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에도 우리에게 이로운 쪽으로 작용한다면, 우리는 축복받았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다. 그리스도교인들은 이것을 은총이라고 부른다. 불교도들은 이것을 ‘본질‘이라고 부른다. 아니면 간단히 원래 그런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들은 이것을 가지고 법석을 떨지 않는다. 불교가 의도적이지 않은 종교임을 나는 깨닫는다.
이 순간이 영원히 계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알고 있다. 몇 시간 뒤면 나는 공항 보안검색대에서 신발을 벗은 뒤, 흔히 비행기라고 불리는 금속 튜브 안에 내 몸을 구겨 넣을 것이다. 그 순간도 영원하지 않을 것이고, 나 또한 영원하지 않을 것이다. 내 몸은,
부처가 몹시 직설적으로 말했듯이, "겨우 1분 동안 빌려 쓰는 물건과 같다." 이 사실을 알고 나면 이 순간의 달콤함이 줄어드는가? 나는 마지막으로 남은 커피를 마시며 결론을 내린다. 줄어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늘어난다고. 확실히 늘어난다고.

하느님이 명하신 임무라. 우리는 처음부터 꼬일 운명이었던 브루클린 여행에서 이 농담을 줄곧 주고받는다. 교통 체증에 갇히거나 차를 꺾어 들어가야 하는 지점을 놓치거나 완전히 길을 잃어서 도무지 어디가 어딘지 알 수 없게 될 때마다 나는 아무 문제 없다고 선언한다. "우리는 하느님이 명하신 임무를 수행하는 중"이니까. 이것이긴장감을 흩어버리는 데 대단히 효과를 발휘한다. 내 긴장감이다.
크리스핀 수도사의 긴장감이 아니다. 그는 전혀 긴장하지 않는다.
적어도 나는 그에게서 긴장감을 감지할 수 없다.
"어떻게 하는 거예요? 뉴욕의 교통 체증 속에서 어떻게 프란체스코회 수도사다운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는 거죠?" 내가 묻는다.
"그냥 그리스도께 맡길 뿐입니다."
"하지만 누가 앞으로 끼어들기라도 하면요?"
"그러면 브레이크를 밟죠."
"좋아요, 그건 말이 되네요. 그래도 그게 다가 아니잖아요. 분노는어떻게 처리해요?"
저들이 개종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재빨리."
이 말을 하자마자 마치 신의 섭리가 작용하기라도 한 것처럼 누군가가 우리 차 앞으로 끼어든다. 크리스핀 수도사가 경적 위로 무겁게 몸을 기댄다. 나는 빙긋 웃는다. 정결, 순명, 청빈의 서약에 경적을 울리지 않겠다는 내용은 포함되지 않은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다들 분출구는 필요하니까.

심리학자인 차나 울면이 개종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기념비적인 연구가 약간의 단서를 제공해준다.
울면은 개종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이 아니라 경험임을 밝혀냈다. 개종자들은 새로운 교리보다는 오히려새로운 형태의 "정서적 안도감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라엘교도들은 망상에 빠졌든 아니든 커다란 안도감을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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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의 포플러 나무 그림은 앞서 그린 건초 더미와 마찬가지로 정지 상태의 대상이 비치는 빛의 변화와 그 인상을 기록한 작업 이력에서 핵심적인동기가 되었다. 물론 나무는 무생물이 아니다. 모네가 이 그림들을 그리는동안 가지는 산들바람에 흔들리고 이파리는 여름과 가을을 거치며 색이바뀐다. 그 어떤 것도 영구적이지 않다.
포플러 나무는 가구 제작을 위한 값나가는 목재로 만들기 위해 반듯하게 줄지어 재배되었다. 모네는 센 강 지류를 떠다니는 배를 작업실 삼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후 이 나무들이 이미 경매에 나온 것을 알게 되었다. 거래가 성사되었고 구매한 사람은 모네가 작업을 마치자마자 나무들을 베었다. 8개월이 넘는 동안 모네는 비와 날씨에 따라 시시각각 바뀌는 나무의 인상을 담은 수십 점의 작품을 그렸다. 포플러 나무는 격자처럼 화폭을 채우면서 강의 굽이를 따라 서 있다. 어느 가을날 오후 나무의강렬한 색이 수면에 반사되었다. 모네는 보색의 물감을 맞붙여 짧은 붓질로 채색했고 나무들은 화면 위에서 빛으로 일렁였다.
주제가 있는 모네의 그림은 비평가와 대중 모두로부터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다. 모네는 건초 더미와 포플러 나무를 그린 작품을 판매한 돈으로 지베르니의 오래된 사과주 짜는 집을 살 수 있었는데, 그곳에서 남은반평생을 보내며 당시로서는 혁신적이었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큰 영향을 미치는 작품들을 그렸다.

