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오는 전쟁에서도 승리했다. 또한 그는 반란 세력을 진압했다.
"신전에 손실을 입히고 파라오와 그 아버지의 방식을 내버린 자들이었다. 그런 뒤에 훌륭하게도 "그들에게 말뚝에 꽂아 죽이는 형벌을 내렸다."
줄줄이 칭찬 세례였다. 번역자들은 걱정이 많아졌다. 그들이 바랐던 것은 ‘여기에 각기 다른 문자들과 각기 다른 언어들로 된 놀라운포고문이 있다!‘ 같은 대담한 주장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과장과 허풍만을 발견했다. 한 구절 한 구절 의미가 드러나고 있었지만 성과는없었다. 이 모든 자랑과 과시는 돌의 다른 새김글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이집트에서 이 성공한 호사가는 계속해서 위험을 무릅쓰고 서방사람들이 보기에 새로운 광경을 기록했다. 고참 병사들조차도 그가말을 타고 스케치하는 용감한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그의 화판은 안장 위에서 균형을 이루었고, 사방에서 쏟아지는 총알을 아랑곳하지않았다. (그는 프랑스로 돌아온 직후인 1802년 그림으로 가득 찬 두꺼운 책을출판하게 된다. 엄청난 인기를 모은 그의 <상·하 이집트 여행 Voyage dans la Basseet la Haunce Egypte》은 유럽인들에게 처음으로 이집트의 경이를 엿볼 수 있게 했다.)드농은 도처에서 나폴레옹을 격찬하곤 했지만, 전쟁의 공포를 낭만화하진 않았다.

그는 언젠가 이 비문들이 의미를 드러낼 것이라고 믿으며 꼼꼼하게 모사해나갔다. 자신이 그 수수께끼를 풀어낼 사람이라는 생각은전혀 하지 않았다. "나는 열정적인 믿음과 맹목적인 열의를 가졌지만 그건 사실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의 언어에 대해 기도하고믿고 경모하던 옛날의 신녀에나 비길 만한 것이다."

로제타석 발견으로 다소 지체되었지만 연구자들은 자신들의 강제유배라는 상황을 최대한 활용해 하던 일을 계속했다. 거의 즉각 그들은 감질나는 발견물 두 가지를 얻었다. 11799년 가을 나일강 삼각주 미누프라는 마을에서 두 젊은 기술자가 로제타석과 마찬가지로 여러 문자로 비문이 적힌 또 다른 돌을 발견했다. 높이 30센티미터, 길이 90센티미터의 검은 화강암 석판이었다. 이것은 평범한 민가 앞에 놓여 있었고, 집 주인은 그것을 벤치로이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심하게 마멸되어 있었고, 연구자들은 자기네가 알아볼 수 있는 몇 마디 (그리스어로 "젊은 왕의 ・・・ 언제나")만을 베낀 뒤 이동했다.

역설적이게도 그릇된 출발과 깨진 희망의 시기와 맞물려 이집트의모든 것에 대한 열광의 물결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좌절에 빠진 학자들의 샐쭉함은 그 물결을 저지할 수 없었다. 건축, 패션, 심지어 머리모양까지도 새로운 열풍에 따라 변모했다. 한 영국 작가는 1807년이렇게 불평했다.

그는 허드슨 거니라는 친구에게 이렇게 썼다. 두 사람은 소년 시절부터 가까운 사이였고, 영은 다른 누구보다도 거니와 더 격의 없이친밀한 사이였다. 분명히 거니가 이 문제를 과장했겠지?
나는 반대로 그것이 이미 해결되지 않았다는 게 놀랍네..
영은 이집트 문자들을 조사하는 것으로 일을 시작했다. 패턴을 찾기 위해서였다. 선행 연구자들처럼 그도 성체자가 아니라 속체자 문서를 우선 집어 들었다. 선행 연구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처음부터실패가 예정된 선택을 한 것이다.

