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 작가들이 첫 문장도 쓰기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다. 무릇 스토리란 한꺼번에 나오는것이며 게다가 곱게 다듬어진 문장들로 처음부터 이루어져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노력해도 그럴듯한 첫 문장조차 떠오르지 않으면 불길한 징조로 받아들이고, 포기하고 만다. 그러지 말자. 그건 마치 고운 ‘본차이나‘ 도자기를 보고 감탄하면서 그 은은하고 섬세하고 정교한 자태가 한번에 완벽한 모습으로 짠! 나타났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자면, "형식이나 장르와 관계없이 스토리는 스토리"다. 하지만 누구나 좋아하는 유형이 있어서, 끌리고 공감 가는 장르가 있다.
혹은 무언가 전하고 싶은 요점과 관련된 아이디어가 떠올랐는지도 모른다. 작가 스티븐 킹은 소설 《언더 더 돔》과 관련해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처음부터 이 소설이 오늘날 세계가봉착한 심각한 생태적 문제를 다룰 기회라고 생각했다."2또는 실제로 ‘만약에‘라는 가상적 질문에 처음 관심이 꽂혔을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만약에 변호사가 아주 사소한 거짓말도 전혀 하지 못한다면?"(영화 <라이어 라이어>> "만약에 당신이 태어나지 않았을 때 세상이 어떤 모습이 되었을지 볼 수 있다면?"(영화 <멋진 인생> 등이다.
이제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내가 이걸 여기까지 끌고 온이유가 무엇인가? 이 아이디어가 머릿속을 맴도는 이유가 무엇인가? 나는 왜 여기에 관심을 쏟는가? 내가 이 아이디어에끌리는 이유를 파고들어 보자. 답이 뚜렷하게 떠오르지 않아도걱정하지 말자. 아니면 처음 드는 생각이 ‘음, 생각해 보니 왠지 낮잠을 자고 싶네‘여도 괜찮다. 정답이란 건 없다.
지금 구상 중인 스토리에 당신이 왜 관심을 쏟는지 한 페이지이내로 적어 보자. 정답은 없다. 무엇이든 머리에 떠오르는 이유를 적으면 된다. 유치해 보여도 좋다. 해 보면 자신이 관심을가진 이유가 애초에 생각했던 이유와 전혀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놀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요점 없이는 글을 써 나갈 수 없다. 요점이 있어야 비로소 스토리에서 다룰 문제를 구체화해 나갈 수 있을 뿐 아니라, 주인공에게 그 문제가 어떤 의미로 다가올 것인지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니 안심하자. 사실 거의 모든 스토리는 클리셰에서 출발한다. 클리셰란 진부한 주제, 너무 익숙해서 고리타분하게느껴지는 것을 뜻한다. 그걸 새롭게 만들어 주는 게 스토리의역할이다. 영국 문인 새뮤얼 존슨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작가의 가장 매력적인 능력 두 가지는 새로운 것을 친숙하게 만드는 것과 친숙한 것을 새롭게 만드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연스럽게 스토리의 형태가 떠오른다. 그것은 아마도 깊은 상실감, 막심한 후회, 자신을 지키기 위한 선택과 그 여파에 관련된 스토리일 것이다.
할 수 있는 한 충분히 살을 붙이되 간단명료하게 ‘만약에‘를 적어 보자. 산만하고 어수선해서는 안 된다. 첫 시도가 엉망이어도 걱정하지 말자. 계속 시도해 가며 뭔가 구체적이면서 맥락과 갈등이 있고 의외의 결과를 살짝 암시하는 ‘만약에‘를 만들어 보자. 한마디로, 당신이 말하려는 요점이 전해지게끔 만들면 된다.
알다시피 스토리와 플롯은 전혀 다르다. 스토리가 먼저고, 스토리는 인물에서 나온다. 그것도 단 한 명의 인물, 즉 주인공에서 나온다. 다른 모든 인물과 사물은 주인공의 스토리에 쓰려고 만드는 것이다. 소설의 힘은 작가가 주인공 속으로 얼마나 깊이 들어가느냐에 달려 있다.
