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살고 있는 진짜 현실 세계는 소설만큼그리 개연성 있게 굴러가지 않는다. 요즘은 세계 전체가 ‘예측하기 어렵다‘의 수준을 넘어, 숫제 맥락들이 사라지는 느낌마저 든다. 프랭크퍼트는 개소리가 넘치는 게 우리 문화의 특징이라고주장하는데,
그와도 상관있지 않을까. 개소리쟁이들이 움직이는세상이라니, 프로 거짓말쟁이로서 참으로 유감이다.

세상이 점점 더 복잡해지고, 직업 분야가 점점 더 세분화, 전문화되어서 리얼리즘 소설 쓰기가 그만큼 어려워졌다는 생각도 한다. 문학의 힘이 약해진 데에는 그런 요인도 있지 않을까 싶다.
소설이 현실 세계의 깊은 구석을 잘 살피지 못하게 되면서, 전문직업인 필자들의 에세이가 주목받게 된 것 같기도 하다.
그러한 환경 변화 속에서 전업 소설가로서, 더 발로 뛰어야 한다는 생각도 한다. 직업 세계가 깊어진 만큼 사람을 찾아 섭외하고,
먼 곳에 있는 이와 연락하고, 관련 정보를 검색하는 기술도 발전했다. 한 세대 전의 소설가가 국립중앙도서관이나 국회도서관에가야 얻을 수 있었던 답을 이제는 집에서 클릭 몇 번으로 찾을 수있다. 취재하는 소설가로 남자고 다짐해본다.

주제가 뭐냐는 질문에 이렇게 난감해하는 우리들이 한없이 순진하고 쓸데없이 심각한 걸까? 모터쇼나 가전쇼 무대에 오른 이들이 신제품을 발표하면서 주제가 뭔지를 말하는 데 어려워하는모습을 본 적이 없다. 다들 이번 신차의 콘셉트는 가족이라고, 이번 새 휴대전화는 휴머니티와 연결을 주제로 했다고 당당하게말한다. 제아무리 막장 드라마라도 홈페이지에 가보면 기획 의도가 ‘우리 시대 사랑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자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다들 주제가 뭐냐는 질문이 뭐가 중요하냐는 분위기다.
주제? 가족이야. 가족 좋잖아. 됐지? 그러면 이제 우리 마케팅 포인트를 보라고. 이 차는 트렁크가 엄청 넓어! 가족을 위한 세단이라니까. 어쩌면 직업인의 자세는 바로 이래야 하는 것일지도모른다.

한편으로는 나 또한 누구를 비판할 처지가 아니다. 동료 작가들의 활동을 보면서 용기와 위안이 아니라 시기와 질투심을 느끼는 순간이 자주 생겼다. 지금 당장 당신의 SNS 계정을 삭제해야 할 10가지 이유』의 저자 재런 러니어는 자신 역시 그랬다고 고백한다. 러니어는 소셜 미디어들이 집단 내 서열에 집착하는 인간 본능의 스위치를 켠다는 가설을 제안하기도 한다.

반면 ‘하면 도움이 될 테지만 억지로 할 필요는 없다’는 정도의 유보적인 의견도 있었고, 홍보 목적으로 운영하는 계정은 어차피 별 매력이 없으니 좋아서 하는 게 아니면 안 하는 편이 낫다는 답도 있었다. 일반 단행본 작가라면 필수지만 소설가라면모르겠다, 인상적으로 운영되는 작가의 SNS가 딱히 없어 보인다는 답도 있었다.

지금 우리의 세계와는 미묘하게 달라진 평행우주를 배경으로 한다. 연합군이 독일을 이기기는 했지만 이스라엘은 건국되지 않았고, 유대인들은 미국 알래스카의 자치 지구에 집단 거주하고 있다(실제로 미국은 그런 계획을 검토한 바 있었다).
「알래스카의 아이히만」 한국판에는 원자폭탄이 떨어진 일본 도시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가 아니라 히로시마와 기타큐슈라고 서술하는 대목이 나온다. 그렇게 써서 소설 속 배경이 독자가 살고있는 세계가 아닌 평행우주임을 드러내려는 의도였다. 기타큐슈는 실제 역사에서도 미국이 원래 폭격 후보지로 삼았던 곳이다.
일본 출판사 측은 해당 대목의 기타큐슈를 나가사키로 바꿔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어릴 때부터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대해배워온 일본 독자들은 이 설정을 쉽게 이해하지 못할 거라면서.
원폭 피해지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인 것은 한국 독자에게도 상식인데….… 이 서술은 나름 중요한 장치인데………. 결국 일본 출판사의 의견을 따르기는 했지만 그 판단이 옳았는지는 여전히 자신이 없다.

딱히 통계나 근거는 없지만 최근에는 드라마업계가 영화업계보다 소설가들을 더 열심히 물색하는 느낌이다. 내가 만난 프로듀서들의 설명은 이러했다. 첫째, 한국 드라마의 장르와 소재 폭이 넓어지면서 프로듀서들이 기존 작가군에서 외부 스토리텔러로 눈을 돌리게 됐다. 둘째, 작가가 연출자보다 우위에 있는 한국드라마 제작 환경을 바꾸고 싶어 하는 프로듀서들이 많다. 셋째,
인기 드라마 작가들의 몸값이 너무 높아졌다.
반대편에서 바라보면 기괴한 현실이다. 수많은 지망생들이 영화와 드라마 시나리오 작가를 꿈꾸며 분투 중인데 이토록 커다란 미스매치가 존재한다. 영상업계와 문학계에서 작가들의 데뷔방식이 어떻게 다른지, 영화 제작자들이 왜 공모 방식을 선호하않는지 등에 대해서는 논픽션 『당선, 합격, 계급』에 취재해 쓴바 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찾아보시길.

