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렇게 쓴소리를 써놓기는 했지만 물론 국립한국문학관이 잘되길 바란다. 문을 열면 나도 몇 번 찾아갈 것 같다. 물리적인 장소의 의미를 넘어 재미있는 프로그램들을 기획하는 기관이 되면좋겠다.
개인적으로는 2020년대 상황을 이야기하는 리얼리즘 노동문학에 내 자리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앞으로 노동문학만 쓰겠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2020년대의 한국 노동자들은 자기착취와 상호 착취에 시달리고 있고, 과거 민중문학의 틀로 이를포착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가끔 내 소설에 대해 너무 깔끔하다거나, 인물에 대한 애정이안 느껴진다거나, 진짜 같지 않다는 평을 받는다. 내 생각에 그런 평가는 어떤 면에서 정확하다. 그리고 그다지 기분이 나쁘지않다. 열심히 청소한 집에 대해 누군가가 ‘먼지 한 톨도 없어서인간미가 안 느껴진다. 사람 사는 집 같지 않고 화보 같다‘고 평하는 것과 똑같은 상황이다. 의미 있는 세계와 깨끗한 집은 원래부자연스럽다. 플롯이라든가 윤이 나는 마루 장판 같은 것은 비정상적이다. 사람의 노력 없이는 저절로 생겨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마치 좀 더 혼란스럽지만 더 인간적이고 궁극적으로 진실을 지향하는 글쓰기가 따로 존재하는 것처럼 말한다. 나는 회의적이다. 애초에 언어라는 것이, 세계에 가짜 의미를부여하기 위해 만든 도구이기 때문이다. 빗자루와 쓰레받기와걸레가 청소를 위한 도구인 것처럼.
글과 글쓰기로는 결코 세계의 실체에 이를 수 없다. 굳이 그 언저리에 가고 싶다면 소설이 아니라 시를 써야 할 것이고, 더 나아가 마침내는 언어를 포기하고 명상에 잠겨야 하지 않을까. 나는 그러는 대신 소설을 쓰고 청소를 한다. 나는 그냥 내 주변 세계를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바꾼다.

지금 이 순간 ‘작가의 일상‘을 주제로 에세이를 써야 한다는사실이 퍽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최근 한동안 작가의 일상에대해 고민이 많았기 때문이다. 보름쯤 전에 그 일상을 위해 꽤비싼 비용을 지불하기도 했다. 그리고 며칠 원하는 대로 살았다.
‘그래, 그토록 원하던 작가의 일상을 제대로 누려본 소감이 어때?"라는 질문에 답안지를 써내야 하는 기분이다. 아직 잘 모르겠는데……….

유난 떤다 싶겠지만, 사실 짧은 외출 한 번으로도 의식이 얼마간 흐트러진다. 햄버거를 먹거나 편의점 도시락을 사러 가까운거리에 가는 정도라면 모자를 눌러쓰고 트레이닝복 차림으로나간다. 그럼에도 한번 집 밖에 나가면 가벼운 흥분 상태에 빠진다. 서울 길거리는 포털 사이트 첫 화면과 비슷하다. ‘여기 좀봐주세요!‘라고 호소하는 수많은 미남 미녀의 사진들이 걸려 있고 ‘이건 도저히 못 지나치겠지? 궁금하지?‘라고 외치는 간판도있다.

우리가 함께 만든 책은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 변덕스러운 시장 반응을 놓고 나중에 누가 옳았는지 따지는 게 의미 있을까? 우리는 성공하면 함께 성공하고 실패하면 함께 실패한다. 다만 그렇게 성공하거나 실패하기 전에 활발히 두 머리를짜내어 후회 없이 좋은 책을 만들 수 있기를 원한다. 한쪽에서는이런 관계를 맺는 힘을 에디터십이라고 부를 수 있을 텐데, 다른쪽에서는 파트너십이라고 표현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쯤 되면 ‘문학이 내게 무엇일 것인가‘는 주어가 바뀐 질문이지 싶다. 내가 할 일과 그 일에 임할 태도는 정해져 있으므로, 지금 나에게 중요한 질문은 ‘내가 문학에 (문학계에? 문학장에? 문학사에?) 어떤 작가일 것인가‘다. 그러고 보면 문학이 뭔가의 도구가 아니라, 내가 문학의 도구인 것 같다.

