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은 지금 살고 있는 체스트넛 스트리트의 아담하고 우아한집에서 테이블에 은색 트로피를 내려놓으며 미소를 지었다. 그는올해 말에 키 낮은 흰색 꽃꽂이 작품을 만들어 그 옆에 둘 것이다. 스위트피와 작고 하얀 장미 봉오리, 카네이션이 나올 때, 배경으로는 하야스름한 양치식물을 쓸 것이다. 하지만 아니, 그건 현실적이지 않았다. 봄이 되면 그는 다시 일을 시작할 것이다. 겨우 일주일남았고, 그 문제는 다시 생각해보면 된다.
그 모든 것은 오래전에 시작되었다. 내 생일 바로 전에 나는 5월7일에 아홉 살이 되었는데, 집안에 험악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아주 나쁜 일이었을 것이다. 아빠가 문을 쾅쾅 두들겼다. 욕실 문, 차문, 정원 헛간 문, 그야말로 모든 문을 두들겼다.
아빠는 아홉 살짜리 아이를 데려가기 좋은 곳을 신문에서 찾아보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았고, 우리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나는 늘 정확히 여섯시에 엄마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아빠가 나를 아빠 집으로 데려가지는 않아서, 나는 문에데코라고 쓰인 방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었다.
해리는 나보고 기대하지 말라고 한다. 부모님이 다시 합치지는 않을 거라고, 같이 살던 집을 팔고 나면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리는 아주 똑똑하다. 이런 것을 다 안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나는 이제 그게 내 잘못이 아니라는것을, 뭔지 몰라도 ‘면접교섭권‘이란 게 있다는 것을, 이대로 괜찮다는 것을 아니까.
그들은 매년 일주일 동안 휴가를 떠났다. 해외로는 아니었다. 해리 켈리가 외국 음식을 좋아하지 않고, 네사켈리가 비행기 타는 것을 무서워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아일랜드에도 갈 곳은 충분했다. 어느해에는 리스둔바르나에 갔고, 어느 해에는 욜에 갔다. 그들은 좋은민박집을 찾아냈고, 혹시 다시 갈지 모르니 늘 명함을 챙겼다. 하지만 다시 가는 일은 없었다. 이십사 년의 여름휴가 동안 그들이 한 번 간 곳을 다시 간 적은한 번도 없었다. 그때 당시엔 얼마나 멋진 곳이냐고 아무리 말했다해도.
네사는 은제품 다섯 개를 은행에 맡겼다. 각각을 면으로 된 천으로 싸서 작은 노란색 가방에 전부 넣고 지퍼를 잠근 뒤에. 휴가 때 외에는 찬장 맨 아래 칸에 두었다. 선반 같은 데 진열해서 강도를 유혹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해리는 집안을 돌면서 창문잠금쇠를 일일이 점검했고, 경보기도 몇 번이나 작동시켜보았다. 후회하기보다 확인하는 게 낫다고 그는 늘 말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작은 정원에 물을 줄 믿을 만한 이웃이 있기를 바랐지만, 안타깝게도 26번지에 사는 자유분방하고 단정치 못한 빨간 머리 여자와 밤에 그 집에서 자고 가는 남자친구밖에 없었다. 그 여자에게 뭔가 해달라고 부탁하는 건 의미 없는 일이었다. 그들은 그녀에게 고개 숙여 정중히 인사했다. 이런 사람과는 적2 이 되기보다 친구가 되는 편이 늘 더 나았다. 그녀는 "안녕, 네사해리?" 하고 소리치곤 했다. 그녀의 나이가 그들의 절반도 되지 않을 거라는 점을 감안하면 너무 스스럼없는 태도였다.
켈리 부부는 클리프덴으로 출발하기 전날 저녁에 떠나기 위한모든 준비를 끝냈다. 샌드위치는 냉장고에 넣어두었고, 아침에 삶아서 먹을 달걀 두 개와 토스트로 만들어 먹을 빵을 챙겨두었다.
