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서 만나리휘돌아 얼싸안고 소용돌이치며만나서도 마음놓고 살 섞고 싶어뒤돌아보는 물굽이반쯤은 넋 놓고반쯤은 눈 감고몇길 물속은 숨죽여 흐르지만나란히 흐르다 이따금 건너다보던남과 북의 두물머리끝내는 만나서 이마 부비며멈칫거리며 흐느끼며천천히 한 빛깔로 태어나리맨몸 뒤척이며서로 다른 체온 낯설어하며

해 어스름푸른 숲 위를 맴돌던 새 한 마리한순간 숲속으로 떨어지듯 내려앉는다다시는 떠오르지 않고 대신바람 한줄기 어지러이 숲을 흔든다어머니 먼 길그렇게 보내고 말았다

젖은 종이처럼 달라붙는 습기 속에드러누워 나를 썩힌다썩히는 일의 깊은 경건함굳은 빵과 짓무른 채소와 먹다 남은 과일들집 안의 먼지 쌓인 구석구석까지휘감기는 축축한 혓바닥우울과 비관과 낙심을 뒤섞어형체도 없이 썩히고 썩혀서뭉글뭉글 아름다운푸른곰팡이 한 무더기

우는 아이를 업고낯선 길을 한없이 헤매었다길 위에 던져진 무수한 신발들 중에내 신발 찾다 찾다 잠이 들었다붉은 황톳물 넘치는 강을 내려다보며해가 지도록 울었다. 제가그렇게, 한 해가 갔다

가을 금산사 가서절은 안하고보리수나무 아래 서성이다노스님 손등 같은 보리수 잎 하나책갈피에 넣어왔다입 다물고 눈 감은 부처바로 보지 못하고보리수나무 아래가을 땡볕 피하다공양간 밥만 축내고 왔다

마비된 내 육신 내 영혼을
끝없이 끌고 다니는
내 영원한 적인그대는 누구인가

미궁 같은 이 도시, 밤이면 하마
달이라도 뜰까 별이라도 돈을
까마른 입김 불며 불며
유리창을 닦는다

나는 더이상불만의 뿌리가 되기를 원치 않는다.
철강과 늑골과 소나무로 엮인일정한 규격의 도시를 멸시한다대지의 가장 깊은 자궁에서 태어난내 아기의 손바닥이더이상 더럽혀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꿈이란 원래 갈기갈기 찢어진 안개더미 같은 것단, 이 금기는 기한이 있소Kos구멍난 벽을 빵과 소금으로만 채우려는 자들이그대의 지붕 위를 떠날 때까지!

더욱 연마된 우리의 신음소리다시 돌아선 무대 단단히 목 조이며막을 올린다무대를 적시는 땀방울다시는 퇴장당하지 않기 위해

우리가 원하는 것은눈의 사치가 아니라 한모금의 냉수였다.
저 높은 산정과 그 위에서부내려다보고 섰는 몇그루 나목과그나목이 떨어뜨리는 몇방울의 땀이었다동행이여스스로의 땀으로 채우는 갈증이 갈증이 갈증으로 끝나기야 하겠는가가장 힘든 것은가장 쉽게 이루어지는 것을이 은밀한 모의가 끝날 때이 허명(虛名)의 흰 벽이 녹아 흐를 때

가로수는 정직하다 자신이 차지한몇 평방미터의 면적과 늘 만나는 거리의 몇점 풍경과팔만 뻗으면 언제나 닿는 쾌적한 공기를 기억한다이마 위에 내려앉는 서릿발이나어느날 새벽의 유황빛 하늘에 놀라지 않고가지에 찢긴 연기나 혹은겨드랑이에 숨겨둔 마파람에똑같이 당당하다

달이, 그 희고 빛나는 팔을 뻗어칠흑 어둠에 묻힌집과 가로수와 행인 들을하나씩 건져내고 있다곁에서 참담한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는수천만의 별들

