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그런 목표를 지향한다면 당신은 ‘마음설계자‘에 속한다.
당신은 굳어진 것처럼 보이는 내면을 극복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리는, 보기 드문 이들 중 한 명이다. 당신은 자기 마음의 원초적 상태를 변화와 개선의 초대장으로 여기며, 현실을 냉철하게 바라보고 그것을 바꿀 방법을 찾고 싶어 한다. 또한 평범한 삶이 아니라 훌륭한 삶을 살아가고 싶어 한다. 정말로 당신이이런 사람이라면 책을 제대로 선택한 것이다.

과거에 우리 인간들은 외부 세계를 통제하는 방법을 배웠지만우리 내부 세계에 대한 통제력은 거의 없었다.
유발 하라리 Yuval Harari,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인간의 마음이 기계라고 해서 마음속에 담겨 있는 우리의 풍부한 경험을 부정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라는 존재의 말할 수 없는 복잡성이 우리가 연구하여 점점 더 이해할 수 있는일종의 운영체제로 단순화된다는 걸 의미한다. 또한 인간의 마음을 기계와 비교한다고 해서 우리가 진화에 따라 이미 결정되어 죽을 때까지 영원히 반복될 운명에 처해 있음을 암시하는 것도 아니다. 유전자가 우리 미래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건 아니며유년기, 청소년기, 성년기의 경험이 우리가 어떤 사람으로 형성될지를 결정한다. 이는 모두에게 상당히 중요한 일이다.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이 인간 지성의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수단으로 ‘기술‘을 언급할 때 이 단어는 조직, 경제, 정치의재구성 및 심리학적 방법과 도구의 사용을 포함하는 것으로광범위하게 이해되어야 한다.
맥스 모어Max More, 「트랜스휴머니즘의 철학The Philosophy ofTranshumanism

모든 동물은 날마다 무언가를 배우며 그에 따라 소프트웨어가 수정된다. 하지만 대부분 동물은 학습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인간을 제외한 어떤 생물도 의도적인 행동에 익숙하지 않다. 침팬지나 돌고래가 자기 마음에 어떤 문제가 있다고 깨닫고 그걸수정하려고 한 적이 있을까? 하지만 인간은 그렇게 한다. 인간은 자신의 소프트웨어에 원하는 기능(예컨대 이탈리아어 구사 능력)이 없거나 바람직하지 않은 기능(예컨대 말 더듬기)이 있을 때자기 두뇌를 수정하고 업그레이드한다. 이렇게 업그레이드할수 있는 두뇌 용량은 사실상 무한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 잠재력을 완전히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은 사실상 없다

인간을 심리적으로 적절한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사회적 압력이 작용하고, 사회성이 부족할 때는 심리치료를 활용할수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이런 목표는 너무 수준이 낮다. 현재의 일반적인 수준으로 심리적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목표라면굳이 열망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이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것,
심리적 위대함에 관심을 둔다. 가장 높은 단계에 도달하기 위해마음을 구조화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이 수준을 뛰어넘도록 자연적으로 우리를 끌어당기는 만유인력은 없다. 그러므로 우리스스로 심리적 행복의 정점으로 가는 길을 개척해야 한다.

자기 뇌를 조각하는 사람이 되기를 열망한다면 누구나 그렇게될 수 있다.
- 산티아고 라몬 이 카할Santiago Ramón y Cajal, 「카합의 과학는 삶」

신경가소성은 꾸준하고 지속적인 노력을 통해 상황을 점진적으로 개선할 여지가 있음을 보여준다. 깨달음이란 상대적인용어일 뿐 더는 발전이 불가능한 지점에 도달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정확하게 인식하여 바람직하지 않은 습관을 제거하고 바람직한 습관을 만들어감으로써 자기 경험을 주체적으로 결정하는 능력을 발전시킬 수 있다.

다양한 요소를 통해 자기 모습을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삶을
"조각하는 생산적인 인간의 과제다. 것도프리드리히 니체, 미공개 메모Unpublished Notes」AUS

마음의 소프트웨어는 행동과 성향이 서로 연결되고 상호작용하는 시스템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시스템은 당신이 누구이고,
어떤 삶을 살아갈지를 결정한다. 그리고 망상, 왜곡, 변형이 그 시스템의 일부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발생하는 문제가 전체 운영체제를 훼손할 수 있다. 다만 개선을 이루는 것도 긍정적인 연쇄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긍정적인 기능을 의식적으로 내장하고 바람직하지 않은 기능을 제거하는 프로그래밍 방법을 배워야 한다.

1. [인지 면에서] 이성을 가장 높은 목적에 사용하라. 정념과 편향에서 최대한 벗어나 최선의 행동 방침을 평가하고 판단하라.
2. [행동 면에서] 최선이라고 판단한 행동을 실천하기 위해 확고한 의지를 갖추라.
3. [감정 면에서 명확한 추론과 단호한 의지를 넘어서는 모든 것은 인간의 능력 밖에 있으며, 고뇌나 후회의 원인이 되어서는안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알고리즘 모델은 피상적인 비유가 아니다. 나쁜 습관과 해로운 행동은 실제 세계의 이프덴if-then 논리 프로그램에 의해 초래된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다. 인지적 편향과 오류는 우리의 일반적인 의식 수준 아래에서 미리 프로그래밍된 규칙에 따라 체계적으로 진행되는 반사적 추론이다. 그리고 현대 심리학에따르면 우리의 감정은 자동적 생각automatic thought에 따라 기계적으로 생성되는데, 이를 재구성할 수 있다.25

카이젠 Kaizen(개선)은 비즈니스에서 자주 사용되는 일본어로더 나은 것을 위한 지속적인 변화, 즉 점진적인 최적화를 위한끊임없는 노력을 의미한다. 이 개념은 심리적 운영체제에도 쉽게 적용할 수 있다. 지붕에서 똑, 똑 떨어지는 개별적인 물방울과 마찬가지로 개별적인 인지, 감정, 행동은 문제가 아니다. 집에 물이 새는 걸 막으려면 지붕에 구멍이 났는지를 살펴야 하는것처럼, 구조적 패턴이라는 근원에 관심을 둬야 한다.