인간이라는 종은 행복보다는 고통에 더 마음깊이 묶이게 되는 존재가 아닐까. 그리고 글자로 그 고통을 전하는 기술이 문학이 아닐까. 위대한 문학 작품은 모두 행복이 아니라 고통을 다루었다. 문학이 위안을 줄 수는 있지만, 그 위안이라는 게 문학을 통해 타인의 고통을 체험한 뒤에야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아직은 설익은 생각인데, 언젠가 이 주제로 보다명확하게 글을 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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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전까지 문학계라는 곳이 무척 폐쇄적이고 권위적이라는 선입견이 있었다. 문인들이 ‘몇 년도에 등단한 누구‘라는식으로 자기소개를 하고는 서로 누가 더 선배인지 따지지 않을까, 멋대로 공상하기도 했다. 그런데 다른 군더더기 없이 ‘나누어떤 분야의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라니, 근사하지 않은가. 곧 나도
"소설 쓰는 장강명입니다"라고 스스로를 설명하게 되었다. 그렇게 말하는 사이에 자기규정도 서서히 바뀌었으려나?
이동진 평론가의 독서 에세이 『밤은 책이다』에는 그가 트레이드마크인 빨간 뿔테 안경을 사게 된 계기가 나온다. 신문사를 그만두고 울적하게 지내다가 동네 안경점에 가서 빨간 테 안경을처음으로 걸치게 되는 이야기다. 그는 "변화의 순간은 일종의 의식(儀式)을 필요로 할 때가 많은데, 내게 그 의식은 빨간테 안경을 사는 일이었다"고 썼다.

막 집어 든 관계의 과학의 저자 소개 문구도 대단히 훌륭하다. 김범준 교수는 자기소개를 책 뒷날개까지 이어지도록 길게썼다. 이런 식이다. "논문 출판을 걱정했던 연구로는 「혈액형과성격의 상관관계에 관한 연구」 윷놀이에서 업는 것과 잡는 것중, 어떤 것이 더 유리한지 살펴본 연구 등이 있다. 다행히 지금까지는 마무리한 연구 결과를 모두 학술지에 출판할 수 있었다."
저자에 대한 신뢰와 글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면서, 통계물리학이라는 어려운 학문에 대한 부담은 줄어드는 일석이조의 소개다.
내가 드러내고 싶은 나의 모습과 출판사에서 원하는 문구가다른 경우도 있다. 특히 장르소설을 내거나 앤솔로지에 참여할때 그렇다. 나는 책날개에 있는 문장도 책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본문 내용과 어울리게 쓰고 싶어 한다. 그러나 편집자들은 그보다는 무슨 문학상을 받았고, 무슨 문학상도 받았고 하는 내용을넣으려 한다. 그 심정도 이해는 간다. 그 편이 손톱만큼이라도 책판매에 더 유리하리라 여길 것이다

그러나 자칫하면 그런 문구가 자신에 대한 규정이 되어버릴수도 있기에 조심해야 한다. ‘발랄한 상상력‘ 같은 딱지를 누가붙인다면, 글쎄, 나는 싫을 것 같다. 운신의 폭이 좁아지지 않을까. ‘발칙한 상상력‘은 더 나쁘다. 그 상상력의 수준이 감당할 수있는 범위에 있음을 거꾸로 암시한다. 발랄이고 발칙이고 간에30대 중반이 넘어가면 어색해지는 수식어다. 오래도록 소설을쓰고 싶은 야심 있는 젊은 작가라면 그런 문제를 고민해보는 것도 좋겠다.

작가에게 가장 바람직한 상황은 아마 작품이 곧 자기소개가되는 경우이리라. 무슨무슨 소설을 쓴 사람으로 소개되는 것. 소설가에게 그보다 더한 성공이 있을까. 거기서 더 나아가면 작가와 작품이 동의어가 되기도 한다. "난 요즘 하루키를 읽고 있어"
라는 말은 어색하지 않다. 나도 내 소개가 될 수 있는 소설, 피와살이 있는 인간 장강명과 동의어가 될 수 있는 책을 쓰고 싶다.

기자일 때는 전화도 늘 "장강명입니다"라고 말하며 받았다. 그게사람을 넓게 많이 만나야 하는 작업 종사자의 비즈니스 매너라고 생각했다. 요즘은 그냥 ‘여보세요‘ 하여 받는다. 10년 넘게인 습관을 바꾸려니 처음에는 무척 어색했다.

최민석 작가의 에세이 『꽈배기의 맛』을 읽다가 깔깔거리며 웃었다. "도대체 왜 한국 소설가들은 프로필 사진을 찍을 때 옆으로 얼굴을 돌려 찍는 걸까, 다들 담합이라도 한 걸까"라는 대목에서다.
최 작가의 말이 옳다. 정말 한국 소설가들은 프로필 사진도 그렇고 인터뷰 사진도 그렇고, 측면 사진이 압도적으로 많다. 90도까지는 아니고, 45도 정도로 얼굴이 돌아간 옆모습이 대세다. 고개는 살짝 들고 있고, 시선은 먼 곳을 향해 있다. 소설가들은 사진 속에서 약간 슬픈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한 아련한표정을 짓고 있다.

