잤다고 말하던 부스스한 얼굴. 그런 것만 마음에 맺혔다. 쉴틈 없이 살아오다가 한숨을 내어놓듯 잠에 빠지는 게 어떤 기분인지 나는 짐작도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자식은 언제나 부모보다 늦게 도착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이제야 조금은 의지가 되는 자식의 자리에 서서 나는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다는 듯 장바구니에 무얼 주섬주섬 주워 담는다. 꿈에서도 없는 시간이 현실에서 넉넉할 리 없고, 올려다본 하늘은 꼭 해 질 넉처럼 노랗다. 서둘러도 삶에 자꾸만 지각하는 사람에게 유일한위로가 되는 것은, 시간이 없다는 자각 속에서만 비로소제대로 하게 되는 일에 사랑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
사랑하는 데에, 더 잘 사랑하는 데에 남은 시간을 쓸것이다.

테라스 자리를 빼고 나면 전에 살던 빌라보다 공간이더 좁았다. 1,000권 넘는 책들을 비롯해 어디에 둬야 할지난감해진 각종 짐들을 테라스 옆 창고에 뭉뚱그려 보관해야 했다. 말은 창고지만 바깥에 있던 계단을 없애면서길게 덧댄 임시 공간이었다. 북향집은 겨울이면 안팎의온도 차로 인해 테라스로 통하는 새시 문이 꽝꽝 얼어붙어 열리지 않았다. 방한재인 ‘뽁뽁이를 붙여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책들이 있는 창고로 가고 싶은 날엔 드라이어로 창틀의 얼음을 녹여야 했다.
그 집에서 세 번의 겨울을 났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난다. 책을 읽고 싶을 때마다 드라이어로 얼어붙은 새시문을 정성스레 드라이해 주고 있던 내가 농담 같아서.

나는 그런 한계를 좋아했다. 아껴 마땅한 시간을 아끼게 해주어서. 하루하루 이 테라스에서 보낼 시간이 줄어가고 있는데, 그렇다면 좋은 사람들을 불러서 좋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내 몫으로 온 것이니 아꼈고, 어떻게 더 쓰일지 모르니아꼈다. 아무리 힘든 순간에도 그가 삶으로부터 도망치려 한 적 없다는 걸 안다. 스물셋에 결혼하자마자 시할머니 중풍 수발을 들어야 했을 때에도, 빨래 널고 돌아서면빨랫감이 또 쌓여있는 집에서 한겨울에 맨손으로 빨래를하다 펑펑 울었을 때에도, 그나마 자신을 아껴주던 시아버지가 폐암 선고를 받고 집에서 2년 넘게 투병했을 때에도, 갚아도 갚아도 빛이 줄어들지 않는 살림이 막막할 때에도. 인숙 씨는 살아야 할 이유를 찾기 전에 살 방법을,
다음에 할 수 있는 일을 향해 손을 뻗는 사람이었다.

회사에서 나는 자주 그런 생각을 했다. 화장실 세 번째 칸에 앉아서, 서로의 표정을 가려주는 파티션 안쪽에서 고개를 숙인 채, 사람들이 떠난 회의실에서 한숨을 돌리면서. 진짜 살아보고 싶은 삶을 내 마음속에만 숨겨 두었다는 것, 그건 ‘믿는구석‘인 동시에 일터의 고단함을 이겨내게 해주는 상비약 같은 것이기도 했다. 스스로 선택한 지금의 시간을 잘 딛고서 다른 시간으로 건너가고 싶었다. 일터에서 배우는 것들, 동료들과 일하는 즐거움, 함께 이룬 좋은 결과를 앞에 두고 느끼는 보람도 귀한 것이었다. 일하는 나에게 중요한 건 언제나, 장점이 얼마나 큰가보다‘ 견딜 수 있는 단점인가 하는 것이기도 했고..

