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네의 포플러 나무 그림은 앞서 그린 건초 더미와 마찬가지로 정지 상태의 대상이 비치는 빛의 변화와 그 인상을 기록한 작업 이력에서 핵심적인동기가 되었다. 물론 나무는 무생물이 아니다. 모네가 이 그림들을 그리는동안 가지는 산들바람에 흔들리고 이파리는 여름과 가을을 거치며 색이바뀐다. 그 어떤 것도 영구적이지 않다.
포플러 나무는 가구 제작을 위한 값나가는 목재로 만들기 위해 반듯하게 줄지어 재배되었다. 모네는 센 강 지류를 떠다니는 배를 작업실 삼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후 이 나무들이 이미 경매에 나온 것을 알게 되었다. 거래가 성사되었고 구매한 사람은 모네가 작업을 마치자마자 나무들을 베었다. 8개월이 넘는 동안 모네는 비와 날씨에 따라 시시각각 바뀌는 나무의 인상을 담은 수십 점의 작품을 그렸다. 포플러 나무는 격자처럼 화폭을 채우면서 강의 굽이를 따라 서 있다. 어느 가을날 오후 나무의강렬한 색이 수면에 반사되었다. 모네는 보색의 물감을 맞붙여 짧은 붓질로 채색했고 나무들은 화면 위에서 빛으로 일렁였다.
주제가 있는 모네의 그림은 비평가와 대중 모두로부터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다. 모네는 건초 더미와 포플러 나무를 그린 작품을 판매한 돈으로 지베르니의 오래된 사과주 짜는 집을 살 수 있었는데, 그곳에서 남은반평생을 보내며 당시로서는 혁신적이었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큰 영향을 미치는 작품들을 그렸다.

1930년대에 잡지 〈타임Time〉은 순수미술 중 세계에서 가장 널리 복제되는 작품이 반 고흐와 폴 세잔Paul Cézanne 그리고 맥스필드 패리시의 그림이라고 발표했다. 이 무렵 미국의 삽화가 패리시는 유명세를 얻는 데큰 힘이 된 ‘바위 위의 소녀’ 이미지를 그만 그리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가 그린어여쁜 소녀들을 맨해튼 길모퉁이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지만 그가 그린 아름다운 풍경은 한층 활기가 넘쳤다. 그가 소녀를 나무와 맞바꿨을때에도 인기가 여전했다는 사실은 놀랍다.
〈언덕배기〉는 이 전환기에 그려진 작품으로 특별히 포스터로 기획되었다. 화가가 구사하는 특유의 색조는 라파엘전파(Pre-Raphaelite)의 영향을 받은 소녀들에서 초점을 옮겨 참나무를 ‘영웅’의 자리에 둔다. 패리시는 뉴햄프셔에 있는 자신의 집을 ‘참나무(The Oaks)’라고 이름 붙였는데잘 자란 나무들 사이에 자리 잡았으며 남쪽으로 애스커트니산을 향한경치가 펼쳐진 이 집은 그의 변함없는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특히 그의하얀 ‘참나무’는 암청색 하늘을 배경으로 나뭇잎이 짙어지고 낮게 드리워진 해가 풍경에 불을 밝히는 계절인 가을을 담은 작품에 반복해 등장한다.
패리시는 유리 슬라이드를 사용했고 슬라이드를 하드보드지에 투사했다. 사진처럼 세밀하게 묘사된 나뭇잎과 나무껍질에 채색된 물감 층은 모두 광택제로 처리되어 뛰어난 반짝임을 보여준다.