집은 단정하고 깔끔하게 정리된 채로 일주일 뒤에 돌아오는 그들을 반겨줄 것이었다. 그러고 나면 해리가 다시 출근하기까지 회복에 필요한 닷새가 온전히 남을 것이다. 길고 긴 여정이 될 터였다. 그들도 알았다. 두 사람 다 아주 피곤할 것이다.
그들은 강력히 반대했다. 그러면 클리프덴에 도착하는 시간이아주 늦어질 터였다. 그래서 그들은 샌드위치를 먹었다. 하지만 멜리는 먹지 않았다. 그리고 멀린가에 도착하자 무단 점유한 건물에 사는 두 히피 친구가 빵가루를 많이 넣은 아주 맛있는렌즈콩과 토마토 요리를 만들어놓았다. 히피 친구들은 해리와사를 아주 편안하게 대했고, 애슬론에 사는 셰이가 목 상태가 안좋으니 꿀을 좀 가져다주라고 부탁했다.
네사와 해리는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들의 눈빛은 묻고 있었다. 집으로 가야 할까? 지금 당장? 그럴 시간이 없었다. 멜리가 이미휴대전화로 아덴라이에 전화를 거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손을 흔들어 셰이에게 작별인사를 한 뒤 다시 차에 올라타고 서부로 했다.
"제가 누구냐고요? 멜리예요. 켈리 부부의 가장 좋은 친구이고이웃이에요. 그분들이 나를 구해준 셈이죠. 아니요, 전혀 까다로운분들이 아니에요. 아주 편한 분들이에요. 다른 사람들로 착각하셨나봐요. 아니요, 정말로 시원시원한 분들이에요. 아덴라이에서 공연을 보고, 골웨이에서 한잔하며 사람들과 어울리고, 맘크로스에서 차를 세우고 내려 염소와 양을 구경하며 대서양 냄새를 맡을 거니까, 새벽 한시나 두시 전에 도착하긴 힘들 거예요. 하지만 두 분이 회복하는 데 필요한 한 주라는 시간이 남아 있으니까요." 멜리는 차의 뒷좌석에서 그들 사이로 몸을 기울였다. "자, 이제다 해결했어요." 그녀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네사와 해리는 서로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아주 편하고 정말로 시원시원하다‘는 말에 터무니없이 우쭐해진 기분이었다. 멜리는 진심으로 그들이 까다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클리프덴에 다다를 때쯤, 아마 그들은 더이상 까다로운 사람이 아닐 것이다.
ad웬디와 리타는 학교에 다닐 때 언젠가 함께 회사를 경영하는 계획을 세우곤 했다. 어쩌면 사설 탐정소를, 아니면 레스토랑, 아니사이면 헬스클럽. 하지만 열다섯 살이 되면 상황은 으레 예상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이고, 그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웬디는 런던에 있는 대학교로 가서 미술사를 공부했다. 그것은그녀가 꿈꿔온 일이자 그 이상이었다. 웬디는 1학년 상을 받았고, 2학년 메달을 받았다. 대학 과정을 절반쯤 밟았을 때 피부가 가무잡잡하고 잘생기고 불같이 열정적인 맥이라는 강사를 만나 사랑에빠졌다. 그도 그녀를 사랑했다. 그래서 웬디는 그뒤로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다. 맥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요리나 빨래나타이핑 같은 일상적인 일뿐 아니라 그가 대학 외에 다른 곳에서도 강의를 할 수 있도록 도왔다.
하지만 그 일은 결코 간단하지 않았다. 맥은 정착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웬디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눈물로 가득한 시간이 뒤따랐고, 맥은 새 이력서로 아주아주먼 곳에 직장을 구했다. 그는 미안하지만 아이를 낳는 문제는 물어볼 것도 없다고 말했다. 웬디가 혼자서 모든 일을 수습해야 할 것이었다. 웬디는 3학년 시험에서 상을 못 탔을 뿐 아니라 시험을 치지도 못했다.