시간을 정말 이렇게 써도 되는 걸까?
정신없이 흘러가 버리는 하루로 인생이 채워지는 게괜찮은 걸까?
예전엔 괜찮았던 시간이 분명 있었다. 퇴근 후에, 주말에, 누구에게도 팔지 않은 시간 속에서 내 삶을 생각하는것만으로 다시금 회복되곤 했다. 휴일 오후의 카페에 앉아 밀린 일기를 쓰거나 책을 읽을 때. 여행지에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면 이렇게 살아보자, 저렇게 살아보자 마음먹을 때, 삶에 대한 통제권이 분명 내게 있다고, 쓰지않은 자유가 내 손 안에 있다고 느꼈다. 내려다 본 빈손이 허전해진 건 언제부터였을까.

사전에서는 긍지를 이렇게 말한다. 늘 입에 담기엔거리감이 느껴지는 단어라고 생각했는데, 뜻풀이를 보니이해가 된다. 회사를 다니면서 내가 긍지를 잃어갔던 건조직이 요구하는 것에 함몰되어 나에 대한 믿음보다 의심을 키워갔기 때문이었다. 나를 계속 부족한 인간으로평가했다. 할 수 없다고 여겨지는 일들이 많았다. 그런 마음으로는 사실 무엇도 할 수 없다. 할 수 없다고 이미 믿고 있으니까.

그러니 방학이 끝나면 이젠 정말 글을 쓸 것이다. 내가선택한 일을 계속 사랑하며 조금씩 나아지는 데에 다가을 시간을 쓸 것이다. 여태 애써준 동생한테 고마워하는맘으로, 미래에서 기다릴 언니를 생각하는 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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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뙤약볕 아래를 벗어날 수 없게 된 건 집에 빚이늘어나면서부터였다. 엄마는 새벽같이 일어나 어른들 드실 밥을 안치고 밭에 나갔고, 밤이슬을 맞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사이 몇 년 차로 쓰러진 증조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집에서 오랜 투병을 시작했다. 농사일이 밀린 날이면 엄마는 캄캄한 밤에도 헤드 랜턴을 쓴 채로 오이 덩굴을 손질하곤 했다. 사정도 모르는 사람들은 비닐하우스너머로 어른거리는 랜턴 불빛에 혀를 차며 말했다. 저집은 돈독이 올라 저렇게 일한다고. 독한 것 좀 보라고. 쉽게 흉보고 소문에 옷을 입히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건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내가 배우고 싶은 삶이 이곳에 있다고. 강의실이나 도서관이나 방송국 조명 아래가 아니라 이 들판에, 산자락에, 색색의 지붕 아래에 있다고. 어떤 마음이 너무 귀해서미안해지는 건 그 속에서 내가 잊고 살던 ‘더 나은 것’을보기 때문은 아닐까. 아무런 셈도 없이, 대가도 바라지 않고, 돕는다는 자각 없이도 돕는 할머니 곁에서 나는 사람이 사람을 도울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처음 듣는 것처럼 다시 배운다. 아픈 사람이 아픈 사람을 돕고, 힘든 사람이 힘든 사람을 돕고, 슬픈 사람이 슬픈 사람을 돕는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도울 수 있는 존재들이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면 세상은 이미 틀렸다는 비관이나 사람에게환멸을 느낀다는 말 같은 건 함부로 쓸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된다.

솟아나는 말들을 나는 그대로 둔다. 희망이 생기도록 내버려 둔다. 가르친 적 없는데 배우게 하는 것, 그게 내가아는 할머니들의 교실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어떤 반딧불은 길을 건너듯 이편에서 날아와 사람들사이를 거쳐 저편으로 날아가기도 했다. 위험한 줄도 모르고 다가오네, 생각하다 퍼뜩 이 밤을 헤집고 다니는 건나라는 걸 깨닫는다. 새삼스레 숲의 주인은 누구인가 생각하게 됐고, 제주에는 한낮의 여행자들과 바다를 향해선 카페들, 별점과 해시태그로 표시되는 식당들만 있는게 아니라, 밤의 어둔 숲이 있고, 반딧불이 있고, 빈 오름이 있고, 노루와 새들이 있다. 원래부터 이 섬에 살던 것.
이 섬의 주인인 것들. 그 생각을 하면 이 밤 이 숲에 불쑥들어온 것이 미안해지기도 했다.

