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내가 속한 그룹과 너무나 달랐다. 즉 로마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 걱정스러운 로마의 쇠퇴를 한탄하면서도절대 로마를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과 달랐다. 서른 살에 단순히 사는 동네를 바꾸고, 새로운 약국에 가고, 새로운 신문가판대에서 신문을 사고, 새로운 바의 테이블에 앉아 있는것이 하나의 출발, 하나의 큰 움직임, 하나의 일탈을 의미하는 사람들과 말이다.

크리스마스에 우리는 아들을 만나러 해외로 나갔다. 거기서 우리는 아들이 즐겁게 살고 있는 누추한 원룸을 보았고,
다른 두 대륙 출신 부모를 둔 아름다운 아가씨인 아들의 첫여자친구를 만났다. 아들과 여자친구는 대학에서 만났다.
그들은 자신들이 아주 좋아하는 넓고 시끄러운 식당으로 우리를 데려갔다. 나는 내 아들이 채식주의자가 되었음에도불구하고 나보다 키가 크고 체격이 다부지다는 것을 발견했다. 아들은 와인보다 맥주를 더 좋아했다. 내 휴대폰을 켤때마다 나타나는 어색한 소년의 사진, 작년 여름 고깃배에서 찍었던 사진은 더는 지금의 아들과 닮지 않았다.

길을 달리며 나는 브레이크를 자주 밟았고 주의가 산만했다. 내가 우회전 갈림길을 놓치고, 길을 잘못 들고, 돌아 나가기도 하자 아내가 신경질을 부렸다. 나는 생각했다. 다른 셔츠를 입었어야 하는데, 지금 입고 있는 셔츠는 내게 그리 어울리지 않아. 테라스에서 나눈 예기치 않은 대화의 충격이나를 다시 흔들었다. 그녀의 예쁘지만 어울리지 않는 옷, 복잡한 장식의 목걸이, 손톱 매니큐어 색깔이 불현듯 선명히떠올랐다. 마치 지난 1년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세월의 흐름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그녀와 악수조차 나눈 적 없었고, 오직 예상치 못했던 서로 간의 이해가 있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약간의 죄책감이 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결혼 생활 이외에 그러한 우정을 키우는 것이 정상적이며 심지어 옳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섹스가 개입하는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그로 인해 고통스러웠다. 나는글을 잘 쓰지 못했고, 프로젝트 마감일을 지키지 못했으며,
아내가 부러웠다.

우리는 우리의 일상과 습관을 되찾았지만 나는 오랫동안혼란에 빠져 있었다. 나는 소설을 포기했다. 내가 작업하고있는 텍스트가 파국에 빠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와 L 사이의 이야기는 불충분한 전제에 지나지 않았고, 결코 이루어질수 없는 형태였다. 내가 짜놓았던 줄거리는 섬에서 잠시 현실과 합쳐졌다. 그 이야기는 아내에게 상처를 주고 굴욕감을안겨줬다. 아내는 나와는 달리 신중하게 행동해서 결혼 기간동안 나를 고통스럽게 한 적이 없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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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들을 관찰하지 않는 척, 신중하게 행동한다. 나는집안일에 열중하고 정원에 물을 주지만, 그들 가족이 이곳에 휴가 왔다는 것에 흥분하고 신난다는 걸 느끼지 않을 수없다. 나는 잔디밭을 달리는 소녀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 아이들의 이름을 익힌다. 손님들은 미닫이문을 항상 열어두는경향이 있기 때문에 나는 부부가 집을 정리하고, 짐을 풀고,
점심에 뭘 먹을지 결정하는 동안 주고받는 말을 듣는다.

동시에 나는 그들이 우리의 고립된 생활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허름한 집에서 보내는 매일매일의 똑같은 날들에 대해 그들은 무엇을 알고 있을까? 땅이 흔들릴 정도로 바람이 부는 밤, 빗소리에 잠 못 이루는 밤을 알고 있을까? 우리가 언덕, 말, 곤충, 들판 위를 지나가는 새들 사이에서 홀로 있는 몇 달을 그들은 알고 있을까? 그들은 겨울 내내 이곳을 지배하는 무자비한 고요함을 과연 좋아할까?

