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요리를 잘 못하신다. 신혼 당시에 어머니가요리를 해주려 했더니 아버지께서 "밥해달라고 결혼한 거아니야. 밥은 사 먹고 당신 공부와 일에 더 시간을 쓰는 게좋겠다"라고 하셨단다. 그때 요리를 포기해서 아마 어머니가 요리를 못하시는 것 같다. 그래도 어머니는 항상 아버지와 우리에게 한국의 전형적 어머니로서 무엇인가를 못 해줬다는 부채감이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가끔은 아주 야심차게 요리를 해주신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단 한 번도 맛없다는 말을 입 밖에 꺼내신 적이 없다.
집에 가니 아버지는 기가 막히다며 할 말을 잃으셨다. 그간 매 한 번 들지 않고 나를 키우셨는데 제 발로 카드를 들고 가서 학원비를 긁고 오더니, 손가락뼈에 금이 가서돌아왔으니 황당하실 만도 하다. 부모님은 바로 학원에 연락해 강력하게 항의하시면서 "학원 정책은 존중하지만 내딸 체벌하는 곳에는 못 보내겠다"고 말하고 남은 수강 일수만큼 환불받았다. 내 처음이자 마지막 체벌의 기억이다.
부모님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닌 내가 선택한 삶에서방향을 찾아갔던 지난날. 공부만 강조하지 않고 여러 환경에서 다양하게 경험해볼 수 있도록 지켜봐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다. 지금 대입을 앞둔 학생들도, 팍팍하게 입시를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겠지만 보다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환경이 조성되면 어떨까. 그러면 훗날 진로를 결정할 때도덜 고민하고, 결정한 이후에도 덜 후회하게 되지 않을까?
에 해글씨를 쓸 줄 알게 되고부터, 나의 왼손 손날은 늘 까맣게 물들어 있었다. 글을 쓸 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써 나가기에 손날이 글씨를 덮으면서 지나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왼손잡이로서의 ‘프라이드’를 가지고 있다. 부모님은 나에게 왼손잡이만의 자긍심을 느낄 수 있도록 알려주셨다. 혼내지 않고, 왼손잡이는 특별하고 좋은 것이라고 알려주셨다. "왼손잡이는 오른손잡이보다 우뇌가 발달해서 좋대" "억지로 바꾸지 마, 나중에 양손잡이가 될 수도 있어" 하고. 물론, 난 오른손으로는 할 줄 아는 게 전혀 없어 양손잡이로 사는 것은 글렀다. 하지만 이건 부모님께도 말하지않은 비밀인데, 왼손잡이면 바 테이블에 남자친구와 나란히앉았을 때 나는 왼손만 쓰고 남자친구는 오른손만 쓰기 때문에 손을 잡은 채로 식사를 할 수 있어 좋다.
내가 지금까지 그런 삶을 살아와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내 이미지가 지금 어떨까?‘ 하고 움직이기보다는 미련이 없을 때까지 뭐든 해보고 싶다. 나를 나쁘게 볼 사람들은내가 무얼 해도 나쁘게 볼 테니 해보고 싶은 것들은 다 해볼테다. 나의 소중한 꿈을 부당하게 포기하게 되어 어떤가 하고 묻는 사람들. 하지만 해보고 해보다 안 되면 어쩔 수 없는것이다. 내가 앞으로 의사가 아닌 다른 일을 할 때도 나는 남들이 하지 않은 경험을 했으니 더 단단한 면이 있을 것이다. 또 누군가는 내가 해보지 않은 경험을 했으니 다른 방향에서 또 단단한 면이 있겠지. 그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제2의 인생이라고 할 수 있는 삶을 스스로 구축해나가고 싶은 것뿐이다.
만일 내가 만 원짜리 에코백이나 구멍이 난 가방을들고 다니면 사람들이 좋게 볼까? 아마 그러고 나오면 내게 ‘가식을 떤다‘고 할 것이다. 꼬투리를 잡고 싶은 사람은 어떻게든 비난거리를 찾아낼 게 뻔하다. 요즘도 나는 기본적으로 사람들의 평가를 달고 다닌다. 그렇지만 신경 쓰지 않으려 한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이럴때일수록 상식적으로 살고자 한다. 기소가 된다면 재판을받는다. 책임질 일이 있다면 책임진다. 내 스스로를 돌아보고 부족한 점을 성찰한다. 그리고 앞으로 더 바르게, 더 열심히 살자. 그러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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