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형식이 그 내용들의 모든 암담함과 슬픔 저편에서 표현하고 있는 긍정은, 실패한 추구의 이면에서 흐릿한 빛을 발하면서 멀리서 아른거리고 있는 의미일 뿐 아니라, 실패를 거듭하는 바로 이 헛된 추구와 투쟁 속에서 드러나는 삶의 충만이기도 하다. 소설은 성숙한 남성성의 형식이다. 즉 소설이 들려주는 위안의 노래는 잃어버린 의미의 맹아와 족적이 어디에서나 가시화된다는 것을, 그리고 적대자도본질의 기사(騎士)와 같은 고향, 그 잃어버린 고향 출신이며, 그렇기때문에 의미 내재성이 어디에서나 똑같이 현존하기 위해서는 의미내재성이 삶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예감하는통찰에서 울려 나오는 것이다.
그렇게 시간은 소설의 고상한 서사적 포에지의 담지자가 된다. 즉시간은 가차 없이 현존하게 되었는바, 이제부터는 그 누구도 시간의흐름이 지닌 명확한 방향을 거슬러 갈 수 없으며, 또 그 흐름의 예측할 수 없는 진행을 선험성의 둑으로 통제할 수도 없다. 그렇지만 모종의 체념적 감정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즉 이 모든 것은 어딘가에서 나와 어딘가로 갈 수밖에 없으며, 또 비록 그 방향이 어떠한 의미도 드러내지 않는다 하더라도 여하튼 하나의 방향은 있다는 것이다.

시대에 의해 주어진 문제성을 기록하는 데 머무르지 못하며, 실현불가능한 의미를 일별하고 주관적으로 체험하는 데 만족하지 못하는것은, 그리고 작가로 하여금 요청의 차원에서는 보편 타당성을 지닐수도 있을 순전히 개인적인 체험을 현실의 존재해 있는 형성적 의미로 정립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여기에서도 바로 작가의 유토피아적의향이다. 그렇지만 현실은 이러한 의미 수준으로 억지로 끌어올려질 수 없으며, 또 위대한 형식의 모든 결정적인 문제에서 그렇듯이-이러한 심연을 건너갈 수 있을 만큼 위대하고도 노련한 형상화기예란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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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은 법칙을 인식하려 하지 않는데, 그럴 것이 영혼 자체가 인간에게 법칙이며, 인간은 자신을 입증하는 모든 질료 속에서 동일한 영혼의 동일한 모습을 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는 비인간적인 환경의 낯섦을 기분을 불러일으키는 주관의 힘을통해 극복하는 일이 하찮고 불필요한 유희처럼 보일 것이다. 여기에서 문제되는 인간 세계는, 영혼이 인간이나 신 또는 마신(魔神)으로서 집에 있는 그런 세계이다. 이 세계에서 영혼은 필요한 모든 것을 찾으며, 자기 자신으로부터 아무것도 창조하거나 되살릴 필요가없다. 영혼의 현존이, 영혼 친화적인 것으로서 영혼에 직접적으로주어져 있는 것을 찾고 모으며 형식화하는 행위로 충만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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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자신이 이 보석과 같다. 그대는 자신을 오렌지 다섯 개에 팔 수도 있고, 감자 한 자루에 팔 수도 있다. 혹은 최고의 보석으로 자신의 가치를 매길 수도 있다.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그대의 정의가 자신의 가치를 결정한다."
그러면서 성자 나나크는 삶의 기준 세 가지를 말해 주었다.
첫째, 자신이 진귀한 보석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 것. 그것을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의 말은 무시할 것.
둘째, 자신을 오렌지 다섯 개에 팔지 말 것. 세상의 기준대로자신의 가치를 매기지 말 것.
셋째, 보석의 가치를 알아보는 보석 전문가를 만날 것. 보석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이 그 보석의 가치를 결정하게 하지말 것.
시인 잘랄루딘 루미는 노래한다.
진주 하나가 경매에 올랐다.
아무도 그것을 살 만큼 돈이 충분하지 않았다.
그래서 진주는 자신을 사버렸다.

