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무 데서나닥치는 대로 글을 썼고 그 외의 시간에는 딸들을 위해 가정을 꾸리는 데 집중했다. 이때가 우리가 핵가족을 이루고 살던 시절보다도 내게 더 많은 희생을 요구한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런 가정을 꾸리는 일, 엄마와 딸들을 위한 공간을 장만하는 일이 어찌나 고되면서도 사람을 겸허하게 만드는 일인지, 어찌나 심오하고 또한 흥미로운 일이었던지, 나는 혼란했던 이 시기에조차내 맡은 바를 의외로 원만히 해 나갈 수 있었다.
머릿속도 맑고 명쾌해졌다. 언덕 위 집으로 이사하고새로운 상황에 직면하면서 그간 갇히고 억눌렸던 것이해방된 모양이었다. 근골이 점차 약해지기 시작한다는50대에 들어 나는 체력적으로 강해졌다. 기운 없이 지내는 건 선택지가 아니었으므로 늘 기운이 넘쳤다. 아이들을 부양하려면 글을 써야 했고, 힘쓰는 일도 도맡아야 했다. 자유는 결코 공짜가 아니다. 자유를 쟁취하고자 분투한 사람치고 그에 수반하는 비용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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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만의 목소리를 갖는 건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지만 이런 이중의 딜레마 속에 놓여 있다는 점에서 여성들의 여정은 이성애자 남성의 여정보다 더 험난하다. 세상에 없는 나의 기억들은 젊은 여성이었던 리베카 솔닛이자신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그 험난하지만 찬란한 여정의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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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의 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좁은 의미와 넓은 의미에서) 우리 동네의 작은 창들은 어느새 대부분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었다. 나는 이미 수없이 보았지만 볼 때마다숨을 멎게 만드는 그 풍경에 매혹되어 짙푸른 물감이 점점더 번져가는 동네가 별빛 가득한 우주의 가장자리처럼 보일 때까지 그곳에 서 있었다. 그 우주의 가장자리에서 M이모가, 나의 개 봉봉이 살았고, 길고양이 시몬과 장폴이, 나의 이웃들이 살고 있다.
나는 거울 속처럼 고요한 우리 동네 풍경의 아름다움을 조금 더 오래 누리고 싶지만 밤이 다가오고 있는 기척을 느낀다. 밤은 성큼성큼 다가온다. 모든 걸 쓸고 가버릴듯한 커다란 갈퀴를 끌며 시간이 조금 더 흐른 후엔 무엇이 변하고, 무엇이 변하지 않을까? 그것에 대해 생각할 때면 나는 이따금씩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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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장 인도의 맛과는 거리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둘이서 함께 설날을 보내는 것만으로 행복했다.
올겨울 엄마는, 연말부터 연초에 걸쳐 아무르의 단골손님들과 함께 골프와 쇼핑을 하러 하와이 여행을 갔다.
중매쟁이 아주머니도 함께였다. 그래서 나는 혼자서 설날을 맞이하게 됐다. 물론 집에는 엘메스가 있다. 나는무늬뿐인 설음식을 플라스틱 그릇에 담아서 엘메스와마주한 채 조촐하게 설을 했다.
새해 복 많이 받으렴.
엘메스에게 말했지만 당연히 반응은 없다.
기분전환을 위해 엘메스 목욕시키기에 열중하기도 하고, 가끔 눈밭에 자유롭게 풀어 주기도 했다. 그래도 시간이 남을 때는 보고도 그냥 지나쳤던 찻잔의 때를 전용 스펀지로 깨끗이 닦아내는 작업을 되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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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귀에 힘이 없고 유백색의 가느다란 수염에도 생기라곤 없다. 털실 뭉치 같은 동그란 꼬리를 손가락 사이에끼워 봐도, 여전히 토끼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설령 내가 지금 이 토끼를 마음껏 간질인다 해도 아무 반응도 하지 않을 것이 뻔해 보였다.
나는 손바닥을 신중히 토끼의 배 쪽에 넣고 양손으로들어 올려 보았다. 토끼의 심장은 마치 살아 있는 날것그대로를 만진 듯이 손바닥 바로 가까이에서 격렬하게요동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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