이제는 저작권이 문제 되지 않는 다른 고화질 이미지 파일이 생겨서, 과도하게 보정한 그 프로필 사진은 쓰지 않을 수 있게 됐다. 정말 다행이다. 나는 내가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는 전문가가하자는 대로 따르는 편인데, 저 과도한 보정 사진을 떠올릴 때마다 그런 태도가 꼭 정답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나한테 어울리는 건 내가 제일 잘 알아‘라고 고집부리는 게 바람직한것 같지도 않고,

한국소설가들의 생활은 팍팍한 게 맞다. 졸업 후 바로 전업 작가가 되겠다는 계획은 한사코 말린다. 다만 공포에 짓눌려 꿈을포기하거나 세상을 원망하는 예비 작가가 있다면, 사람들이 잘
‘모르는 다른 일면도 보여주고 싶다. 2020년대 한국 소설가는소한 한가지 점에서는 다른 나라 소설가나 20세기의 선배들보다 처지가 낫다. 21세기 한국이 세계적인 영화·드라마 강국인덕분이다. 빛과 그늘이 있는 사안일 텐데, 밝은 부분만 먼저 적어본다.

닭이 글은 2020년에 썼다. 2021년과 2022년에 영화나 드라마로joten만들어진 한국 소설은 다음과 같다. 정소현 작가의 단편 너를김영하 작가닮은 사람 구상희 작가의 『마녀식당으로 오세요의 단편 「아이를 찾습니다. 김혜정의 판타스틱 (KBS 드라마안녕? 나야!」의 원작), 김해원 작가의 장편 동화 오월의 달리기』(KBS 드라마 「오월의 청춘의 원작), 강미강 작가의 옷소매 붉은 끝동, 정은궐 작가의 홍천기, 김언수 작가의 뜨거운 피 정한아작가의 친밀한 이방인(쿠팡플레이 오리지널 드라마 안나의 원작).
「오징어 게임」이 세계적인 흥행 성공을 거두면서 한국 영상물에대한 해외 제작사들의 관심이 높아졌고, 덩달아 한국 소설의 영상판권 시장도 전보다 훨씬 더 커졌다.

형제정부의 탄압은, 음……… 솔직히 말하면 내가 정부의 탄압을 받았다는 사실은 뒤늦게 알았다. 박근혜가 탄핵된 뒤 문화예술계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회가 열심히 조사해 발표해준 덕분이다. 그 위원회가 출범하도록 힘을 보태고 그 안에서 민간 위원으로 활동하며 노력하신 선후배 예술인들께 감사드린다.
나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과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몇몇 지원 사업에서 배제된 것으로 밝혀졌다. 『한국이 싫어서』와 『댓글부대』가 누군가의 심기를 건드렸나 보지. 처음부터 ‘얘는 빼라‘는 지시가 있었던 경우도 있었고, 나중에 심사 표를 조작해 적격 판정을 부적격으로 바꾼 사례도 있었다. 정말 쪼잔하고 유치하다. 치사하고 기괴한 정권이었다.

그에 비하면 알지도 못했던 지원 사업에서 배제되어 입은 손실은 솔직히 하찮다. 정부가 이런저런 지원을 해주면 고맙지만그런 도움을 받는 게 작가로서 나의 당연한 권리라고 여기지도않았다. 그런 정부 지원에 정치적 개입이 이뤄져서는 절대 안 된다는 당위와 별개로 말이다.
그래서 나 역시 화가 났음에도 "영혼을 말살하는 행위" (더불어민주당 대변인)라든가 "문학의 존재 근거를 흔드는 것" (한국작가회의 대변인) 같은 말을 들으면 좀 머쓱했다. 그대로 넘기면 결코안 되는 불의이고, 그런 표현이 나온 앞뒤 맥락도 있지만, 그래도머쓱했다. 내 영혼은 아직 멀쩡하다.
그 무렵부터 문학계나 문인 단체의 수사(修辭)에 신경을 쓰게됐다. 정부 지원 사업 관련 문제에 대해 문학계의 언어는 너무 당당하거나, 반대로 너무 비굴했다. 정부는 당연히 우리를 도와줘야 한다. 아니면 우리는 굶어 죽는다는 식이었다. 그런 때 지원의이유로 문학의 중요성이 강조될수록 보는 기분은 착잡해졌다.