1930년대에 잡지 〈타임Time〉은 순수미술 중 세계에서 가장 널리 복제되는 작품이 반 고흐와 폴 세잔Paul Cézanne 그리고 맥스필드 패리시의 그림이라고 발표했다. 이 무렵 미국의 삽화가 패리시는 유명세를 얻는 데큰 힘이 된 ‘바위 위의 소녀’ 이미지를 그만 그리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가 그린어여쁜 소녀들을 맨해튼 길모퉁이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지만 그가 그린 아름다운 풍경은 한층 활기가 넘쳤다. 그가 소녀를 나무와 맞바꿨을때에도 인기가 여전했다는 사실은 놀랍다.
〈언덕배기〉는 이 전환기에 그려진 작품으로 특별히 포스터로 기획되었다. 화가가 구사하는 특유의 색조는 라파엘전파(Pre-Raphaelite)의 영향을 받은 소녀들에서 초점을 옮겨 참나무를 ‘영웅’의 자리에 둔다. 패리시는 뉴햄프셔에 있는 자신의 집을 ‘참나무(The Oaks)’라고 이름 붙였는데잘 자란 나무들 사이에 자리 잡았으며 남쪽으로 애스커트니산을 향한경치가 펼쳐진 이 집은 그의 변함없는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특히 그의하얀 ‘참나무’는 암청색 하늘을 배경으로 나뭇잎이 짙어지고 낮게 드리워진 해가 풍경에 불을 밝히는 계절인 가을을 담은 작품에 반복해 등장한다.
패리시는 유리 슬라이드를 사용했고 슬라이드를 하드보드지에 투사했다. 사진처럼 세밀하게 묘사된 나뭇잎과 나무껍질에 채색된 물감 층은 모두 광택제로 처리되어 뛰어난 반짝임을 보여준다.

극적으로 개무는 해가 생기를 불어넣는 클레어 캔식의 검푸른 숲 그림은감정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전적으로 사실적이다. 노퍽은 그녀가 평생 알고 지낸 풍경이지만 그림에 사용한 매체는 신선했다. 미술을 독학한 화가인 캔식이 유화 물감을 사용하는 모험을 한 것은 색채와 형태 그리고 유화 고유의 질감에 그녀가 매료되었음을 보여준다. 차분하게 가라앉는 물감의 조합은 매우 강렬한 색의 조합만큼이나 중요하다. 이것은 환영을 빚는 얼룩무늬 군복처럼 표면의 패턴을 통해 추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추상화가 아니다. 주위에 사람들이 존재한다. 높이 솟은 전나무의 시점은 화가에게 작품 속 상황을 알려준다. 앞을 향해다가오는 자동차 헤드라이트 뒤에 숨은 이야기는 불가사의한 내용일 수도, 누군가가 다른 곳으로 가는 도중에 날이 저물고 있다는 평범한 내용일 수도 있다. 캔식은 그림을 그리는 전 과정에 걸쳐 초기 단계에 그린 드로잉을 바탕으로 상상력을 펼친다. 그녀는 최근 사건에서 비롯된 이미지도 활용하기 시작했는데, 연기가 타오르는 어두운 아마존 정글의 한부분을 그리기도 했다(108~109쪽).
또한 캔식은 나무파(Arborealist)로 알려진, 나무에 집중하는 미술가그룹의 일원이다. 이들은 20세기 초 런던에서 활동한 독립적인 미술 집단에서 일부 영향을 받았다.