이것은 불확실한 작업이었다. 이집트 문법이 어떤 모습인지 알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 문장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들이 맨 앞이나끝에 올 수도 있고, 어순이 보다 비밀스런 어떤 규칙을 따를 수도 있었다. 이 모든 것은 성체자 문서의 상당 부분이 떨어져 나갔기 때문이 더욱 좋지 않았다. 실험은 끝없이 할 수 있었지만, 보장되는 것은아무것도 없었다.

영은 희미한 글자를 아주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손으로 모사하는 것이 어떻든 자신의 기억을 자극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이렇게 썼다.
쓰인 글의 훼손된 구절을 바로잡는 습관이 들지 않은 사람들은, 손이그것을 따라가는 동안 모든 글자의 복잡한 이동으로 인해 부지불식간이 얻어지는 막대한 이점을 획득할 수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으로 영은 개념상의 약진을 했다. 로제타석의
‘‘프톨레마이오스‘를 해독하면서 그는 성체자가 때로 소리를 나타낸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그 간단한 진술은 엄청난 함의를 지니고 있었다. 성체자가 소리를 나타낸다면 그것은 생각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1500년 동안 모든 권위자들은 문제를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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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이 이집트를 침공한 배경에는 보다 간단한 동기가 있었다. 알렉산드로스 3세와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이집트를 정복했으니자신도 같은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학자와 예술가 무리를함께 데리고 갔다. 그들의 임무는 이집트를 연구하고 거기에 프랑스문명의 축복을 내리는 것이었다. 그들이 본 경이로운 것들에 대한 숨가쁜 기록은 이집트광狂 Egyptomania 으로 불리게 되는 열광을 자극하게된다.
유럽인들에게 이집트는 클레오파트라의 아름다움과 피라미드의 장엄함과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뒤섞어놓은 어떤 것이었다. 여기에 덜덜 떨리는 공포의 기미가 가미되어 흥분을 고조시킨다. 바로 미라다.

그러나 성체자를 경멸적으로 바라본 사람은 거의 없었다. 신전 벽과 오벨리스크에 새겨진 그것들은 깊숙한 곳에 있는 자연의 핵심을슬쩍 비춰주는 것으로 환호를 받았다. 현대 사회에서 이에 해당하는것은 상하이와 시카고의 물리학자들이 같은 방식으로 쓴 그리고 이해한) e=mc 같은 진실들일 것이다. 거의 2천 년 동안 유럽의 학자들은 고대 이집트 성직자들을, 오늘날 우리가 과학자를 생각하듯이 생각했다. ‘이 현인들은 암호를 만들었다. 그것을 아는 사람들에게는결정적인 통찰을 제공하고, 그 비밀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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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진짜 문제는 계속 마음에 걸리는 구식 문제, 즉 믿음의 문제다. 나는 고만고만한 여러 신들이 내게 말을 걸거나 나 대신 끼어드는 모습을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 이 많은 신들의 존재를 (내 왼손새끼손가락이나 노트북컴퓨터의 존재를 믿듯이) 내가 믿지 않는다는 것이차가운 현실이다. 그래서 믿을 수 없는 마음을 잠시 접어두고 이 신들을 마음으로 불러내는 행동을 할 수 없다. 어쩌면 이건 내가 제이미를 비롯한 여러 마녀들보다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로 이 때문에 내 우울증이 더 깊어지는 건지도 모른다.

우리는 샤먼들에게 자연스럽게 ‘미쳤다는 꼬리표를 붙인다.
과연 이것이 올바른 판단인가? 정신이 멀쩡한 스위스의 정신분석학자였던 카를 융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로지 물리적 존재만 가능하다고 가정하는 것은 거의 웃음이 나올 만큼 우스꽝스러운 편견이다.
사실 우리가 가장 가깝게 알고 있는 유일한 존재 양식은 정신적인 것이다."