세상은 온갖 사건들로 북적거려서, 거의 언제나(특히 아침에 눈을 뜨고 난 직후에는 더 혼란스럽기 짝이 없다. 우리의 생존은 자기 주변의 혼란상을 잘 이해하는 데 달려 있다. 여기서 이해란 흔히 말하는 일반적·객관적의미가 아닌 실질적 · 주관적 의미의 이해로서, ‘이게 나한테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파악하는 것을 가리킨다.
다행인 점은, 주인공이 누구인지 상상해 볼 수 있는 기본정보가 이미 있다는 것이다. 앞에서 당신의 스토리가 전하려는요점이 무엇인지, 독자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생각해 봤을 것이다. 이제 생각해 봐야할 질문은 ‘내면이 크게 바뀜으로써, 즉 내적 변화를 겪음으로써 그 요점을 구현해 줄 수 있는사람은 누구인가?‘이다. 그 사람의 내적 투쟁이야말로 이런저런 결단을 낳아 플롯을 밀고 나가는 힘이다. 스토리의 본질은세상이 주인공을 어떤 ‘사건‘ 속에 밀어 넣느냐에 있지 않다. 주인공이 그 사건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있다.
잊지 말자, 플롯이 주인공을 제약하는 게 아니라 그 반대의 관계여야 한다.
주인공이 두 명, 때로는 세 명이나 네 명인 것처럼 보이는 소설이라 해도 잘 보면거의 항상 내가 말하는 ‘핵심 주인공‘이 있다. 다시 말해 스토리의 ‘진짜’ 주인공이 있어서, 독자는 은연중에 그 사람의 눈을통해 나머지 사람들을 바라보게 된다.
그래서 중심인물이 몇 명 있는 것처럼 보이는 소설도 잘생각해 보면 그중에서 ‘더 중심‘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인물이 한 명 있는 게 보통이다. 비록 모든 중심인물이 자기만의 스토리가 있고, 충분히 구체화되어 있으며, 결말에 이르러 변화를 겪기도 하지만, 곰곰이 되짚어 보면 한 인물이 바로 떠오른다. 우리가 소설을 읽는 동안 의식했건 의식하지 못했건, 소설속 모든 것의 의미는 결국 그 인물에 의해 정해졌다.
다시 말해, 당신의 주인공은 ‘어중간한‘ 지점에서 출발하지않는다. 아주 특정한 지점에서, 아주 확고한 신념을 안은 채 출발하며, 당신의 소설이 할 역할은 그 신념을 뒤흔드는 것이다. 따라서 그 신념이 무엇이고 여정이 무엇이며 예상을 어떻게 깨뜨릴 것인지 궁리하기에 앞서, 여정이 시작되기 전, 자신에게닥칠 일들을 까맣게 몰랐던 그의 모습을 알아야만 한다.
늘 그렇듯이, 주인공의 행동에는 내적인 이유가 얽혀 있어야 한다. 중요한 건 주인공의 행동보다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다. 그 간단한 원리를 절대 잊지 말자.
모든 극의 본질은인간은 자신의 행동이 초래할 결과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 해럴드 헤이즈
인간의 뇌는 의미를 찾는 기계다. 우리는 모든 것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 이면의 원리를 알아내려고 하는 본능이있다. 우리는 ‘왜‘를 알고 나면 ‘무엇‘에 대한 인식이 근본적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반면 대부분의 다른 동물은 세상을 겉으로 보이는 대로 받아들인다. 오로지 사건에 반응하면서 살 뿐, 앞일을 꼼꼼히 계획하는 일은 없다. 인간은 세상을 대하는 방식이 다른 종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끊임없이 겉모습 이면을파고들면서 앞일을 내다보는 데 도움이 될 정보를 열심히 찾고, 무슨 일이 닥치든 잘 헤쳐 나갈 수 있게끔 준비한다. 그런면에서 "왜?"라는 질문은 진화가 인간에게 선사해 준 가장 정밀하면서 간단하고 유용한 생존 도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네 살 무렵이면 사실이 아닌 설명을 요구하는 질문이 대부분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일단 피상적인 ‘무엇‘을대략 이해하고 나면 저절로 관심을 옮겨 훨씬 더 흥미로우면서모호한 ‘왜?’를 묻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왜?"라는 질문이 인간의 생존에 가장 요긴한 도구일 뿐아니라 작가가 가장 애용하는 도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작가가 인물의 행동에 깔린 이유를 모른다면 그다음 행동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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