마음챙김을 함양하면 삶이 더 풍요로워지고 더 생생해지고 더만족스러워지며, 개인적으로 벌어지는 모든 일을 초연히 받아들이게 된다. 광범위하고 강력한 인지의 더 큰 맥락에서 집중력이 더 적절한 역할을 하게 된다. 당신은 완전하게 존재하고를 더 행복하고 안락해진다. 왜냐하면 마음이 지어내는 이야기와멜로드라마에 쉽게 사로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의 집중력은 세계를 더 적절하고 효과적으로 탐구하는 데 사용된다. 그럼으로써 더 객관적으로 되고 머리가 맑아지고 세상을 더 잘인지하게 된다. 신청하는데.
- 쿨라다사Culadasa, 『정신을 비추다The Mind Illuminated』

자신의 소프트웨어를 효과적으로 분석하려면 우선 거기서한 걸음 벗어나야 한다. 우리가 그럴 수 있게 해주는 도구를 메타인지 metacognition 라고 한다. 메타인지는 "인지적 현상에 대한 지식과 인식으로 정의되며, 자신의 인지 영역에 대한 생각이나인식을 객관화하는 것이다. 메타인지적 관점은 심리건축의 기본적인 관점이다.

명상은 자신의 모든 생각을 자동으로 동일시하는 걸 멈추도록훈련하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존은 바보다.‘라는 생각이머리에 떠오를 때 당신은 존이 반드시 바보라고 인식하지 않게 된다. 당신은 그 생각을 자기 뇌가 만들어낸 어떤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 생각은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으며, 유용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 줄리아 갈레프Julia Galef

올바르게 사용하면 마음은 훌륭한 도구다. 그러나 잘못 사용하면 매우 파괴적인 흉기가 된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당신은 마음을 잘못 사용하는 게 아니라 대개는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마음이 당신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것이 병폐다. 당신은자기 마음이 자기 자신이라고 믿는다. 그건 망상이다. 도구가당신을 점령했다.
- 에크하르트 톨레,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마음챙김과 명상 활동은 내가 ‘심리적 최적화 예비 단계‘라고일컫는 것과 함께 마무리된다. 이 단계는 자기 내면에 대한 객관적이고 집착 없는 인식을 함양하게 해준다. 그러면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다. 사람들이 종종 명상의 효과를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주된 이유는 명상을 통해 관찰되는 자동적 생각을 분석하고 조정하도록 훈련받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할 일이다.

마음챙김은 자신의 알고리즘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잠시 멈춰서 알고리즘이 무엇인지 성찰하게 해준다. 이를 통해 당신은 자기마음의 설계자로서 정체성을 찾고, 메타인지를 함양하고, 마음을재건축하는 과정을 시작할 수 있다.

맹목적인 믿음은 인간의 행복에 가장 큰 정신적 장애물이다.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 『행복의 정복』

인간의 마음은 우주에서 가장 섬세하고 복잡한 존재일 수 있지만 잘못된 가정, 인식, 믿음으로 가득 차 있다. 누구나 그 사실을 알고 있지만 자기 생각이 얼마나 왜곡됐는지를 충분히 인식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 사람은 주위를 둘러보며 다른 이들이 혼란스럽고, 독단적이고, 비이성적이라고 생각한다. 반면자신은 올바른 믿음을 찾았고 명확하게 판단하는 법을 배웠다고 믿는다. 그러면서 만약 다른 이들이 내 말을 듣는다면 세상은훨씬 더 나은 곳이 되리라고 여긴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제외한모든 사람에게서 왜곡된 사고방식을 발견하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진심으로 명확하게 판단하고 바라보고 싶을 때도 욕망과감정이 무의식적으로 우리를 지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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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고? 어릴 적에 부모님이 늘 얘기하셨듯이, 우리의 행동에는 결과가 따르는 법이니까. 결과는 당장 나타나기도 하고, 오랜 세월 후에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므로 주인공이 과거에 했던 행동을 알면 미래에 닥칠 사건을 구상하는 데 반드시도움이 되기 마련이다.

우리는 플롯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이미 그 두 사실을알게 된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사랑이다. 그녀의 발목을 잡는 요인은? 집구석에서 한 발짝도 못 나가는 데다 사람을 안에 들일생각도 없는데 진실한 만남을 기대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자, 그렇다면 당신의 주인공이 치러야 할 내적 투쟁의 정체는무엇일까? 발전시키기에 앞서 일단 처음에 어떻게 가닥을 잡아야 하나? 주인공의 내면에서 결투를 벌이는 두 세력에 주목하자. 그가 원하는 것(욕구), 그리고 그를 가로막는 잘못된 믿음(두려움)이다. 모든 스토리는 그 두 개의 불씨에서 시작해 불붙고 타오른다. 바로 그 투쟁이 스토리의 ‘전깃줄‘이 되어 줄 것이다.

우리는 판단을 접어 두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잘못된 믿음‘이라고 부르자. 주인공은 잘못된 믿음을 진심으로 옳다고믿고 있다. 주인공이 그 잘못된 믿음을 어떻게 극복하느냐 하는 것이 바로 당신이 써 나갈 스토리의 본질이다.

