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먹고살기 위해 일한다. 정말 당장 일하지 않으면 굶어 죽는 사람도 있다. 그래도 우리는 자신을 놓아서는 안 된다. 문화적으로 개선되지 않아 생기는 인권 문제들과 갑질은 어떠한가. 많은 정책이 마련되고 사회적 보장제도가 하나둘 늘고 있다지만, 사각지대는 여전히 존재한다.
외국인 노동자, 미등록 이주 노동자, 장애인, 성소수자, 의료부분도 마찬가지다. 매달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이들은 지금도 성실하게 일하고 있다. 앞으로 우리 사회가 서로를 좀 더 따듯하게 바라보고, 삶의 부담과 고통을 함께 나누는 성숙한 터전이 되었으면 좋겠다.

어디에 가는지도 중요하지만, 함께하는 사람과 잘 맞아야 하는 것도 여행의 중요한 포인트다. 물론 이 점은 여행뿐만 아니라 삶에서도 마찬가지일 거다. 예민하고 지금보다모났던 내가 요즘엔 많이 둥글둥글해졌다. 무언가 서로 맞지 않을 때, 예전 같으면 서로 날을 세웠던 일도 이제는 "그렇구나" 하면서 서로 맞출 수 있는 방법을 먼저 찾아본다.
결을 맞춰가면서 여행하고 삶을 함께할 수 있는 이들이 곁에 있어 감사하다. 내 삶도 이렇게 좋아하는 것, 좋아하는 사람들과 둥글게 모여앉아 웃음으로 채워가고 싶다.

악역들의 서사도 때론 공감이 갈 때가 있다. 그들을악으로 만든 것은 누구이며 어떤 인생을 거쳐 저런 캐릭터가 되었을까. 나는 저렇게 행동하지 않지만, 본인 내면의 분노를 표출하는 인생을 보면서 범인 캐릭터에 매료될 때도있다. 대리 만족도 하면서 도리어 마음이 편안해질 때도 있고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우리의 인생도 한 편의 영화가 아닐까. 각자 주인공이 되어 때론 롱테이크로 때론 핸드헬드로 삶의 장면 장면을 담아내는 아주 긴 장편 영화 말이다.

우리나라에도 외화벌이에 의존하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의 증조 할아버지와 증조 할머니 세대가 그렇다. 멕시코, 아르헨티나, 하와이, 독일, 사우디아라비아 등 달러를 좇아 구석구석 흩어지지 않았던가. 그런데 요즘 우리는 어떤가. 제3국에서 온 노동자라고 해서 은근히 차별하고 있진 않은가? 흔히 말하는 3D 업종에 뛰어들어 밤낮으로 노동하는고마운 이들에게 우리는 과연 어떤 이웃이었는지 한번쯤 돌아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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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보기에는 순탄하게 의사가 되는 코스를밟아왔고, 만나온 사람들도 제한적이었으니까. 하지만 여러경험을 하고 사회에 나와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리고 힘든일을 겪고 나서 나의 의식이 넓어지는 것을 느꼈다. 학교와병원을 벗어난 밖의 세상은 굉장히 넓고도 깊었다. 이런 일이 없었다면 편안하고 순탄하게 살았을 테지만, 나는 요즈음 내가 몰랐던 ‘밖의 세상‘을 경험 것 역시 내 삶을 단단하게 해준 초석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 모두가 내가 더 나은사람이 되기 위한 과정이 아닐까?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으면 두려울 것도 없고 실패할일도 없다. 새로운 시도를 하면 실패할 수도 있지만 성공할수도 있다. 7년간의 헛구역질을 참고 먹은 양고기의 맛이 가히 환상적이었듯이, 앞으로도 나는 자신의 틀을 깨는 새로운 시도를 해나가면서 작고 큰 성공과 실패를 겪으면서 나아가고 싶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그래도 내가 원하던 목표를 위해 열심히 공부한 것에대해서 후회는 없다. 같이 자리 맡아주던 친구들이 생각난다. 그 친구들 모두 대부분 좋은 의전원에 진학해서 지금 잘살고 있다. 어떤 친구들에게선 청첩장도 종종 날아온다. 그때의 치열함은 나에게 향수처럼 남아 있다. 그러나 다시 그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인생에 레몬이 주어지면, 레모네이드를 만들라"는격언이 있다.
비록 지금 인생의 대부분을 부정당했지만, 이 상황을나는 제2의 자아실현 기회로 만들어보려 한다. 한 길만 바라보고 달려온 나에게 이 같은 강제 멈춤은 아마 평생에 한 번겪을까 말까 하는 트라우마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막힌상태를 기꺼이 누려보기로 마음먹었다. 일단 멈추어 주변을살펴보기로 했다. 내가 지금까지 달려왔던 길이 좁고 긴 길이었던 데 반해 이제부터 펼쳐질 길은 꽃도 피어 있고 산도보이는 그런 길일지도 모른다. 그 길을 천천히 즐기며 걷다보면 나의 세상도 확장되어 더 큰 행복을 안겨다 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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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요리를 잘 못하신다. 신혼 당시에 어머니가요리를 해주려 했더니 아버지께서 "밥해달라고 결혼한 거아니야. 밥은 사 먹고 당신 공부와 일에 더 시간을 쓰는 게좋겠다"라고 하셨단다. 그때 요리를 포기해서 아마 어머니가 요리를 못하시는 것 같다. 그래도 어머니는 항상 아버지와 우리에게 한국의 전형적 어머니로서 무엇인가를 못 해줬다는 부채감이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가끔은 아주 야심차게 요리를 해주신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단 한 번도 맛없다는 말을 입 밖에 꺼내신 적이 없다.