근본적으로는 철학의 문제다. 나는 적극적 복지에 순서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더 배고픈 사람을 먼저 도와야 하고, 노약자와 장애인이 건강한 젊은이보다 우선이다. 그런데 배고픈예술인과 배고픈 비예술인도 구분해야 하는가. 어떤 사람이 배가 고프면 직업에 관계없이 지원해야 하지 않을까.
창작 지원에 찬성한다. 거기에 더해 많은 예술인이 프리랜서로 일하니 고용보험 같은 사회 안전망의 사각지대에 있다는 특수성을 더 살펴주면 좋겠다. 반면 자기 부담금 없는 예술인 연금같은 아이디어에 대해서는 주저하는 마음이 든다. 그것이 도덕적으로 옳은가? 누구나 웹소설 플랫폼에 글을 올려 작가 호칭을얻을 수 있는 시대에 예술인의 자격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 국가가 그 기준을 정하는 게 바람직한가?

위에는 이런 고차원의 딜레마가 있고, 아래에서는 여러 집단의 이해관계가 얽힌다. 그러다 보니 문화 지원 정책이 실행된 결과물을 보면 비판할 지점들이 늘 여러 각도에서 보일 수밖에 없다. 사업을 추진하는 공무원들도 참 답답할 것이다. 나는 최근에국립한국문학관에 대해 그런 감정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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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좁힐 수 없는 시차를 두고 태어난 어떤 이를 사랑할 때, 행복한 순간 미안해지는 사람이 있을 때, 당신에게도 고쳐 쓸 편지 한 통이 있기를, 여기에서 만난 적 없는 서로의 젊음을 거기에선 나란히 겹쳐보기를. 편지를거듭 고칠수록 두 개의 삶이 다 애틋해지기를. 아마도 그사람과 당신은 좋은 친구가 되었을 것이다. 인숙과 내가그러하듯이.

그 후로 누군가 미워지려고 할 때마다 속으로 마법의 문장, "그런 게 사람이죠"를 중얼거려보았다. 버스가 정류장에 들어오기 전부터 일제히 뛰기시작하는 사람들. 그런 게 사람이죠. 오늘 얼마나 피곤했으면 앉아 가고 싶을까. 라면 사리도, 공짜 귤도, 얼마나먹고 싶었으면, 불쑥 욕심이 났으면 그런데 그런 게 사람이죠.

‘우리 같은 사람들‘과는 상관없다고 여겨지는 바로 그곳에 제자리처럼 깃드는 것. 그게 내가 아는 문학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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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행본 한 권 가격이 요즘 15,000원 안팎이다. 책이 한 권 팔릴 때 저자가 받는 돈, 즉 인세는 대부분 책값의 10퍼센트다. 그러니 한국문학의 기대주는 인세 외에 다른 수입이 없으면 기초생활 수급자 신세고, 한국 소설의 미래도 인세만으로는 먹고살수 없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면 계산기 두들기며 겨우 해외여행을 할 수 있겠다. 대세 작가라도 집 사고 싶으면 강연과 방송에 열심히 나가야 하고.

이야기를 다시 앞으로 돌리면, 출판사 입장에서는 다음 책이손익분기점을 넘을 작가를 알아보는 일이 중요하다. 1만 2만부가 팔리는 작가는 자기 인세로는 외식 즐기기도 빠듯한 주제에출판계에서는 벌써 인기인이다. 출간 계약은 이미 여러 건 맺었을 가능성이 높다. 아직 계약을 맺지 않은, 원고를 금방 받을 수있는 다음 기대주를 찾아야 한다. 그래서 눈에 띄는 신인에게지난번 책 얼마나 팔렸나요? 2쇄 찍었나요?" 하고 묻게 된다(여기서 팁 한가지. 신인이고 2쇄를 찍었다면 주변에 자랑하고 소문을 내라. 그래야 다음 책을 낼 기회를 얻는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자기 책이 얼마나 팔렸는지 작가들이 잘 모른다. 우선 출판사마다 인세를 입금하는 방식이 제각각이다.

어느 책이 다른 책보다 더 많이 팔렸는지 아닌지를 베스트셀러 순위로 가늠하는 일조차 힘들다. 크고 작은 서점에서 팔린 전국적인 도서 판매량 순위를 집계하는 기관은 없다. 여러 대형 서점에서 각각 주간 판매 순위를 발표하지만 서점 규모도 다르고잘 팔리는 책의 종류도 다르다. 심지어 순위 기준도 제각각이다.
어느 서점은 예약 판매를 순위에 포함시키고, 어느 서점은 지난4주간의 누적 판매량을 순위에 반영한다.