어떤 존재를 의식하며 이토록 조심스럽게 걷는 경험도 낯설었다. 사실 우리는 그렇게 조용히 함께 있을 수도있었는데, 너무 크게 말하고 소란스레 걷고 팔을 휘젓는바람에 저들이 모두 날아가 버렸다는 생각.

어떤 것을 바라보기 위해 우리가 충분히 어두워져야만 한다는 것. 이상하게 그 밤엔 그것이 남은 삶에 대한은유로 들렸다. 계속 걸으라는 말로도 들렸다. 우리는 어둠 속을 걸을 수 있는 존재. 캄캄한 마음으로 걷다가 어둠에 서서히 눈이 익었을 때 비로소 보게 되는 것, 내가 언제고 글로 옮기고 싶은 것은 그런 것이었다.

낭만은 대체 어디에 있을까? 도라지 위스키 한 잔에다 짙은 색소폰 소릴 들어볼 일은 없으니 곰곰이 앉아 생각해 본다. 낭만은... 어쩌면 동해를 보러 가려면 두 시간아니라 열두 시간이 걸리던 시절에 있는지도 바꿔 말하면 시간이 오래 걸려야만 생기는 일들 속에 돋보기로햇빛을 모으듯 하염없이 쌓이는 시간을 바라보다 마침내거기서 작은 불씨가 피어오르는 순간을 기다릴 수 있을때, 우리가 속도를 얻은 대신에 잃어버린 건 어떤 ‘이야기‘가 생길 가능성인지도 몰랐다.

기꺼이 진흙투성이가 되었던 순간을 떠올리다 보면기억은 어느새 10여 년 전의 지산 록 페스티벌에 이른다.
소나기가 와서 잔디밭은 이미 진흙탕이 된 지 오래였다.
비라는 게 맞기 전에야 피하려고 들지만, 어느 정도 맞고나면 자포자기 상태가 되어 사람을 좀 천진하게 만드는구석이 있다. 사람은 몰리는데 임시로 지은 시설들은 열악했고 우리는 한여름의 더위와 습도와도 싸워야 했다.

이런 장면을 목격하면 어딘가에 적어둔다. 휴대폰 메모장에 일기처럼 끼적일 때도 있고, 카카오톡 ‘나와의 채팅‘에 단어만 몇 개 적어둘 때도 있고, 가방 속에 노트가들어있을 땐 거기 짧게 메모해 두기도 한다. 방금 만난 이야기를 잊어버리고 싶지 않아서. 아끼는 상자에 넣어두는 마음으로, 그럴 때 깨닫는다. 그동안 나도 줄곧 뭔가를덕질해 오고 있었다는 걸. 학창 시절부터 어떤 대상을 깊이 좋아하는 친구들을 보면 부러웠다. 내 밍밍한 애정은어디에도 속할 데가 없는 것 같아서. 그런 나에게도 알고보니 오랜 덕질 대상이 있었던 것이다. 마음을 붙잡는 시시콜콜한 이야기. 발에 쉽게 채는 것 같지만 실은 보거나듣다 보면 이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이야기잖아, 싶어지는 그런 이야기.