잊지 말자, 주인공이 세상을 보는 렌즈는 결코 중립적이지않다. 그 렌즈는 항상 ‘믿음‘이라는 내밀한 정보에 비추어 눈앞의 모든 것과 그에 따른 자신의 행동을 해석한다. 놀라운 사실은 그다음이다. 그 믿음은 하나하나가 다 주관적인데, 그 이유는 주인공이 자기 세상에 함몰되어 ‘실제 세상‘을 보지 못해서가 아니라, 실제 세상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적어도 우리가 교육받아 알고 있는 의미의 실제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구체적‘이라는 것은 ‘실제 있었던 일 그대로‘를 뜻한다. 요약이나 개괄이 아니라 사건이 펼쳐지는 매 순간의 모습 그 자체를 가리킨다. 그런데 모조품을 그럴듯하게 만들어 놓고 구체적으로 내용을 잡아 놓았다고 오해하기 아주 쉬운 게 문제다.
다이아몬드 같은 큐빅, 금 같은 황철석, 피카소 진품 같은 위작이 그렇듯, 모조품을 진짜로 착각하기가 어찌나 쉬운지 당혹스러울 정도다. 특히 지금처럼 백지상태에서 막 시작한 경우, 주인공에 관해 조금이라도 구상해 놓으면 다 구체적으로 느껴진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보다야 훨씬 구체적이니 그럴 수밖에없다.

작가가 우선 생각해 봐야 할 질문은, ‘완다는 구체적으로왜 유기 불안을 갖게 되었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유기 불안을 촉발한 사건을 알고 나면 그녀가 생각하는 유기란 무엇인지, 또 그게 어떻게 살인을 업으로 삼는 계기가 되었는지가 상당히 구체적으로 드러날 테니까.

앞에서 주인공의 시점은 카메라 렌즈가 아니라고 했듯이,
어떤 장면을 글로 쓸 때는 영상을 보면서 영상의 내용을 말해주듯 써서는 안 된다. 사건 한가운데에 있는 주인공의 머릿속으로 독자를 들여보내 주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이 있다.
독자가 주인공의 시점으로 사건을 본다는 것은 사건을 바라보는 주인공의 생각을 독자에게 들려준다는 뜻이다. 그것도 대략적인 생각이 아니라,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이고 도대체 어떻게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구체적인 생각이어야 한다. 소설의 모든 문단에 주인공의 그런 생각이 녹아 있어야 한다.

인지심리학자이자 소설가인 키스 오틀리는 윈셀버그보다디지털 환경에 조금 더 익숙했던 것 같다. 그는 픽션을 "마음이라는 소프트웨어상에서 돌아가는 시뮬레이션"으로 정의하며이렇게 말한다. "게다가 무척 유용한 시뮬레이션이다. 사회 세계를 잘 헤쳐 나간다는 것은 무수히 맞물린 인과 요인을 따져보아야 하는 일이라 극히 까다롭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듣고 난 당신은 당장 펜을 집어 들고 주인공의잘못된 믿음의 기원에서 소설 첫 페이지에 이르는 인과 경로를단숨에 요약하여 써 내려가고 싶어질지 모른다. 그리 어렵지않을 것 같다. 한 시간 정도면 할 수 있을 듯하다. 그런데 그건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주인공은 소설이 시작될 때 아마 자신의 변화 욕구를 얕보기도 하고, 보류하기도 하고, 때로는 고의로 무시하기도 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바꿔 말하면, 자기합리화를 하는 것이다. 의식적으로 할 때도 있겠지만, 대개 자기딴에는 세상을 전략적으로 해석하면서 그에 맞춰 행동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알고 있는지? 지금 우리가 구상하려는 결말은 (그리고 당신의 독자가 가장 원하는 결말은) 플롯상 일어나는 사건이전부가 아니다. 주인공이 그 사건을 맞닥뜨리면서 무엇을 ‘깨닫는지‘가 중요하다. 문제는, 숙련된 작가들조차 매우 유혹적인 덫에 빠지기 쉽다는 것이다. 즉, 소설의 결말을 주인공의 깨달음이 아닌 외적인 사건으로만 생각해 버리기 일쑤다.

명심하자. 중요한 건 주인공이 ‘변화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어떻게 내적으로 그 변화에 도달하느냐 하는 것이다.

때로는 마지막 순간 바로 직전에 와서 주인공에게 최종난관에 맞설 용기를 주기도 하고, 또 때로는 주인공이 마지막총력전의 한복판에 내던져질 때 찾아와 역경에 버틸 용기와 힘과 지혜를 주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아하!‘ 순간이 그 직후에찾아오기도 한다. 주인공이 방금 일어난 일을 이해하려고 하면서, 기대했던 것과는 의외로 많이 다른 감정과 함께 깨달음이오는 것이다.

잊지 말자. 이 작업은 그저 외적 플롯을 짜는 게 아니다.
내적 스토리와 외적 플롯의 균형을 잡아 줌으로써 서로가 서로를 계속 끌고 가게 해 주는 작업이다. 앞에서 제니가 첫 장면과 ‘아하!‘ 장면의 카드를 만들 때 곧바로 여러 구멍이 드러났던 것을 기억하는가? 장면을 완전하게 쓰려면 먼저 과거를 전략적으로 더 파고들어야 하는 부분들이 있었다. 이처럼 밑그림기법을 이용하면 당신이 말하고자 하는 진실을 한껏 깊숙이 파헤쳐 지면에 구현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이는 유기적이고 직관적인 작업이다. 작업하다 보면 장면을 쓸 때도 있고, 장면 카드를 만들 때도 있고,
또 두 가지 일을 나란히 할 때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유념할 점이 있다. 장면 카드는 이리저리 옮겨 다니면서 작성하더라도, 장면 자체는 시간 순서대로 써야 한다는 것이다. 장면을 순서대로 쓰지 않는 것은 건물의 2층을 짓지 않은 채 6층을 짓는 것과 같다. 하나의 장면은 다음 장면의원인이 될 뿐 아니라, 다음 장면에 근거와 깊이와 의미를 더해준다. 그 의미를 만들어 나가는 도구가 바로 장면 카드다. 장면카드를 만듦으로써 장면을 쓰기 전에 미리 장면을 적절한 층에배치하고 소설의 인과 경로상에 자리를 잡아 줄 수 있다.