독서 문화의 베스트셀러 쏠림 현상은 더 심해질까 약해질까?
소규모 출판 혹은 1인 출판 사업자들은 이 시스템을 통해 예측분석이 가능해지면 모험을 더 많이 벌일까, 아니면 이 땅의 척박함을 확인하고 몸을 사릴까? 값싼 기획물은 늘어날까 줄어들까?
출판사는 사재기 유혹에 더 시달릴까 아닐까? 장기적인 영향과별도로 단기적인 충격이 크지는 않을까?

2021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은 출판유통통합전산망을, 대한출판문화협회는 도서판매정보공유시스템을 만들었다. 두 시스템 모두 도서 판매량을 전체 공개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출판사와 저자에게만 제공하기 때문에, 위 글에서 내가 궁금히 여겼던 효과는 발생하지 않았다. 현 상태에서 도서 판매량을 전체 공개하면 순작용보다 부작용이 더 클 것 같다.
출판유통통합전산망과 도서판매정보공유시스템 공히 아직까지는 시스템 자체에 부족한 점이 많고, 이 문제를 둘러싼 출판계 내부 갈등도 심하다. 그래도 방향은 이 길이 맞는다. 서둘지 않고꾸준히 개선해나가면 좋겠다. 각종 공연 입장권 판매량을 집계하는 공연예술통합전산망도 정착에 시간이 꽤 걸렸다.

분위기가 훈훈했건 흉흉했건 강연을 마치면 녹초가 된다. 나는 서배스천 영거보다 더한 새가슴이라 강연을 마치고도 몇 시간이나 심장이 쿵쾅거려 밤에 잠을 못 이룬다. 어느 날 퀭한 몰골로 돌아온 나를 보고 아내가 전국을 누비는 약장수 같다며 짠하다고 했다. 그런데 그 말을 듣고 강연이 좋아졌다. 그런 길 위의 삶을 오래도록 남몰래 존경하고 또 동경했기에 약장수, 각설이, 풍물패, 서커스단, 엿장수, 두부장수, 칼갈이, 거기에 소설가도 추가요.

서글프게도 그런 손톱만 한 우위를 악용하는 이들이 있다. 강연료를 묻는 순간 연락이 끊기는 섭외자들이 꽤 많다. 공짜 강연을 바랐을 확률이 매우 높다. 강연장에 와서야 그 강연이 재능기부 행사였음을 알게 됐다는 작가나 번역가도 있다. 끝까지 강연료를 묻지 못했는데 나중에 입금된 금액을 보고 너무 소액이라 속앓이를 했다는 이는 부지기수.

이런저런 사연을 길게 적었으나 요즘은 이 문제를 그다지 고민하지 않는다. 그냥 매니지먼트 업체와 계약을 맺었다. 편하고깔끔하다. 강연 중개 시장도 형성되는 것 같고, 쉽고 자연스럽게양측 요구를 확인하고 의논할 수 있는 플랫폼이 만들어진다는소식도 들린다. 이렇게 발전하나 보다.

슬프게도 강연료나 고료 입금이 늦어지거나, 담당자의 ‘착각‘으로 금액이 적게 입금되거나, 인세 지급이 누락되는 일을 꾸준히겪고 있다. 지난해도 겪었다. 한데 담당자의 ‘착각‘으로 돈을 더리 받는 경험은 한 번도 하지 못했다.

낑낑대며 추천사를 써줬더니 마음에 안 든다며 어느 부분을고쳐달라거나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하는 초보 작가도 있다.
애프터서비스를 요구하는 이도 있다. 내 SNS 계정으로 자기 책을 홍보해달라는 것이다. 힘드는 일도 아닌데 그 정도쯤 못 도와주나 싶은 모양이다.
기분 좋게 추천사를 실은 적도 몇 번 있긴 하다. 내가 내 뜻대로 써서 어딘가에 올린 감상문을 보고 출판사가 연락해 온 경우다. 글 일부를 SNS에 활용하거나 2쇄부터 띠지에 넣고 싶다고했다. 그런 때에는 기쁜 마음으로 동의한다. 그런 상황을 제외하고는 앞으로 추천사 요청은 어지간하면 거절하려 한다.

내 경우 2010년대 중반에 맺은 출간 계약서부터 작가와 출판사가 2차 저작권 수입을 일정 비율로 나눈다는 조항이 들어갔다. 작가 몫을 높게 책정한 출판사는 자신들이 작가의 이익을 그만큼 우선시한다고 말했다. 비율을 다르게 설정한 출판사에서는 그들이 소설 판권을 더 열심히 세일즈하고, 영화사와 협상할때 더 유리한 조건을 받아낸다고 설명했다. 다른 소설가들로부터 이런저런 조언을 듣기도 했는데 무슨 말이 옳은지는 알 수 없었다.