디테일에 마음을 빼앗겨 책 바깥의 실체를 만져보고싶어질 때도 있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이 들어간 술집 벽에 적혀있는 낙서가 언급되면, 지금이라도 당장 낡은 벽이 낙서로 채워져 있는 걸 아는 몇몇 술집에 찾아가 낙서를 확인하고 싶어진다. 나는 거기서 어떤 낙서들을 발견하게 될까. 지나가는 버스 옆구리의 광고판에 적힌 문구를 주인공이 중얼거릴 때면 차량 흐름이 많은 집 앞 사거리로 달려 나가 버스 옆구리를 확인하고 싶어진다. 그 자리에 10분 동안 서있으면서 나는 어떤 문구들을 읽게 될까. 이상하게도 불쑥불쑥 그런 마음이 치솟는 것이다. 글속에 담긴 것을 글 밖에서 직접 확인하고 싶은 마음. 우리삶이 결국 이런 디테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기억해두고 싶은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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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렇게 쓴소리를 써놓기는 했지만 물론 국립한국문학관이 잘되길 바란다. 문을 열면 나도 몇 번 찾아갈 것 같다. 물리적인 장소의 의미를 넘어 재미있는 프로그램들을 기획하는 기관이 되면좋겠다.
개인적으로는 2020년대 상황을 이야기하는 리얼리즘 노동문학에 내 자리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앞으로 노동문학만 쓰겠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2020년대의 한국 노동자들은 자기착취와 상호 착취에 시달리고 있고, 과거 민중문학의 틀로 이를포착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가끔 내 소설에 대해 너무 깔끔하다거나, 인물에 대한 애정이안 느껴진다거나, 진짜 같지 않다는 평을 받는다. 내 생각에 그런 평가는 어떤 면에서 정확하다. 그리고 그다지 기분이 나쁘지않다. 열심히 청소한 집에 대해 누군가가 ‘먼지 한 톨도 없어서인간미가 안 느껴진다. 사람 사는 집 같지 않고 화보 같다‘고 평하는 것과 똑같은 상황이다. 의미 있는 세계와 깨끗한 집은 원래부자연스럽다. 플롯이라든가 윤이 나는 마루 장판 같은 것은 비정상적이다. 사람의 노력 없이는 저절로 생겨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마치 좀 더 혼란스럽지만 더 인간적이고 궁극적으로 진실을 지향하는 글쓰기가 따로 존재하는 것처럼 말한다. 나는 회의적이다. 애초에 언어라는 것이, 세계에 가짜 의미를부여하기 위해 만든 도구이기 때문이다. 빗자루와 쓰레받기와걸레가 청소를 위한 도구인 것처럼.
글과 글쓰기로는 결코 세계의 실체에 이를 수 없다. 굳이 그 언저리에 가고 싶다면 소설이 아니라 시를 써야 할 것이고, 더 나아가 마침내는 언어를 포기하고 명상에 잠겨야 하지 않을까. 나는 그러는 대신 소설을 쓰고 청소를 한다. 나는 그냥 내 주변 세계를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바꾼다.

지금 이 순간 ‘작가의 일상‘을 주제로 에세이를 써야 한다는사실이 퍽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최근 한동안 작가의 일상에대해 고민이 많았기 때문이다. 보름쯤 전에 그 일상을 위해 꽤비싼 비용을 지불하기도 했다. 그리고 며칠 원하는 대로 살았다.
‘그래, 그토록 원하던 작가의 일상을 제대로 누려본 소감이 어때?"라는 질문에 답안지를 써내야 하는 기분이다. 아직 잘 모르겠는데……….

유난 떤다 싶겠지만, 사실 짧은 외출 한 번으로도 의식이 얼마간 흐트러진다. 햄버거를 먹거나 편의점 도시락을 사러 가까운거리에 가는 정도라면 모자를 눌러쓰고 트레이닝복 차림으로나간다. 그럼에도 한번 집 밖에 나가면 가벼운 흥분 상태에 빠진다. 서울 길거리는 포털 사이트 첫 화면과 비슷하다. ‘여기 좀봐주세요!‘라고 호소하는 수많은 미남 미녀의 사진들이 걸려 있고 ‘이건 도저히 못 지나치겠지? 궁금하지?‘라고 외치는 간판도있다.

우리가 함께 만든 책은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 변덕스러운 시장 반응을 놓고 나중에 누가 옳았는지 따지는 게 의미 있을까? 우리는 성공하면 함께 성공하고 실패하면 함께 실패한다. 다만 그렇게 성공하거나 실패하기 전에 활발히 두 머리를짜내어 후회 없이 좋은 책을 만들 수 있기를 원한다. 한쪽에서는이런 관계를 맺는 힘을 에디터십이라고 부를 수 있을 텐데, 다른쪽에서는 파트너십이라고 표현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쯤 되면 ‘문학이 내게 무엇일 것인가‘는 주어가 바뀐 질문이지 싶다. 내가 할 일과 그 일에 임할 태도는 정해져 있으므로, 지금 나에게 중요한 질문은 ‘내가 문학에 (문학계에? 문학장에? 문학사에?) 어떤 작가일 것인가‘다. 그러고 보면 문학이 뭔가의 도구가 아니라, 내가 문학의 도구인 것 같다.