조직화는 중요하다. 특히 소설처럼 움직이는 부속품이 많다면더욱 그렇다. 다행인 점은,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소설은 단하나의 복잡해져 가는 문제를 중심으로 펼쳐진다는 것. 따라서모든 부속품은 당신이 첫 페이지에서부터 만들어 나가는 스토리 논리에 기초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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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 작가들이 첫 문장도 쓰기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다. 무릇 스토리란 한꺼번에 나오는것이며 게다가 곱게 다듬어진 문장들로 처음부터 이루어져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노력해도 그럴듯한 첫 문장조차 떠오르지 않으면 불길한 징조로 받아들이고,
포기하고 만다. 그러지 말자. 그건 마치 고운 ‘본차이나‘ 도자기를 보고 감탄하면서 그 은은하고 섬세하고 정교한 자태가 한번에 완벽한 모습으로 짠! 나타났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자면, "형식이나 장르와 관계없이 스토리는 스토리"다. 하지만 누구나 좋아하는 유형이 있어서, 끌리고 공감 가는 장르가 있다.

혹은 무언가 전하고 싶은 요점과 관련된 아이디어가 떠올랐는지도 모른다. 작가 스티븐 킹은 소설 《언더 더 돔》과 관련해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처음부터 이 소설이 오늘날 세계가봉착한 심각한 생태적 문제를 다룰 기회라고 생각했다."2또는 실제로 ‘만약에‘라는 가상적 질문에 처음 관심이 꽂혔을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만약에 변호사가 아주 사소한 거짓말도 전혀 하지 못한다면?"(영화 <라이어 라이어>> "만약에 당신이 태어나지 않았을 때 세상이 어떤 모습이 되었을지 볼 수 있다면?"(영화 <멋진 인생> 등이다.

이제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내가 이걸 여기까지 끌고 온이유가 무엇인가? 이 아이디어가 머릿속을 맴도는 이유가 무엇인가? 나는 왜 여기에 관심을 쏟는가? 내가 이 아이디어에끌리는 이유를 파고들어 보자. 답이 뚜렷하게 떠오르지 않아도걱정하지 말자. 아니면 처음 드는 생각이 ‘음, 생각해 보니 왠지 낮잠을 자고 싶네‘여도 괜찮다. 정답이란 건 없다.

지금 구상 중인 스토리에 당신이 왜 관심을 쏟는지 한 페이지이내로 적어 보자. 정답은 없다. 무엇이든 머리에 떠오르는 이유를 적으면 된다. 유치해 보여도 좋다. 해 보면 자신이 관심을가진 이유가 애초에 생각했던 이유와 전혀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놀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요점 없이는 글을 써 나갈 수 없다. 요점이 있어야 비로소 스토리에서 다룰 문제를 구체화해 나갈 수 있을 뿐 아니라, 주인공에게 그 문제가 어떤 의미로 다가올 것인지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니 안심하자. 사실 거의 모든 스토리는 클리셰에서 출발한다. 클리셰란 진부한 주제, 너무 익숙해서 고리타분하게느껴지는 것을 뜻한다. 그걸 새롭게 만들어 주는 게 스토리의역할이다. 영국 문인 새뮤얼 존슨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작가의 가장 매력적인 능력 두 가지는 새로운 것을 친숙하게 만드는 것과 친숙한 것을 새롭게 만드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연스럽게 스토리의 형태가 떠오른다. 그것은 아마도 깊은 상실감, 막심한 후회, 자신을 지키기 위한 선택과 그 여파에 관련된 스토리일 것이다.

할 수 있는 한 충분히 살을 붙이되 간단명료하게 ‘만약에‘를 적어 보자. 산만하고 어수선해서는 안 된다. 첫 시도가 엉망이어도 걱정하지 말자. 계속 시도해 가며 뭔가 구체적이면서 맥락과 갈등이 있고 의외의 결과를 살짝 암시하는 ‘만약에‘를 만들어 보자. 한마디로, 당신이 말하려는 요점이 전해지게끔 만들면 된다.

알다시피 스토리와 플롯은 전혀 다르다. 스토리가 먼저고,
스토리는 인물에서 나온다. 그것도 단 한 명의 인물, 즉 주인공에서 나온다. 다른 모든 인물과 사물은 주인공의 스토리에 쓰려고 만드는 것이다. 소설의 힘은 작가가 주인공 속으로 얼마나 깊이 들어가느냐에 달려 있다.

세상은 온갖 사건들로 북적거려서, 거의 언제나(특히 아침에 눈을 뜨고 난 직후에는 더 혼란스럽기 짝이 없다. 우리의 생존은 자기 주변의 혼란상을 잘 이해하는 데 달려 있다. 여기서 이해란 흔히 말하는 일반적·객관적의미가 아닌 실질적 · 주관적 의미의 이해로서, ‘이게 나한테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파악하는 것을 가리킨다.

다행인 점은, 주인공이 누구인지 상상해 볼 수 있는 기본정보가 이미 있다는 것이다. 앞에서 당신의 스토리가 전하려는요점이 무엇인지, 독자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생각해 봤을 것이다. 이제 생각해 봐야할 질문은 ‘내면이 크게 바뀜으로써, 즉 내적 변화를 겪음으로써 그 요점을 구현해 줄 수 있는사람은 누구인가?‘이다. 그 사람의 내적 투쟁이야말로 이런저런 결단을 낳아 플롯을 밀고 나가는 힘이다. 스토리의 본질은세상이 주인공을 어떤 ‘사건‘ 속에 밀어 넣느냐에 있지 않다.
주인공이 그 사건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있다.