최근에는 자기 판권을 전문 매니지먼트 회사에 맡기는 작가들이 생겼다. 한국저작권위원회의 저작권 상담 센터나 예술인복지재단의 법률상담 카페에서는 창작자들에게 무료로 저작권 관련상담을 해주는데, 이런 공공서비스가 훨씬 더 확대되면 좋겠다.
우리 사이에 무슨 계약서야,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이제 아무도 남지 않았다. 작가건 아니건.

2021년 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지원부 워크숍에 초청받아, 작가들에게 저작권 교육과 상담을 해야 한다는 내용의 강연을 했다. 얼마 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한국저작권위원회와 업무 협약을 체결하고 문학 분야 저작권 교육과 상담 프로그램을추진하기로 했다. 내 강연 때문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뿌듯했다.

내가 어디까지 요구할 수 있는지를 잘 모르겠다. 전에나는 표지에 대해 목소리 내기를 가급적 꺼렸다. 까다로운 작가,
‘진상 저자‘가 되는 게 아닐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첫눈에 마음에 들지 않은 표지가 시간이 지난다고 좋게 보이지는 않았다. 볼 때마다 ‘이건 아닌데‘ 싶고, 나중에는 화가 나기까지 하는 표지도 있다. 심해지면 그 책 자체가 싫어진다. 내가 별난 예외는 아닌 듯하다. 심지어 언론 인터뷰 중에 "이 책 표지 마음에안 들어요" 하고 불만을 터뜨리는 작가도 있을 정도니.

몇 가지 편견을 더 풀어놓자면, 나는 한국 작가가, 특히 문학작가가 자기 책 제목을 영어 단어로 정하는 게 어째 어색하다.
『뤼미에르 피플』을 낸 사람이 떳떳이 할 소리는 아니지만………….
문장형 제목도 그리 좋아하지 않는데 이건 정말 논리적인 이유를 댈 수 없는 개인 취향의 문제인 것 같다. 그럼에도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는 내 인생 책이고…………어떤 제목이 좋은 제목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사람이 공통적으로 하는 설명이 있다. 첫눈에 눈길을 끌되 소설 내용을 다 알 듯한 느낌은 피해야 하고, 다 읽은 뒤에는 ‘아하, 이런 뜻이구나‘ 하고 무릎을 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 부르기 좋고 검색하기 쉬워야 한다는 것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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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살고 있는 진짜 현실 세계는 소설만큼그리 개연성 있게 굴러가지 않는다. 요즘은 세계 전체가 ‘예측하기 어렵다‘의 수준을 넘어, 숫제 맥락들이 사라지는 느낌마저 든다. 프랭크퍼트는 개소리가 넘치는 게 우리 문화의 특징이라고주장하는데,
그와도 상관있지 않을까. 개소리쟁이들이 움직이는세상이라니, 프로 거짓말쟁이로서 참으로 유감이다.

세상이 점점 더 복잡해지고, 직업 분야가 점점 더 세분화, 전문화되어서 리얼리즘 소설 쓰기가 그만큼 어려워졌다는 생각도 한다. 문학의 힘이 약해진 데에는 그런 요인도 있지 않을까 싶다.
소설이 현실 세계의 깊은 구석을 잘 살피지 못하게 되면서, 전문직업인 필자들의 에세이가 주목받게 된 것 같기도 하다.
그러한 환경 변화 속에서 전업 소설가로서, 더 발로 뛰어야 한다는 생각도 한다. 직업 세계가 깊어진 만큼 사람을 찾아 섭외하고,
먼 곳에 있는 이와 연락하고, 관련 정보를 검색하는 기술도 발전했다. 한 세대 전의 소설가가 국립중앙도서관이나 국회도서관에가야 얻을 수 있었던 답을 이제는 집에서 클릭 몇 번으로 찾을 수있다. 취재하는 소설가로 남자고 다짐해본다.

주제가 뭐냐는 질문에 이렇게 난감해하는 우리들이 한없이 순진하고 쓸데없이 심각한 걸까? 모터쇼나 가전쇼 무대에 오른 이들이 신제품을 발표하면서 주제가 뭔지를 말하는 데 어려워하는모습을 본 적이 없다. 다들 이번 신차의 콘셉트는 가족이라고, 이번 새 휴대전화는 휴머니티와 연결을 주제로 했다고 당당하게말한다. 제아무리 막장 드라마라도 홈페이지에 가보면 기획 의도가 ‘우리 시대 사랑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자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다들 주제가 뭐냐는 질문이 뭐가 중요하냐는 분위기다.
주제? 가족이야. 가족 좋잖아. 됐지? 그러면 이제 우리 마케팅 포인트를 보라고. 이 차는 트렁크가 엄청 넓어! 가족을 위한 세단이라니까. 어쩌면 직업인의 자세는 바로 이래야 하는 것일지도모른다.