오랜 장맛비로 몸이 쇠약해져 있었지만 새의 계속되는 조언에 불끈 분노의 힘이 솟았다. 그리고 자신도 놀랄 정도로 원숭이는 순식간에 나뭇가지 끝으로 몸을 날려 멋쟁이새의 둥지를홱 낚아챘다. 그것도 모자라 바닥에 내팽개친 다음 발로 밟아 아름다운 둥지를 산산조각 내 버렸다. 깜짝 놀란 멋쟁이새는소리를 질러 댔지만, 이미 둥지의 형체는 사라진 후였다. 둥지를잃은 가련한 새는 새로운 둥지를 다시 지을 때까지 폭풍우 속에서 새끼와 짝을 데리고 떠돌아야 했다. 상대방이 원하지도 않는 조언을 해 준 것을 후회했지만 때는 늦은 일이었다.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힌디어 노래가 있다.
받아들일 자세가 된 이에게 조언을 하고
원숭이에게는 조언하지 말게.
멋쟁이새처럼 집을 잃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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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고향에 돌아오지 못한 상태의 표현일 뿐, 실체에 대한 유일하고도 극복 불가능한 관계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인간 자신의 내부에도 도약의 강박, 즉 자신이 실체와 멀리 떨어져 있는 질료에 의해 더럽혀져 있기에 질료를 떠나 높이 날아 실체에 가까이 다가감으로써 정화되어야만 한다는 식의 도약의 강박이 없다. 그의 앞에는 먼 길이 놓여 있지만, 그의 내부에 심연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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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의학과 약 못지않게 그것을 받아들이는 환자 자신의 상태가 중요합니다. 지금 당신의 입안에는 세균으로 가득한 충치가 몇 개 있습니다. 따라서 약을 먹어도 세균에 오염되어 독으로 변하기 때문에 아무 효과가 없었던 것입니다. 지금 나는오염되지 않은 고무관을 통해 목구멍에 직접 약을 부었고, 그약들은 즉시 효과를 나타내었습니다."
자신의 행동에 부끄러움을 느낀 갸노다야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약을 독으로 바꾼 것은 내 입안의 세균이 아닌가. 그러면서도 약을 비난하고 의학서들을 불태우려고 했으니, 내 마음의 독으로 인한 어리석음이 얼마나 컸던가‘
인도 우화에서는 같은 강물을 마시는 세 존재에 대해 말한다. 한 존재는 신으로, 그는 아프릿(신들이 마시는 음료수)을 마신다. 다른 하나는 인간으로, 그는 단순히 물을 마신다. 그리고 세 번째는 악마로, 그는 오물을 마신다. 동일한 강물이지만 마시는 사람의 의식 상태에 따라 흡수하는 것이 다른 것이다.

파키르가 다시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보라, 그대 왕국의 가치는 단지 한 잔의 물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여전히 그대는 자신의 업적을 자랑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대여, 자만하지 말라. 일생 동안 획득한 모든 부와 왕국이 물한 잔을 사기에도 충분하지 않는 상황을 언제 어디서 맞닥뜨리게 될지 누구도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는 그대가 아무리 알렉산드로스 대왕이라고 외쳐도 그대의 부름에 답할 자는 아무도없을 것이다."
숙연해진 알렉산드로스에게 파키르는 다음의 말을 남기고떠났다고 기록되어 있다.
"기억하라, 지금 그대의 위대함은 모두 환상이라는 것을."
알렉산드로스는 난데없이 길에서 만난 인도인 파키르가 준교훈을 마음에 간직하고 기원전 324년 인더스강을 다시 건너자기 나라로 돌아갔다. 그리고 불과 일 년 후 33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쳤다. 건강 악화로 인한 망상 증세와 알코올중독이세계 제왕을 꿈꾸었던 한 인간의 사망 원인이었다. 그의 제국도여러 갈래로 갈라져 종말을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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