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에 대한 이상의 비판은 상당 부분 사실이었다. 영국은 산업혁명 이전부터 상공업이 발달했는데, 17세기 말부터 조직된 노동조합은 오랜 역사가 남긴 특권을 누려왔고 상당한 세력을 행사해왔다. 노사관계의 어려움은 노조 조직률이 매우 높을 뿐만 아니라 단체교섭이 이중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에도 기인했다. 즉 노조가 기업단위나 산업단위로 조직된 것이 아니라 수공업 시대에 만들어진직능 조직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한 직장에 많게는 수십 개의노동조합이 존재했다. 뿐만 아니라 그들과 회사의 단체협상은 작업장과 전국적 차원의 이중구조로 이루어졌다. 1980년 2,000명 이상의 고용인을 가진 대규모 기업의 40퍼센트가 6개 이상의 노동조합들과 협상을 해야 했다. 이러한 복잡한 구조가 노사협상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게다가 제2차 세계대전 종결 후 거의 완전고용이 이루어짐에 따라 노동력 부족현상이 야기되고 노사 간 세력균형을 변화시켰다. 특히 숙련공을 확보하는 것이 상당히 어려운 문제가 되었기 때문에 사용자는 해고를 노동통제의 무기로 사용할 수 없었다.
그 결과 잦은 파업, 동조파업, 정치적 파업 등이 1970년대 영국 경제를 악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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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브의 목표는 한마디로 ‘국가적 효율성 national efficiency‘의 실현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빈곤, 열악한 노동조건, 부적합한 주거환경과 위생, 낡은 교육제도, 구태의연한 의회와 관료제등 모든 것이 개혁되어야 했다. 단지 시의회에서의 활동에 만족하지않은 웨브 부부는 자신들의 목표를 진척시키기 위해서 공동작업 클럽 Co-efficient Club을 조직했다(1902). 이 클럽의 모토는 국내에서는 국가적 효율성을 증진시키고 해외에서는 문명화의 사명을 촉진하는 것이었는데, 리처드 홀데인, 에드워드 그레이, 허버트 웰스, 버트런드러셀, 버나드 쇼 등이 참여했다. 이들은 처음에는 정치적으로 중도노선을 추구하는 정당을 결성할 것을 계획했으나, 점차 활동이 시들해졌다. 어쨌든 웨브 부부는 국가적 효율성의 증진을 위해서 초기 복지국가의 기본을 다져놓은 사상가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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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스킨이나 모리스가 생각하기에 중세에도 물론 전쟁이나 절도가있었지만 점점 더 타락해가는 임금노예제, 사회적 속물근성, 비열함등은 없었다.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은 토지를 교회로부터 빼앗아 욕심 많은 새 귀족들에게 넘겨주었고, 이들이 사유재산 보호를 주요 기능으로 하는 시민정부를 설립함으로써 사회와 정치는 물론 예술도타락시켰다. 뒤이어 산업혁명이 중간계급 민주주의, 공장제, 임금노예제와 싼 상품을 가져왔다는 것이었다. 모리스는 산업사회에서 행해지는 거의 모든 노동을 쓸모없는 것으로 간주했다. 생산되는 것들은 본질적으로 소용없는 것이고 노동자가 그의 노동으로부터 소외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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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사실은 종교정책이 언어의 생존 여부에 중요했다는 것이다. 스코틀랜드의 게일어보다는 웨일스어가 더 많이 살아남았는데,
그 주된 이유는 성경책 덕분이었다. 즉 종교개혁이 일어나고 잉글랜드가 웨일스에 개신교 복음서를 보급할 때 원주민들 가운데 영어를아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잉글랜드 통치자들은 결국 웨일스어로 번역된 성경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웨일스어는 살아남았다. 1911년에도 웨일스인의 44퍼센트가 여전히 웨일스어를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웨일스 경제가 잉글랜드와 통합하고 산업화가 진척되면서 영어가 급속히 확산되었다. 1858년 조사에 의하면 남부 웨일스에서는 10세 이상의 아동들의 63퍼센트가 훌륭한 영어를,
32퍼센트가 불완전한 영어를 구사했고, 단지 5퍼센트만이 웨일스어를 사용했다. 북부에서는 그 숫자가 각각 43퍼센트, 44퍼센트, 13퍼센트였다. 여기에서 북부보다는 남부가 더 잉글랜드화했음을 알 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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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의 거울에 대한 감정은 아직 아이들의 마음속에 ‘관찰하는나‘가 심어지지 않았던 시기부터 만들어졌다. 그들은 거울 속에서
‘보는 나‘를 보는 것이 아니다. 그 속에 비추어지는 자아는 옛날 유아기에 그랬던 것처럼, ‘부끄러움‘이라는 스승이 필요 없는 본원적으로선량한 것이다. 그들이 거울에 부여하는 상징적 의미는, ‘숙달‘이라는 자기 훈련에 관한 사고방식의 기초가 된다. 그들은 ‘보는 나‘를 제거하고 어린아이의 직접성으로 복귀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를 훈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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