인간이라는 종은 행복보다는 고통에 더 마음깊이 묶이게 되는 존재가 아닐까. 그리고 글자로 그 고통을 전하는 기술이 문학이 아닐까. 위대한 문학 작품은 모두 행복이 아니라 고통을 다루었다. 문학이 위안을 줄 수는 있지만, 그 위안이라는 게 문학을 통해 타인의 고통을 체험한 뒤에야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아직은 설익은 생각인데, 언젠가 이 주제로 보다명확하게 글을 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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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전까지 문학계라는 곳이 무척 폐쇄적이고 권위적이라는 선입견이 있었다. 문인들이 ‘몇 년도에 등단한 누구‘라는식으로 자기소개를 하고는 서로 누가 더 선배인지 따지지 않을까, 멋대로 공상하기도 했다. 그런데 다른 군더더기 없이 ‘나누어떤 분야의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라니, 근사하지 않은가. 곧 나도
"소설 쓰는 장강명입니다"라고 스스로를 설명하게 되었다. 그렇게 말하는 사이에 자기규정도 서서히 바뀌었으려나?
이동진 평론가의 독서 에세이 『밤은 책이다』에는 그가 트레이드마크인 빨간 뿔테 안경을 사게 된 계기가 나온다. 신문사를 그만두고 울적하게 지내다가 동네 안경점에 가서 빨간 테 안경을처음으로 걸치게 되는 이야기다. 그는 "변화의 순간은 일종의 의식(儀式)을 필요로 할 때가 많은데, 내게 그 의식은 빨간테 안경을 사는 일이었다"고 썼다.

막 집어 든 관계의 과학의 저자 소개 문구도 대단히 훌륭하다. 김범준 교수는 자기소개를 책 뒷날개까지 이어지도록 길게썼다. 이런 식이다. "논문 출판을 걱정했던 연구로는 「혈액형과성격의 상관관계에 관한 연구」 윷놀이에서 업는 것과 잡는 것중, 어떤 것이 더 유리한지 살펴본 연구 등이 있다. 다행히 지금까지는 마무리한 연구 결과를 모두 학술지에 출판할 수 있었다."
저자에 대한 신뢰와 글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면서, 통계물리학이라는 어려운 학문에 대한 부담은 줄어드는 일석이조의 소개다.
내가 드러내고 싶은 나의 모습과 출판사에서 원하는 문구가다른 경우도 있다. 특히 장르소설을 내거나 앤솔로지에 참여할때 그렇다. 나는 책날개에 있는 문장도 책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본문 내용과 어울리게 쓰고 싶어 한다. 그러나 편집자들은 그보다는 무슨 문학상을 받았고, 무슨 문학상도 받았고 하는 내용을넣으려 한다. 그 심정도 이해는 간다. 그 편이 손톱만큼이라도 책판매에 더 유리하리라 여길 것이다

그러나 자칫하면 그런 문구가 자신에 대한 규정이 되어버릴수도 있기에 조심해야 한다. ‘발랄한 상상력‘ 같은 딱지를 누가붙인다면, 글쎄, 나는 싫을 것 같다. 운신의 폭이 좁아지지 않을까. ‘발칙한 상상력‘은 더 나쁘다. 그 상상력의 수준이 감당할 수있는 범위에 있음을 거꾸로 암시한다. 발랄이고 발칙이고 간에30대 중반이 넘어가면 어색해지는 수식어다. 오래도록 소설을쓰고 싶은 야심 있는 젊은 작가라면 그런 문제를 고민해보는 것도 좋겠다.

작가에게 가장 바람직한 상황은 아마 작품이 곧 자기소개가되는 경우이리라. 무슨무슨 소설을 쓴 사람으로 소개되는 것. 소설가에게 그보다 더한 성공이 있을까. 거기서 더 나아가면 작가와 작품이 동의어가 되기도 한다. "난 요즘 하루키를 읽고 있어"
라는 말은 어색하지 않다. 나도 내 소개가 될 수 있는 소설, 피와살이 있는 인간 장강명과 동의어가 될 수 있는 책을 쓰고 싶다.