화가이자 만화가인 조앤 다나트는 겨울날 작업실에서 나무를 바라보기는 했지만 〈겨울나무〉는 상상력을 발휘해 제작했다. 이 작품은 감자를 파서 만든 판화 이래 가장 민주적인 판화 형식인 드라이 포인트 기법으로 제작된 동판화다. 필요한 것은 유리판 한 장이 전부다(또는 표면에 잉크를 바를수 있는 한 장의 판이면 족하다). 판면에 종이를 얹고 펜이나 연필로 선을 새긴다. 선을 새긴 부분에는 잉크가 고이면서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은 섬세한효과가 나타나는데, 이는 자연의 가치를 아는 누군가의 정원같은 인상을불러일으킨다.
다나트의 판화에는 나무를 응시하며 보낸 90년 세월이 담겨 있다.
녹음이 우거진 런던에서 나고 자란 다나트에게 결코 소재가 부족했던 적은 없었다. 도시에서는 나뭇가지보다 높은 곳에서 생활하거나 일하는 것이 선호되는데, 그녀는 런던에서 가장 크고 가장 오래된 나무를 내다볼수 있었다. 1950년대에 광고회사인 J. 월터 톰슨J. Walter Thompson에서 미술품 구매 담당자로 있는 동안 다나트는 버클리 스퀘어에서 나뭇잎과 나뭇가지가 보이는 높이의 사무실에서 근무했다. 당시 빅터 파스모어VictorPasmore나 앤터니 암스트롱존스Antony Armstrong-Jones 같은 전도유망한젊은 미술가들이 다나트에게 그들의 포트폴리오를 보여줬다. 다나트는피츠로이 스퀘어가 내려다보이는 강둑 위, 지금의 캐논베리에 자리를 잡았다. 그녀의 정원 담장 안에는 철학자이자 정원사였던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이 심은 엘리자베스 뽕나무가 서 있다.

르네 마그리트는 친구이자 동료인 초현실주의자 앙드레 브르통André Bre-ton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지금 나무에서 특별히 나무에 속하지만 나무에 대한 우리의 지각을 거스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으려 하고 있네." 이 벨기에의 화가가 그 해답을 찾자마자 거대한 잎으로표현된 나무는 그가 평생 다루는 주제가 되었다. 1930년대 중반 이 주제를 처음으로 반복해서 다룬 연작은 ‘거인La Géante‘이었는데, 마그리트 특유의 솜털 같은 구름이 떠 있는 밝고 파란 하늘이 특징적이다. 나무의 몸통은 줄기가 되고 거대한 잎의 잎맥은 생기를 공급한다. 〈절대자를 찾아서〉에서 뼈대만 있는 나뭇잎 모양의 나무는 겨울의 여명을 증언한다. 묘한흰색 공조차 삭막함을 누그러뜨리지 못한다. 참고로 이 작품은 1940년 말에 그려졌는데 그해 봄부터 벨기에 브뤼셀은 독일에 점령되었다.
마그리트는 정식으로 초현실주의자가 되기 전 몇 년 동안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했다. 그의 직접적이고 포스터와 같은 양식은 익숙한 것을 전복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나뭇잎 모양의 나무는 나뭇잎과 나무의 본질이긴 하지만 둘 중 어느 것도 아니면서 두 가지 모두이기도 하다. 마그리트가명료하게 표현한 대로 "초현실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데자뷔의 개념을 제거하고 아직 보지 못한 것을 찾는 것이다."

애니 오벤든의 나무는 그녀가 나무에 일평생 기울인 애정을 드러낸다. 그너는 자신이 살고 있는 콘월 지방의 오래된 숲을 거닐곤 하는데 정작 그녀의 눈이 머무는 곳은 다듬어진 풍경 속의 키 크고 나약한 나무들이다. 겨울의 화창한 빛은 그녀를 바깥으로 이끈다. 나뭇가지의 선명한 윤곽선은맑고 차가운 하늘과 대비되어 나그네나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들이나 의식할 수 있는 겨울의 매력을 더해준다.
오벤든 작품의 제목은 간혹 원초적인 측면이 있지만 있는 그대로를설명한다. 〈염려 없게 거뒀네All is Safely Gathered In>(2010)는 농장에 있는한 무리의 너도밤나무를 보여준다. 잎이 반쯤 남은 윗부분은 바람에 흔들리고, 쿠션처럼 생긴 관목들이 나무 밑동을 보호하고 있다. 이 그림에는 보이지 않는 구름이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경작지 풍경의 지평선을 강조한다. 햇빛으로 불 밝힌 나무들은 가지치기를 하지 않는다면 수풀이 될것인데, 너도밤나무는 부지런히 번식하는 암수꽃을 모두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오벤든은 그림을 세세하게 계획하고 ‘터무니없이 작은 붓으로 완전하면서도 불완전한 그림을 그린다. 너도밤나무는 가장 늦게 잎을 떨어뜨리는 나무라 봄에도 서둘러서 초록 잎을 보여주지 않는다. 창백하고 헐벗은 이 나무는 추운 날에는 끝이 붉게 타는 듯 보인다.