집에 가니 아버지는 기가 막히다며 할 말을 잃으셨다. 그간 매 한 번 들지 않고 나를 키우셨는데 제 발로 카드를 들고 가서 학원비를 긁고 오더니, 손가락뼈에 금이 가서돌아왔으니 황당하실 만도 하다. 부모님은 바로 학원에 연락해 강력하게 항의하시면서 "학원 정책은 존중하지만 내딸 체벌하는 곳에는 못 보내겠다"고 말하고 남은 수강 일수만큼 환불받았다. 내 처음이자 마지막 체벌의 기억이다.

부모님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닌 내가 선택한 삶에서방향을 찾아갔던 지난날. 공부만 강조하지 않고 여러 환경에서 다양하게 경험해볼 수 있도록 지켜봐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다. 지금 대입을 앞둔 학생들도, 팍팍하게 입시를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겠지만 보다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환경이 조성되면 어떨까. 그러면 훗날 진로를 결정할 때도덜 고민하고, 결정한 이후에도 덜 후회하게 되지 않을까?

에 해글씨를 쓸 줄 알게 되고부터, 나의 왼손 손날은 늘 까맣게 물들어 있었다. 글을 쓸 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써 나가기에 손날이 글씨를 덮으면서 지나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왼손잡이로서의 ‘프라이드’를 가지고 있다. 부모님은 나에게 왼손잡이만의 자긍심을 느낄 수 있도록 알려주셨다. 혼내지 않고, 왼손잡이는 특별하고 좋은 것이라고 알려주셨다.
"왼손잡이는 오른손잡이보다 우뇌가 발달해서 좋대"
"억지로 바꾸지 마, 나중에 양손잡이가 될 수도 있어" 하고.
물론, 난 오른손으로는 할 줄 아는 게 전혀 없어 양손잡이로 사는 것은 글렀다. 하지만 이건 부모님께도 말하지않은 비밀인데, 왼손잡이면 바 테이블에 남자친구와 나란히앉았을 때 나는 왼손만 쓰고 남자친구는 오른손만 쓰기 때문에 손을 잡은 채로 식사를 할 수 있어 좋다.

내가 지금까지 그런 삶을 살아와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내 이미지가 지금 어떨까?‘ 하고 움직이기보다는 미련이 없을 때까지 뭐든 해보고 싶다. 나를 나쁘게 볼 사람들은내가 무얼 해도 나쁘게 볼 테니 해보고 싶은 것들은 다 해볼테다.
나의 소중한 꿈을 부당하게 포기하게 되어 어떤가 하고 묻는 사람들. 하지만 해보고 해보다 안 되면 어쩔 수 없는것이다. 내가 앞으로 의사가 아닌 다른 일을 할 때도 나는 남들이 하지 않은 경험을 했으니 더 단단한 면이 있을 것이다.
또 누군가는 내가 해보지 않은 경험을 했으니 다른 방향에서 또 단단한 면이 있겠지. 그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제2의 인생이라고 할 수 있는 삶을 스스로 구축해나가고 싶은 것뿐이다.