잊지 말자, 플롯이 주인공을 제약하는 게 아니라 그 반대의 관계여야 한다.

주인공이 두 명, 때로는 세 명이나 네 명인 것처럼 보이는 소설이라 해도 잘 보면거의 항상 내가 말하는 ‘핵심 주인공‘이 있다. 다시 말해 스토리의 ‘진짜’ 주인공이 있어서, 독자는 은연중에 그 사람의 눈을통해 나머지 사람들을 바라보게 된다.

그래서 중심인물이 몇 명 있는 것처럼 보이는 소설도 잘생각해 보면 그중에서 ‘더 중심‘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인물이 한 명 있는 게 보통이다. 비록 모든 중심인물이 자기만의 스토리가 있고, 충분히 구체화되어 있으며, 결말에 이르러 변화를 겪기도 하지만, 곰곰이 되짚어 보면 한 인물이 바로 떠오른다. 우리가 소설을 읽는 동안 의식했건 의식하지 못했건, 소설속 모든 것의 의미는 결국 그 인물에 의해 정해졌다.

다시 말해, 당신의 주인공은 ‘어중간한‘ 지점에서 출발하지않는다. 아주 특정한 지점에서, 아주 확고한 신념을 안은 채 출발하며, 당신의 소설이 할 역할은 그 신념을 뒤흔드는 것이다.
따라서 그 신념이 무엇이고 여정이 무엇이며 예상을 어떻게 깨뜨릴 것인지 궁리하기에 앞서, 여정이 시작되기 전, 자신에게닥칠 일들을 까맣게 몰랐던 그의 모습을 알아야만 한다.

늘 그렇듯이, 주인공의 행동에는 내적인 이유가 얽혀 있어야 한다. 중요한 건 주인공의 행동보다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다. 그 간단한 원리를 절대 잊지 말자.

모든 극의 본질은인간은 자신의 행동이 초래할 결과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 해럴드 헤이즈

인간의 뇌는 의미를 찾는 기계다. 우리는 모든 것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 이면의 원리를 알아내려고 하는 본능이있다. 우리는 ‘왜‘를 알고 나면 ‘무엇‘에 대한 인식이 근본적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반면 대부분의 다른 동물은 세상을 겉으로 보이는 대로 받아들인다. 오로지 사건에 반응하면서 살 뿐,
앞일을 꼼꼼히 계획하는 일은 없다. 인간은 세상을 대하는 방식이 다른 종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끊임없이 겉모습 이면을파고들면서 앞일을 내다보는 데 도움이 될 정보를 열심히 찾고, 무슨 일이 닥치든 잘 헤쳐 나갈 수 있게끔 준비한다. 그런면에서 "왜?"라는 질문은 진화가 인간에게 선사해 준 가장 정밀하면서 간단하고 유용한 생존 도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네 살 무렵이면 사실이 아닌 설명을 요구하는 질문이 대부분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일단 피상적인 ‘무엇‘을대략 이해하고 나면 저절로 관심을 옮겨 훨씬 더 흥미로우면서모호한 ‘왜?’를 묻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왜?"라는 질문이 인간의 생존에 가장 요긴한 도구일 뿐아니라 작가가 가장 애용하는 도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작가가 인물의 행동에 깔린 이유를 모른다면 그다음 행동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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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도, 플롯도, 심지어 ‘감각적 디테일‘까지도, 소설 속의모든 요소는 전깃줄과 이어져야 비로소 의미를 갖고 독자의 감정을 움직일 수 있다. 주인공의 내적 투쟁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이라면 아무리 미려하게 쓰였다 한들, 아무리 겉보기에극적이라 한들 소용없다. 스토리를 중간에 멈춰서게 하고, 독자를 사로잡았던 마법을 깨뜨리고, 독자를 현실로 다시 튕겨보낼 뿐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밑그림blueprint‘은 플롯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개요가 아니라, 스토리를 이루는 내.
적 · 외적 층들을 처음부터 결말에 이르기까지 완전하게 종합한 것이다. 당신은 밑그림을 만들면서 동시에 소설을 써 나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밑그림 내용의 대부분은 완성된 소설에들어간다. 이 과정에서 나오는 것은 하나도 버릴 게 없다. 흔히들 글을 쓰기 전에 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전 조사와는 다르다.
이것이 바로 독자의 넋을 빼앗고 세상 보는 관점을 바꿔 줄 소설을 쓰는 비결이다.

스토리는 그래서 무섭다. 우리는 살면서 매 순간 알게 모르게 스토리에 홀리고 변화를 겪는다. 그런데 대다수의 사람들은이를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작가에게는 성공의 열쇠가 바로여기에 있다. 스토리의 힘이 왜 그리 강한지 이해한다면, 그리고 독자를 꼼짝없이 붙들고 독자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작가의 무기가 과연 무엇인지 깨닫는다면, 그 힘을 자유로이 구사하는 소설을 쓸 수 있다.

반면 스토리를 읽는 행위가 우리 삶에 초래하는 결과는 그리 뚜렷하지 않기에, 아무런 결과 자체가 없다고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스토리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도 음식과 섹스 못지않게 지대하고 운명적이며 생물적이다. 알고 보면 우리가 재미있는 스토리에 빠질 때 느끼는 쾌감, 밤새도록 책을 붙잡게만드는 그 쾌감은 헛된 것도, 무의미한 것도 아니요, 그저 쾌락을 위한 쾌락도 아니다. 그 자체가 궁극적인 목적도 아니다. 그쾌감은 생물적 미끼이자 우리를 사로잡는 덫으로서, 현실 세계를 까맣게 잊고 스토리의 세계에 몸담게 만드는 구실을 한다.
우리가 모든 것을 잠시 내려놓고 스토리에 집중하게 하는 것이바로 그 쾌감이다.