초상화가로 유명한 존 싱어 사전트에게 ‘올리브 나무 화가‘라는 별칭이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양각색의 크기와 모양을 한 그의 올리브 나무들은 첼시에 있던 작업실 바깥 세상에 대한 사전트의 호기심을 드러낸다. 1905년, 세계주의 사상가였던 이 화가는 상점을 닫고 ‘얼굴’로부터 탈피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특히 상류층 사람들의 얼굴로부터 말이다. 그는 바로 매 여름을 알프스에서, 가을은 남부 유럽에서 몇 달씩 보내며 가족, 친구들과 함께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는 여행을 했다.
사전트는 1909년에 그리스의 섬 코르푸에서 알찬 6주를 보냈다. 이젤이나 책에 그려진 그림 속 유유자적 거니는 염소들은 그가 자신의 여행동반자들에게 선사했던 평온함을 보여준다. 사진의 영향을 받은 이 그림의 크롭(사진이나 그림의 일부를 잘라내는) 방식은 다음해 그려진 〈올리브 나무金The Olive Grove〉에 등장하는 마을 노동자들의 구성에서도 볼 수 있는데,
이 작품은 그가 왕립아카데미를 위해 <알바니아의 올리브 따는 사람들Albanian Olive Pickers)을 제작하던 중 유화 물감으로 스케치한 것이다. 염소치기부터 평범한 동네 사람들, 그리고 민속의상을 입은 일용직 노동자들에 이르는 흐름 속에서 사전트는 풍경과 조화를 이루며 일하는 인류에대한 낭만을 고양시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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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는 영어에서 가장 거룩한 말이다.
우리는 죄를 지었는데도 불구하고 용서받았다.
우리는 증거가 부족한데도 불구하고 종교를 믿는다.
우리는 이웃들에게 결함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을 사랑한다.
우리는 필연적으로 죽음이 다가오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매일 아침 침대에서 일어난다. ‘그렇기 때문에‘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이에는 엄청난 틈이 있다.
그리고 그 틈이 바로 차갑고 이성적인 삶과 믿음의 삶을 갈라놓는다

수백 년이 흐르는 동안 프란체스코회의 청빈 서약은 슬그머니 사라졌다. 이 수도원이 속한 수도회는 역사가 이제 겨우 25년밖에 안되지만 그것을 바로잡으려고 열심히 애쓰는 중이다. 여기 수도사들은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다. 개인 은행계좌도 신용카드도 휴대전화도 없다. 그들의 선언문에 따르면, "단순히 즐거움과 오락을 위해제조된 대중적인 전기 기구들도 소유할 수 없다. 침대도 없다. 그들은 바닥에서 잔다. 인터넷도 텔레비전도 식기세척기도 에어컨도 없다. 이 모든 것들은 우리와 하느님 사이를 막는 장애물이라는 것이프란체스코회의 믿음이다.
71우리가 가진 것을 모두 제거해버리면, 우리는 과연 무엇인가? 데르비시 피에터가 말했듯이, 이것은 모든 종교가 해답을 내놓으려고애쓰는 기본적인 의문이다. 만약 우리가 어느 날 아침 갑자기 모든것, 그러니까 직장, 집, 돈, 평판, 사랑하는 사람들을 몽땅 잃어버린다면, 그대로 쓰러져 죽어버릴까, 아니면 계속 살아갈까? 그럴 때 무엇이 우리를 지탱해줄까? 프란체스코회는 이 질문을 머릿속으로 생각하기만 하지 않고, 생활 속에서 직접 체험한다.

