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향수에 젖어, 고국에서 나의 관객들이 너무나 따뜻하게 보내오는 커튼콜을 받고 싶다. 그러고는 다들 불이라도 난 듯 썰물처럼극장을 나서는 사람들. 뉘브로플란에 다다르면 먼지 쌓인 고요한 대리석 궁전 주위로 눈보라가 휘몰아친다. 바다 너머 툰드라에서 바람이 불어오고, 허옇게 을씨년스러운 가운데 누더기를 걸친 펑크족 여럿이 외로움에 울부짖는다.
우리는 이제 허물없는 친구가 되어 아마추어답게 감상한다. 하여간 케비와 함께 살면서 음악을 많이 배웠다는 사실만큼은 부인할수 없다.특히 케비의 스승(음악가라면 누구든 스승이 있다.)은 교육자로서 탁월하고, 삶의 숙명이 경이로운 까닭에 오래도록 깊은 인상을남겼다.
문득 해결책이 나타난다. 트래킹 숏이다. 연기자 주위를 돌고 엑스트라를 지나치며 찍는다. 타르콥스키는 장면마다 트래킹 숏을 찍는데, 카메라가 달리고 날아다닌다. 내가 생각하기엔 변변찮은 기술이지만 내 문제를 해결해 준다. 시간은 흘러가니까.
이튿날 우리는 즉각 철수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스무 날 동안 촬영하면서 스무 개의 장면 중 고작 네 개만을 건졌다.나는 딤링에게 불려 가서 가차 없이 물어뜯겼다. 나보고 영화를때려치우라며 대놓고 닦아세웠다. 빅토르 셰스트룀이 관여했을지도모르지만 알 길은 없다.
하루하루가 느릿느릿 흘러갔다. 로슬링은 이제 대놓고 적대감을 드러내며 내가 제안하는 카메라 설정을 조롱했다. 현상소에서는촬영한 영상을 너무 밝거나 너무 어둡게 처리했다. 웃음이 무척 많고늘 내 등을 툭툭 두드리던 조감독은 나와 동갑이었는데, 이미 영화도 한 편 만든 상태였다. 나는 휴식과 작업 시간을 두고 전기 주임기술자와 거푸 언쟁을 벌였다. 그나마 남았던 업무 규율도 사라져 사•람들은 내키는 대로 출퇴근을 했다. 나는 찬밥 신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