대니얼 길버트의 말을 빌리면, "감정은 중요하다는 말로는부족하다. 중요하다는 개념 자체가 곧 감정이다. 삶 속에서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이성적 결정을 전혀 내리지 못한다. 인간의 생리가 그렇게 되어 있다. 스토리 속에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스토리를 읽고 있다고 할 수 없다. 의미를전달하는 것은 논리가 아니라 감정이므로, 소설은 주인공의 감정이 독자에게 직접 전해지게끔 쓰지 않으면 안 된다."

한마디로 말해서 스토리란,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 가운데어려운 목표를 추구하는 누군가가 영향을 받는 과정, 그리고결과적으로 내적 변화를 일으키는 과정이다.

‘어려운 목표‘는 간단히 생각하면 이른바 ‘스토리 문제storyproblem‘라고 하는 것이다. 모든 스토리는 점점 고조되는 한 가지 문제를 주인공이 불가피하게 마주하고 풀어 나가는 과정이중심이다. 쉽다면 문제라고도 할 수 없고, 스토리도 성립하지않을 것이다. 그저 피상적인 문제여서도 안 된다. 주인공이 번번이 자신의 어떤 내적 갈등과 씨름하게 만드는 문제여야 하며, 그 결과 주인공의 세상 보는 관점이 막바지에 크게 바뀌어야 한다.

스토리란 결국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수많은 소설이 그 점을 간과하는 탓에 실패한다. 우리가 스토리를 찾는 이유는 그저 흘러가는 사건을 구경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주인공의 입장에서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고심하고주인공의 눈으로 사건을 경험하기 위해서다. 우리는 그 경험에매료된다. 호기심에 가득 차서, 그 경험이 가르쳐 줄 내밀한 정보를 갈구한다. 그렇다. 주인공의 내적 투쟁이 곧 스토리의 전깃줄이다. 그것이 우리의 관심에 불을 붙이고 스토리를 밀고나가는 힘이다.

우리는 글을 쓸 때, 그동안 교육받은 작문의 원리에 치중빠져든다.
하느라 이런 스토리의 힘을 보지 못한다. 아름다운 글의 힘으로 독자를 매혹할 수 있으리라고 굳게 믿는다. 포장지를 선물로 착각하는 셈이다.

그리고 사실 처음에는 아무 고민 없이 막 써 내려가는 것이 아주 쉽게 느껴진다. 해방감마저 든다. 게다가 빈 종이를 멍하니 바라보는 괴로움에서 벗어나 모조리 쏟아 내다 보면 기분만 좋은 게 아니라 옳게 하고 있다는 확신마저 든다. ‘아, 이게바로 베스트셀러 작가로 가는 길이구나!‘ 하는 생각에 젖기 쉽다. 그러다가 임기응변의 짜릿함이 차츰 시들해지면서, 32페이지쯤, 아니면 127페이지나 327페이지쯤 가서 뭘 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없게 된다. 3페이지밖에 못 가서 그렇게 되는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므로 창의성의 고삐를 풀어 줄 것이 아니라, 스토리의기원이 되는 과거에 붙들어 매야 한다. 현재가 뿌리내릴 과거가 없다면, 일어나는 일들이 모두 밋밋하고 제각각이니 독자의눈에는 마구잡이로 보일 뿐이다. 그렇게 쓴 원고는 비록 근사한 대목이 군데군데 있을지라도 갈아엎고 다시 써야 한다.

가능할 턱이 없다. 뮤즈와 접신이라도 해서 완성된 책 내용을 불러 주는 대로 받아 적으면 모를까. 그런데 완성된 책이라고 하면 바로 다음에 소개할 글쓰기 관련 허구가 생겨난 원천이기도 하다. 비단 책뿐만이 아니라 영화, 연극, 신화 등이모두 그 기원이라 할 수 있다.

15 JEP SE아주 간단히 말해, 스토리란 누군가가 어떤 불가피한 문제와씨름하면서 바뀌어 가는 과정이다. 그 점을 이해하지 못하면오랜 시간을 들여 매끈한 외관의 소설을 써낸다 해도 그저 이런저런 사건의 지루한 묘사에 그치고 말 뿐이다. 반면 그 원리를 깨우친다면 독자의 넋을 빼앗는 흥미진진한 소설을 쓸 수있다.

오해해서는 안 되는 것이, ‘인 메디아스 레스‘는 문학적 기법이 아니다. 그냥 당연한 사실이다. 설마 소설 첫머리를 이렇게 시작하는 사람이 있을까? "아킬레우스는 바다의 여신 테티스와 미르미돈족의 왕 펠레우스의 아들로, 어느 선선한 봄날아침에 태어나………."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변함없는 사실은, 스토리의 전반부 없이 후반부가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전반부에서 문제의 근원이 무엇인지,
그리고 주인공이 원래 어떤 사람인지가 반드시 정립되어야 한다. 그런 연후에야 우리는 주인공이 그 문제와 씨름하다가 결국 변화하게 만드는 플롯을 구상할 수 있다.

스토리라는 것이 있어서 우리는 미래를 머릿속에 그려볼수 있고, 그럼으로써 예상 밖의 일에 미리 대비할 수 있다. 불의의 시나리오에 뒤통수를 맞지 않으려면 우리에게는 항상 스토리가 필요하다. 예상을 깨는 일은 늘 있기 마련이니까. 그래서 이런저런 가상적 시나리오를 눈앞에 펼쳐 줄 작가가 우리에게 언제나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우리가 가장 먼저 할 일은 그 최초의 별난 아이디어를 가지고 스토리가 될 만한 ‘만약에‘ 질문을 만드는 것이다. 쉬울것 같지 않은가? 무언가 평범치 않은 것을 상상하고, ‘만약에‘
라는 말만 앞에 갖다 붙이면 소설 쓸 준비 끝! 아닌 게 아니라,
우리가 유치원 때부터 배운 글쓰기 방법이 바로 그거였다. 다좋은데, 그걸로는 안 된다는 게 문제다. 아무리 예상 밖의 전개를 상상한다 해도, 그것만으로는 이야깃감으로 삼을 만한 ‘만약에‘가 나오지 않는다.

