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진짜 문제는 계속 마음에 걸리는 구식 문제, 즉 믿음의 문제다. 나는 고만고만한 여러 신들이 내게 말을 걸거나 나 대신 끼어드는 모습을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 이 많은 신들의 존재를 (내 왼손새끼손가락이나 노트북컴퓨터의 존재를 믿듯이) 내가 믿지 않는다는 것이차가운 현실이다. 그래서 믿을 수 없는 마음을 잠시 접어두고 이 신들을 마음으로 불러내는 행동을 할 수 없다. 어쩌면 이건 내가 제이미를 비롯한 여러 마녀들보다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로 이 때문에 내 우울증이 더 깊어지는 건지도 모른다.

우리는 샤먼들에게 자연스럽게 ‘미쳤다는 꼬리표를 붙인다.
과연 이것이 올바른 판단인가? 정신이 멀쩡한 스위스의 정신분석학자였던 카를 융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로지 물리적 존재만 가능하다고 가정하는 것은 거의 웃음이 나올 만큼 우스꽝스러운 편견이다.
사실 우리가 가장 가깝게 알고 있는 유일한 존재 양식은 정신적인 것이다."

샤먼은 자연을 사랑한다. 성 프란체스코의 전통을 따르는 셈이다.
그들은 자연계를 자신과 동등한 존재, 가족으로 본다. 샤먼은 동물들을 가엾게 여기지 않고, 그들의 우월한 지혜를 끌어다 쓰는 것을목표로 삼는다. 샤먼의 또 다른 특징은 작업 속도가 빠르다는 것이다. 샤머니즘은 사람들(나도?)이 "침묵의 명상으로는 몇 년이나 걸릴수도 있는 경험을 몇 시간 만에 할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영적인 지름길을 약속해준다. 인류학자였다가 샤먼으로 변신한 마이클 하너의 말이다. 내게는 이 말이 한없이 매력적이다. 솔직히 지름길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샤먼들은 예전에 모든 인간이 갖고 있던 능력, 즉 동물의 영과 소통하는 능력에 자신이 다시 접촉하고 있다고 믿는다. 인간으로 변신할 수 있는 동물이나 원래 자신의 영역이 아닌 곳에서 돌아다닐 수있는 동물, 예를 들어 하늘을 나는 늑대 같은 동물은 특별히 강력한존재로 여겨진다. 여기서 중요한 것 하나. 샤먼은 늑대를 흉내 내거나 늑대에게 빙의된 것이 아니라 늑대 그 자체다.

조지프 캠벨은 말한다. 소용없다고 우리는 자신이 타고난 신화에서 결코 완전히 도망치지 못하며,
도망쳐서도 안 된다고 어렸을 때 머릿속에 자리 잡은 신화에 매달리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것은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는 어차피 그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신화를 유창한 웅변으로 해석해내야 한다....….
그 신화의 노래를 듣는 법을 배워야 한다."

곧유대교의 수많은 아이러니 중 하나는 휴식일 직전의 몇 시간 동안 사람들이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날이 잠잠해지기전의 폭풍 같다고나 할까. 트즈파트 시내도 활동적인 에너지로 터질듯하다. 눈보라가 몰려오기 전의 워싱턴 같다. 모두들 정해진 시간이 급속히 다가오고 있다는 점 때문에 압박을 느끼며 물건을 사 모은다. 트즈파트는 움직이고 있지만, 그 움직임은 임의적인 것이 아니다. 모두들 같은 곳으로 향한다. 아니, 같은 시간이라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안식일은 공간이 아니라 시간 속에 존재하니까. 나도 움직인다. 나는 가게들이 문을 닫기 직전에 팔라펠 하나와 야르덴 포도주 한 병을 산다. 가게 주인들, 낯선 사람들이 샤바트 샬롬, 즉즐거운 안식일이라는 인사말을 건네는 것이 좋다. 이 딱딱한 땅에서 맛보는 부드러움이다.

이제 나는 책을 사랑하는 내 마음을 존중해주는 길을 마침내 찾아냈다. 그런데도 여전히 길을 잃고 헤매는 기분이다. 그 기분이 그어느 때보다 더 심하다. 불교나 도교에서 실패를 맛보는 것과, 나자신의 신앙에서 실패를 맛보는 것은 완전히 차원이 다르다. 특히 내가 지금 정직하게 노력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이 지긋지긋한 암호 때문이다! 아람어를 히브리어로 번역하고, 그것을 다시 영어로 번역한 글. 게다가 이 글은 처음부터 일부러 속기 쉽게 만들어져 있다. 마치 전화로 배배 꼬인 장난을 치는 것 같다. 내게 장난 전화를 걸어온 상대방을 미친놈으로 무시해버릴 수만 있다면야 아무상관이 없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다. 모두 흥미로운 이야기인 건사실이다. 핵융합에 관한 이야기가 흥미로운 것처럼.

한편 나의 도쿄 경험에는 아직 속편이 없다. 나는 이미 속편에 대한 기대를 버렸다. 기대야말로 경험의 커다란 적이니까. 그래도 나는 계속 기다린다. 가끔 이쪽저쪽으로 조금씩 방향을 바꿔가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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