다시 돌이키기를 원치 않으므로옛날은 다만 옛날일 뿐돌이키기를 원치 않으므로라고 얘기하는너의 앞에 비로소 얘기해야지

절망의 한가운데서도 아직 색칠하지 않은너의 욕망낡은 벽, 흔들리는 불빛다 마셔버린 술병처럼 공허한 방 안에서넌 이제 얼마만큼 수척해져가고 있는지

아침의 붉은 햇살과 저녁의 녹슨 바람이 만날 땐지나가던 작은 미물도 이마를 맞대고 입맞춤을 한다만나기 힘든 시간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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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가 놀랄 정도로 자기 방식대로 엄마가 될 수 있었던
"5덕분에 그녀는 모성을 즐길 수 있었다. 그녀는 일기에 썼다. "자식의 아름다움은 내가 최근에야 가담하게 된 음모다." 그녀는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강렬한 느낌을 갖고 있었고, ‘너는 이런사람이야‘라고 남들이 말하는 것 이상의 존재가 되고자 했다.
그것을 평범한 가정생활과 결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그녀는오랫동안 생각했다. 파트너와 함께 자신의 방식으로 모성을 정의하는 일을 해내게 될 때까지는

답변하기 전 그녀는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더니 한두 번인가 "음・・・・・・." 하고 말했다. 그리고 답했다. "내 작품은 강철칼날로 어떤 남자의 자지 밑동을 잘라버리는 얘기지."
쉬는 시간이 되자 강의실은 텅 비었고, 확실치는 않지만 열네 명쯤 돌아왔다. 어쩌면 열한 명이나 열둘 밖에 안 됐는지도모르고

그녀는 여전히 탐색하며 성장하고 있는 반면, 폴은 자신을만족시켜준 삶에 안주해 있다고 앤절라는 느꼈다. "아니, 도대체내가 왜 결혼을 했을까?"라고 그녀는 일기에 적었다. "나는 계속나아가고 싶다. 폴을 떠나서가 아니라 폴과 함께. 하지만 그는나처럼 발이 가볍지 않지. 처음으로 자신이 그들의 감정적 불평등에 공모하고 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그를 돕기 위해 내가 노력하고 성장할 때, 변화에 굴복할 때, 그냥 넘어가고 다정하게 행동하고 좋은 아내가 해야 하는 모든 일을 할 때, 내 좆 같은 이해심과 친절한 가슴으로 나는 매일매일 모든 방면에서 나자신을 가둘 더 좋고 튼튼한 우리를 짓는 셈이지 "

플러는 이렇게 생각했다. "글쎄, 우리 모두는 사람들이 아기들한테 무슨 말을 하는지 안다. 사람들은 말한다. ‘자, 어서, 일어날 시간이야. 여기에다 발 넣어. 이제 우리 간다. 여기저녁밥이야. 우린 그냥 아기들한테 중얼중얼 말한다. 하지만 앤절라는아기들이 완벽하게 지적인 존재들이고, 이 모든 중계방송이 필요치 않다고 생각하는 게 분명했다. 아마도 그녀는 아기를 일종의 열등한 종으로 여길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녀가 생각하기로 아기는 동등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

소설의 결말부에서 흥청망청한 생일 파티가 열리는 동안, 노라 챈스는 옛사랑과 짝을 이루는데, 그가 그녀와 그녀의 쌍둥이여동생 도라에게 기적의 선물을 안겨준다. 바로 그들이 직접 키울 쌍둥이 아기들이다. 챈스 자매는 얼마 전 75세가 된 참이지만, 개의치 않는다. 파티에서 떠날 때, 그들은 뒤늦은 모성이라는 정규직을 수행하기 위해 최소 20년은 더 살기 위한 계획을세운다.

돌봄 노동은 시간을 변화시킨다. 인간을 과거와 미래에 연결시키고, 우리를 현재에 묶어두며, 동시성을 요구하고, 자아의순간들을 허용할 뿐 아니라, 우리를 노스탤지어와 미래성에 위탁하면서 말이다. 카터의 소설은 노라 챈스가 새로운 시작을 위해 젖병과 분유를 사러 24시간 약국으로 향하면서 다음과 같은문장으로 끝난다. "이런 영예로운 멈춤은, 진실로 말하건대, 불협화음을 내지만 상호보완적인 우리 삶의 서사 속에서 때때로일어난다. 만일 당신이 거기서 이야기를 멈추기로 선택한다면,
그렇게 멈춰선 채 더 멀리 나아가길 거부한다면, 당신은 그걸 해피엔딩이라고 불러도 좋다.