극적으로 개무는 해가 생기를 불어넣는 클레어 캔식의 검푸른 숲 그림은감정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전적으로 사실적이다. 노퍽은 그녀가 평생 알고 지낸 풍경이지만 그림에 사용한 매체는 신선했다. 미술을 독학한 화가인 캔식이 유화 물감을 사용하는 모험을 한 것은 색채와 형태 그리고 유화 고유의 질감에 그녀가 매료되었음을 보여준다. 차분하게 가라앉는 물감의 조합은 매우 강렬한 색의 조합만큼이나 중요하다. 이것은 환영을 빚는 얼룩무늬 군복처럼 표면의 패턴을 통해 추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추상화가 아니다. 주위에 사람들이 존재한다. 높이 솟은 전나무의 시점은 화가에게 작품 속 상황을 알려준다. 앞을 향해다가오는 자동차 헤드라이트 뒤에 숨은 이야기는 불가사의한 내용일 수도, 누군가가 다른 곳으로 가는 도중에 날이 저물고 있다는 평범한 내용일 수도 있다. 캔식은 그림을 그리는 전 과정에 걸쳐 초기 단계에 그린 드로잉을 바탕으로 상상력을 펼친다. 그녀는 최근 사건에서 비롯된 이미지도 활용하기 시작했는데, 연기가 타오르는 어두운 아마존 정글의 한부분을 그리기도 했다(108~109쪽).
또한 캔식은 나무파(Arborealist)로 알려진, 나무에 집중하는 미술가그룹의 일원이다. 이들은 20세기 초 런던에서 활동한 독립적인 미술 집단에서 일부 영향을 받았다.

화가이자 만화가인 조앤 다나트는 겨울날 작업실에서 나무를 바라보기는 했지만 〈겨울나무〉는 상상력을 발휘해 제작했다. 이 작품은 감자를 파서 만든 판화 이래 가장 민주적인 판화 형식인 드라이 포인트 기법으로 제작된 동판화다. 필요한 것은 유리판 한 장이 전부다(또는 표면에 잉크를 바를수 있는 한 장의 판이면 족하다). 판면에 종이를 얹고 펜이나 연필로 선을 새긴다. 선을 새긴 부분에는 잉크가 고이면서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은 섬세한효과가 나타나는데, 이는 자연의 가치를 아는 누군가의 정원같은 인상을불러일으킨다.
다나트의 판화에는 나무를 응시하며 보낸 90년 세월이 담겨 있다.
녹음이 우거진 런던에서 나고 자란 다나트에게 결코 소재가 부족했던 적은 없었다. 도시에서는 나뭇가지보다 높은 곳에서 생활하거나 일하는 것이 선호되는데, 그녀는 런던에서 가장 크고 가장 오래된 나무를 내다볼수 있었다. 1950년대에 광고회사인 J. 월터 톰슨J. Walter Thompson에서 미술품 구매 담당자로 있는 동안 다나트는 버클리 스퀘어에서 나뭇잎과 나뭇가지가 보이는 높이의 사무실에서 근무했다. 당시 빅터 파스모어VictorPasmore나 앤터니 암스트롱존스Antony Armstrong-Jones 같은 전도유망한젊은 미술가들이 다나트에게 그들의 포트폴리오를 보여줬다. 다나트는피츠로이 스퀘어가 내려다보이는 강둑 위, 지금의 캐논베리에 자리를 잡았다. 그녀의 정원 담장 안에는 철학자이자 정원사였던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이 심은 엘리자베스 뽕나무가 서 있다.

르네 마그리트는 친구이자 동료인 초현실주의자 앙드레 브르통André Bre-ton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지금 나무에서 특별히 나무에 속하지만 나무에 대한 우리의 지각을 거스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으려 하고 있네." 이 벨기에의 화가가 그 해답을 찾자마자 거대한 잎으로표현된 나무는 그가 평생 다루는 주제가 되었다. 1930년대 중반 이 주제를 처음으로 반복해서 다룬 연작은 ‘거인La Géante‘이었는데, 마그리트 특유의 솜털 같은 구름이 떠 있는 밝고 파란 하늘이 특징적이다. 나무의 몸통은 줄기가 되고 거대한 잎의 잎맥은 생기를 공급한다. 〈절대자를 찾아서〉에서 뼈대만 있는 나뭇잎 모양의 나무는 겨울의 여명을 증언한다. 묘한흰색 공조차 삭막함을 누그러뜨리지 못한다. 참고로 이 작품은 1940년 말에 그려졌는데 그해 봄부터 벨기에 브뤼셀은 독일에 점령되었다.
마그리트는 정식으로 초현실주의자가 되기 전 몇 년 동안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했다. 그의 직접적이고 포스터와 같은 양식은 익숙한 것을 전복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나뭇잎 모양의 나무는 나뭇잎과 나무의 본질이긴 하지만 둘 중 어느 것도 아니면서 두 가지 모두이기도 하다. 마그리트가명료하게 표현한 대로 "초현실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데자뷔의 개념을 제거하고 아직 보지 못한 것을 찾는 것이다."