기자일 때는 전화도 늘 "장강명입니다"라고 말하며 받았다. 그게사람을 넓게 많이 만나야 하는 작업 종사자의 비즈니스 매너라고 생각했다. 요즘은 그냥 ‘여보세요‘ 하여 받는다. 10년 넘게인 습관을 바꾸려니 처음에는 무척 어색했다.

최민석 작가의 에세이 『꽈배기의 맛』을 읽다가 깔깔거리며 웃었다. "도대체 왜 한국 소설가들은 프로필 사진을 찍을 때 옆으로 얼굴을 돌려 찍는 걸까, 다들 담합이라도 한 걸까"라는 대목에서다.
최 작가의 말이 옳다. 정말 한국 소설가들은 프로필 사진도 그렇고 인터뷰 사진도 그렇고, 측면 사진이 압도적으로 많다. 90도까지는 아니고, 45도 정도로 얼굴이 돌아간 옆모습이 대세다. 고개는 살짝 들고 있고, 시선은 먼 곳을 향해 있다. 소설가들은 사진 속에서 약간 슬픈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한 아련한표정을 짓고 있다.

이제는 저작권이 문제 되지 않는 다른 고화질 이미지 파일이 생겨서, 과도하게 보정한 그 프로필 사진은 쓰지 않을 수 있게 됐다. 정말 다행이다. 나는 내가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는 전문가가하자는 대로 따르는 편인데, 저 과도한 보정 사진을 떠올릴 때마다 그런 태도가 꼭 정답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나한테 어울리는 건 내가 제일 잘 알아‘라고 고집부리는 게 바람직한것 같지도 않고,

한국소설가들의 생활은 팍팍한 게 맞다. 졸업 후 바로 전업 작가가 되겠다는 계획은 한사코 말린다. 다만 공포에 짓눌려 꿈을포기하거나 세상을 원망하는 예비 작가가 있다면, 사람들이 잘
‘모르는 다른 일면도 보여주고 싶다. 2020년대 한국 소설가는소한 한가지 점에서는 다른 나라 소설가나 20세기의 선배들보다 처지가 낫다. 21세기 한국이 세계적인 영화·드라마 강국인덕분이다. 빛과 그늘이 있는 사안일 텐데, 밝은 부분만 먼저 적어본다.

닭이 글은 2020년에 썼다. 2021년과 2022년에 영화나 드라마로joten만들어진 한국 소설은 다음과 같다. 정소현 작가의 단편 너를김영하 작가닮은 사람 구상희 작가의 『마녀식당으로 오세요의 단편 「아이를 찾습니다. 김혜정의 판타스틱 (KBS 드라마안녕? 나야!」의 원작), 김해원 작가의 장편 동화 오월의 달리기』(KBS 드라마 「오월의 청춘의 원작), 강미강 작가의 옷소매 붉은 끝동, 정은궐 작가의 홍천기, 김언수 작가의 뜨거운 피 정한아작가의 친밀한 이방인(쿠팡플레이 오리지널 드라마 안나의 원작).
「오징어 게임」이 세계적인 흥행 성공을 거두면서 한국 영상물에대한 해외 제작사들의 관심이 높아졌고, 덩달아 한국 소설의 영상판권 시장도 전보다 훨씬 더 커졌다.

형제정부의 탄압은, 음……… 솔직히 말하면 내가 정부의 탄압을 받았다는 사실은 뒤늦게 알았다. 박근혜가 탄핵된 뒤 문화예술계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회가 열심히 조사해 발표해준 덕분이다. 그 위원회가 출범하도록 힘을 보태고 그 안에서 민간 위원으로 활동하며 노력하신 선후배 예술인들께 감사드린다.
나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과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몇몇 지원 사업에서 배제된 것으로 밝혀졌다. 『한국이 싫어서』와 『댓글부대』가 누군가의 심기를 건드렸나 보지. 처음부터 ‘얘는 빼라‘는 지시가 있었던 경우도 있었고, 나중에 심사 표를 조작해 적격 판정을 부적격으로 바꾼 사례도 있었다. 정말 쪼잔하고 유치하다. 치사하고 기괴한 정권이었다.

