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원을 쓸 때 한 가지 명심할 것이 있다. 대단원에서는 사건이마무리되며 모든 극적 긴장감이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이야기를 추진할 강력한 동력이 꺼진 상태이기 때문에 끌고 나갈 힘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 그러니 독자가 몇 가지 의문점을 갖는다고 해도 질질 끌지말고 가능한 한 빨리 정리해서 떠나야 한다. 영화 《반지의 제왕》을 보 가장 큰 불만은 대단원이 지루하게 늘어진다는 것이었다. 잘 가라는인사가 너무 길다. 제 갈 길로 떠났나 싶었는데 아직이다.
웬만큼 의문을 해소하고 나면 한 가지 숙제가 남는다. 다소 예상밖의 요소로 이야기를 매듭짓는 일이다. 이 작업이 훌륭하게 이루어지면 독자들에게 놀라움을 주면서 이야기가 충족된 효과를 낸다. 그리고주인공은 이전과는 다른 상황을 맞이한다. 이렇게 되면 이야기가 끝났다는 데 한 치의 의심도 남지 않는다. 스튜어트 톰린슨의 경우 맥고완이 보여준 영웅적인 공무원상을 십분 활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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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논픽션 스토리텔링은 광범위한 영역을 아우른다. 이 책에 인용한 사례 대부분은 신문 이외의 매체에서 가져온 것이다. 물론,
신문에서 인용한 사례도 상당수다. 내가 글쓰기 코치로, 편집자로 잔뼈가 굵은 분야이기 때문이다. 내 경험을 이 책에 고스란히 녹여내고 싶다는 바람으로 그 시절 내가 배웠던 것을 전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이야기가 갖춰야 할 이론적 원칙과 그것을 실전에 적용할 방법을 동시에 알고 있는 저자와 편집자에게서 좋은 스토리텔링이 나오는법이다. 스토리텔링을 익히려는 이들은 그 분야에서 일해본 사람, 그래서 이론과 실전을 모두 잘 아는 사람에게 배워야 한다. 나에겐 신문사시절 경험, 그 후에는 워크숍에서 만난 논픽션 내러티브 작가들과의 대화, 수많은 논픽션 내러티브 책을 처음부터 출간까지 코칭했던 경험이 스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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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나는 나일 뿐이다!"라는 상태로만 존재하면서 나라는 존재감에 어떠한 제약도 가하지 않는다면, 그 순간이야말로우리가 참나로서 오롯이 존재하는 순간일 것입니다. ‘견성見性이라는 것은 바로 이러한 경지를 말하는 것이며, 보임保任이라는 것은 늘 이러한 경지에 안주하도록 노력하는 것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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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규봉 스님께서 먼저 깨치고 뒤에 닦아 나가는 뜻을 깊이 밝혀서말씀하시길 "얼어붙은 연못이 온전히 물이라는 사실을 알더라도, 태양빛을 빌려야 실제로 녹여서 물로 만들 수 있는 것처럼, 일반 중생이 곧 부처라는 사실을 알더라도, 진리의 힘을 빌려서 익히고 닦아야만 실제로 부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얼음이 녹아 물이 되어 흐르고 적실 수 있어야 비로소 그 물에 씻을 수 있는 것처럼, ‘망령된 마음‘이 모두 사라져야 비로소 마음이 신령하게 통하여신통 광명한 작용을 나타낼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행위‘에 있어서의 신통·변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익히고 닦아야만 나타낼 수 있는 것임을 잘 알 수 있다.
放蜂深圳先悟後修之義日識水池而全水借陽氣以给消悟凡大而即佛資法从兼修水消水流方呈減除之功安盖小心處通應現通光之用是時神通變化非一日之能成真而發現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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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도道에 들어가는 문은 많지만, 요약해 말해 본다면 ‘돈오‘와 ‘점,6).
수新修"라는 두 문에 불과하다.
비록 "돈오돈수酷·頓修를 최상의 근기를 가진 사람들은 들어갈 수 있다."라고 하나, 그 과거를 미루어 따져 본다면 이미 수많은 생을 살면서 깨달음(돈오)에 의지해 닦으면서(수) 점진적으로 변화해 오다가, 금생에 이르러 진리를 듣자마자 즉시 깨달아 한꺼번에 모든 일을 마친 것이다.
진실을 말해 본다면 이것(돈오돈수) 또한 먼저 깨닫고 뒤에 닦은 근기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이 ‘돈오 · 점수‘의 2가지 문은 모든 성인聖人들께서 걸으신 길이니, 예전의 모든 성인들께서는 먼저 깨닫고 뒤에 닦으셨으며, 그 닦은 바에 따라 경지를 증득하셨다. 이른바 ‘신통 · 변화‘라는 것은 깨달음에의지해 닦아가는 중에 점진적으로 변화하면서 나타나는 것이지, 깨닫는즉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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