우리는 일단 어떤 패턴을 발견하면 머릿속에 그 패턴에관한 스토리를 만든다. 그런 패턴이 ‘왜‘ 생기며, 따라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를 말해 주는 스토리다. 그런 다음 그 모든것을 의식 속에서 까맣게 잊어버린다. 기억력이 나빠서가 아니라, 믿음직스러운 인지적 무의식 속에 그 정보를 넣어 두었기 때문이다. 인지적 무의식은 우리가 매일 맞닥뜨리는 평균35000건의 결정 중 거의 전부를 관장하는 우리 뇌의 일부분이다. 인지적 무의식 덕분에 우리의 의식은 부담을 덜고 그 대신
‘예상 밖의 일‘이 일어나지 않는지 더 주시할 수 있다. 우리는뻔히 예상되는 일에 대해서는 구태여 고민하지 않는다.

요점이 있다면 밋밋한 ‘만약에‘도 스토리를 빚어 나가는출발점으로 만들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말은 ‘출발점‘이다.
역시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착각했던 점인데, ‘만약에‘로 시작하는 질문만 가지고 스토리를 바로 쓸 수는 없다.

사족을 달자면, <로미오와 줄리엣》은 누구나 아는 고전적스토리다. 그러니 당연히 어렵지 않게, 스토리의 핵심을 담은데다가 전하려는 요점까지 암시하는 ‘만약에‘를 짧고 강렬하게뽑아낼 수 있다. 우리가 이미 아는 내용이니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런 식으로 당신이 쓸 스토리의 방향을 미리 잡아야 한다는 뜻에서 예로 든거지, 꼭 이 예를 본떠야 하는 건 아니다. 게다가 당신이 쓸 ‘만약에‘는 누구에게 보여 줄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참고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딱 한 줄로 적지 않아도 된다. 서너 줄, 아니 다섯 줄이어도 좋다. 목표는 하나, 적절한 요점을 잡아 ‘만약에‘라는 질문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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켕가와 같은 암컷 갈매기들은 대연회에 정신이 팔려서 다른 데신경 쓸 겨를이 없을 정도였다. 오징어와 정어리까지 준비된 호화판 축제였다. 그 사이에 수컷들은 벼랑 끝에 둥지를 틀고 암컷들은그 둥지에서 알을 낳을 것이다. 그리고 어떠한 위협이 있어도 그 알들을 가슴에 품을 것이다. 조금 지나 알을 깨고 나온 새끼들에게 깃털이 나기 시작할 것이고, 그때가 이번 여정에서 가장 극적인 하이라이트가 될 것이다. 저 아름다운 비스카야 창공에서 어린 새끼 갈매기들에게 나는 법을 가르치는 것 말이다.

"소르바스야, 저 배 보이지? 너, 저 배가 어디서 오는지 아니? 저배는 라이베리아에서 오는 거야. 그 나라는 아프리카에 있는데, 아주 재미있는 나라란다. 예전에 흑인 노예였던 사람들이 세운 나라거든. 나는 이 다음에 커다란 범선의 선장이 되어 라이베리아로 갈테야. 너도 데리고 갈게. 소르바스, 너는 훌륭한 바다 고양이가 될거야. 내가 확실하게 보증하지."

소르바스는 집에서 그리 멀리 나가지 않았다. 꼬리를 바짝 세워흔들면서 총총걸음으로 생선이 있는 곳으로 찾아갔다. 얼마 후, 고개를 옆으로 삐딱하게 기울이고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졸고 있는커다란 새의 앞을 지나쳤다. 그 새의 모습은 꽤나 우스꽝스러웠다.
부리 밑에는 커다란 모이주머니가 달려 있었다.

소년은 고양이를 팔에 안으면서 토닥거렸다.
소년과 고양이의 우정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렇게 우연히 시작된 둘 사이의 우정이 벌써 5년째 계속 되고 있었다.

몸집이 큰 검은 고양이는 모처럼 편안하게 숨을 내쉬었다. 앞으로 4주 동안은 내 세상이다! 그러나 이웃집에 사는 소년의 친구가매일 올 것이다. 소르바스에게 통조림 먹이도 주고 작은 자갈이 깔린 고양이 집을 깨끗이 청소해주러 말이다.

몸집이 큰 검은 고양이 소르바스는 신나는 상상을 하며 즐거워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앞으로 수 시간 내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소르바스는 마냥 즐거워할 수 있었다.

켕가는 다시 하늘로 날아오르기 위해 날개를 쭉 폈다. 그러나 커다란 파도가 몸 전체를 덮어버렸다. 가까스로 물 위로 떠오른 켕가는 머리를 힘차게 흔들어 젖혔다. 눈앞이 칠흑 같은 어둠에 휩싸인듯 갑자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켕가는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이 앞을 볼 수 없는 것은 오염된 바닷물의 기름 탓이라는 사실을.

캥가는 온몸의 근육에 경련이 일 정도로 필사적인 노력을 했다.
마침내 기름 덩어리의 중심부를 벗어나 비로소 깨끗한 물과 만날수 있었다. 눈에 묻은 기름을 씻어내기 위해 머리를 물에 담그고 수없이 눈을 깜빡였다. 마침내 눈가의 기름이 어느 정도 사라졌다. 그제야 캥가는 맑은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었다. 그러나 눈에 들어오는 것은 바다와 광활한 둥근 하늘 사이에 끼여 있는 몇 조각의 구름뿐이었다. 아레나 로하 등대의 갈매기 떼들은 이미 멀리, 저 멀리날아가고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켕가의 운명이었다. 그래서 켕가는 생각했다. 차라리 커다란 물고기의 입속으로 빨리 없어져버리는 것이 더 나으리라고.