칼럼 원고가 쌓이면서 그런 우려는 점차 사라졌다. 내 식견이그사이 풍부해졌다기보다는, 다른 ‘지식인‘들의 처지도 나와 다를 바 없다고 여기게 되어서다. 깐깐하게 따져보면 그네들 역시자기 전문 분야의 지식을 일종의 문학적 비유로 활용해 상식적인 주장을 펼치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가끔은 그들이 한 분야에깊이 몸담고 있기에 오히려 그 견해를 경계해야 할 때도 있다.

해외 도서전에 같이 참가하는 소설가들과는 친해질 수밖에 없다. 공항 로비에서 함께 멍하니 앉아 있다가 같이 비행기에 오르고, 타지에서 저녁에 함께 맥주를 마시고, 푸석푸석한 얼굴로 호텔 조식 뷔페에서 커피도 함께 마시고, 그렇게 며칠씩 밥을 함께먹으며 "한국 소설의 특징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같은 질문에 함께 난감해하다 보면, 그렇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요즘 문학 동인을 하나 만들려고 몇몇작가들에게 메일을 보내고 있다. 무리 지어 다니는 건 내 체질과맞지 않지만, 함께해야 힘이 실리는 일도 있는 것 같다. 결성하려고 하는 동인의 이름은 ‘월급사실주의‘다. 운동권문학, 민중문학과 거리를 두는, 우리 시대에 맞는 리얼리즘 노동문학 소설을 쓸작가들을 모은다. 먼저 소설가 열 명이 앤솔로지를 내는 일부터시작하려는데 지금까지 나를 포함해 일곱 명이 모였다.
동인의 취지와 목표, 대강의 규칙을 설명하는 메일을 공들여 써서 친분이 있는 소설가들에게 보냈다. 내가 쓴 다섯 통의 메일을다 합하면 거의 단편소설 한 편 분량이었다. 어느 분은 "유료 뉴스레터로 만드셔도 되겠던데요" 하고 농담을 했다.
‘이분은 꼭 같이하고 싶다. 이분이라면 동참해주지 않을까‘ 하는소설가 중에 거절 의사를 밝힌 분도 있었다. 아쉽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런가 하면 ‘이분이 관심 있어 할까 스스로도 고개를 갸웃하며 보낸 메일에 흔쾌히 참여 의사를 밝힌 작가님도 있었다. 모를 일이다. 동인의 첫 소설집이 일종의 문학적 선언이 될텐데, 책을 내고 나면 함께하겠다는 뜻을 밝히는 분들이 더 계시지 않을까 기대한다.

한 번 더 강조하지만 이는 절대로 한국문학계 특유의 문제가아니다. 카뮈도 프랑스 문단에서 왕따를 당했다. 실존주의에 대한 견해 차이로 사르트르와 틀어지고 알제리 독립을 반대하며
‘마이 웨이‘를 고수한 점도 한몫했지만, 노벨문학상 수상이 따돌림의 결정적 원인이었다. 20대에 『이방인』을 쓰고 40대에 노벨상을 받은, 젊고 잘생기고 인기 많은 소설가를 시기하지 않기가어려웠으리라(이 얘기는 유기환의 『알베르 카뮈』에 나오는데 재미도있고 의미도 있고 두껍지도 않은, 숨은 보석 같은 책이다. 카뮈의 팬이라면 꼭 읽어보시기 바란다).

나쁜 평가는 좋은 평가와 일대일로 상쇄되지 않는다. 우리는그렇게 생겨먹었다. 인간이 그렇게 진화했다. 내게 우호적인 사람들보다 나를 공격하려는 사람들에 주의를 기울이는 게 안전에훨씬 더 중요하니까. 그래서 인간은 부정 신호를 긍정 신호보다더 크게 받아들이며, 비판을 극복하는 데에는 대략 그 네 배의칭찬이 필요하다고 한다.

한때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무라카미 하루키와 무라카미 류를 나란히 세우는 것이 유행이었다. ‘투 무라카미스"라고도 했다. 지금은 아무도 그런 말을 쓰지 않고, 하루키와류를 비교하지도 않는다. 두 작가의 위상이 너무 달라졌다. 나는 그 분기점 또한 『노르웨이의 숲』이었다고 본다.

『노르웨이의 숲』같은 작품을 가진 소설가에게는 누구도 ‘재기발랄한 젊은 작가‘라는 표현을 더는 쓰지 못한다. 책이 엄청난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온갖 폄하를 당하고 의심을 받았지만, 거기에는 절대로 깎아내릴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아마 앞으로도 깎아내릴 수 없으리라.
37세에서 40세 사이에 하루키에게 일어난 일을 나는 혼자 권텀 점프‘라고 부른다. 물리학자들이 이 비유를 들으면 기겁하겠지만, 이미 경영학자들이 멋대로 그 양자 세계 현상을 경제 용어로 전용해서 쓰고 있으니까 뭐.

플롯에 대한 고민은 주제에 대한 고민에 비하면 약과다. 뭔가말하고 싶은 게 있는데 그게 뭔지 뚜렷이 짚을 수 없어서 헤맨기간이 길었다. 지금은 안다-2021년 한국 사회의 기원에 대해말하고 싶다. 지금은 제법 정연하게 그 이야기를 할 수 있다. 다행히.

이 원고가 어떤 평가를 받을지 잘 팔릴지 아닐지. 내가 퀀텀점프를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실패할 수도 있고, 그러면마음에 얼마간 타격을 입겠지. 하지만 커다란 시합에 출전하는젊은 운동선수들과 달리, 소설가에게는 기회가 자주 오고 현역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기간도 상당히 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