한편으로는 나 또한 누구를 비판할 처지가 아니다. 동료 작가들의 활동을 보면서 용기와 위안이 아니라 시기와 질투심을 느끼는 순간이 자주 생겼다. 지금 당장 당신의 SNS 계정을 삭제해야 할 10가지 이유』의 저자 재런 러니어는 자신 역시 그랬다고 고백한다. 러니어는 소셜 미디어들이 집단 내 서열에 집착하는 인간 본능의 스위치를 켠다는 가설을 제안하기도 한다.

반면 ‘하면 도움이 될 테지만 억지로 할 필요는 없다’는 정도의 유보적인 의견도 있었고, 홍보 목적으로 운영하는 계정은 어차피 별 매력이 없으니 좋아서 하는 게 아니면 안 하는 편이 낫다는 답도 있었다. 일반 단행본 작가라면 필수지만 소설가라면모르겠다, 인상적으로 운영되는 작가의 SNS가 딱히 없어 보인다는 답도 있었다.

지금 우리의 세계와는 미묘하게 달라진 평행우주를 배경으로 한다. 연합군이 독일을 이기기는 했지만 이스라엘은 건국되지 않았고, 유대인들은 미국 알래스카의 자치 지구에 집단 거주하고 있다(실제로 미국은 그런 계획을 검토한 바 있었다).
「알래스카의 아이히만」 한국판에는 원자폭탄이 떨어진 일본 도시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가 아니라 히로시마와 기타큐슈라고 서술하는 대목이 나온다. 그렇게 써서 소설 속 배경이 독자가 살고있는 세계가 아닌 평행우주임을 드러내려는 의도였다. 기타큐슈는 실제 역사에서도 미국이 원래 폭격 후보지로 삼았던 곳이다.
일본 출판사 측은 해당 대목의 기타큐슈를 나가사키로 바꿔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어릴 때부터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대해배워온 일본 독자들은 이 설정을 쉽게 이해하지 못할 거라면서.
원폭 피해지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인 것은 한국 독자에게도 상식인데….… 이 서술은 나름 중요한 장치인데………. 결국 일본 출판사의 의견을 따르기는 했지만 그 판단이 옳았는지는 여전히 자신이 없다.

딱히 통계나 근거는 없지만 최근에는 드라마업계가 영화업계보다 소설가들을 더 열심히 물색하는 느낌이다. 내가 만난 프로듀서들의 설명은 이러했다. 첫째, 한국 드라마의 장르와 소재 폭이 넓어지면서 프로듀서들이 기존 작가군에서 외부 스토리텔러로 눈을 돌리게 됐다. 둘째, 작가가 연출자보다 우위에 있는 한국드라마 제작 환경을 바꾸고 싶어 하는 프로듀서들이 많다. 셋째,
인기 드라마 작가들의 몸값이 너무 높아졌다.
반대편에서 바라보면 기괴한 현실이다. 수많은 지망생들이 영화와 드라마 시나리오 작가를 꿈꾸며 분투 중인데 이토록 커다란 미스매치가 존재한다. 영상업계와 문학계에서 작가들의 데뷔방식이 어떻게 다른지, 영화 제작자들이 왜 공모 방식을 선호하않는지 등에 대해서는 논픽션 『당선, 합격, 계급』에 취재해 쓴바 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찾아보시길.

칼럼 원고가 쌓이면서 그런 우려는 점차 사라졌다. 내 식견이그사이 풍부해졌다기보다는, 다른 ‘지식인‘들의 처지도 나와 다를 바 없다고 여기게 되어서다. 깐깐하게 따져보면 그네들 역시자기 전문 분야의 지식을 일종의 문학적 비유로 활용해 상식적인 주장을 펼치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가끔은 그들이 한 분야에깊이 몸담고 있기에 오히려 그 견해를 경계해야 할 때도 있다.