그들은 더는 필요하지 않은 물건 몇 가지를 잊었는지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남겨두고 떠났고 나는 그 물건들을 보관한다. 소녀들이 그린 그림, 해변에서 모은 조개껍데기, 몇 방울 남은 향긋한 바디워시, 소녀들의 어머니가 두고 간 수첩에는 작고 흐릿한 필체의 쇼핑 목록, 그리고 우리에 관한 모든 것이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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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자들은 악인 중에서도 가장 악한 사람ㅡ"혐오스러운, 추악한,
똥 무더기"으로 책망받았다. 그러나 진화를 받아들이는 것이 결코 잔인함, 이기심, 또는 방관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 반대로, 인간의 존재를 소중하고 경이로운 선물로 받아들이고, 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위해서 이 선물을 최대한 알차게 활용하는 쪽으로 이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이 일을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 우리의 지식은 우리가 갖고 있는 기존의 생각들과 진화로 얻은 인지능력으로 인해제한되어 있는데, 이를 어떻게 재구성할 수 있는가? 이렇게 추상적으로질문하면, 문제는 실제보다 더 어렵게 들리기 마련이다. 어차피 지식의재구축은 추상적인 단계에서 이루어질 수 없다. 우리의 지식을 재구축하기 위해서는 지식 자체의 세부사항들을 수정해야 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개념들을 새로 구분하고 있던 구분들은 무너뜨리고, 재분석하고, 버려야 하는 것이다.

현대의 삶의 방식은 과학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과학의 이해를 가로막는 장애물, 즉, 우리 자신의 직관적 이론들에 대해 진지하게고민해봐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이 직관들을 인지할 수 있도록 돕는 환경을 구성하고 교실 안팎에서 그 직관들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을 설계해야 한다. 직관적 이론은 각 세대에서 각각의 어린이들이 재창조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류와 영원히 함께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어렸을 때 구축한 이 이론들이 어른이 되어서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가능성들을 가로막도록 놔두지는 않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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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가 우리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보다 유전자에 대한 믿음이 우리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다. 이를테면 수학 성취도의 경우, 선천적인 성별에 따라 수학 성취도에 차이가 생긴다는 증거는 약하나, 사회적으로 부과되는 성별에 따라 차이가 생긴다는 증거는 강하다. 과학자들은 유전자가 행동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라는 것도 밝혀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유전의 영향력이 조금이라도 존재한다는 인식 자체가우리를 운명론자로 이끈다. 우리의 유전자는 우리의 운명을 결정짓지않으나, 유전자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우리가 이를 허용한다면, 우리의운명을 결정할지도 모른다.

자연 현상에 대한 지식 중 인간이 진화 과정에서 얻게 된 선천적 지식이있다면 그것은 질병에 대한 지식일 것이다. 병균과 기생충은 생존과 번식을 위협하기 때문에 병을 피하는 것은 진화론적 관점에서 분명히 이로운 일이다. 그리고 실제로 전 세계 공통적으로 인류는 병균과 기생충을 포함하고 있는 것에 대해 혐오감을 가진다. 신체 분비물(토사물, 배설물), 신체 분비액(침, 땀), 신체를 감싸는 표면의 침입(신체의 훼손과 피), 눈에 띄는 감염의 증상살이 붓고, 색이 변하는 것), 기생충(진드기, 구더기), 그리고 부패한 유기물(썩은 고기, 상한우유)이 그것이다.

왜 생명체들이 그들의 환경에 그토록 정교하게 적응할 수 있었는지대한 이유로 진화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진화된 마음이 필요한 것이다.

