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챙김을 정원사라고 한다. 매일 마음챙김이라는 수행을 통해 땅을 개간하고 바른 견해의 씨앗이 싹트도록 하기 때문이다. 마음챙김은 우리의 일상생활을 하는데순간에도 마음을 하나로 모아 그것을 통해 우리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고, 또 우리 주변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있는지 깨닫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삶이야말로 우리가 진정으로 우리 자신의 상을 사는 것이다. 그렇지다면 마지 우리는 자동항법으로 비행하는 조정사와 같다.
정말로 우리의 삶을 스스로 사는 것이 아니다.
중도는 유지와 무, ‘오고, 가는 것. 태어나고, 죽는와 다르다, ‘존재한다와 존재하지 않는다‘ 와 같는 이분법적 사고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이다. 일어서야 할 관념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얼마나 놀라운가! 모든 중생이 깨달음을 얻고,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구나, 다만 아직 고통의 바다에서 떠올랐다가 잠겼다를 반복하는 윤회의 생을 이어가고있구나. 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당신이 소설 쓰기 과정의 어떤이
단계에 놓여 있는 초고 집필, 수정, 개요 작성, 머리를 벽에 부딪쳐가려 멋진 제목 고민하기 등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그토록 두려운질문을 받게 될 것이다.
무엇에 관한 소설인가?
당신의 목표가 전통적인 방법으로 소설을 출판하는 것이든(출판사와 계약) 자가 출판이든(전자책이나 실물 책) 아니면 그냥 왓패드(북미웹소설 플랫폼 옮긴이) 같은 곳에 올려 반응을 보는 것이든 똑같은 난관에 부딪힌다. 소설을 팔아야만 한다. 당신은 누군가에게 (문학 에이전트, 출판사, 아마존 전자책을 뒤지는 잠재적 독자, 혹은 왓패드 이용자들까지!)당신의 소설이 무엇에 관한 이야기인지 설명해야 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당신의 소설을 피칭할 수 있어야 한다.
피치tch는 무엇이고,
왜 중요할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린 때로 어느 여성의 아름다움, 어느 남성의 호의나 매력, 유리한 상황 등에서 우리에게 사하여지는 은총에 대한 약속을 보기도 한다. 하지만 곧 우리의 정신은 그런 달콤한 약속을 한 사람들이 실은 그것을 이행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음을 깨닫고, 우리를 향해 죄어오는 벽을 밀어내고자 있는 힘껏 저항한다. 더 넓은공간을 만나면 팽창하는 성질의 공기처럼 정신은 자신앞에 더 넓은 영역이 열리면 그것에 달려들지만 언제나처럼 이내 다시 억눌림을 당한다. 어느 날 저녁, 나는 당신의 눈에, 걸음걸이에, 목소리에 속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이 어디까지 나를 끌고 가는지 정확히 알고다. 그 끝이 어디인지, 언제 당신이 더 이상 아무 말도하지 않는지 말이다. 마치 그 밝기가 계속될 수는 없지만 아직은 유지되는 빛과도 같이 당신의 두 눈이 석양속에서 여전히 반짝이도록 내버려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천재가 아닌 이들에게 만약 그들 밖의 세계와 안의 세계를 발견하도록 안내한 화가, 작곡가, 시인이 없었다면 삶은 얼마나 우울하고 단조로웠을 것인가!
바로 이것이 천재들이 우리를 도와주는 방식이다. 그들은 우리 영혼이 가진 재능, 미처 그 존재조차 알지 못했으나 사용하면 할수록 더 커지는 재능을 발견하게 한다.
이와 같은 은인들 중 오늘 나는 이 세상과 인생을 한층더 아름답게 만드는 화가들을 예찬하고자 한다. 어느여인은 루브르 박물관에서 라파엘로의 완벽한 형상들과 코로가 그린 숲을 본 다음 박물관을 나와서는 행인들이나 파리 거리의 추함을 보지 않기 위해 눈을 감은채 걸어다녔다고 한다. 요정들은 그녀에게 요람의 선물 이상을 주지는 않았으며, 그 선물은 마음의 평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나는 루브르를 나올 때 이상향 속에서 나오지는 않는다. 돌 위에 비치는 빛과 그림자, 말의몸통에 반지르르 흐르는 광택, 지붕 사이로 보이는 잿빛 또는 푸른빛 하늘 조각, 지나가는 사람들의 생기 넘치거나 둔한 눈동자에 비친 삶의 발현을 루브르에서의수업 이후 계속해서 관찰, 아니 이제 막 관찰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