그는 은빛 날개로 하늘을 날며, 바다를 오염시키는 인간들의 모습을 자주 목격할 수 있었다. 이따금 정박 중인 대형 유조선들은 안개가 짙게 깔린 틈을 이용해서 탱크 속을 청소하기 위해 먼 바다로나갔다. 그들은 독한 유해 물질 수천 리터를 바다에 내버렸다. 그러면 거기서 쏟아져 나온 이물질과 찌꺼기는 커다란 파도에 휩쓸려바다 위를 둥둥 떠다녔다.

싱가는 힘없이 물 위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자신의 일생중 가장 길고도 지루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죽음의공포에 떨면서 자문해 보았다. 혹시 죽음 중에서도 가장 두려운 모습의 죽음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물고기 밥이 되는것보다 더 끔찍하고, 질식의 고통보다 더 두려운 것은 바로 굶어 죽는 것이 아닐까? 그는 죽음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다는 절망감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몸통 전체를 뒤흔들어댔다. 그 순간 깜짝 놀랐다. 기름에 젖은 날개가 몸에서 떨어진 것이다. 은빛 깃털은 검은 농축 물질로 흠뻑 젖어 있었지만 날개는 최소한 펼 수 있었다.

그는 몸이 무거워지고 날개의 움직임이 갈수록 느려지는 것을 느꼈다. 점점 힘이 빠지고 있었다. 더 이상 높게 날 수도 없었다. 이제는 지금의 고도를 다시 회복할 수 없으리라는 절망감이 엄습했다.
하지만 켕가는 눈을 질끈 감고 마지막 힘을 다해 활갯짓을 했다. 얼마동안이나 눈을 감고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켕가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자신이 황금빛 첨탑 위를 날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소르바스는 갈매기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갈매기는 날개를 접으며 몸을 일으키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다지 우아한 착륙은 아니군."
소르바스가 점잖게 말했다.

"죽는다고? 그런 소리 마. 너는 단지 피곤하고 약간 지저분할 뿐이야. 그게 전부야. 그런데 이왕이면 동물원으로 날아가는 게 어떻겠니? 동물원은 여기서 그리 멀지도 않아. 거긴 너를 도와줄 수의사들도 많아"

"새끼가 태어날 때까지 알을 보호해 주겠다고 약속해줘."
갈매기가 가까스로 목덜미를 들어올리며 말했다.
"새끼가 태어날 때까지 그 알을 보호해줄게."
"마지막으로, 새끼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준다고 약속해줘."
갈매기는 고양이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했다. 그러자소르바스는 이 불쌍한 갈매기가 단지 헛소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미쳤다고 생각했다.

소르바스는 앞발 한쪽을 천천히 쭉 폈다. 그리고 성냥개비 길이만 한 긴 발톱을 뽑아내어 그 도발자들의 얼굴 가까이 들이밀었다.
"어때, 이게 맘에 드니? 아직 이런 게 아홉 개는 더 있지. 네 척추에 매운맛 좀 보여줄까?"
소르바스는 매우 침착하게 위협했다.

세끄레따리오는 이렇게 말하고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꼴로네요는 나이를 알 수 없는 고양이였다. 어떤 고양이들은 식당 문을 연 햇수와 똑같은 나이라고 하고, 또 다른 고양이들은 그보다 훨씬 더 나이를 먹었다고 했다. 그러나 꼴로네요의 나이는 전혀중요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곤경에 처한 많은 고양이들에게조언을 해주는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그의 조언이 어떤 문제를 꼭 해결하지는 못했다 할지라도 최소한 기운을북돋워 주는 역할은 했다. 꼴로네요는 비록 늙었지만, 아직도 항구의 모든 고양이들 사이에서는 상당한 권위를 지닌 존재였다.

"무엇이든지 도와주겠네. 카로 아미코, 세끄레따리오! 우선 이친구에게 오전에 먹었던 ‘라자냐 알 포르노‘(오븐에 구운 라자냐 요리.
이탈리아 파스타의 일종)를 좀 대접하게나."

"그러지 말고, 우리 모두 같이 가지. 이 항구에서는 고양이 한마리의 문제가 곧 항구 고양이 전체의 문제니까."
꼴로네요가 근엄하게 말했다.

사벨로또도는 참으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곳에 살고 있었다.
처음 보기에는 진기한 물건을 파는 무질서한 상점 같기도 했고, 불법 박물관 혹은 쓸모없는 기계들을 모아놓은 창고, 아니면 세상에서 가장 혼란스런 책들이 쌓여 있는 도서관 같기도 했다. 또는 이름붙이기조차 어려운 도구들을 발명한 어떤 발명가의 실험실 같기도했다. 그러나 그중 어느 것도 아니었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그 어떤 것보다도 더 한, 이상한 곳이었다.
이름하여 ‘항구의 하리 전시장‘

하리는 마스코트 두 개를 가지고 있었다. 그중 하나는 침팬지 마띠아스였다. 마띠아스는 매표를 하면서 안전을 담당했고, 가끔씩나이 많은 뱃사람들과 체스를 두었다. 물론 썩 잘 두지는 못했다.
침팬지는 맥주를 즐겨 마셨고, 항상 거스름돈을 적게 주려고 했다.
또 다른 마스코트는 사벨로또도였다. 작고 바싹 마른 회색 고양이인데, 대부분의 시간을 그곳에 있는 수천 권의 책들을 연구하는 데 할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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