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정말 행복하다고 느낀다. 하지만 마감이 코앞에 있거나 그날쓴 글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가시지 않으면 그 시간에다시 방으로 들어가 글을 쓴다. 산책을 하면서 생각의 환기가 일어났기 때문에 그 짧은 삼십 분 동안 새로 쓰는 글은 비교적 만족스럽고, 다음 날 수정하거나삭제하는 부분이 별로 없는 편이다. 나는 선택해야 한다. 삼십 분간 평온하게 책을 읽으며 쉴 것인가, 새로글을 써서 내일의 일을 조금이나마 덜 것인가. 요즘은주로 후자를 선택한다. 읽고 싶은 책은 쌓여만 가고나의 글은 한 발 나아간다. 하지만 더 멀리 나아가기위해서는 그 시간에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쌓아둔 책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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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역에 대해 『명종실록』에는 외부의 시선이미치지 않는 구역이라 섬 주민들이 방종하게 살고 있다며 개탄하는 내용이 있다. 사촌이나 오촌 사이에도결혼하며, 홀아비와 과부가 마음 맞으면 쉽게 동거하고, 남녀가 한강을 건널 때 옷을 걷거나 벗는 게 예사이고, 그럴 때 서로 몸을 붙들기도 한다는 것이다.
『명종실록』에는 그런 일이 벌어지는 곳이 여의도로 나와 있다. 하지만 ‘너른벌‘이라는 이름 그대로벌판이었던 여의도보다는 뽕나무가 많은 밤섬 쪽이남녀상열지사를 치르기에는 더 적합하지 않았을까싶다. 조금만 걸으면 되는데. 내 추측이 아니라 조선과학실록』을 쓴 이성규 『사이언스타임즈』 객원편집위원의 의견이다.

반복되는 수재에 진저리를 낸 주민들도 있었다.
한강에 홍수가 나면 밤섬 주민들은 며칠씩 섬에 갇혀 굶주리곤 했다. 1950년대에는 그런 상황에서 정말 아사자가 나왔다. 밤섬 주민이 4일째 고립되어 있다는소식을 전하는 1962년 『조선일보』기사에서 이 지역동장은 "백 명 이상이 탈 수 있는 동력선이 마련되거나 케이블카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한탄한다.

몇백 년 전 거리에 놓인 커다란 바위나 자갈이깔린 길을 보며 아기장수나 대장장이 초능력자 이야기를 지어낸 사람들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수천 년 전 밤하늘의 별들을 이으며 큰곰자리니 작은곰자리니 하는 전설을 만들어낸 그리스인들의 심리도 마찬가지였으리라. 그들은 자신들이 매일 보고 경탄하는 대상과 관계를 맺고 싶어 했다. 불확실하게나마 상대를 이해하고, 인간적인 뉘앙스를 입혀서 자신들의 삶 속으로 껴안으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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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 하니 한 가지 기억이 떠오른다. 내 머릿속에가장 강하게 남은 파도는 수학여행 이후 처음 온 대학교 2학년 때의 제주도 금능 포구에서 보았던 파도다.
그때도 역시 다짜고짜 떠났던 나는 하필 유독 바람이거셌던 10월 말에 그곳을 찾았고, 정말 작은 집 한 채만 한 파도가 포구의 비죽이 튀어나온 곳을 집어삼키는 장면을 보았다. 위험 진입 금지 팻말이 너덜거리고, 그 근처에 사람이 가지 않을 뿐 대부분의 가게들이 정상 영업이었던 걸 봐서는 종종 있는 풍경인가 싶었다. 나는 난생처음 마주한 자연의 박력에 압도당했었다. 그 파도를 다시 보고 싶어 묵었던 기간 내내 금능 포구에 들렀지만 이후로는 보지 못했다.

누구에게나 능력은 부족하지만 애정이 넘치는 대상이 있게 마련이다. 내게도 그런 대상이 여럿 있는데, 그중 하나가 술이다. 주량은 평균을 밑돌지만 꾸준히, 그리고 자주 마셔온 사람, 나에 대한 스스로의 정의 중 하나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경험이 누락된 내 삶과 글쓰기가 어디로 향할지 나는 아직 아무것도 알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에 내가 엄청난 결핍감을 느끼는 것은아니다. 삶에는 파고와 리듬이 있고 질량보존의 법칙이 작용한다고 나는 믿는다. 행복한 순간에도 고통스러운 시간은 미래로부터 다가오게 마련이고 끝나지않을 것 같은 고통은 예상하지 못한 행운이나 인연으로 희석된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고 마이너스된 분량만큼 플러스된 무언가가 인생을 살찌우기도 한다. 완벽한 상실과 영원한 충만은 없다. 적어도 내가 내 인생으로부터 혹독하게 체득한 바로는 그렇다.