협조적인 파트너를 찾아라. 스스로의 힘으로 해내라. 아이를 먼저 낳고 그 후에 경력을 쌓아라. 경력을 먼저 쌓은 뒤에 아이를가져라. 돈을 벌어라. 복지제도를 활용하라. 아이는 하나만, 아니셋 정도, 뭐 일곱정도 낳아라. 닫힌 문 뒤에서 작업을 하고,
거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책상 위에 아기를 올려두고 글을 써라.
"어떻게 하면 자신의 적성과 관점, 자립성과 생각을 포기하지 않고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 이 질문의 답은 하나가 될 수없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여성들을 보면, 어느 정도 ‘무법자 같은모성‘이나 함께 같은 길을 걷는 친구들이 도움이 된다는 것을알 수 있다.

어머니의 시간은 앨리스 닐과 앤절라 카터의 경우처럼 "지연된 모성의 시간이며, 르귄의 경우처럼 작가이자 어머니라는동시적 존재의 시간이고, 바이엇의 경우처럼 끝나지 않은 연속적 슬픔의 시간이자 로드의 경우처럼 미래 시제로 된 변화의 시간이기도 하다. 앨리스 워커의 어머니를 그녀의 아이들과 정원으로부터 멀어지게 한 것은 착취적이기까지 한시간 빈곤이다.
정체된 커리어의 일시적 밑바닥. 빠른 속도로 흐르는 암페타민의 시간. 아이들이 집을 떠나 독립하면 곧장 풀려버리는 시간의 매듭.

시간과 더불어 창작자 엄마가 가져야 할 두 번째는 자기(self)이다. 자신에게 예술을 창조할 권리가 있다는 확신과 자기 둘레의경계선이 필요하다. 자기 존재의 조각을 여기저기 거저 줄 필요는 없다.

나는 이 형상들이 필연적 공허함, 에이드리언 리치가 예술의 "크리애트릭스(creatrix, creative+matrix), 예술의 매트릭스"라고부른 "빈 공간"을 포함한다고 생각한다. 르 귄은 그 공간을 물을운반하는 항아리처럼 진리를 담을 수 있는 용기이자 잠재력으로 묘사했다. 헵워스의 가장 아름다운 조각품 중 일부는 둥글고속이 빈 형태에 팽팽한 철사가 달려 있는데, 이 작품들 또한 모성적인 것으로, 강렬한 감정, 강렬한 통제, 그리고 견딜 수 없는침해 가능성(availability)에 대해 말하는 것 같다.

이 이야기에서 제외된 사람들은 유용한 것들을 찾아 집으로 가져오기 위해 화살보다 훨씬 더 오래된 발명품인 가방이나그물을 사용하는 수집 채렵인이다. 운반가방은 크로노스에서일어나는 모성 서사(marternal story)의 형상일 수도 있고, 만성적시간, 신체, 성, 자아, 시간 자체와는 관련 없는 숙고를 낳는 시간일 수도 있다. 나는 내가 관찰한 것들과 여러 일화를 비롯해 눈에 띄는 모든 유용한 것들을 수집해 이 책을 어머니들의 생각과경험, 기쁨과 고통, 자기상실과 자기형성의 운반가방으로 만들기위해 노력했다.

완수할 수 없는 과업이 주어지자, 방앗간 주인의 딸은 도깨비와의 거래를 통해 스스로 목숨을 구하고, 왕과 결혼한다. 남편의 성에서 그녀는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강해져야 했다. 결혼1년 후, 그녀를 도왔던 작은 도깨비가 찾아와 그녀의 첫째 아기를 대가로 요구한다. 그녀는 풍부한 지략을 이용해 숲에서 도깨비의 이름을 알아냈고, 자신의 이름을 대면 아기를 빼앗지않겠다는 도깨비의 수수께끼를 풀어 아기와 모성 모두를 지켜낸다.

이 책을 쓰는 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다닐 때 이 책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는데, 책을 마치고 보니둘 다 대학생이 돼 있었다. 길고 느린 팬데믹 시대가 아이들의인생 계획을 바꾸었고, 여전히 아이들은 집 안팎을 오가며 살고있다. 그들의 팔다리는 더 이상 옷소매 바깥으로 자라나지 않는다. 그들의 몸에서 일어난 점진적 성장의 흔적은 여전히 부엌 벽에 수직을 따라 연필로 기록돼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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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벌어먹고 살 수 있다는 생각은 그녀에게 유력감(sense of strength)을 주었다. 1961년이 될 때까지 그녀는 영문학학사학위를 받고,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문헌정보학 석사학위를받았으며, 이후 마운트버논의 도서관에 일자리를 얻었다. 그녀는 커다란 욕조가 있는("의심이 피어오를 땐 목욕을 하라."라고 그녀는 한때 조언했다.47) 안락한 아파트로 이사를 하고, 자신의 새로운 자립을 만끽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에드 롤린스를만났다.

