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고? 어릴 적에 부모님이 늘 얘기하셨듯이, 우리의 행동에는 결과가 따르는 법이니까. 결과는 당장 나타나기도 하고, 오랜 세월 후에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므로 주인공이 과거에 했던 행동을 알면 미래에 닥칠 사건을 구상하는 데 반드시도움이 되기 마련이다.

우리는 플롯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이미 그 두 사실을알게 된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사랑이다. 그녀의 발목을 잡는 요인은? 집구석에서 한 발짝도 못 나가는 데다 사람을 안에 들일생각도 없는데 진실한 만남을 기대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자, 그렇다면 당신의 주인공이 치러야 할 내적 투쟁의 정체는무엇일까? 발전시키기에 앞서 일단 처음에 어떻게 가닥을 잡아야 하나? 주인공의 내면에서 결투를 벌이는 두 세력에 주목하자. 그가 원하는 것(욕구), 그리고 그를 가로막는 잘못된 믿음(두려움)이다. 모든 스토리는 그 두 개의 불씨에서 시작해 불붙고 타오른다. 바로 그 투쟁이 스토리의 ‘전깃줄‘이 되어 줄 것이다.

우리는 판단을 접어 두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잘못된 믿음‘이라고 부르자. 주인공은 잘못된 믿음을 진심으로 옳다고믿고 있다. 주인공이 그 잘못된 믿음을 어떻게 극복하느냐 하는 것이 바로 당신이 써 나갈 스토리의 본질이다.

잊지 말자, 주인공이 세상을 보는 렌즈는 결코 중립적이지않다. 그 렌즈는 항상 ‘믿음‘이라는 내밀한 정보에 비추어 눈앞의 모든 것과 그에 따른 자신의 행동을 해석한다. 놀라운 사실은 그다음이다. 그 믿음은 하나하나가 다 주관적인데, 그 이유는 주인공이 자기 세상에 함몰되어 ‘실제 세상‘을 보지 못해서가 아니라, 실제 세상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적어도 우리가 교육받아 알고 있는 의미의 실제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구체적‘이라는 것은 ‘실제 있었던 일 그대로‘를 뜻한다. 요약이나 개괄이 아니라 사건이 펼쳐지는 매 순간의 모습 그 자체를 가리킨다. 그런데 모조품을 그럴듯하게 만들어 놓고 구체적으로 내용을 잡아 놓았다고 오해하기 아주 쉬운 게 문제다.
다이아몬드 같은 큐빅, 금 같은 황철석, 피카소 진품 같은 위작이 그렇듯, 모조품을 진짜로 착각하기가 어찌나 쉬운지 당혹스러울 정도다. 특히 지금처럼 백지상태에서 막 시작한 경우, 주인공에 관해 조금이라도 구상해 놓으면 다 구체적으로 느껴진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보다야 훨씬 구체적이니 그럴 수밖에없다.

작가가 우선 생각해 봐야 할 질문은, ‘완다는 구체적으로왜 유기 불안을 갖게 되었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유기 불안을 촉발한 사건을 알고 나면 그녀가 생각하는 유기란 무엇인지, 또 그게 어떻게 살인을 업으로 삼는 계기가 되었는지가 상당히 구체적으로 드러날 테니까.

앞에서 주인공의 시점은 카메라 렌즈가 아니라고 했듯이,
어떤 장면을 글로 쓸 때는 영상을 보면서 영상의 내용을 말해주듯 써서는 안 된다. 사건 한가운데에 있는 주인공의 머릿속으로 독자를 들여보내 주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이 있다.
독자가 주인공의 시점으로 사건을 본다는 것은 사건을 바라보는 주인공의 생각을 독자에게 들려준다는 뜻이다. 그것도 대략적인 생각이 아니라,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이고 도대체 어떻게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구체적인 생각이어야 한다. 소설의 모든 문단에 주인공의 그런 생각이 녹아 있어야 한다.