‘나는 어른이 되었지만, 여전히 숨어 사는 호랑이를꿈꾼다. 장편소설 『밤에 찾아오는 구원자』에는 인간을 피해 숨어 사는 회색늑대가 나온다. 멸종되었다고알려졌지만 회색늑대는 사실 인간이 찾을 수 없는 곳에서 살고 있을 뿐이다.

회색늑대들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펑펑 내리는 눈이 회색늑대들의 발자국을 덮었다. 완다는회색늑대들이 영원히 인간에게 들키지 않기를바랐다. 회색늑대가 사라졌다고 인간들이 슬퍼하든 말든 회색늑대들끼리 이 세계 어딘가에서잘 살고 있기를.

-밤에 찾아오는 구원자 1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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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곳에서는 자연스럽게 수백 년 전과 수백 년 뒤라는 시간을 의식하고, 자신이 그 일부라고 여기게 된다. 거리와 골목을 함부로 대하지 않게 된다. 자기 존재가깊은 뿌리, 또 먼 미래와 이어져 있음을 믿게 된다. 현수동에서는 과거와 현재가 서로 존중하고 대화한다.
이런 역사 감각은 조선시대 궁궐이나 민속촌을걸을 때에는 얻지 못한다. 그런 장소들에는 현재가너무 희박하며, 나는 그 공간의 방문객일 따름이다.
궁궐에 살았던 사람은 나와 비슷한 신분도 아니었다.
궁궐이나 민속촌의 존재가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런곳이 내 고향이 될 수는 없다는 얘기다.

흰 꽃이 피고 빨간 열매가 열리는 나무들 아래에서 살았던 사람들을 상상해본다. 웃통을 벗은 채땀을 뻘뻘 흘리며 금속을 달구고 두드리는 대장장이들, 콩을 삶는 가마솥에 장작을 넣는 소년 소녀, 그앞으로 새로 만든 독을 머리에 이고 가는 여인들 막배에서 내린 소금장수와 얼굴이 까맣게 탄 새우젓장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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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서는, 그들의 인식은 행동이 되었고, 그들의 사유는 한갓 논증적인 인식을 떠났으며, 인간에 대한 그들의 고찰은 지적 직관이 되었다. 요컨대 그들은 행동의 영지주의자다, 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론적으로 불가능한 모든 것이 그들의 행동에서 현실화되었다고 말하는 것 말고 달리 당신에게 설명할 방도를 모르겠습니다. 선은 모든 것을 환히 비추어주는 인간 인식, 객체와 주체의 일치가 일어나는 인식입니다. 선한 인간은 더 이상 타자의 영혼을 해석하지 않습니다. 그는 마치 자기 자신의 영혼을 읽듯이 타자의 영혼을 읽습니다. 그가 타자로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은 기적이요 은총이자 구원입니다. 천상의 것이 지상으로 하강한 것이지요. 달리 말하면참된 삶, 생생한 삶입니다.(그것이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든 아니면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든 상관없습니다.) 선은 윤리를 떠나는 것입니다. 다시말해서, 선은 윤리학적 범주가 아니며, 당신은 논리 정연한 그 어떤윤리학에서도 그것을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당연히 그럴 터인데,
윤리는 일반적이고 의무를 지우는 것이며 인간과는 거리가 먼 것이기 때문입니다. 윤리는 통상적인 삶의 혼돈에서 인간을 떼어내는 최초의 고양, 가장 소박한 고양입니다. 그것은 인간이 자기 자신에서자신의 경험적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하지만 선은 진정한 삶으로의 귀환이자, 인간의 참된 귀향입니다. 당신이 어떤 삶을 삶이라부르든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두 가지 삶을 서로 엄격하게구분하는 일만이 중요할 따름입니다.

선 속에서 존재하는 사람이 지닌 ‘그럼에도 불구하고‘에 대한 믿음 역시 마찬가지로 절대적이며 확고합니다. 선이란 신들림입니다. 그것은 온화하지 않고, 세련된 것도 아니며, 정적주의(靜寂主意)적이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거칠고 잔혹하며 맹목적이고 모험적입니다. 선한 사람의 영혼에는 이유와 결과 같은 심리학적 내용이 일체 없습니다. 그 영혼은 운명이 부조리한 명령을 적는 순결한 백지이며, 그 명령은 맹목적으로, 앞뒤를 돌보지 않고 무자비하게 끝까지 수행됩니다. 이러한 불가능성이 행동이 되고, 이러한 맹목성이 투시가 되며, 이러한 무자비함이 선이 되는 것, 바로 그것이 기적이요 은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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