그에 비하면 알지도 못했던 지원 사업에서 배제되어 입은 손실은 솔직히 하찮다. 정부가 이런저런 지원을 해주면 고맙지만그런 도움을 받는 게 작가로서 나의 당연한 권리라고 여기지도않았다. 그런 정부 지원에 정치적 개입이 이뤄져서는 절대 안 된다는 당위와 별개로 말이다.
그래서 나 역시 화가 났음에도 "영혼을 말살하는 행위" (더불어민주당 대변인)라든가 "문학의 존재 근거를 흔드는 것" (한국작가회의 대변인) 같은 말을 들으면 좀 머쓱했다. 그대로 넘기면 결코안 되는 불의이고, 그런 표현이 나온 앞뒤 맥락도 있지만, 그래도머쓱했다. 내 영혼은 아직 멀쩡하다.
그 무렵부터 문학계나 문인 단체의 수사(修辭)에 신경을 쓰게됐다. 정부 지원 사업 관련 문제에 대해 문학계의 언어는 너무 당당하거나, 반대로 너무 비굴했다. 정부는 당연히 우리를 도와줘야 한다. 아니면 우리는 굶어 죽는다는 식이었다. 그런 때 지원의이유로 문학의 중요성이 강조될수록 보는 기분은 착잡해졌다.

근본적으로는 철학의 문제다. 나는 적극적 복지에 순서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더 배고픈 사람을 먼저 도와야 하고, 노약자와 장애인이 건강한 젊은이보다 우선이다. 그런데 배고픈예술인과 배고픈 비예술인도 구분해야 하는가. 어떤 사람이 배가 고프면 직업에 관계없이 지원해야 하지 않을까.
창작 지원에 찬성한다. 거기에 더해 많은 예술인이 프리랜서로 일하니 고용보험 같은 사회 안전망의 사각지대에 있다는 특수성을 더 살펴주면 좋겠다. 반면 자기 부담금 없는 예술인 연금같은 아이디어에 대해서는 주저하는 마음이 든다. 그것이 도덕적으로 옳은가? 누구나 웹소설 플랫폼에 글을 올려 작가 호칭을얻을 수 있는 시대에 예술인의 자격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 국가가 그 기준을 정하는 게 바람직한가?

위에는 이런 고차원의 딜레마가 있고, 아래에서는 여러 집단의 이해관계가 얽힌다. 그러다 보니 문화 지원 정책이 실행된 결과물을 보면 비판할 지점들이 늘 여러 각도에서 보일 수밖에 없다. 사업을 추진하는 공무원들도 참 답답할 것이다. 나는 최근에국립한국문학관에 대해 그런 감정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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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좁힐 수 없는 시차를 두고 태어난 어떤 이를 사랑할 때, 행복한 순간 미안해지는 사람이 있을 때, 당신에게도 고쳐 쓸 편지 한 통이 있기를, 여기에서 만난 적 없는 서로의 젊음을 거기에선 나란히 겹쳐보기를. 편지를거듭 고칠수록 두 개의 삶이 다 애틋해지기를. 아마도 그사람과 당신은 좋은 친구가 되었을 것이다. 인숙과 내가그러하듯이.

그 후로 누군가 미워지려고 할 때마다 속으로 마법의 문장, "그런 게 사람이죠"를 중얼거려보았다. 버스가 정류장에 들어오기 전부터 일제히 뛰기시작하는 사람들. 그런 게 사람이죠. 오늘 얼마나 피곤했으면 앉아 가고 싶을까. 라면 사리도, 공짜 귤도, 얼마나먹고 싶었으면, 불쑥 욕심이 났으면 그런데 그런 게 사람이죠.

‘우리 같은 사람들‘과는 상관없다고 여겨지는 바로 그곳에 제자리처럼 깃드는 것. 그게 내가 아는 문학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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