나라별 신앙심의 정도 역시 진화에 대한 수용을 예측한다. 터키나 이집트와 같이 신앙심이 깊은 나라는 진화를 덜 받아들이는 반면, 프랑스와 덴마크처럼 신앙심의 정도가 낮은 나라는 진화에 대한 수용도가 높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미국 내에서도 전체 인구의 60퍼센트가 진화를 받아들이는 반면 40퍼센트는 그렇지 않은데, 모든 주를 비교해보면 신앙심과 진화에 대한 수용이 음의 상관관계를 보이는 것을 알 수 있다. 앨라배마와 미시시피와 같이 신앙심이 높은 주들은 진화에 대한 수용도가 낮은 반면, 버몬트와 뉴햄프셔 등 신앙심이 낮은 주들은 진화에대한 수용이 높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런 결과는 고등학교 졸업률,
대학 진학률, 교사들의 월급, 일반적인 과학 지식정도, 그리고 일인당국내 총생산을 모두 고려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종교와 진화를 꼭 양립하는 것으로 볼 필요는 없다. 종교적인이유로 진화를 거부하는 많은 사람들은 종교적 가르침과 일치하지 않는다른 과학적 사실들(한때 공룡이 지구를 지배했었다는 사실, 지진과 홍수가 자연적 힘에 의해 발생한다는 사실, 그리고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사실은 받아들인다. 한때는 이러한 사실들을 인정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화형에처해졌으나 오늘날에는 종교인과 세속인들 모두가 이를 사실로서 받아들인다. 진화 역시 사회정치적인 양상을 띄게 된 많은 과학적 사실들 중하나지만, 많은 사람들이 진화를 사실로 받아들인다면 이러한 양상은사라질 수 있다. 설령 신이 그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한다고 여기면서진화를 받아들인다 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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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각하는 열(따뜻함과 실제 열의 차이는 우리가 지각하는 무게(묵직함)와 실제 무게의 차이보다도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두 가지 감각 모두 물질에 의해 좌우되지만, 열에 대한 지각은 물질에 따라 달라지는 경향이 무게에 대한 지각보다 훨씬 더 크다. 예를 들어, 같은 무게의알루미늄과 코르크를 들어올리면 부피가 작은 알루미늄이 (부피가 큰 코르크보다 더 묵직하게 느껴지겠지만, 그렇다고 알루미늄을 못 들어올릴정도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열은 다르다. 100도의 코르크는 만질 수 있지만 같은 온도의 알루미늄을 만진다면 바로 화상을 입을 것이다."

이러한 진화론적 추측은 영장류가 물체에 대해 가지는 개념과 일치한다. 영아들과 마찬가지로 원숭이와 유인원은 고형성, 연속성 및 응집성에 대한 강한 예측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지탱에 대한 이해는 취약하다." 다 자란 침팬지도 5개월 된 인간 영아처럼 사물들이 서로 접촉하고 있는지에만 주의를 기울이고 그 접촉이 아래에 있는지 옆에 있는지는 무시한다. 이를테면 공중에 떠 있는 바나나를 보고는 놀라도, 바나나가 공중에 떠 있되 상자 가장자리에 조금이라도 닿아 있으면 놀라지 않는다." 영장류는 지탱에 대해 본능보다는 경험을 통해 배우도록 진화한것으로 보이나, 이 배움에 있어서 인간은 다른 영장류보다 훨씬 월등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그러한 묘사들에 대해 놀라기는커녕 오류라고 인식하지도 않는다. 기하학적으로 (그리고 기계적으로) 태양계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크기와 구조에 대한 이론적 지식을 갖추는 것만으로는 모자라다. 지구를 직접 탐험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천문학적 현상은 우리의제한된 시각에서 완전히 올바르게 인식될 수 없기 때문에 아이와 어른상관없이 모두에게 어렵다. 이러한 개념적 오류에 대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예는 NASA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라간 화성의 해돋이 사진이다. 이 사진에는 "화성에도 태양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라는 댓글이 달려 있다. 이런 댓글에 코페르니쿠스는 관에서 벌떡 일어났을 것 같다!

이 같은 사고방식에 있어서의 예외는 애완동물을 키우는 도시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은 애완동물을 키우지 않는 도시 아이들에 비해서 생물학적 특성들을 인간이 아닌 다른 유기체에 더 많이 적용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이 아이들은 인간을 생물학적으로 특별하게 여기지도 않고,
다른 유기체와 마찬가지로 인간도 같은 생물학적 원리의 지배를 받는다고 여긴다. 도시 아이들이 자연으로부터 떨어져 살면서도 자연을 접할수 있게 하는 해결 방안이 바로 애완동물인 것이다. 도시 사람들은 때론애완동물에게 요리를 해주거나 스파에 데려가는 등 애완동물을 너무 인간처럼 취급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애완동물들은 인간 또한 동물이라는 사실을 가르쳐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이들은 죽음을 이해하기 한참 전부터 죽음에 대해서 알고 있다. 처음에는 죽음을 삶의 변형된 형태로 여긴다. 계속해서 음식과 물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땅에 묻는다거나, 여전히 생각하고 고통을 느끼는 사람을 화장한다는 것이 아이들에게는 얼마나 소름 끼치는 짓이겠는가. 사랑하는 사람이 집을 떠나 다른 곳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 아이들에게는얼마나 슬픈 일이겠는가. 죽음을 생물학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고릴라는전혀 겪지 않겠지만) 아이들이 겪게 되는 이러한 근거 없는 두려움을 잠재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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