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션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진영은 없었다. 남자에게 진영이 언제쯤 떠났느냐고 물었더니 바로 조금 전이라며, 지금 가면 따라잡을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내게는 나대로의 결론이 있었기 때문에 진영을 꼭 붙잡아야만 했다.
시동을 걸면서 진영에게 할 말들을 연습했다. 마냥 듣기 좋은 얘기들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말들을 모두 전하고 나면 되돌릴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아직 기회가 남아 있다고. 나는 손바닥에 배어나는 땀을 허벅지에 문질러 닦아가면서 진영이 보일 때까지 천천히 차를 몰았다. 비포장도로가 끝나고 국도가 나오도록 진영은 보이지 않았고 갈림길이 나왔을 때에야 뒤늦게 진영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폰은 꺼져 있었다. 나는 순전히 운에 맡기며 차를 몰았지만 진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진영은 어디에도 없었다.
진영이 내린 결론에 대해 나는 어떤 말도 할 수 없다는 깨달음이 그제야 닥쳐왔다. 그게 내가 좋다고 말한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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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만 새로운 말을 찾는 존재가 아니다. 무언가에 매혹되고 사랑에 빠진 이라면 누구나 이 세계와 말 사이의 어긋남에 복수하는 심정으로 말들 사이를 배회하고 순례하며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우리가 아직 소년이었을 때」도 그런 까닭에서 만들어진 소설임이 확실하다. 적어도 이 소설에서 진연주는 고답파parnassiens의 후예다. 만일 아름다움에도 최상급이 존재한다면 바로 이 소설 속 인물들이 탐하던 그것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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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하늘과 땅이 만나는 지평에서 태어났다. 하루가저물고 있었다. 하늘은 타올랐고 바람은 숨죽인 채 잠들 곳을 찾아 대지를 배회했다. 땅을 어루만지는 갈대 소리가 고즈넉하게 들려왔다. 그녀는 기지개를 켰다. 가늘고 흰 팔이공작 깃털처럼 펼쳐졌다. 평평한 젖가슴과 마른 다리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고 머리카락은 꿈틀거렸고 얼굴에는 기품이 흘러넘쳤다. 그녀는 팔다리를 천천히 주의 깊게 움직여보았다.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타인의 의지인 것처럼 팔다리가 어색하고 불편하게 움직이지 않으려고 안간힘 쓰며 제멋대로 움직였다. 그녀는 표오 한숨을 내쉬고는 한 발을 내딛고 또 한 발을 내딛으면서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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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도 하고 싶지 않은 아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아무. 아무일도 하고 싶지 않은 나. 너무 많은 일을 하는 나. 아무를 이해하기 위해 나는 번번이 아무를 나중에 이해했고 아무라는 행간에서 자꾸 달아났고 너무 많은 말들을 필요로 했고, 늘어놓은 아무의 말을 한데 모은다. 반은 이해하고 반은 이해 못 하기 위해 아무의 말을 한데 모은다. 말은 죽고, 말의 죽음은 어디에나 있고, 말을 죽이고, 아무에게 가기 위해 말을 죽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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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이 보고 더 많은 것을 듣고 더 먼 곳까지 갈 수 있어.
갈 수 있다. 나는 웃고,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생명체를 주시하면서 기억하면서 길을 간다. 나는 길을 간다. 예정된 상실을 조금씩 미루면서, 나는 길을 간다. 나의 사랑스럽고 지긋지긋한 개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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