메주고리예는 숨이 막힐 만큼 아름다운 곳이었지만, 그는 하루라도 빨리 로마에 가고 싶어서 안달했다. 보스니아에 도착한 둘째 날,
아침미사 중에 지루해진 루이스는 시간을 죽이기 위해 엉뚱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난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만약 마리아가 내 어머다고 하느님이 내 아버지라면, 그리고 만약 마리아가 예수님의 어머니고 하느님이 또한 아버지라면, 예수님을 내 형제로 생각해도 되는건가? 방금 말했듯이, 이건 그냥 머리로 해본 생각이었습니다." 루이스는 꼬박 6초 동안 이 의문을 생각했고, 그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나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을 워낙 오랫동안해왔기 때문에 내 내면이 사생활을 침해당했다고 불만을 제기하지않는 것이 놀라울 정도다. 그만 좀 들여다봐, 이 변태야.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는 반드시 머리가 먼저 맑아져야 한다는 생각에 행동을 미루고 머뭇거린 적이 많았다. 하지만 머리가 맑아지는 순간이 결코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이제 알겠다. 그동안 나는 너무나 많은경험을 잃어버렸다. 그 경험들이 내가 그토록 필사적으로 원하는,
머리가 맑은 상태를 만들어주었을지도 모르는데, 행동은 믿음에 선행한다. "일단 해봐(Jus Do It)"라는 말은 그저 영리한 광고 카피가 아니t
다. 이건 철학이다.
나는 감사에 대해 묻는다. 쉼터 사람들이 고마워하나요? 꼭 그렇지는 않아요. 수도사들이 감사 인사를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한 수도사는 수도원에 오기 전에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행위에 대해 몹시낭만적인 생각을 품고 있었다고 말한다. 그는 볼리비아의 산속에서자신에게 고마워하는 온순한 주민들을 돕는 상상을 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상상일 뿐이었다. "여기서 경험한 것은 달랐어요. 가끔 고맙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배은망덕하게 구는 사람도 많고 이런도움을 받는 게 당연한 일인 것처럼 생각하는 분위기도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그게 힘들어요. 자기는 남을 사랑하려고 열심히 애쓰는데, 정작 상대방은 사랑받는 걸 원하지 않는 셈이니까요."나라면미쳐버릴 것 같다. 이 사람들이 어떻게 버텨내는지 모르겠다.

심리학자인 차나 울면이 개종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기념비적인 연구가 약간의 단서를 제공해준다.
울면은 개종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이 아니라 경험임을 밝혀냈다. 개종자들은 새로운 교리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형태의 "정서적 안도감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라엘교도들은 망상에 빠졌든아니든 커다란 안도감을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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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나무의 가지는 큰 눈이 내려 얼어붙어도 상처받지 않는다.
눈이 녹으면 가지들은 다시 새로운 싹을 틔운다.

내시는 같은 해 말 서부 전선으로 복귀했는데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검은색의 죽어가는 나무들에서 분비물이 새어 나오고 물기가스며 나온다. 폭격이 쉬지 않고 이어진다." 비가 끊임없이 내렸고 진흙에서는 악취가 났다. 전쟁 전(그리고 후에 내시가 그린 영국 풍경은 은은하고부드러웠고, 나무는 신비롭고 항구적이며 온전한 형태로 보호되었다. 하지만 이 ‘새로운 세상‘에서 거대한 진흙 덩어리는 고인 웅덩이와 함께 전혀다른 종류의 언덕과 계곡을 펼쳐보였다. 미묘함은 이제 무색의 진흙으로바뀌었다. 태양조차 공상과학물에서나 볼 법한 모습인데, 이는 사막처럼보이는 구름을 가르고 빛을 비춘다. 가장 기이한 부분은 아래로 축 늘어진 나무로, 죽어가는 중에 엑스선 촬영을 한 듯 보이는데 절단되거나 두동강이 난 채 서 있는 시체들(죽은 나무)로 둘러싸여 있다. 어디에도 사람은없다. 사람들은 떠났고 파멸의 현장만이 남았다.