애니 오벤든의 나무는 그녀가 나무에 일평생 기울인 애정을 드러낸다. 그너는 자신이 살고 있는 콘월 지방의 오래된 숲을 거닐곤 하는데 정작 그녀의 눈이 머무는 곳은 다듬어진 풍경 속의 키 크고 나약한 나무들이다. 겨울의 화창한 빛은 그녀를 바깥으로 이끈다. 나뭇가지의 선명한 윤곽선은맑고 차가운 하늘과 대비되어 나그네나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들이나 의식할 수 있는 겨울의 매력을 더해준다.
오벤든 작품의 제목은 간혹 원초적인 측면이 있지만 있는 그대로를설명한다. 〈염려 없게 거뒀네All is Safely Gathered In>(2010)는 농장에 있는한 무리의 너도밤나무를 보여준다. 잎이 반쯤 남은 윗부분은 바람에 흔들리고, 쿠션처럼 생긴 관목들이 나무 밑동을 보호하고 있다. 이 그림에는 보이지 않는 구름이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경작지 풍경의 지평선을 강조한다. 햇빛으로 불 밝힌 나무들은 가지치기를 하지 않는다면 수풀이 될것인데, 너도밤나무는 부지런히 번식하는 암수꽃을 모두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오벤든은 그림을 세세하게 계획하고 ‘터무니없이 작은 붓으로 완전하면서도 불완전한 그림을 그린다. 너도밤나무는 가장 늦게 잎을 떨어뜨리는 나무라 봄에도 서둘러서 초록 잎을 보여주지 않는다. 창백하고 헐벗은 이 나무는 추운 날에는 끝이 붉게 타는 듯 보인다.

초상화가로 유명한 존 싱어 사전트에게 ‘올리브 나무 화가‘라는 별칭이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양각색의 크기와 모양을 한 그의 올리브 나무들은 첼시에 있던 작업실 바깥 세상에 대한 사전트의 호기심을 드러낸다. 1905년, 세계주의 사상가였던 이 화가는 상점을 닫고 ‘얼굴’로부터 탈피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특히 상류층 사람들의 얼굴로부터 말이다. 그는 바로 매 여름을 알프스에서, 가을은 남부 유럽에서 몇 달씩 보내며 가족, 친구들과 함께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는 여행을 했다.
사전트는 1909년에 그리스의 섬 코르푸에서 알찬 6주를 보냈다. 이젤이나 책에 그려진 그림 속 유유자적 거니는 염소들은 그가 자신의 여행동반자들에게 선사했던 평온함을 보여준다. 사진의 영향을 받은 이 그림의 크롭(사진이나 그림의 일부를 잘라내는) 방식은 다음해 그려진 〈올리브 나무金The Olive Grove〉에 등장하는 마을 노동자들의 구성에서도 볼 수 있는데,
이 작품은 그가 왕립아카데미를 위해 <알바니아의 올리브 따는 사람들Albanian Olive Pickers)을 제작하던 중 유화 물감으로 스케치한 것이다. 염소치기부터 평범한 동네 사람들, 그리고 민속의상을 입은 일용직 노동자들에 이르는 흐름 속에서 사전트는 풍경과 조화를 이루며 일하는 인류에대한 낭만을 고양시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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