그것은 자신이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있다고 곧잘 느끼며, "극단적인 것들이 유지하기 힘들고 때로는 고통스러움에도불구하고 평온하게 중간에 그은 직선을 따라 운용되는 계획보다 왜 항상 더 편안하게 느껴지는지 의아해하던 여성을 위한결혼식이었다. 51

부모로서 더 강해지고 보다 큰 목적의식을 갖게 됐다고 느끼는 동시에 오드리는 자신의 삶이 "시적 흥분"으로부터 거부당하고 있다고 느꼈다.53 모성과 결혼, 정치 참여가 자신의 관심전면을 장악하고 있는 탓이었다. 시간이 부족했던 그녀는 베스의 기저귀 가방에 넣어둔 종이 조각들에 이미지와 구절들을 적어놓았다. 완성된 시들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시선집과 주류 잡지 니그로 다이제스트》에 수록돼 출판됐다. 1964년에는 시인랭스턴 휴즈가 『새로운 니그로 시인들의 미국이라는 선집에 그녀를 포함시켰고, 이는 그녀의 커리어에 중요한 도약의 발판이 되었는데, 특히 《타임》이 그녀를 뽑아 상찬한 이후엔 더욱 그랬다.

2그해 겨울 오드리는 작은 출판사를 차린 다이앤으로부터전화를 한 통 받았다. 다이앤이 말하길 새로운 정부기관인 국가예술기금위원회(NEA)로부터 보조금을 받았는데, 바로 지금이야말로 오드리의 책을 출판할 때라는 것이었다. 오드리가 직접편찬한 시를 묶은 『최초의 도시들』의 수록작들은 그녀의 커리어 내내 반복될 주제들을 다룬다. 부모와의 관계, 자식들과의 관계, 인종적 정체성, 육체적이고 낭만적인 사랑에서의 쾌락, 미국의 많은 흑인 작가와 과학소설가들처럼, 그녀는 스스로를 희망과 변화의 미래시제로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여성 작가가 빠지는 가장 위험한 함정 중 하나는 작품으로 존경받는 것에 더해 자기 자신으로 사랑받고 싶다는, 위대한 예술가일 뿐 아니라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싶다는 욕구다. 앤절라 카터‘

소녀로서 수전은 자기 엄마의 모성을 재창조하는 공상을 즐긴다. 오직 더 나은 쪽으로만. "나는 아들을 낳을 거야. 진짜 엄마가 될 거야. 이것은 내가 진정한 어른다움을 갖춘 채 어린 시절에서 벗어나기 위한 환상이다. 자유. 나는 나 자신인 동시에 엄마(좋은 엄마)이며, 만족하는 예쁜 아이다."

그녀의 지성 역시 주의를 요구한다. 손태그는 어느 자전적인글에서 "스스로 감금됐다고 느끼는 아내이자 엄마로서의 역할을 회피하는 데 온 에너지를 집중"하는 어떤 여자를 묘사한다. "끊임없이 그 역할을 하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수전은 사진작가 애니 리버비츠와 함께 말년을 보낸다. 모든 사람이 그 둘이 커플임을 알고 있을 때조차, 커밍아웃이 과거보다훨씬 더 안전해졌음에도 그녀는 그 사실을 부인한다.

언제나 우리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위한다는 뜻의이 사랑은 어떤 종류의 사랑인가? -에이드리언 리치

글은 그녀의 재능과 야망의 흐름에 따라 흘러가고 있다. 그녀는 민권운동의 성공에 힘을 얻었고, 미국 북부에서 몇 년을보낸 후 고향인 남부로 돌아오면서 용기를 얻었다. 그녀는 남부흑인 여성의 경험에서 비롯된 시, 단편소설, 그리고 두 번째 소설에 대한 아이디어로 충만하다고 느낀다. 글쓰기는 스스로를돌보는 행위로, 어린 시절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앨리스는 문화적으로 풍요로운 이튼턴의 흑인 공동체에 속하기를 좋아했지만, 때때로 그것이 또 다른 제약이 된다는 것을깨달았다. 새로운 자신을 시도하며 뉴욕을 돌아다닌 오드리와달리 앨리스에게는 갈 곳이 없었고, 그녀에게는 훨씬 적은 자유만이 허용되었다. 유년 시절 앨리스는 "개인주의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고, 그런 행동을 자기확인이라기보다공동체에 대한 거부"로 이해했다.