1930년대에 잡지 〈타임Time〉은 순수미술 중 세계에서 가장 널리 복제되는 작품이 반 고흐와 폴 세잔Paul Cézanne 그리고 맥스필드 패리시의 그림이라고 발표했다. 이 무렵 미국의 삽화가 패리시는 유명세를 얻는 데 큰 힘이 된 ‘바위 위의 소녀‘ 이미지를 그만 그리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가 그린어여쁜 소녀들을 맨해튼 길모퉁이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지만 그가 그린 아름다운 풍경은 한층 활기가 넘쳤다. 그가 소녀를 나무와 맞바꿨을때에도 인기가 여전했다는 사실은 놀랍다.
〈언덕배기》는 이 전환기에 그려진 작품으로 특별히 포스터로 기획되었다. 화가가 구사하는 특유의 색조는 라파엘전파(Pre-Raphaelite)의 영향을 받은 소녀들에서 초점을 옮겨 참나무를 ‘영웅’의 자리에 둔다. 패리시는 뉴햄프셔에 있는 자신의 집을 ‘참나무(The Oaks)’라고 이름 붙였는데잘 자란 나무들 사이에 자리 잡았으며 남쪽으로 애스커트니산을 향한정치가 펼쳐진 이 집은 그의 변함없는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특히 그의하얀 ‘참나무’는 암청색 하늘을 배경으로 나뭇잎이 짙어지고 낮게 드리워진 해가 풍경에 불을 밝히는 계절인 가을을 담은 작품에 반복해 등장패리시는 유리 슬라이드를 사용했고 슬라이드를 하드보드지에 투사했다. 사진처럼 세밀하게 묘사된 나뭇잎과 나무껍질에 채색된 물감 층은 모두 광택제로 처리되어 뛰어난 반짝임을 보여준다.

극적으로 저무는 해가 생기를 불어넣는 클레어 캔식의 검푸른 숲 그림은감정적인 측면에서 보자! 전적으로 사실적이다. 노퍽은 그녀가 평생 알고 지낸 풍경이지만 그림에 사용한 매체는 신선했다. 미술을 독학한 화가인 캔식이 유화 물감을 사용하는 모험을 한 것은 색채와 형태 그리고 유화 고유의 질감에 그녀가 매료되었음을 보여준다. 차분하게 가라앉는 물감의 조합은 매우 강렬한 색의 조합만큼이나 중요하다. 이것은 환영을 빚는 얼룩무늬 군복처럼 표면의 패턴을 통해 추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추상화가 아니다. 주위에 사람들이 존재한다. 높이 솟은 전나무의 시점은 화가에게 작품 속 상황을 알려준다. 앞을 향해다가오는 자동차 헤드라이트 뒤에 숨은 이야기는 불가사의한 내용일 수도, 누군가가 다른 곳으로 가는 도중에 날이 저물고 있다는 평범한 내용일 수도 있다. 캔식은 그림을 그리는 전 과정에 걸쳐 초기 단계에 그린 드로잉을 바탕으로 상상력을 펼친다. 그녀는 최근 사건에서 비롯된 이미지도 활용하기 시작했는데, 연기가 타오르는 어두운 아마존 정글의 한 부분을 그리기도 했다(108~109쪽).
또한 캔식은 나무파(Arborealist)로 알려진, 나무에 집중하는 미술가그룹의 일원이다. 이들은 20세기 초 런던에서 활동한 독립적인 미술 집단에서 일부 영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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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향한 우리의 작업은 점점 대담해졌다. 때로는 열광적인 수준에 이르기도 한다. 미국은 영적으로 상대를 가리지 않는 나라다. 미국인 세 명 중 거의 한 명이 도중에 종교를 바꾼다. 최근의 조사에 의하면 그렇다.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우리는 선택의 자유를 숭상하는 사람들이니까. 선택권은 자유를 뜻하고 좋은 것이다. 선거를 통해 정치가도 선택할 수 있고, 전화 요금제도 선택할 수 있고, 치약도 선택할 수 있는데, 신만 안 된다는 법은 없지 않은가.

나도 심장에, 이 죽어버린 물건에 한 손을 얹어보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라디오를 틀었는데 침묵만이 계속 흐르는 것과 같다. 내 옆의 이 여자에게는 틀림없이 라디오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나는 왜 그 주파수를 찾아내지 못하는 걸까? 잘 알려지지 않은 자이나교의 신자인 독일 여자가 예전에 내게 해준 말이 기억난다.
"당신이 정말로 필사적인 상태가 되면 당신의 신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도대체 얼마나 더 필사적이 되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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