샤먼은 자연을 사랑한다. 성 프란체스코의 전통을 따르는 셈이다.
그들은 자연계를 자신과 동등한 존재, 가족으로 본다. 샤먼은 동물들을 가엾게 여기지 않고, 그들의 우월한 지혜를 끌어다 쓰는 것을목표로 삼는다. 샤먼의 또 다른 특징은 작업 속도가 빠르다는 것이다. 샤머니즘은 사람들(나도?)이 "침묵의 명상으로는 몇 년이나 걸릴수도 있는 경험을 몇 시간 만에 할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영적인 지름길을 약속해준다. 인류학자였다가 샤먼으로 변신한 마이클 하너의 말이다. 내게는 이 말이 한없이 매력적이다. 솔직히 지름길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샤먼들은 예전에 모든 인간이 갖고 있던 능력, 즉 동물의 영과 소통하는 능력에 자신이 다시 접촉하고 있다고 믿는다. 인간으로 변신할 수 있는 동물이나 원래 자신의 영역이 아닌 곳에서 돌아다닐 수있는 동물, 예를 들어 하늘을 나는 늑대 같은 동물은 특별히 강력한존재로 여겨진다. 여기서 중요한 것 하나. 샤먼은 늑대를 흉내 내거나 늑대에게 빙의된 것이 아니라 늑대 그 자체다.

조지프 캠벨은 말한다. 소용없다고 우리는 자신이 타고난 신화에서 결코 완전히 도망치지 못하며,
도망쳐서도 안 된다고 어렸을 때 머릿속에 자리 잡은 신화에 매달리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것은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는 어차피 그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신화를 유창한 웅변으로 해석해내야 한다....….
그 신화의 노래를 듣는 법을 배워야 한다."

곧유대교의 수많은 아이러니 중 하나는 휴식일 직전의 몇 시간 동안 사람들이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날이 잠잠해지기전의 폭풍 같다고나 할까. 트즈파트 시내도 활동적인 에너지로 터질듯하다. 눈보라가 몰려오기 전의 워싱턴 같다. 모두들 정해진 시간이 급속히 다가오고 있다는 점 때문에 압박을 느끼며 물건을 사 모은다. 트즈파트는 움직이고 있지만, 그 움직임은 임의적인 것이 아니다. 모두들 같은 곳으로 향한다. 아니, 같은 시간이라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안식일은 공간이 아니라 시간 속에 존재하니까. 나도 움직인다. 나는 가게들이 문을 닫기 직전에 팔라펠 하나와 야르덴 포도주 한 병을 산다. 가게 주인들, 낯선 사람들이 샤바트 샬롬, 즉즐거운 안식일이라는 인사말을 건네는 것이 좋다. 이 딱딱한 땅에서 맛보는 부드러움이다.

이제 나는 책을 사랑하는 내 마음을 존중해주는 길을 마침내 찾아냈다. 그런데도 여전히 길을 잃고 헤매는 기분이다. 그 기분이 그어느 때보다 더 심하다. 불교나 도교에서 실패를 맛보는 것과, 나자신의 신앙에서 실패를 맛보는 것은 완전히 차원이 다르다. 특히 내가 지금 정직하게 노력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이 지긋지긋한 암호 때문이다! 아람어를 히브리어로 번역하고, 그것을 다시 영어로 번역한 글. 게다가 이 글은 처음부터 일부러 속기 쉽게 만들어져 있다. 마치 전화로 배배 꼬인 장난을 치는 것 같다. 내게 장난 전화를 걸어온 상대방을 미친놈으로 무시해버릴 수만 있다면야 아무상관이 없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다. 모두 흥미로운 이야기인 건사실이다. 핵융합에 관한 이야기가 흥미로운 것처럼.

한편 나의 도쿄 경험에는 아직 속편이 없다. 나는 이미 속편에 대한 기대를 버렸다. 기대야말로 경험의 커다란 적이니까. 그래도 나는 계속 기다린다. 가끔 이쪽저쪽으로 조금씩 방향을 바꿔가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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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우리는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더 신경 쓰는 일이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꼭 그런 건 아니다. 종교를 진심으로 믿는 사람들은 남들보다 더 적은 일에 깊이 신경을 쓴다. 그리고 나머지 것들에 대해서는 아예 상관도 안 한다.
윌리엄 제임스의 말처럼. "현명해지는 기술은 곧 무심히 넘겨야 할 것을 알아내는 기술이다."