앨리스는 딸이 자신의 상처를 완전하고 가치 있는 것으로다시금 정의내린 것에 대해 큰 기쁨을 느꼈다. 동시에 딸의 손길을 묘사하면서 ‘엄마가 하듯‘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자신의부모가 자신에게 해줄 수 없었던 것을 리베카가 자신에게 해주기를 바란다는 무의식적 바람을 암시한다.

으로선택되지 않은 모성은 앨리스가 『컬러 퍼플』을 포함한 초기소설 세 편에서 공통적으로 다룬 주제이다. 그레인지의 아들 브라운필드 코플랜드는 멤이라는 여성과 모욕적인 결혼을 하게 되는데, 임신은 그가 그녀의 자존심을 무너뜨리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이다.

앨리스는 딸과의 관계를 통해 필요한 확신을 찾았고, 자신은 리베카의 어머니가 아니라 동지라고 주장했다. 리베카가 아홉 살이었을 때 쓴 자기만의 한 아이」에서 그녀는 자랑스럽게썼다. "아이와 저, 우리는 함께입니다. 우리는 엄마와 아이입니다. 하지만 사실 우리는 우리의 온 존재를 부정하는 모든 것에저항하는 자매입니다."

"당신처럼"이라는 표현에 의문을 표했을지도 모르지만, 여성 공동체를 구현케 해준 동시에 가까운 관계에서 선을 그을 수 있는용기를 전해준 새로운 페미니즘에 대한 앨리스의 이해는 진심이었다. 그레인지 코플랜드』에서 여성들 간의 연대는 크게 강조되지 않았지만, 몇 년 후 『컬러 퍼플』의 주요 주제가 될 것이었다.

이곳까지 오기 위해 앨리스는 모성에 대한 모호한 신화를거부해야 했다. 그리고 그녀가 강조하며 덧붙인 것처럼 우리는모성과 "여전히 일정한 거리를 둬야" 한다.

육체적 관계와 환경의 변화는 가장 혁명적인 개혁가들조차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정신적·감정적 상태를 변화시킨다. 도리스 레싱‘

모든 시대가 변화의 시대이긴 하지만, 우리 시대는 거대하고 급격한 윤리적 · 정신적 변형의 시대다. 전형은 성공.
을 가로막는 장애가 되고, 크고 단순한 것들은 복잡해지며, 혼돈이야말로 명쾌한 것이 되고 있다. 그리고 지금 우리 모두가 사실로 알고 있는 것들은 예전에 몇몇 사람들이 생각해낸 것임이 드러나고 있다. 어슐러 르 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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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는 자본주의보다 엄마들에게 관대했다. 앨리스는
"사회주의적" 뉴딜 정책 덕에 10년간 돈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공황기 동안 일자리를 창출하는 임무를 수행하던 공공사업진흥국은 1933년 예술가 고용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연방 예술프로젝트는 공공건물을 위한 벽화를 디자인하거나 사진을 찍는, 혹은 앨리스처럼 6주에 한 번 그림을 제출하는 미국의 예술가 수천 명에게 생활비를 지불했다. 그리니치빌리지의 사회적리얼리즘 작가들이나 할렘 르네상스 시대의 유명인사들, 마크로스코나 잭슨 폴록과 같은 미래 추상 회화의 슈퍼스타들 모두이 프로젝트의 수혜자였다. 전후 뉴욕이 세계의 미술 수도로서명성을 누릴 수 있었던 데에는 신진 예술가들에게 꾸준한 지원을 제공해준 이러한 프로젝트가 한몫했다.

창조적인 삶에서 모성이 지닌 위험성은 처음 경력을 시작하던순간을 버티게 해주었던 성공의 가속도가 줄어들면서 고립과낙담이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다. 흔히 예술가들의 경력은 종종천천히 성장한 뒤 늦게 성숙한다. 화가는 성공 여부를 전혀 예측하지 못한 채 작품제작에 수년을 투자해야 한다. 젊은 나이에예술을 한다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성과 없이 중년이 된예술가도 빛날 수 있을까? 신인도, 인정받는 작가도 아닌 사십대의 앨리스는 뉴욕의 예술 커뮤니티에서 한 발짝 떨어져서 자신의 경력이 정체되기 시작했음을 알아차렸다.

