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무 데서나닥치는 대로 글을 썼고 그 외의 시간에는 딸들을 위해 가정을 꾸리는 데 집중했다. 이때가 우리가 핵가족을 이루고 살던 시절보다도 내게 더 많은 희생을 요구한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런 가정을 꾸리는 일, 엄마와 딸들을 위한 공간을 장만하는 일이 어찌나 고되면서도 사람을 겸허하게 만드는 일인지, 어찌나 심오하고 또한 흥미로운 일이었던지, 나는 혼란했던 이 시기에조차내 맡은 바를 의외로 원만히 해 나갈 수 있었다.
머릿속도 맑고 명쾌해졌다. 언덕 위 집으로 이사하고새로운 상황에 직면하면서 그간 갇히고 억눌렸던 것이해방된 모양이었다. 근골이 점차 약해지기 시작한다는50대에 들어 나는 체력적으로 강해졌다. 기운 없이 지내는 건 선택지가 아니었으므로 늘 기운이 넘쳤다. 아이들을 부양하려면 글을 써야 했고, 힘쓰는 일도 도맡아야 했다. 자유는 결코 공짜가 아니다. 자유를 쟁취하고자 분투한 사람치고 그에 수반하는 비용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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