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밀조밀하고 선이 가는 곱살한 얼굴에 시골서 달갑잖은먼촌 일가 부스러기가 올라와 여러 날째 묵으며 쌀독 달랑대는 양식이나 파먹고 있는 집 사내처럼 들뜨름하게 끄먹거리는눈, 서너 마디는 건네야 한 마디 넘어올지 말지 한 더디고 무딘입, 충청도 스으산瑞山 구석빼기 사람보다도 석자 치닷푼은 더늘어지던 생전 늙잖을 말씨, 아무리 말쑥한 옷을 걸쳐도 반찬없이 밥 먹고 나온 사람처럼 허름해 뵈던 보리밥 빛깔의 촌사람 (...)" (《이문구의 문인기행> 중 <한 켤레 구두로 산 사내-윤흥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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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문의 안뜰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바깥뜰에 있는 것도 아니어서"로 시작해 "우계에는 안개비나 조금 오다 그친다는 남녀 유리로도 모인다"로 끝나는 박상륭 소설 《죽음의 한 연구》 첫 문장은 원고지로 2매를 꼬박 채울 정도로 길고복잡한 구조로도 유명하다. 일곱 개의 쉼표를 거쳐 마침내(!)마침표를 찍을 때까지 산천경개를 유람하듯 구불구불 이어지는 이 문장이 "어떤 것들은"이라는 주어와 "모인다"라는 술어로 완벽하게 추려진다는 사실은 일찍이 평론가 김현이 감탄을섞어 적시했던 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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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때 나는 흔히 ‘호랑이 꼬리‘라고 불리는 포항 장기곶 바닷가 보리밭 사이의 다섯 그루 소나무를 생각한다. 그 나무들이이루는 풍경은 보이지 않는 손이 아니고서는 이룰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절묘한 것이다. 눈이 없는 나무들이 단지 서로를 알고 느끼면서, 서로의 몸으로 이루어낸 그 아름다운풍경을 나무들 자신은 결코 보지 못하리라. 어쩌면 볼 필요조차없으리라. 머지않아 그곳에도 개발의 붐이 일어 소나무들이 베어지고 만화의 성곽 같은 조잡하고 유치한 러브호텔들이 들어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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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라면, 소리는 인간에게주어지는 것이다. 소리는 물질적이다. 그것은 대상을 참칭 하며, 대상 주위를 겉돌고 있는 의미를 제압하고, 우연을 필연으로 바꾸어 준다. 그럼으로써 의미의 세계에서 소멸해 가는 사물들을 구제한다. 따라서 현대시는 의미보다 소리를 편애함으로잃어버린 자유를 되찾으려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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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을 열었다. 밤을 새운 눈에 아침 해가 따끔따끔 눈부시게 스며들었다. 그러나 캠퍼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서늘하여 기분이 좋았다.
코하루는 술병 바닥에 남은 봄의 연주를 잔에 부었다.
아침 햇살을 받아 하얗게 빛나는 봄의 연주를 꿀꺽 마셨다.
쓴맛과 알코올의 무게에 무의식적으로 미간에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봄의 연주는 어젯밤보다 훨씬 가볍게 코하루 속으로 들어갔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 나니 아침 공기 너머로 황금빛 들판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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