창의성과 예술에 대한 가장 중요한 질문들은 동시에 가장 답하기 힘든 질문들이기도 하다. 앨리스의 모성이 그녀의 예술을 더훌륭하게 만들었나? 많은 창작자 엄마들은 아이들과의 관계가그들의 감수성을 심화시키고 한계를 넓히며 어슐러 르 귄의 표현대로 아이들과 "뼛속까지 더 가까워지게 만들었다고 주장해왔다"

가정이 제일 중요했지만, 제작업도 항상 거기 있었습니다. "음,
이번 주나 다음 주, 그 다음 주에는 작업을 할 수 없겠지만, 어쩌면 6개월이나 1년 후쯤 되면 다시 할 수 있을 거야."라고 말하는 여자들에게 그다지 공감을 해본 적이 없어요. 전문 작가건 그렇지 않건 간에, 매일매일, 심지어 자정에도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남자는 어떤 종류의 제약을 거부함으로써 그들 자신이 되고,
여자는 그것을 수용함으로써 그들 자신이 된다. 여자들은 얽매여 있다. 여자들은 스스로에게 심각한 폭력을 가하지 않고는위반할 수 없는 금기의 원심력을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는 삶에 얽매여 있다.

엘리자베스 스마트는 자유와 권위를 낭만적인 반항이나 자기파괴적인 열정과 혼동했다. 그 결과 그녀는 훌륭한 책 한 권과네 명의 아이들을 남긴 채 저렇게 살면 안 된다는, 다른 여성들의 본보기가 되었다.

‘모성‘과 ‘지성‘을 함께 묶어 생각하는 것은 이 각각의정체성이 지닌 철저함에는 물론, 양립 불가능한 것으로여겨지는 두 가지 정체성의 모순적인 결합 모두에 도전함으로써 오랜 전통을 뒤흔들 것을 요구한다. -게일 와이스

문학은 여성의 일이 될 수 없다. 그리고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 여성이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를 적절하게 수행할수록 문학을 통해 성취와 즐거움을 느낄 여유는 줄어들 것이다.

내 활력이 어디로 가면 좋을까? 책 혹은 섹스 야망 또는 사랑? 불안이나 관능? 둘 다 가질 수는 없으니.5

만약 여러분이 여성 작가라면, 언제 어디서든 이런 질문을 받게 될 것이다. "스스로를 작가라고 여기는 게 먼저인가요, 여성이라고 생각하는 게 먼저인가요?" 조심하라.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은 글쓰기와 여자를 둘 다 싫어하고 두려워한다. 마거릿 애트우드

전통적으로 "여성의 일"이라고 불려온 것은 다음 세대를 키워내고, 집안 살림을 유지하고, 사람들이 계속 살아갈 수 있는법을 제공하는 것을 포함한다. 내가 하는 작업 역시 여성의 전통적 노동과 비슷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단지 형태만 다를 뿐이다. 준 조던

좋은 딸, 좋은 엄마, 좋은 아내, 좋은 애인, 좋은 선생님 등 무엇이 되든 간에 내 모든 삶은 다른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하는 것이다. 나 자신을 위해 하는 유일한 일은 글쓰기다. 아무것도 대답할 필요가 없는 진짜 자유로운 세계이다.

에그러나 허구 속에서 남자가 된다는 것은 또한 여성만의 오롯한 자유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제대로 상상할 수 없다는 걸 의미하기도 했다. 어슐러는 자신이 꿈꿔왔던 강력한 운명을 여성들, 특히 어머니들에게 어떻게 부여해줘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 "다시 말해 자신이 자유롭다는 인식입니다.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지요. 결코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없을 것입니다. 아마도 아주 불완전하게만 그렇지요. 오로지 하나의 행위에서만, 자신이 움켜잡을 수 있는 짧은 순간에 책상에앉아서 글을 쓰면서 정신의 호수에서 물고기를 낚는 여성이 될때에만 자유롭습니다. 하지만 이 행위 속에서 우리는 책임 있는존재입니다. 이 행위 속에서 우리는 자율적입니다. 이 행위 속에서 우리는 진정으로 자유롭습니다."