만일 내가 만 원짜리 에코백이나 구멍이 난 가방을들고 다니면 사람들이 좋게 볼까? 아마 그러고 나오면 내게
‘가식을 떤다‘고 할 것이다. 꼬투리를 잡고 싶은 사람은 어떻게든 비난거리를 찾아낼 게 뻔하다. 요즘도 나는 기본적으로 사람들의 평가를 달고 다닌다. 그렇지만 신경 쓰지 않으려 한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이럴때일수록 상식적으로 살고자 한다. 기소가 된다면 재판을받는다. 책임질 일이 있다면 책임진다. 내 스스로를 돌아보고 부족한 점을 성찰한다. 그리고 앞으로 더 바르게, 더 열심히 살자. 그러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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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명한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이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지적한 것처럼, ‘능력주의‘란 직업과 기회를 개인의 능력에 따라 배분해 주는 하나의 체제에 불과하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 세상이 능력과 재능이라는 객관적인 기준에 의해 스스로의 환경을 극복해나가도록 만인에게 공평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고 믿지만, 이는능력주의 사회가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오는 오만인 것이다. ‘능력주의‘는 신분이나 계급에 따라 지위가 세습되는 봉건체제보다는 우월하지만, 불평등이 심화되고 사회적 계층 이동이 점점 둔화되고있는 현대 자본주의 체제하에서는 또 다른 ‘폭정‘으로 작동한다는점을 명심해야 한다.

는이렇게 행복론을 말하는 것은 하루하루의 삶이 고달프고 힘들고 팍팍한 사회·경제적 약자에게 "행복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불행한 강자나 부자도 있다"라고 말하며 위로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항산恒産이 있어야 항심이 있지 않던가. 강자나 부자에게도 불행이 있지만, 이들은 그 불행을 상쇄할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 또한국 사회가 조에족 사회로 돌아가는 것은 몽상임을 알고 있다. 이제 우리는 우리 자신과 한국 사회에 대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열심히 사는데 왜 우린 행복하지 않을까?"

러셀은 일찍이 『게으름에 대한 찬양』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현대의 생산방식은 우리 모두가 편안하고 안전할 수 있는가능성을 열어놓았다. 그런데도 우리는 한쪽 사람들에게는과로를, 다른 편 사람에겐 굶주림을 주는 방식을 선택해 왔다. 지금까지도 우리는 기계가 없던 예전과 마찬가지로 계속정력적으로 일하고 있다. 이 점에서 우리는 어리석었다. 그러나 이러한 어리석음을 영원히 이어나갈 이유는 없다. "

"나는 공식적인 영예를 항상 거부해 왔다. (-) 우리가 121 명의 성명서‘에 서명하며 지지했던 알제리 독립해방 기간에 노벨상이 주어졌더라면 나는 감사히 상을 받았을 것이다. 그경우 나에 대한 노벨상은 단지 나만이 아니라 우리가 얻기위해 투쟁하고 있던 자유를 기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지식인이란 자기 내부와 사회 속에서 구체적 진실 (그것이 지니고 있는 모든 규범과 함께)에 대한 탐구와 지배자의 이데올로기(그 안에 담긴 전통적 가치체계와 아울러 사이에 대립이 존재하고있음을 깨달은 사람이다. ・・・) 지식인은 그가 누구로부터 위임장을 받은 일도 없고 어떤 권력으로부터도 자리를 배당받은 적이 없다. ・・・) 특권 계급으로부터 추방되고 그러면서도혜택받지 못한 계급으로부터는 수상쩍은 눈길을 받으면서지식인은 이제 자신의 일을 시작할 수 있게 된다. ・・・) 지식인의 역할은 모든 사람을 위해 자신의 모순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며, 모든 사람을 위해 근본주의적 태도로써 그모순을 초극하는 것이다."

‘단순하지만 누를 길 없이 강렬한 세 가지 열정이 내 인생을지배해 왔으니,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에 대한 탐구욕, 인류의 고통에 대한 참기 힘든 연민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열정들이 나를 이리저리 제멋대로 몰고 다니며 깊은 고뇌의 대양 위로, 절망의 벼랑 끝으로 떠돌게 했다. "

