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재에서 자연은 기교와 만난다. 뿌리를 풀어주는 것은 자연을 되돌려주지만, 나무를 가둬 꼼짝 못하게 하는 것은자연을 다시 차단하는 것을 의미한다.
르네 마그리트는 친구이자 동료인 초현실주의자 앙드레 브르통André Bre-ton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지금 나무에서 특별히 나무에 속하지만 나무에 대한 우리의 지각을 거스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으려 하고 있네." 이 벨기에의 화가가 그 해답을 찾자마자 거대한 잎으로표현된 나무는 그가 평생 다루는 주제가 되었다. 1930년대 중반 이 주제를 처음으로 반복해서 다룬 연작은 ‘거인La Géante‘이었는데, 마그리트 특유의 솜털 같은 구름이 떠 있는 밝고 파란 하늘이 특징적이다. 나무의 몸통은 줄기가 되고 거대한 잎의 잎맥은 생기를 공급한다. 〈절대자를 찾아서〉에서 뼈대만 있는 나뭇잎 모양의 나무는 겨울의 여명을 증언한다. 묘한흰색 공조차 삭막함을 누그러뜨리지 못한다. 참고로 이 작품은 1940년 말에 그려졌는데 그해 봄부터 벨기에 브뤼셀은 독일에 점령되었다. 마그리트는 정식으로 초현실주의자가 되기 전 몇 년 동안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했다. 그의 직접적이고 포스터와 같은 양식은 익숙한 것을 전복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나뭇잎 모양의 나무는 나뭇잎과 나무의 본질이긴 하지만 둘 중 어느것도 아니면서 두 가지 모두이기도 하다. 마그리트가명료하게 표현한 대로 "초현실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데자뷔의 개념을 제거하고 아직 보지 못한 것을 찾는 것이다."
애니 오벤든의 나무는 그녀가 나무에 일평생 기울인 애정을 드러낸다. 그녀는 자신이 살고 있는 콘월 지방의 오래된 숲을 거닐곤 하는데 정작 그녀의 눈이 머무는 곳은 다듬어진 풍경 속의 키 크고 나약한 나무들이다. 겨울의 화창한 빛은 그녀를 바깥으로 이끈다. 나뭇가지의 선명한 윤곽선은맑고 차가운 하늘과 대비되어 나그네나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들이나 의식할 수 있는 겨울의 매력을 더해준다. 오벤든 작품의 제목은 간혹 원초적인 측면이 있지만 있는 그대로를설명한다. 〈염려 없게 거뒀네All is Safely Gathered In〉(2010)는 농장에 있는한 무리의 너도밤나무를 보여준다. 잎이 반쯤 남은 윗부분은 바람에 흔들리고, 쿠션처럼 생긴 관목들이 나무 밑동을 보호하고 있다. 이 그림에는 보이지 않는 구름이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경작지 풍경의 지평선을 강조한다. 햇빛으로 불 밝힌 나무들은 가지치기를 하지 않는다면 수풀이 될것인데, 너도밤나무는 부지런히 번식하는 암수꽃을 모두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오벤든은 그림을 세세하게 계획하고 ‘터무니없이 작은 붓으로 완전하면서도 불완전한 그림을 그린다. 너도밤나무는 가장 늦게 잎을 떨어뜨리는 나무라 봄에도 서둘러서 초록 잎을 보여주지 않는다. 창백하고 헐벗은 이 나무는 추운 날에는 끝이 붉게 타는 듯 보인다.
‘로런스의 앞마당에 있는 나무 아래, 테이블 위에 누워 바라본 나무’라고한 이 그림에 대한 오키프의 설명은 나름대로 간결하다. 이 나무는 ‘폰데rence. ‘로사 소나무‘로 불리는 거대한 소나무로서 소설가 D. H. 로런스D. H. Law-ce의 뉴멕시코 집 근처에 있었다. 로런스가 1920년대에 오래된 나무 벤치에 앉아 글을 쓰며 두 번의 여름을 보낸 곳이다. 그는 수관보다 월등하게 튼튼한 몸통을 지닌 나무가 자신을 지켜주는 수호천사라고 설명했다(폰데로사 소나무는 30미터가 넘게 자란다). 로런스는 글을 쓰는 데 작업대를 사용했지만 오키프는 작업대에 기대 나무 사이로 하늘을 바라보고자 했다. 〈로런스 나무〉는 오키프가 1929년 처음으로 뉴멕시코를 방문했을때 그린 그림으로 당시 오키프는 이미 잘 알려진 화가였다. 그녀는 로런스와 그의 아내 프리다가 소유한 타오스 목장에서 2개월 이상을 머물렀지만, 로런스는 이미 그곳을 떠난 상태였고 다음 해에 결핵으로 사망했다. 그는 뉴멕시코의 공기를 사랑했고, 뉴욕으로부터 피신 온 오키프에게는이곳의 하늘이 활력소가 되었다. 이 그림에서 그녀는 나무의 주요 기관을통해 밤하늘을 관찰한다. 검은 나뭇잎의 구름 속 동맥처럼 생긴 나뭇가지들은 생명의 피를 뿜어 올린다. 오키프의 의도대로 ‘거꾸로 서 있는’ 나무 그림을 보면 누워서 위를 바라보는 느낌이 더욱 고조된다. 이러한 이유로 코네티컷주 하트포드에 위치한 워즈워스 아테네움 미술관(WadsworthAtheneum Museum of Art)에는 이 그림이 거꾸로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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