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심결』에서는 이러한 참된 닦음의 길에 대하여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비록 뒤에 닦는다고는 하지만이미 망념이 본래 텅 비었으며,
마음의 본성이 본래 청정한 것임을 돈오頓悟 하였으니,
악惡을 끊되끊어도 끊는 바가 없으며,
선善을 닦되 닦아도 닦은 바가 없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참다운 닦음이며 참다운 끊음이다."
이것이야말로 닦음 없는 닦음이다.
이것이 자신이 깨달은 바를 굳게 믿고 나아가는
참나를 깨친 도인의 길이다.
하되 함이 없는 무위無爲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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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하되 생각에 집착하지 말고 살자는 것이다.
생각은 생각일 뿐, 내가 생각은 아니다.
은나는 생각이 일어나고 머물고 사라지는 것을알아차리는 바라보는 자일 뿐이다. .
자신의 생각과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고 사는 것이생각을 초월하여 살아가는 법이다.
우리의 참나는 생각 이전의 자아이다.
생각 이전의 알아차리는 자이다.
알아차리는 자가 없다면 우리의 생각은 일어날 수가 없다.
생각보다 알아차리는 자가 우리의 본래 모습이다.
누가 우리를 불렀을 때,
대답을 하려는 한 생각이 일어나기 이전에,
우리는 누가 우리를 부른다는 사실을 선명히 알아차린다.
물론 그 순간만큼은 어떠한 생각도 없다.
단지 알아차릴 뿐이다.
이 마음이 바로 우리의 본래면목이다.
그 자리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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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나라의 무제가 달마達磨 대사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최고의 성스러운 진리입니까?"
달마가 대답하였다.
"텅 비어서 조금도 성스러울 것이 없습니다."
무제가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내 앞에 있는 그대는 누구입니까?"
달마가 대답하였다.
"모르겠습니다!"
무제가 이를 이해하지 못하자,
마침내 달마는 강을 건너소림사에 가서 9년간 면벽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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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중생들이 ‘신령스럽고 밝은 깨달음의 성품을 다 갖추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 없어 부처님과 다를 것이 없다. 이 성품이 법신임을 깨달으면 본디 생멸이 없으므로 어디에 의탁할 것이 있겠느냐. 신령스레 밝아 어둡지 않고 늘 분명하게 알되 온 곳도 없고 갈곳도 없다. 다만 공적空寂으로 자체를 삼을 뿐 색신을 인정하지 말고, 신령스런 앎으로 자기 마음을 삼을 뿐 망념을 인정하지 말라.
망념이 일어날 때 조금도 따라가지 않는다면 목숨을 마칠 때 자연스럽게 업에 매이지 않는다. 설사 죽더라도 가는 곳이 자유로워늘이나 인간 세상에 마음대로 태어난다."
이것이 ‘참마음‘이니 이 몸 뒤에 갈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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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부처님의 참마음과 중생의 거짓 마음이 경계를 마주할 때, 어떻게 그 진위를 구별할 수 있습니까?
답: 중생의 거짓 마음은 경계를 맞이하여 ‘아는 주체‘가 있어서 알기에, 좋고 나쁜 경계에서 그 주체가 탐을 내고 성을 내는 마음을일으킨다. 또 그 가운데 경계를 받아들여 어리석은 마음을 일으킨다. 이미 어떤 경계에서 탐을 내고 성을 내며 어리석은 마음을 일으킨다면, 이것으로 충분히 거짓 마음이라는 것을 본다.
승찬 스님이 『신심명』에서 "어긋나고 순종하다 서로 다툼은, 중생들의 마음에서 만들어진 병"이라고 하였으니, 그러므로 옳다‘
옳지 않다‘를 마주보고 아는 것, 이것은 거짓 마음이다.
부처님의 참마음이라면 아는 주체가 없는 ‘이지만, 평소 모든경계를 오롯하게 비추는 마음을 품고 있으므로 풀과 나무와는 다.
른 것이요, 미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을 내지 않으므로 중생의 거짓마음과도 다르다. 곧 경계를 마주할 때 ‘텅 빈 밝음‘이어서 미워하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아는 주체가 없는 앎[無知而)이 바로 참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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