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다큐멘터리에서는 몇 번이나 디지털로 촬영했지만, 그때는 테이프가 감기는 게 보여서 찍히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고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 필름에서 비디오로, 그리고 이제는 칩으로 녹화되는 매체의 질감이 점점 가벼워지고 있는데, 그 변화를 아직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게 제 솔직한 심정입니다. 세계적으로도 그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지 없는지가 관건이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상실의 시대>를 디지털로 촬영한 트란 안 훙 감독의 사고방식은 명쾌합니다. 그는 "디지털로 찍을 때 많은 사람이 잘못하는 점은 필름의 퀄리티를 비슷하게 흉내 내는 것이다. 그래서 실패한다"고 말했습니다. 즉 디지털에는 디지털의 장점이 있으므로 필름에 대한 향수를 거기에 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지요. "우리는 이미 현실을 필름이 아닌 디지털적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그 감각을 반영해야 한다"고요. 그는 의도적으로 평평하고 또렷한 화면을 만드는 것을 의식해야 한다는 발상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단, 그것이 <상실의 시대>의 세계관과 어울리는 지는 개인적으로 조금 의문입니다. 그의 발상을 실현하려면 카메라맨은 필름으로 계속 찍고 있는 리핑빙이 아니었어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