해외 도서전에 같이 참가하는 소설가들과는 친해질 수밖에 없다. 공항 로비에서 함께 멍하니 앉아 있다가 같이 비행기에 오르고, 타지에서 저녁에 함께 맥주를 마시고, 푸석푸석한 얼굴로 호텔 조식 뷔페에서 커피도 함께 마시고, 그렇게 며칠씩 밥을 함께먹으며 "한국 소설의 특징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같은 질문에 함께 난감해하다 보면, 그렇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요즘 문학 동인을 하나 만들려고 몇몇작가들에게 메일을 보내고 있다. 무리 지어 다니는 건 내 체질과맞지 않지만, 함께해야 힘이 실리는 일도 있는 것 같다. 결성하려고 하는 동인의 이름은 ‘월급사실주의‘다. 운동권문학, 민중문학과 거리를 두는, 우리 시대에 맞는 리얼리즘 노동문학 소설을 쓸작가들을 모은다. 먼저 소설가 열 명이 앤솔로지를 내는 일부터시작하려는데 지금까지 나를 포함해 일곱 명이 모였다.
동인의 취지와 목표, 대강의 규칙을 설명하는 메일을 공들여 써서 친분이 있는 소설가들에게 보냈다. 내가 쓴 다섯 통의 메일을다 합하면 거의 단편소설 한 편 분량이었다. 어느 분은 "유료 뉴스레터로 만드셔도 되겠던데요" 하고 농담을 했다.
‘이분은 꼭 같이하고 싶다. 이분이라면 동참해주지 않을까‘ 하는소설가 중에 거절 의사를 밝힌 분도 있었다. 아쉽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런가 하면 ‘이분이 관심 있어 할까 스스로도 고개를 갸웃하며 보낸 메일에 흔쾌히 참여 의사를 밝힌 작가님도 있었다. 모를 일이다. 동인의 첫 소설집이 일종의 문학적 선언이 될텐데, 책을 내고 나면 함께하겠다는 뜻을 밝히는 분들이 더 계시지 않을까 기대한다.

한 번 더 강조하지만 이는 절대로 한국문학계 특유의 문제가아니다. 카뮈도 프랑스 문단에서 왕따를 당했다. 실존주의에 대한 견해 차이로 사르트르와 틀어지고 알제리 독립을 반대하며
‘마이 웨이‘를 고수한 점도 한몫했지만, 노벨문학상 수상이 따돌림의 결정적 원인이었다. 20대에 『이방인』을 쓰고 40대에 노벨상을 받은, 젊고 잘생기고 인기 많은 소설가를 시기하지 않기가어려웠으리라(이 얘기는 유기환의 『알베르 카뮈』에 나오는데 재미도있고 의미도 있고 두껍지도 않은, 숨은 보석 같은 책이다. 카뮈의 팬이라면 꼭 읽어보시기 바란다).

나쁜 평가는 좋은 평가와 일대일로 상쇄되지 않는다. 우리는그렇게 생겨먹었다. 인간이 그렇게 진화했다. 내게 우호적인 사람들보다 나를 공격하려는 사람들에 주의를 기울이는 게 안전에훨씬 더 중요하니까. 그래서 인간은 부정 신호를 긍정 신호보다더 크게 받아들이며, 비판을 극복하는 데에는 대략 그 네 배의칭찬이 필요하다고 한다.

한때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무라카미 하루키와 무라카미 류를 나란히 세우는 것이 유행이었다. ‘투 무라카미스"라고도 했다. 지금은 아무도 그런 말을 쓰지 않고, 하루키와류를 비교하지도 않는다. 두 작가의 위상이 너무 달라졌다. 나는 그 분기점 또한 『노르웨이의 숲』이었다고 본다.

『노르웨이의 숲』같은 작품을 가진 소설가에게는 누구도 ‘재기발랄한 젊은 작가‘라는 표현을 더는 쓰지 못한다. 책이 엄청난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온갖 폄하를 당하고 의심을 받았지만, 거기에는 절대로 깎아내릴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아마 앞으로도 깎아내릴 수 없으리라.
37세에서 40세 사이에 하루키에게 일어난 일을 나는 혼자 권텀 점프‘라고 부른다. 물리학자들이 이 비유를 들으면 기겁하겠지만, 이미 경영학자들이 멋대로 그 양자 세계 현상을 경제 용어로 전용해서 쓰고 있으니까 뭐.

플롯에 대한 고민은 주제에 대한 고민에 비하면 약과다. 뭔가말하고 싶은 게 있는데 그게 뭔지 뚜렷이 짚을 수 없어서 헤맨기간이 길었다. 지금은 안다-2021년 한국 사회의 기원에 대해말하고 싶다. 지금은 제법 정연하게 그 이야기를 할 수 있다. 다행히.

이 원고가 어떤 평가를 받을지 잘 팔릴지 아닐지. 내가 퀀텀점프를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실패할 수도 있고, 그러면마음에 얼마간 타격을 입겠지. 하지만 커다란 시합에 출전하는젊은 운동선수들과 달리, 소설가에게는 기회가 자주 오고 현역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기간도 상당히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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