모성애 앞에서는 원대한 야망이나 절박함. 개인적 우상,
욕구는 모두 꿈결 같은 한때가 돼버린다. 하지만 그것은계속해서 그녀를 사로잡고 현실 속으로 끈질기게 출몰한다. 루이스 어드리크

때로 아이들이 집을 떠나고 배우자와 이별하거나 배우자가사망하면, 마치 깊은 수원에서 샘이 솟아오르듯이 모든 에너지와 창작 기술과 통찰력과 인내심이 되살아나고, 가사에 들어가던 모든 시간이 자아로 되돌아와, 유령이 된 것 같았던 창조력이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아 활기를 띠기 시작하곤 한다. 62세에작가로서 커리어를 시작했던 어슐러 르 귄의 어머니인 시어도라크로버의 경우가 그랬다. 60세에 소설을 출간하기 시작해 결국당대 영국의 가장 위대한 소설가 중 한 명이 된 퍼넬러피 피츠제럴드의 경우도 그랬다. 그녀 또한 팜므 메종, 즉 집사람이었는데,
부르주아의 작품들에서 상징적으로 표현되던 것이 그녀에게는실제 현실로 일어남으로써 그녀는 작가적 소명을 회복할 수 있었다. 그녀의 집이 실제로 산산조각 난 것이다.

누군가 그녀에게 그녀 자신에 대해 물으면, 그녀는 "시를 암송하곤 했다. 그러면 그 시 어딘가에 그 느낌, 정보의 가장 중요한 조각이 있었다." 그녀는 결국 "나를 대신해 말해줄 다른 시들을 찾을 수 없을 때, 달리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말하기 위해" 글쓰기를 시작했다.

더 많은 것을 원한다는 건 더 취약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녀의 친구 제니는 열다섯 살 때 자기 엄마와 큰 언쟁을 벌이고,
카리스마 넘치지만 신뢰하기 어려운 아버지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머지않아, 오드리가 알아내지는 못했지만 상상할 수는 있는이유로, 제니는 자살했다. 친구의 병원 침대 옆에 오드리가 앉아있었지만 친구는 쥐약을 삼켰고, 의사들은 그녀를 살릴 수 없었다. 오드리는 일기에 "나는 그녀를 너무 사랑했다. 그래서 그녀를 말릴 수가 없었다."라고 썼다.

1954년 멕시코 쿠에르나바카에서 그녀는 조국의 박해를 피해 도망쳐온 미국인 그룹의 일원인 또 다른 연상의 여인을 만났다. 그녀는 오드리가 자신의 성정체성을 인정하고 주장할 수 있도록 도왔다. 언론인 유도라 개릿은 사랑하는 것뿐 아니라 사랑의 행위를 받는 방법, 스스로를 레즈비언이라 부르고 그것에 자긍심을 느끼는 법, "사랑하고 살아가며 그 이야기를 솜씨 좋게하는 법"을 오드리에게 가르쳤다.

물웅덩이에 나를 몰아넣고 익사할 때까지 울고 싶다. 이전의그 긴 세월, 내 안에는 때때로 바람이 비명을 지르고 울부짖으며 먹이를 찾아 헤매는 어둡고 텅 빈 동굴이 있었다. 때때로 모든 것을 목 졸라 침묵하게 만드는 어떤 진공 하지만 이 동굴은정의를 제대로 내릴 수 없어 끝장낼 수도 없었다. 이제는 그게뭔지 알 수 있으므로 끝낼 수 있다. 그것의 이름은 외로움이며,
그것은 끝없는 죽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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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 플롯에는 마음을 사로잡는 힘이 있는데, 올바른 상황에서라면 배우자와 자녀의 사랑이 기쁨, 지지, 자유, 강인함의강력한 원천이 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토니 모리슨은 엄마가 되는 일이 "내게 벌어진 가장 해방적인 일"이라며 "나는(그것이 무엇이었건 간에) 내가 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누군가 내게 그렇게 되라고 요구하기까지 했다. 46 어슐러 르 귄은 결혼생활과 자녀들을 통해 작업을 계속 할 수 있게 해주는 안정감을찾았다.

