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다큐멘터리에서는 몇 번이나 디지털로 촬영했지만, 그때는 테이프가 감기는 게 보여서 찍히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고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 필름에서 비디오로, 그리고 이제는 칩으로 녹화되는 매체의 질감이 점점 가벼워지고 있는데, 그 변화를 아직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게 제 솔직한 심정입니다. 세계적으로도 그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지 없는지가 관건이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상실의 시대>를 디지털로 촬영한 트란 안 훙 감독의 사고방식은 명쾌합니다. 그는 "디지털로 찍을 때 많은 사람이 잘못하는 점은 필름의 퀄리티를 비슷하게 흉내 내는 것이다. 그래서 실패한다"고 말했습니다. 즉 디지털에는 디지털의 장점이 있으므로 필름에 대한 향수를 거기에 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지요. "우리는 이미 현실을 필름이 아닌 디지털적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그 감각을 반영해야 한다"고요. 그는 의도적으로 평평하고 또렷한 화면을 만드는 것을 의식해야 한다는 발상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단, 그것이 <상실의 시대>의 세계관과 어울리는 지는 개인적으로 조금 의문입니다. 그의 발상을 실현하려면 카메라맨은 필름으로 계속 찍고 있는 리핑빙이 아니었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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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의나 전쟁 등 자신의 사고 바깥에 있는 것에 대해 그 방송을 본 사람이 자신의 내부에서 바르게 상상력을 가동시켜 가는 것. 분명 텔레비전에는 그곳으로 향하게 만드는 힘을 가진 표현이 결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것과 마주치는 장소를 확보하는 일이 최종적으로는 공동체자체와 개인을 풍요롭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공공재인 텔레비전이 해야 할 역할이다.
<론자》 2005년 4월 호

스타트 지점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역시 거기에 있는 것은 2001년 9월 11일에 일어난 미국의 9·11 테러 사건입니다.
‘‘선악의 이원화‘는 매우 단순한 생각입니다. 9·11이 선악의 이원론을 정당화시켰다고 하면 과언일지도 모르지만, 당시 미국인의 80퍼센트가 이라크 공격을 지지한 것은 역시 이상한 일입니다.
일본도 고이즈미 총리가 어떤 검증도 없이 무조건적으로 미국정부를 지지했습니다. 그리고 일본의 가장 나쁜 점은 아직까지도 그 정당성을 검증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당시 영국 총리 블레어도 미국 대통령 부시도 다시 검증당해 적어도 정치적으로는 판결받았지만, 고이즈미 전 총리는 전혀 그런 과정 없이 "다음 총리로 누가 좋을까요?"라는 질문에 아직까지 이름이 거론됩니다.
바로 그가 지금 일본의 양극화 사회를 만든 원흉인데도 일본인은 정말로 이미지로만 판단합니다. 이는 미디어의 탓도 있겠지만 그래도 좀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검증하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역사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순간순간의 감정으로만 움직이니 매우 위험합니다. 저는 9·11이후의 일본을 보며 ‘사람은 의외로 간단하게 전쟁에 가담하는구나‘라고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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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때는 사람 돌보는 거나 동물 돌보는 거나 같은 마음일 거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사람과 동물은 다르다. 사람을 키운다는 것은 미래지향적이다. 우리는 그 아이가 무언가가 되어 가기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 공부 잘하는 사람, 재능이 뛰어난 사람, 돈 잘 버는 사람,
꼭 그런 게 아니라도 보통의 시민으로 제 몫을 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기대하고, 그렇기에 때론 다그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동물은 그렇지 않다. 그저 내 곁에 있어 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지금 이대로, 매일매일 똑같기를 기대한다는 점에서 동물을 돌본다는 것은 현재지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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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콘티에 얽매여 있었다는 사실은 허우샤오시엔 감독으로부터 지적을 받고 깨달았습니다.
"테크닉은 훌륭해요. 다만 당신은 촬영하기 전에 콘티를 전부 그렸겠지."
18도쿄 국제영화제 참석차 일본에 와 있던 허우샤오시엔 감독을 만났을 때 이렇게 정곡을 찔려서, "그렸습니다. 자신이 없어서요"라고 대답하자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어디에 카메라를 둘지는 그 사람의 연기를 현장에서 지켜본 뒤에 비로소 정해지는 게 아닌가. 당신은 다큐멘터리를 찍었으니 알겠지?"
물론 통역을 사이에 둔 대화였기에 이렇게까지 호된 말투는 아니었겠지만, 제 기억으로는 ‘그런 것도 모르나?‘라는 뉘앙스였습니다. 충격이었습니다. 눈앞의 인간이나 현상과의 관계 속에서 찍는 대상이 다양하게 변화하는 다큐멘터리의 재미를 분명 실감했는데도, 게다가 그 다큐멘터리라는 우회로를 거쳐 겨우 영화에 이르렀는데도 그런 경험을 살리지 못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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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머니에게 아직 묻고 싶은 것이 많다. 그러니 한라봉이 남아 있고 보행 보조기를 ‘모셔 놓은‘ 당신 집으로, 당신이 돌아오면 좋겠다. 나는 당신에게 꼭 묻고싶은 게 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속에서 완화 치료전문가인 수전이 자신의 아버지에게 물었던 질문이다.
"제가 알아야 할 게 있어요. 당신이 생명 유지를 위해얼마만큼 견뎌 낼 용의가 있는지, 그리고 어느 정도 상태면 사는 게 괴롭지 않을지 알아야만 해요." 그래서당신 대답에 따라, 당신 뜻대로 존엄한 죽음을 ‘선택‘
할 수 있을 만큼의 시간이 우리에게 허락된다면 좋겠다. "결국은 이기게 되어 있는 죽음" 을 주제로 우리가 오래 대화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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