인지심리학자이자 소설가인 키스 오틀리는 윈셀버그보다디지털 환경에 조금 더 익숙했던 것 같다. 그는 픽션을 "마음이라는 소프트웨어상에서 돌아가는 시뮬레이션"으로 정의하며이렇게 말한다. "게다가 무척 유용한 시뮬레이션이다. 사회 세계를 잘 헤쳐 나간다는 것은 무수히 맞물린 인과 요인을 따져보아야 하는 일이라 극히 까다롭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듣고 난 당신은 당장 펜을 집어 들고 주인공의잘못된 믿음의 기원에서 소설 첫 페이지에 이르는 인과 경로를단숨에 요약하여 써 내려가고 싶어질지 모른다. 그리 어렵지않을 것 같다. 한 시간 정도면 할 수 있을 듯하다. 그런데 그건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주인공은 소설이 시작될 때 아마 자신의 변화 욕구를 얕보기도 하고, 보류하기도 하고, 때로는 고의로 무시하기도 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바꿔 말하면, 자기합리화를 하는 것이다. 의식적으로 할 때도 있겠지만, 대개 자기딴에는 세상을 전략적으로 해석하면서 그에 맞춰 행동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알고 있는지? 지금 우리가 구상하려는 결말은 (그리고 당신의 독자가 가장 원하는 결말은) 플롯상 일어나는 사건이전부가 아니다. 주인공이 그 사건을 맞닥뜨리면서 무엇을 ‘깨닫는지‘가 중요하다. 문제는, 숙련된 작가들조차 매우 유혹적인 덫에 빠지기 쉽다는 것이다. 즉, 소설의 결말을 주인공의 깨달음이 아닌 외적인 사건으로만 생각해 버리기 일쑤다.

명심하자. 중요한 건 주인공이 ‘변화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어떻게 내적으로 그 변화에 도달하느냐 하는 것이다.

때로는 마지막 순간 바로 직전에 와서 주인공에게 최종난관에 맞설 용기를 주기도 하고, 또 때로는 주인공이 마지막총력전의 한복판에 내던져질 때 찾아와 역경에 버틸 용기와 힘과 지혜를 주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아하!‘ 순간이 그 직후에찾아오기도 한다. 주인공이 방금 일어난 일을 이해하려고 하면서, 기대했던 것과는 의외로 많이 다른 감정과 함께 깨달음이오는 것이다.

잊지 말자. 이 작업은 그저 외적 플롯을 짜는 게 아니다.
내적 스토리와 외적 플롯의 균형을 잡아 줌으로써 서로가 서로를 계속 끌고 가게 해 주는 작업이다. 앞에서 제니가 첫 장면과 ‘아하!‘ 장면의 카드를 만들 때 곧바로 여러 구멍이 드러났던 것을 기억하는가? 장면을 완전하게 쓰려면 먼저 과거를 전략적으로 더 파고들어야 하는 부분들이 있었다. 이처럼 밑그림기법을 이용하면 당신이 말하고자 하는 진실을 한껏 깊숙이 파헤쳐 지면에 구현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이는 유기적이고 직관적인 작업이다. 작업하다 보면 장면을 쓸 때도 있고, 장면 카드를 만들 때도 있고,
또 두 가지 일을 나란히 할 때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유념할 점이 있다. 장면 카드는 이리저리 옮겨 다니면서 작성하더라도, 장면 자체는 시간 순서대로 써야 한다는 것이다. 장면을 순서대로 쓰지 않는 것은 건물의 2층을 짓지 않은 채 6층을 짓는 것과 같다. 하나의 장면은 다음 장면의원인이 될 뿐 아니라, 다음 장면에 근거와 깊이와 의미를 더해준다. 그 의미를 만들어 나가는 도구가 바로 장면 카드다. 장면카드를 만듦으로써 장면을 쓰기 전에 미리 장면을 적절한 층에배치하고 소설의 인과 경로상에 자리를 잡아 줄 수 있다.

조직화는 중요하다. 특히 소설처럼 움직이는 부속품이 많다면더욱 그렇다. 다행인 점은,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소설은 단하나의 복잡해져 가는 문제를 중심으로 펼쳐진다는 것. 따라서모든 부속품은 당신이 첫 페이지에서부터 만들어 나가는 스토리 논리에 기초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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