20세기의 여성 창작자들은 자신이 자녀들뿐만 아니라 남편과애인들에게마저 이타적(selfless)일 것이라는 기대에 맞서 싸웠다.
전통적 결혼관계 안에서의 양육은 이들 여성을 정서적으로 갉아먹었고, 그 결과 이들은 창작에 필수적인 독립심을 빼앗겼다.
여성들은 감당 불가능한 노동에 끊임없이 부딪혔다. 시간이 충분치 않기 때문만이 아니라 배우자, 가족, 공동체가 이들에게 지나친 요구를 하거나 작업을 그만두라고 부추겼기 때문이다. 어드리크는 여성 작가들이 "배우자나 가족과 일부러 거리를 두지않으면 완전히 먹혀버리곤 했다고 설명한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모성은 어떤 경험보다도 내게 정서적으로 많은 요구를 했다. 모성은 이따금 내가 얼마나 행복하고 다정할 수 있을지를 강조했고, 또 다른 때에는 내 한계에 직면해 절망케 했다. 모성은 나를 시험해보게 하고 내 자신을 마주하게하는데, 이런 면에서 글쓰기와도 비슷했다. 어쩌면 그래서 더욱오랫동안 작업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기도 했다. 나는 한편으로 더욱 진정한 내가 된 듯한 느낌을 받았고, 또 한편으로는 나를 잃어버린 것만 같았다. 나는 나의 확고한 기반을 되찾기 위해이 미지의 장소에 대해 배워야 했고, 영혼의 근본적 변화라 할만한 과정을 겪어야 했다.

나는 엄마 영웅들에 대해 찾아보며 이들이 여성들의 이야기안에 줄곧 존재해왔음을 알게 됐다. 그녀들의 주체성은 자기상실과 자기발견에 아로새겨져 있었다. 청소년기에, 출산기에, 그리고 장년기에 이들은 줄곧 자신들을 향한 "몰살"의 위협을 마주하고 힘을 회복해야 했다.

이 책이 하려는 이야기 중 하나는 어떻게 모성이 우발적 사고이자 의무에서 하나의 선택이 되었으며, 그것이 여성들의 삶에 얼마나 심오한 영향을 끼쳐왔는지에 관한 것이다. 여성 작가들의 커리어에 관해 읽을 때, 그들이 얼마나 적은 선택지를 갖고있었는지 기억하는 것은 필수다. 앨리스 닐이 그녀의 첫 결혼에관해 말했던 것처럼, "처음에 나는 아이들을 원치 않았다. 아이들은 그냥 생겼다."

앨리스는 화가이자 엄마가 되기 위해 평생 다른 사람들의기대를 저버리며 살아야 했다. 그녀는 유대감이 깊고 정이 넘치는 가족의 가장이자, 천재들에게 따라붙는 불편함을 감수하며고집스럽게 자신만의 비전을 추구하던 예술가이기도 했다. 동시에 그는 능숙하고 독창적인 붓터치를 통해 날카롭고 불안한 드라마를 담아낸 초상화가로 잘 알려진, 끈질기고 난해한 괴물 같은 예술가였다. 한 비평가는 그를 ‘아줌마 영웅(auntie-hero)‘이라 부르기도 했다.

앨리스의 모성은 예술가의 소명과 양육 사이에 얼마나 많은갈등이 있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한 젊은 예술가는 80세가다 된 앨리스를 보고 "물방울무늬 드레스를 입고 할머니 스타일로 흐물흐물하게 꼬아 올린 머리를 한 나이든 여성에게서 느껴지는 강철 같은 결의에 감탄하며 이렇게 물었다. "화려한 패턴의 레이온 원피스에 가려진 가슴 속에 어떻게 군인의 심장이 뛰고 있단 말인가?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앨리스는 그간 그토록 두려워하던 선택을 하게 되었다. 1931년 9월 요양원에서 퇴원하며 치료사들의판단이 옳았음을 인정해야 했다. 예술가는 엄마가 될 수 없다.
카를로스는 파리에, 이사베타는 쿠바에 머무는 동안 앨리스는보헤미아적인 그리니치빌리지로 이주해 자신의 소명에 따라 삶을 꾸려나가기 시작했다.

예술가는 무릇 창조적 인격뿐만 아니라 공적 자아, 즉 세상과 상호작용하기 위한 인격 역시 만들어야 한다. 앨리스는 다른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 쓰지 않으려 했지만, 끊임없이 논쟁에 시달려야 했다. 그녀의 남성 동료들은 여성들은 지나치게 신중하고 가정적이기 때문에 진짜 예술을 할 수 없다며 혐오감을 표출했다. 젊은 여성이 예술가로서의 일정한 신용을 얻으려면 남성 예술가처럼 창조적 허세를 부리며 살아야 했다. 앨리스는 일부러 터프하게 행동하고 주변에 속마음을 털어놓지 않음으로써 예술가의 자격을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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