"에너지는 기쁨." 블레이크는 이렇게 썼다. 중국 시인이라면 절대그런 말을 쓰지 않을 것이다. 자명한 말이니까. 중국인들에게는 에너지가 곧 생명이다. 우리를 감싸고 살아 움직이게 하는 활기, 즐거운 에너지를 중국어로는 기라고 한다. 기가 없으면 우리는 아무것도아니다.
그런데 내게는 기의 문제가 있는 것 같다. 기가 부족한 것은 아니다. 머리가 정신없이 빙빙 돌아가고 심장이 벌렁거리는 것을 보면그건 확실하다. 문제는 기의 흐름이다. 어쩌면 나의 기가 막혀 있는건지도 모른다. 내가 평범한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만 간신히 하루를 살아낼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일 수 있다. 내가느끼는 피로는, 힘든 하루 일을 마친 뒤 또는 10킬로미터를 달린 뒤에 느끼는 만족스러운 피로가 아니다. 아주 오랫동안 제자리 뛰기만하는 사람이 느끼는,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했을 때의 피로에 가깝다. 막힌 나의 기를 뚫어줄 사람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중국식 배관공이라고나 할까.

LU우한의 어둠이 물러나고 곧 탁 트인 고속도로가 나온다. 모두들지쳐서 의자에 늘어져 있다. 하지만 솔랄라가 내게 가만가만 다가와서 이상한 소리를 한다. 산에 도착하면 우리가 ‘척추 비틀기’를 할 것이라고 왠지 마음에 안 드는 소리다. 솔랄라는 또한 우리가 침을 많이 삼킬 것(도교에서는 침을 ‘하늘의 음료‘라고 부른다)이라는 말도 한다.
이건 정말로 마음에 안 든다. 하지만 솔랄라가 우리가 삼키는 것은 우리 자신의 침이라며 나를 안심시킨다. 그는 ‘앉아서 잊어버리기’라는 도교 명상수련법에 대해서도 말해준다. 이 말은 마음에 든다. 사실 나는 대학 2학년 때 이런 수련을 한 적이 있는 것 같다. 비록 그때는 여기에 종교적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지만, 솔랄라는 이번수련은 그때와 다르다고 말한다. 좌망(坐忘)이라고 불리는 이 명상수련법은 세상에서 벗어나 "내면의 고요하고 빈 공간"을 찾는 것이다.

‘난 해답을 찾아다니는 게 아니에요. 그냥 경험을 바랄 뿐이에요."
나는 미끄러운 두부와 씨름하면서 이 말을 곰곰이 생각해본다. 동양 종교와 유대교-그리스도교를 구분 짓는 특징이 바로 이것이다.
믿음보다 경험을 강조하는 것. 도교,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 등은
‘무엇을 믿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이것은 서구의, 특히 그리스도교의 버릇이다. 동양의 특징은 행동, 경험, 결과다.
결국 우리의 화제가 기에 이른다. 불가피한 결과다. 아직 야광 정자는 전혀 보이지 않고, 나는 도대체 기가 뭔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기는 에너지예요. 전기와 거의 비슷하지만, 아주 똑같지는 않아
"아침에 마시는 맛 좋은 커피 한 잔 같은 건가요?"
"아뇨, 그런 게 아니에요."

도를 찾아 나선 이후 샌디는 자신의 삶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쳐냈다. 〈보그〉지 구독도 취소했다. 샌디 자신의 말처럼, 이제 어느 정도나이를 먹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이제는허영을 부추기는 그런 것들에 더 이상 마음이 가지 않는다. 샌디가전과는 달리 마음을 쏟지 않게 된 일들은 그밖에도 많다. 집을 깔끔하게 유지하는 것, 직장일 등등. 적어도 예전처럼 일에 집착하지는않는다. 전에는 근무평가를 잘 받는 것에 마치 목숨이라도 달린 것처럼 굴었다.
대개 우리는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신경 쓰는 일이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꼭 그런 건 아니다. 종교를 진심으로 믿는 사람들은 남들보다 더 적은 일에 깊이 신경을 쓴다. 그리고 나머지 것들에 대해서는 아예 상관도 안 한다. 윌리엄 제임스의 말처럼, "현명해지는 기술은 곧 무심히 넘겨야 할 것을 알아내는 기술이다." 샌디는 요즘 많은 것들을 무심히 넘겨버린다. 그 편이 결정을 내리는 데 더 편하다고 한다.

