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줄에 방울을 달지 못한 사람은 《봄날은 간다》라는 노래가 얼마나 가슴아픈 노래인지 잘 안다. 열심히 준비해서 시간의 열차에 올라 탄 사람은 창밖의 풍경을 보며 중간 역들을 지나 언젠가 ‘서울역에 도착하게끔 되어 있지.
그렇지만, 가만히 앉아 있어도 목적지를 향해 올라가는 인생의 열차에 타지 못한 사람에게 《봄날은 간다》는 눈물 없이는 부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노래일세나는 그렇게 생각하네."
십여 년 전쯤 함께 했던 남도여행길에서 술잔 앞에 놓고 이런저런 이야기 중에선생께서 해주신 말씀이다. 오랫동안 좋아하였으나 그 후로 쉬 부르지 못하게된 노래가 바로 《봄날은 간다》이다. 영화 《화양연화와 함께 오버랩되며……..
지난해 늦은 여름, 몽골 작가협회 초청 여행을 열흘쯤 남겨두고 급작스레 이승의 강을 건넌 선생의 영결식장에서 당신의 속 깊은 친구 장사익 씨가 부른 마지막 노래 《봄날은 간다》가 사람들의 가슴을 또 다시 흔들어놓고 있을 때, 그봄날을 생각해 보았다. 선생의 봄날은 언제이고 남은 이들의 봄날은 언제인지흘러간 과거였는지 지금인지 아니면 다가올 미래인지.
평생 꽃이 아니라 잎으로만 살아왔다고 겸손해 하신 선생의 삶은 고요하되 치열했다. 사전을 통째로 씹어 삼키며 단어를 외우고 닥치는 대로 책을 읽던 십대시절이나 월남전에서 적과 전우를 넘어 인간의 죽음을 목도하던 이십대, 등단이후 오히려 번역으로 날을 새며 붓을 벼리던 삼사십대, 그리고 신화 연구와창작으로 더 바빠졌던 오십대 이후 만년, 생각해보면 단 한 번도 당신 스스로의삶에서 ‘꽃‘이 아닌 적이 없었고, 그렇기에 오히려 단 하루도 ‘봄날‘이 아닌 적이 없었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그 ‘봄날’이 갔구나, 우리들에게서. 가는 ‘봄날‘
붙잡지 못하고 이렇게라도 기억하고 싶었다. 이 책 《봄날은 간다》는 그렇게 시작했다.
참여한 필자들은 모두 깊은 인연의 실이 닿아 있는 분들이다. 언젠가 다시 더불어 손잡고 조르바 춤을 출 고마운 분들이다.
졸업이 아닌 중퇴, 당선이 아닌 입선 그리고 정식 교수가 아닌 초빙, 객원, 명예한 번도 ‘꽃‘으로 피어보지 못한 채 ‘잎‘으로만 살아왔지만, 그래도 잘 살고 있다며 젊은이들에게 좌절하지 말라던 선생의 따뜻한 미소와 등두드림이그립다.
봄날은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