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나무의 가지는 큰 눈이 내려 얼어붙어도 상처받지 않는다.
눈이 녹으면 가지들은 다시 새로운 싹을 틔운다.

내시는 같은 해 말 서부 전선으로 복귀했는데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검은색의 죽어가는 나무들에서 분비물이 새어 나오고 물기가스며 나온다. 폭격이 쉬지 않고 이어진다." 비가 끊임없이 내렸고 진흙에서는 악취가 났다. 전쟁 전(그리고 후에 내시가 그린 영국 풍경은 은은하고부드러웠고, 나무는 신비롭고 항구적이며 온전한 형태로 보호되었다. 하지만 이 ‘새로운 세상‘에서 거대한 진흙 덩어리는 고인 웅덩이와 함께 전혀다른 종류의 언덕과 계곡을 펼쳐보였다. 미묘함은 이제 무색의 진흙으로바뀌었다. 태양조차 공상과학물에서나 볼 법한 모습인데, 이는 사막처럼보이는 구름을 가르고 빛을 비춘다. 가장 기이한 부분은 아래로 축 늘어진 나무로, 죽어가는 중에 엑스선 촬영을 한 듯 보이는데 절단되거나 두동강이 난 채 서 있는 시체들(죽은 나무)로 둘러싸여 있다. 어디에도 사람은없다. 사람들은 떠났고 파멸의 현장만이 남았다.

1930년대에 잡지 〈타임Time〉은 순수미술 중 세계에서 가장 널리 복제되는 작품이 반 고흐와 폴 세잔Paul Cézanne 그리고 맥스필드 패리시의 그림이라고 발표했다. 이 무렵 미국의 삽화가 패리시는 유명세를 얻는 데 큰 힘이 된 ‘바위 위의 소녀‘ 이미지를 그만 그리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가 그린어여쁜 소녀들을 맨해튼 길모퉁이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지만 그가 그린 아름다운 풍경은 한층 활기가 넘쳤다. 그가 소녀를 나무와 맞바꿨을때에도 인기가 여전했다는 사실은 놀랍다.
〈언덕배기》는 이 전환기에 그려진 작품으로 특별히 포스터로 기획되었다. 화가가 구사하는 특유의 색조는 라파엘전파(Pre-Raphaelite)의 영향을 받은 소녀들에서 초점을 옮겨 참나무를 ‘영웅’의 자리에 둔다. 패리시는 뉴햄프셔에 있는 자신의 집을 ‘참나무(The Oaks)’라고 이름 붙였는데잘 자란 나무들 사이에 자리 잡았으며 남쪽으로 애스커트니산을 향한정치가 펼쳐진 이 집은 그의 변함없는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특히 그의하얀 ‘참나무’는 암청색 하늘을 배경으로 나뭇잎이 짙어지고 낮게 드리워진 해가 풍경에 불을 밝히는 계절인 가을을 담은 작품에 반복해 등장패리시는 유리 슬라이드를 사용했고 슬라이드를 하드보드지에 투사했다. 사진처럼 세밀하게 묘사된 나뭇잎과 나무껍질에 채색된 물감 층은 모두 광택제로 처리되어 뛰어난 반짝임을 보여준다.

극적으로 저무는 해가 생기를 불어넣는 클레어 캔식의 검푸른 숲 그림은감정적인 측면에서 보자! 전적으로 사실적이다. 노퍽은 그녀가 평생 알고 지낸 풍경이지만 그림에 사용한 매체는 신선했다. 미술을 독학한 화가인 캔식이 유화 물감을 사용하는 모험을 한 것은 색채와 형태 그리고 유화 고유의 질감에 그녀가 매료되었음을 보여준다. 차분하게 가라앉는 물감의 조합은 매우 강렬한 색의 조합만큼이나 중요하다. 이것은 환영을 빚는 얼룩무늬 군복처럼 표면의 패턴을 통해 추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추상화가 아니다. 주위에 사람들이 존재한다. 높이 솟은 전나무의 시점은 화가에게 작품 속 상황을 알려준다. 앞을 향해다가오는 자동차 헤드라이트 뒤에 숨은 이야기는 불가사의한 내용일 수도, 누군가가 다른 곳으로 가는 도중에 날이 저물고 있다는 평범한 내용일 수도 있다. 캔식은 그림을 그리는 전 과정에 걸쳐 초기 단계에 그린 드로잉을 바탕으로 상상력을 펼친다. 그녀는 최근 사건에서 비롯된 이미지도 활용하기 시작했는데, 연기가 타오르는 어두운 아마존 정글의 한 부분을 그리기도 했다(108~109쪽).
또한 캔식은 나무파(Arborealist)로 알려진, 나무에 집중하는 미술가그룹의 일원이다. 이들은 20세기 초 런던에서 활동한 독립적인 미술 집단에서 일부 영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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