나는 《도덕경》을 휙 꺼내서 샌디가 좋아하는 61장을 읽는다. "여성은 양보하고 낮은 자리에 섬으로써 항상 남성을 정복할 수 있다."
노자의 말이 대부분 그렇듯이, 이 구절도 전통적인 지혜를 거꾸로뒤집어놓는다. 대개 우리는 양보를 부정적인 것, 약하다는 표시로생각한다. 적에게 한 치도 양보하지 말고 용감하게 싸워라. 네가 원하는 것, 네가 마땅히 누려야 하는 것을 쟁취해라. 나는 이런 마음가짐에 대해 노자가 뭐라고 할 것 같으냐고 샌디에게 묻는다.
"원하는 것을 이루는 방법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지않는 것이라고 하겠죠. 무위라고."
"그 방법이 효과가 있던가요?"
"네. 하지만 밀어붙여야 할 시점이 언제인지 알아야 해요. 철저히수동적인 자세만 취하라는 게 아니니까요. 그런데 언제 힘을 써야할지 그냥 알 수 있어요. 지금처럼요. 내가 일행과 떨어져 산에 올라가서 뭔가에 마음을 열고 나를 이끌어주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싶다고 했잖아요. 나는 여기에 뭔가 유용한 게 있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그게 얼마나 훌륭한 건지는 몰랐지만."
이것이 신호이기라도 한 것처럼 음식이 또 나온다. 물고기가 접시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우리는 접시에 달려들어 아무 말 없이 음식을 마구 먹어치운다. 이렇게 맛있는 생선은 먹어본 적이 없다는말을 할 때만 잠시 멈췄을 뿐이다.

비행기에서 나는 샌디를 생각한다. 샌디는 자신의 신을 찾은 것같다. 비록 이름 없는 신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샌디 자신은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을 것 같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뒤집어엎지도 않았고, 은자처럼 살지도 않고, 내가 아는 한 몸에 경전의 글귀를 문신으로 새기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도교가 샌디에게 자양분을 제공해주고 있다. 나로서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심오한 방식으로, 샌디가 보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샌디가 인심 좋게 넘겨준, 겉에 사탕물을 바른 마카다미아가 담긴 커다란 통이 이별의 아픔을 달래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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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재에서 자연은 기교와 만난다.
뿌리를 풀어주는 것은 자연을 되돌려주지만,
나무를 가둬 꼼짝 못하게 하는 것은자연을
다시 차단하는 것을 의미한다.

르네 마그리트는 친구이자 동료인 초현실주의자 앙드레 브르통André Bre-ton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지금 나무에서 특별히 나무에 속하지만 나무에 대한 우리의 지각을 거스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으려 하고 있네." 이 벨기에의 화가가 그 해답을 찾자마자 거대한 잎으로표현된 나무는 그가 평생 다루는 주제가 되었다. 1930년대 중반 이 주제를 처음으로 반복해서 다룬 연작은 ‘거인La Géante‘이었는데, 마그리트 특유의 솜털 같은 구름이 떠 있는 밝고 파란 하늘이 특징적이다. 나무의 몸통은 줄기가 되고 거대한 잎의 잎맥은 생기를 공급한다. 〈절대자를 찾아서〉에서 뼈대만 있는 나뭇잎 모양의 나무는 겨울의 여명을 증언한다. 묘한흰색 공조차 삭막함을 누그러뜨리지 못한다. 참고로 이 작품은 1940년 말에 그려졌는데 그해 봄부터 벨기에 브뤼셀은 독일에 점령되었다.
마그리트는 정식으로 초현실주의자가 되기 전 몇 년 동안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했다. 그의 직접적이고 포스터와 같은 양식은 익숙한 것을 전복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나뭇잎 모양의 나무는 나뭇잎과 나무의 본질이긴 하지만 둘 중 어느것도 아니면서 두 가지 모두이기도 하다. 마그리트가명료하게 표현한 대로 "초현실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데자뷔의 개념을 제거하고 아직 보지 못한 것을 찾는 것이다."

