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예술을 정서나 감수성 따위와 관련짓지만, 그리스인들의생각은 전혀 달랐다. 그들에게 예술은 테크네, 곧 합리적 규칙에 따른 활동이었다. 따라서 당시엔 회화나 조각뿐만 아니라 합리적제작 규칙을 가진 모든 활동, 즉 의자나 침대를 만드는 수공 활동과학문까지도 예술테크네로 간주했다. 한편 시는 음악과 무용, 연극을 포•함하는 넓은 개념이었는데, 재미있게도 시는 예술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왜? 시는 ‘영감‘ 또는 ‘광기‘의 산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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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예술도 처음엔 딱딱한 기하학적 양식에서 출발했다. 거기서벗어나 찬란한 고전기에 이르기까지를 보통 아르케익 시대라 부르는데, 이 시기는 확실히 이집트 예술의 영향을 받은 듯하다. <아나비소스의 쿠로스>를 보자. 인물은 오히려 이집트 조각상보다 더 딱딱해보이는데, 그건 시각적 환영의 효과보다 신체 부분들 사이의 기하학적 대칭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기하학적 도형에 의해 인물의 자연성이 억압되어 있고, 단지 입가에 떠오른 신비한 미소아르케익 스마일만이 생기를 느끼게 해줄 뿐이다. 독일의 비평가 빙켈만은 이 시기를 ‘고대양식‘이라 부르며, 그 특징을 ‘엄격함‘과 ‘딱딱함‘으로 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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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34세가 된 세계 랭킹 31위의 비너스는 약간의기대를 걸고 윔블던 대회에 참가했지만 3라운드에 그쳤다. 자신의성적에 만족한 비너스는 "아끼려고 애쓰는 것은 올바른 사고방식이 아니다. 나가서 최선을 다하고 멋진 경기를 펼치면 된다"라고 설명했다. 비너스는 이렇게 덧붙였다. "나는 증명해야 할 것도 없고숨길 것도 없으며 잃을 것도 없다."
완벽한 비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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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벨스나 괴링 같은 나치 전범들이 벌을 받지 않길 바라는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만일 루스벨트가 적어도 공개적으로 협상의의지를 보였다면 독일군의 태도에 변화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1944년 협상 가능한 평화가 존재했다면 히틀러의 마지막 승부를 피하고 치명적인 결과를 만든 헛된 도박과 미군에게 일어난 최악의 잔혹사를 막을 수 있었을지도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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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받는 이들과 가난한 이들을 구분하는 도구가 없다면가들은 결국 이민자에게 문을 닫게 되고 적법한 난민 신청자들은부수적인 피해를 당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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