나는 흠결과 한계가 많은 사람이다. 나의 "중대한 잘못"을 직시하고 성찰하면서 갈림길‘에서는 쉬고 ‘막다른 길‘에서는 길을 내걸어갈 것이다. 누가 나를 위해 ‘꽃길‘을 깔아줄 리 없고 그것을
"기대해서도 안 된다. 이제 내 앞에 멋지고 우아한 길은 없다. 자갈1033440AUS밭과 진흙탕이 기다리고 있음을 직시한다. 삼국지연의 속 문구를빌리자면, "봉산개도逢山開道 우수가遇水架橋", 즉 "산을 만나면 길을 만들고 물을 만나면 다리를 놓아 건넌다"가 나의 모토가 될 수밖에 없다. 더 베이고 더 찔리고 더 멍들더라도, 미국 민권운동의 지도자 마틴 루서 킹Martin Luther King Jr. 목사는 말했다. "날지 못하면 뛰어라. 뛰지 못하면 걸어라. 걷지 못하면 기어라. 무엇을 하든계속 전진해야 한다." 등에 화살이 박히고 발에는 사슬이 채워진 몸이라 날지도 뛰지도못하지만, 기어서라도 앞으로 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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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세계에서는 대개 인생의 쇠퇴가 물질적인 재화에대한 숭배를 조장하고, 물질적 재화에 대한 숭배는 다시 인생의 쇠퇴를 촉진하고, 인생의 쇠퇴 위에서 물질적 재화에대한 숭배가 번창한다. (・・・) 배금주의는 (・・・) 아무런 활력이 없는 획일적인 인격과 의도를 조장하고, 삶의 기쁨을 축소시키고, 공동체 전체를 피로감, 좌절감, 환멸감으로 몰아넣는 스트레스와 긴장감을 조성한다."

사마천은 『사기』 화식전貨殖傳‘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재산이 자기보다 열 배가 많으면 그에게 자기를 낮추고, 백 배가 많으면그를 무서워해 꺼리며, 천 배가 많으면 그에게 부림을 받고, 만 배가 많으면 그의 노복이 된다." 사마천이 기원전에 지적했던 현상이21세기 대한민국에도 재현되고 있다. 민주공화국의 주권자가 재벌앞에서 위축되고, 심지어 재벌을 숭배하기까지 하고 있다. 부가 ‘유능‘과 ‘도덕‘의 징표가 되었고, 가난은 ‘무능‘과 ‘게으름‘의 결과로 인식된다.

1987년 6월 항쟁이 이룬 정치적 민주주의는 다시 위기에 처했다. 나는 정치사상가 샹탈 무페Chantal Mouffe가 민주주의에 대한경고로 남긴 글의 진짜 의미를 확실히 알게 됐다.
"민주주의는 불확실하고 일어날 법하지 않은 어떤 것이며,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는 항상 허약한 정복이며, 심화시키는 만큼 방어도 중요하다. 일단 도달하면 그 지속성을 보증할 민주주의의 문턱 같은 것은 없다."

이상과 같은 현상 앞에서 토머스 모어가 1516년에 쓴 『유토피아』의 다음과 같은 문구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번영을 구가하는 여러 공화국commonwealth에서 내가 찾아볼 수 있는 것이라고는 단지 공화국이라는 이름 아래자신의 이익만을 불려나가는 부자들의 음모뿐입니다. 그들은 사악하게 얻은 것을 지키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노력과 수고를 가능한 한 헐값에사들일 계획을 세웁니다. 그런 것을 두고 부자들이 공화국의이름으로 지켜야 하는 것인 양 주장하면 곧 법이 됩니다.

어려운 시절이기에 안토니오 그람시 Antonio Gramsci의 유명한 말을 되새긴다. "이성으로 비관하되 의지로 낙관하라." 그는 어린 시절 사고로 꼽추라는 장애를 가진 채 성장했고, 이후 이탈리아의 대표적 공산주의자로 반파시즘 투쟁에 앞장섰다가 20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약 11년을 감옥에서 보낸 후 건강 악화로 석방되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 "이성적 비관"과 "의지적 낙관", 이는 재벌공화국을 사는 우리에게 필요한 덕성이다.

