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시간 뒤에 눈을 뜬 나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채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휴대폰 시계가 7시 54분을 가리키고 있었는데, 배터리가 얼마 없었다. 이렇게 오래 잔 것은 몇 주 만이었다. 나는 옆으로 돌아누워 다리를 구부리고, 머리를 받치듯이 한 손을 그 아래에 넣었다. 연한 아침 안개가 공기뿐 아니라 내 영혼도 덮고 있었다. 뭐가 꿈이고 뭐가 현실인지 잠깐 생각하게 만드는 초현실적인 순간이었다.
카를이 무거워지려는 분위기를 깼다. "그런 질문은 꽤 깊은생각에 잠기게 해요. 그렇죠? 아네테와의 대화는 결국 인생에서 실제로 뭔가를 바꾸는 계기가 됐어요. 시간이 좀 걸리기는했어요. 사실 당연하죠. 그런 일은 하루아침에 일어나지 않으니까. 하지만 보시다시피 나는 바로 다음 진출로에서 방향을 틀어 직장에 사표를 내고 농업을 공부한 다음 언제였던가이 농장을 찾아냈어요. 아침에 양치질할 때마다 보면서 용기를 북돋울 수 있도록 아네테가 나를 위해 보르헤스의 문장을써서 욕실에 거울 대신 걸어 줬죠." 그가 다시 독특한 웃음을터뜨렸다. 처음 그를 보자마자 내가 좋아하게 되었던 웃음이었다. 요란하게 천둥 치는 듯한 그 웃음소리는 완벽하게 자유로웠다.
오늘날, 사람들은 규가 커피를 쏟으면 지경을 보고, 지경이화분에 걸려 넘어지면 규를 본다. 지경이 과음하면 규를 보고,규가 하품하면 지경을 본다. 그 조용한 관음의 공기 속에서 규와 지경은 서로 뺨을 갈기면서도 끝까지 가는 사이 나쁜 부부처럼 산다. 둘은 최후의 멤버가 될 것이다. 아, 신나!어느 날, 규가 자신도 모르게 소리 내 말한다. 지경이 흘끗본다. 지경의 표정은 무엇을 말하고 있나. 사람들의 눈이 돌아간다. 저마다 망상하며.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요. 절대 안되요. 그리고 나는 손으로 내 입을 막았다. 여자는 멍하니 나를바라보다 곧이어 알 수 없는 말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내가아니라 내 뒤의 허공을 바라보며.
"미안해.맹지가 내 눈을 애써 피한 채로 말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끄덕이며 철봉 아저씨가 열심히 철봉 하는 모양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나는 네가 좋아. 맹지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나는 맹지를 보며 활짝 웃었다. 이쪽은 덥고 저쪽은 시원하지만, 딱 이만큼은 미온한 곳. 관심을 받지 못한 아저씨가시무룩해진 채 금방 떠났다. 마음속으로만 아저씨에게 박수를보냈다. 이번엔 맹지가 먼저 제안했다. 우리 자신감 훈련 할까? 이른 아침이었고 안산 자락에는 맹지와 나밖에 없었다.얼른 팔을 뻗은 채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훈련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