애니 오벤든의 나무는 그녀가 나무에 일평생 기울인 애정을 드러낸다. 그녀는 자신이 살고 있는 콘월 지방의 오래된 숲을 거닐곤 하는데 정작 그녀의 눈이 머무는 곳은 다듬어진 풍경 속의 키 크고 나약한 나무들이다. 겨울의 화창한 빛은 그녀를 바깥으로 이끈다. 나뭇가지의 선명한 윤곽선은맑고 차가운 하늘과 대비되어 나그네나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들이나 의식할 수 있는 겨울의 매력을 더해준다.
오벤든 작품의 제목은 간혹 원초적인 측면이 있지만 있는 그대로를설명한다. 〈염려 없게 거뒀네All is Safely Gathered In〉(2010)는 농장에 있는한 무리의 너도밤나무를 보여준다. 잎이 반쯤 남은 윗부분은 바람에 흔들리고, 쿠션처럼 생긴 관목들이 나무 밑동을 보호하고 있다. 이 그림에는 보이지 않는 구름이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경작지 풍경의 지평선을 강조한다. 햇빛으로 불 밝힌 나무들은 가지치기를 하지 않는다면 수풀이 될것인데, 너도밤나무는 부지런히 번식하는 암수꽃을 모두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오벤든은 그림을 세세하게 계획하고 ‘터무니없이 작은 붓으로 완전하면서도 불완전한 그림을 그린다. 너도밤나무는 가장 늦게 잎을 떨어뜨리는 나무라 봄에도 서둘러서 초록 잎을 보여주지 않는다. 창백하고 헐벗은 이 나무는 추운 날에는 끝이 붉게 타는 듯 보인다.

‘로런스의 앞마당에 있는 나무 아래, 테이블 위에 누워 바라본 나무’라고한 이 그림에 대한 오키프의 설명은 나름대로 간결하다. 이 나무는 ‘폰데rence.
‘로사 소나무‘로 불리는 거대한 소나무로서 소설가 D. H. 로런스D. H. Law-ce의 뉴멕시코 집 근처에 있었다. 로런스가 1920년대에 오래된 나무 벤치에 앉아 글을 쓰며 두 번의 여름을 보낸 곳이다. 그는 수관보다 월등하게 튼튼한 몸통을 지닌 나무가 자신을 지켜주는 수호천사라고 설명했다(폰데로사 소나무는 30미터가 넘게 자란다). 로런스는 글을 쓰는 데 작업대를 사용했지만 오키프는 작업대에 기대 나무 사이로 하늘을 바라보고자 했다.
〈로런스 나무〉는 오키프가 1929년 처음으로 뉴멕시코를 방문했을때 그린 그림으로 당시 오키프는 이미 잘 알려진 화가였다. 그녀는 로런스와 그의 아내 프리다가 소유한 타오스 목장에서 2개월 이상을 머물렀지만, 로런스는 이미 그곳을 떠난 상태였고 다음 해에 결핵으로 사망했다.
그는 뉴멕시코의 공기를 사랑했고, 뉴욕으로부터 피신 온 오키프에게는이곳의 하늘이 활력소가 되었다. 이 그림에서 그녀는 나무의 주요 기관을통해 밤하늘을 관찰한다. 검은 나뭇잎의 구름 속 동맥처럼 생긴 나뭇가지들은 생명의 피를 뿜어 올린다. 오키프의 의도대로 ‘거꾸로 서 있는’ 나무 그림을 보면 누워서 위를 바라보는 느낌이 더욱 고조된다. 이러한 이유로 코네티컷주 하트포드에 위치한 워즈워스 아테네움 미술관(WadsworthAtheneum Museum of Art)에는 이 그림이 거꾸로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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