"지금은 사회주의가 평등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말하는것이 유행임을 나도 잘 안다. 세계 모든 나라에서 상당한 수의 어용 문사와 말주변 좋은 교수들이 사회주의가 약탈적 동기를 그대로 놓아둔 계획적 국가자본주의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하느라 바쁘다. (…) 보통 사람들이 사회주의에매력을 느끼고 사회주의를 위해 목숨을 거는 이유, 즉 사회주의의 ‘비결‘은 평등사상에 있다. "20

리영희 선생이 공언한 다음과 같은 말씀의 무게는 묵직하다.
"소위 ‘신자유주의‘라는 무한경쟁 시장경제의 비인간성, 사회적 다윈이즘의 극단 형태인 사회·경제적 약육강식과 그 무자비성, 윤리성을 상실한 과학·기술 만능주의, 자본의 과학·기술 지배구조로 말미암은 인간과 인류의 미래에 대한 공포 등사회주의에 대해서 21세기가 거는 요구와 기대는 19세기나20세기의 소수 국가들에서 보였던 체제로서의 사회주의에못지않다고 나는 확신하고 있어요."

한자로 ‘사회‘와 ‘회사‘는 어순만 다르다. 그러나 두 단어의 의미는 완전히 다르며, 또 달라야 한다. ‘사회‘는 민주의 원리가 작동되지만, ‘회사‘는 이윤의 논리가 작동되는 곳이다. ‘회사‘가
‘사회‘ 위에 서면 민주주의는 죽는다. 『대한민국 정의론』이라는 책의 저자 고원 교수의 정확한 지적처럼, 선진국에서 민주주의가 깊이 뿌리내릴 수 있게 된 배경에는 민주주의가 "정치적 자유의 수준을 넘어서 그 사회 구성원의 실질적 삶에 직결되는 ‘사회권socialright‘의 실현으로까지 그 영역을 확장시켰기 때문"이었음을 명심해야 한다.

목수로 평생 일하다가 실직 후 장애급여와 실업급여를 신청하려는데 계속 거절당하는 이야기를 다룬 켄 로치 감독의 2016년 영화「나, 다니엘 블레이크」에서 주인공 블레이크는 법원에 가서 할말을 적어놓는다.
‘나는 게으름뱅이도 사기꾼도 거지도 도둑도 아닙니다. 나는보험번호 숫자도, 화면 속 점도 아닙니다. 나는 묵묵히 책임을 다해 떳떳하게 살았습니다. 나는 굽신대지 않았고 이웃이어려우면 그들을 도왔습니다. 자선을 구걸하거나 기대지도않았습니다. 나는 다니엘 블레이크, 개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이에 나는 내 권리를 요구합니다. 인간적 존중을 요구합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한 사람의 시민, 그 이상도 그이하도 아닙니다."

그리고 독일의 혁명가 카를 마르크스Karl Marx의 사위 폴 라파르그Paul Lafargue는 「말의 권리와 사람의 권리」라는 짧은 에세이에서 19세기 말 노동자의 처지가 동물인 말의 처지보다도 못함을맹렬히 야유한 바 있다. 그는 기득권자들을 향해 다음과 같이 일갈했다.
‘진보‘와 ‘문명‘은 임금노동자에게는 가혹하게 굴지 모르지만 두 발 달린 어리석은 족속이 ‘하등‘이라는 꼬리표를 달아준 동물에게는 어머니처럼 인자하기 그지없다."

"사랑과 지식은 나름대로의 범위에서 천국으로 가는 길로 이끌어줬다. 그러나 늘 연민이 날 지상으로 되돌아오게 했다.
고통스러운 절규의 메아리들이 내 가슴을 울렸다. 굶주리는아이들, 압제자에게 핍박받는 희생자들, 자식들에게 미운 짐이 되어버린 의지할 데 없는 노인들, 외로움과 궁핍과 고통가득한 이 세계 전체가 인간의 삶이 지향해야 할 바를 비웃고 있다. 고통이 덜어지기를 갈망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해나 역시 고통받고 있다."
가슴이 답답해질 때마다 버트런드 러셀의 이 글을 찾는다.

지그문트 바우만의 표현을 빌리자면, ‘호모 이코노미쿠스‘는
"이 세상을 일회용 물품들, 한번쓰고 버리는 물품들-다른 인간들을 포함한 전체 세상까지- 이 가득 담긴 용기처럼 보는 훈련을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호모 이코노미쿠스‘에 의해 억압된 ‘호모 엠파티쿠스‘와 ‘호모 심비우스‘를 되살려야 한다. 세상은 공감으로 이루어진다. 그것이 타인과 나를 연결시키는 고리가 된다. 그 고리가 늘어나고 튼튼해지면 세상은 변화한다. 새삼 2002년 개봉한 홍상수 감독의 영화 생활의 발견」에서 주인공이 내뱉은 말이 떠오른다.
"우리, 사람 되기 어려워도 괴물은 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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