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구역에 대해 『명종실록』에는 외부의 시선이미치지 않는 구역이라 섬 주민들이 방종하게 살고 있다며 개탄하는 내용이 있다. 사촌이나 오촌 사이에도결혼하며, 홀아비와 과부가 마음 맞으면 쉽게 동거하고, 남녀가 한강을 건널 때 옷을 걷거나 벗는 게 예사이고, 그럴 때 서로 몸을 붙들기도 한다는 것이다.
『명종실록』에는 그런 일이 벌어지는 곳이 여의도로 나와 있다. 하지만 ‘너른벌‘이라는 이름 그대로벌판이었던 여의도보다는 뽕나무가 많은 밤섬 쪽이남녀상열지사를 치르기에는 더 적합하지 않았을까싶다. 조금만 걸으면 되는데. 내 추측이 아니라 조선과학실록』을 쓴 이성규 『사이언스타임즈』 객원편집위원의 의견이다.

반복되는 수재에 진저리를 낸 주민들도 있었다.
한강에 홍수가 나면 밤섬 주민들은 며칠씩 섬에 갇혀 굶주리곤 했다. 1950년대에는 그런 상황에서 정말 아사자가 나왔다. 밤섬 주민이 4일째 고립되어 있다는소식을 전하는 1962년 『조선일보』기사에서 이 지역동장은 "백 명 이상이 탈 수 있는 동력선이 마련되거나 케이블카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한탄한다.

몇백 년 전 거리에 놓인 커다란 바위나 자갈이깔린 길을 보며 아기장수나 대장장이 초능력자 이야기를 지어낸 사람들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수천 년 전 밤하늘의 별들을 이으며 큰곰자리니 작은곰자리니 하는 전설을 만들어낸 그리스인들의 심리도 마찬가지였으리라. 그들은 자신들이 매일 보고 경탄하는 대상과 관계를 맺고 싶어 했다. 불확실하게나마 상대를 이해하고, 인간적인 뉘앙스를 입혀서 자신들의 삶 속으로 껴안으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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