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 우리는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더 신경 쓰는 일이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꼭 그런 건 아니다. 종교를 진심으로 믿는 사람들은 남들보다 더 적은 일에 깊이 신경을 쓴다. 그리고 나머지 것들에 대해서는 아예 상관도 안 한다.
윌리엄 제임스의 말처럼. "현명해지는 기술은 곧 무심히 넘겨야 할 것을 알아내는 기술이다."

"에너지는 기쁨." 블레이크는 이렇게 썼다. 중국 시인이라면 절대그런 말을 쓰지 않을 것이다. 자명한 말이니까. 중국인들에게는 에너지가 곧 생명이다. 우리를 감싸고 살아 움직이게 하는 활기, 즐거운 에너지를 중국어로는 기라고 한다. 기가 없으면 우리는 아무것도아니다.
그런데 내게는 기의 문제가 있는 것 같다. 기가 부족한 것은 아니다. 머리가 정신없이 빙빙 돌아가고 심장이 벌렁거리는 것을 보면그건 확실하다. 문제는 기의 흐름이다. 어쩌면 나의 기가 막혀 있는건지도 모른다. 내가 평범한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만 간신히 하루를 살아낼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일 수 있다. 내가느끼는 피로는, 힘든 하루 일을 마친 뒤 또는 10킬로미터를 달린 뒤에 느끼는 만족스러운 피로가 아니다. 아주 오랫동안 제자리 뛰기만하는 사람이 느끼는,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했을 때의 피로에 가깝다. 막힌 나의 기를 뚫어줄 사람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중국식 배관공이라고나 할까.

LU우한의 어둠이 물러나고 곧 탁 트인 고속도로가 나온다. 모두들지쳐서 의자에 늘어져 있다. 하지만 솔랄라가 내게 가만가만 다가와서 이상한 소리를 한다. 산에 도착하면 우리가 ‘척추 비틀기’를 할 것이라고 왠지 마음에 안 드는 소리다. 솔랄라는 또한 우리가 침을 많이 삼킬 것(도교에서는 침을 ‘하늘의 음료‘라고 부른다)이라는 말도 한다.
이건 정말로 마음에 안 든다. 하지만 솔랄라가 우리가 삼키는 것은 우리 자신의 침이라며 나를 안심시킨다. 그는 ‘앉아서 잊어버리기’라는 도교 명상수련법에 대해서도 말해준다. 이 말은 마음에 든다. 사실 나는 대학 2학년 때 이런 수련을 한 적이 있는 것 같다. 비록 그때는 여기에 종교적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지만, 솔랄라는 이번수련은 그때와 다르다고 말한다. 좌망(坐忘)이라고 불리는 이 명상수련법은 세상에서 벗어나 "내면의 고요하고 빈 공간"을 찾는 것이다.

‘난 해답을 찾아다니는 게 아니에요. 그냥 경험을 바랄 뿐이에요."
나는 미끄러운 두부와 씨름하면서 이 말을 곰곰이 생각해본다. 동양 종교와 유대교-그리스도교를 구분 짓는 특징이 바로 이것이다.
믿음보다 경험을 강조하는 것. 도교,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 등은
‘무엇을 믿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이것은 서구의, 특히 그리스도교의 버릇이다. 동양의 특징은 행동, 경험, 결과다.
결국 우리의 화제가 기에 이른다. 불가피한 결과다. 아직 야광 정자는 전혀 보이지 않고, 나는 도대체 기가 뭔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기는 에너지예요. 전기와 거의 비슷하지만, 아주 똑같지는 않아
"아침에 마시는 맛 좋은 커피 한 잔 같은 건가요?"
"아뇨, 그런 게 아니에요."

도를 찾아 나선 이후 샌디는 자신의 삶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쳐냈다. 〈보그〉지 구독도 취소했다. 샌디 자신의 말처럼, 이제 어느 정도나이를 먹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이제는허영을 부추기는 그런 것들에 더 이상 마음이 가지 않는다. 샌디가전과는 달리 마음을 쏟지 않게 된 일들은 그밖에도 많다. 집을 깔끔하게 유지하는 것, 직장일 등등. 적어도 예전처럼 일에 집착하지는않는다. 전에는 근무평가를 잘 받는 것에 마치 목숨이라도 달린 것처럼 굴었다.
대개 우리는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신경 쓰는 일이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꼭 그런 건 아니다. 종교를 진심으로 믿는 사람들은 남들보다 더 적은 일에 깊이 신경을 쓴다. 그리고 나머지 것들에 대해서는 아예 상관도 안 한다. 윌리엄 제임스의 말처럼, "현명해지는 기술은 곧 무심히 넘겨야 할 것을 알아내는 기술이다." 샌디는 요즘 많은 것들을 무심히 넘겨버린다. 그 편이 결정을 내리는 데 더 편하다고 한다.

나는 《도덕경》을 휙 꺼내서 샌디가 좋아하는 61장을 읽는다. "여성은 양보하고 낮은 자리에 섬으로써 항상 남성을 정복할 수 있다."
노자의 말이 대부분 그렇듯이, 이 구절도 전통적인 지혜를 거꾸로뒤집어놓는다. 대개 우리는 양보를 부정적인 것, 약하다는 표시로생각한다. 적에게 한 치도 양보하지 말고 용감하게 싸워라. 네가 원하는 것, 네가 마땅히 누려야 하는 것을 쟁취해라. 나는 이런 마음가짐에 대해 노자가 뭐라고 할 것 같으냐고 샌디에게 묻는다.
"원하는 것을 이루는 방법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지않는 것이라고 하겠죠. 무위라고."
"그 방법이 효과가 있던가요?"
"네. 하지만 밀어붙여야 할 시점이 언제인지 알아야 해요. 철저히수동적인 자세만 취하라는 게 아니니까요. 그런데 언제 힘을 써야할지 그냥 알 수 있어요. 지금처럼요. 내가 일행과 떨어져 산에 올라가서 뭔가에 마음을 열고 나를 이끌어주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싶다고 했잖아요. 나는 여기에 뭔가 유용한 게 있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그게 얼마나 훌륭한 건지는 몰랐지만."
이것이 신호이기라도 한 것처럼 음식이 또 나온다. 물고기가 접시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우리는 접시에 달려들어 아무 말 없이 음식을 마구 먹어치운다. 이렇게 맛있는 생선은 먹어본 적이 없다는말을 할 때만 잠시 멈췄을 뿐이다.

비행기에서 나는 샌디를 생각한다. 샌디는 자신의 신을 찾은 것같다. 비록 이름 없는 신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샌디 자신은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을 것 같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뒤집어엎지도 않았고, 은자처럼 살지도 않고, 내가 아는 한 몸에 경전의 글귀를 문신으로 새기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도교가 샌디에게 자양분을 제공해주고 있다. 나로서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심오한 방식으로, 샌디가 보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샌디가 인심 좋게 넘겨준, 겉에 사탕물을 바른 마카다미아가 담긴 커다란 통이 이별의 아픔을 달래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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