다른 많은 사람은 웬디에게 맥을 조심하라고 경고했지만, 리타는 그 자리에 없었으니 그러지 못했다. 리타의 직장에 관한 이야기도 별로 대수로울 게 없었다. 길고 검은 머리칼과 큰 갈색 눈을가진 리타는 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취직을 했다. 집에서 100마일 넘게 떨어진 타운에 있는 마담 프랜시스라는 부티크였다. 그녀는 그렇게 함으로써 독립심이 생기고 혼자 살아나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상은 그녀에게 많은 외로움과 숱한 텅 빈 밤을 안겨주었다. 혼자 있다보니 일에 관련된 생각을 많이 했고, 자신이 일하는 여성복 가게에 적용할 멋진 아이디어를 몇가지 뽑아냈다.
"우리가 전에 이 정도 나이가 되면 회사 이사나 거물이 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거 기억나?" 리타는 말하며 웃었고, 자기가 웬디를 보러 런던으로 가겠다고 했다. 적어도 아기는 익숙한 환경에서 덜 혼란스러워할 테니까. "우리는 여전히 뭔가 해볼 수 있어. ‘불의를 바로잡다‘ 뭐 그런거, 복수의 천사가 할 법한 일이랄까. 심지어 우리 이름의 첫 글자와도 같아. WR, 웬디와 리타, "어쩜!"
다시 학생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빨간 머리 웬디와 검은 머리리타의 대화는 술술 풀렸다. 리타는 활기 넘치는 꼬마 조를 보자 웬디가 부러웠다. 조는 방긋웃으며 까르륵거렸고, 절대 큰 소리로 울어대지 않았다. 웬디는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리타가 남은 천으로 자신이 입을 우아한 치마를 만들고 커튼을 수선하고 쿠션 커버에 테두리를 두르는 것을 보고 리타의 기술이 부러웠다. 와인을 두 병째 비웠을 즈음 그들의계획은 정리되었다. 신체적으로 상처를 입히지는 않는다. 그럼으로써 피를 흘리지 않고 큰 만족을 얻는다. 그들은 그 계획을 실행하는 데 한 달은 걸릴 거라고 결론을 내렸고, 삼십 일 안에 다시 만나 불의를 어떻게 바로잡았는지 이야기하기로 했다. 약간의 숙제가 필요할 것이다. 따라서 서로 배경이 되는 자료를 주고받아야 한다. 못돼먹은 맥과 못돼먹은 프랜시스는더이상 벌받지 않은 채로 인생을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불의를바로잡는 일이 곧 시작되니, 이제는 그러지 못한다.
웬디는 대학 본부에서 어렵지 않게 맥의 동선을 알아냈다. 컨퍼런스를 준비하는 척하면서, 그가 언제 참석할 수 있는지 물어보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그의 학과에서 널리 알려진 유명인사들을 초청해 정치학 강연 시리즈를 기획하고 있어서 다음 삼주 동안은 시간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그뒤에는? 어쩌면………
프랜시스는 입술을 깨물었다. 낯선 사람을 들이고 싶지 않았다. 다른 사람은 프랜시스가 리타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을, 이가게가 진실로 리타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아차릴지도 몰랐다. 정확히 리타가 예상했던 대로 프랜시스는 그 문제를 자기 가족안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더블린에 사는 여동생 로니 레인저에게이쪽으로 와서 사흘만 가게를 봐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로니라면젊은 리타가 분수를 지키며 손님과 너무 친해지지 않도록 감시하는 법을 알 것이다.
맥은 자신의 강연 시리즈가 기사로 다뤄진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특히 언론의 주목을 받는다는 사실에그는 잘생기고 젊은 선동가 강사로 묘사되었다. 그게 나쁠 건 없었다. 웬디가 오래전에 그에게 그런 수식어가 따라붙도록 해주었다. 웬디. 결말이 그렇게 되어버린 것은 안타까웠다. 하지만 그녀는 그가정착하길 기대해서는 안 되었다. 그는 이따금 그녀가 그리웠다. 그에게 그만큼 언론의 주목과 미디어의 관심이 쏠리게 해주고, 또 그를 위해 그런 눈부신 이력서를 써줄 수 있는 사람은 그녀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 강연 시리즈에 사람들이 얼마나 야단법석을 떠는지 보라. 마치 웬디가 그의 옆에 있는 것 같았다.
가장 큰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맥이 수강 신청을 한 학생들뿐아니라 모든 젊은이에게 강의를 공개한 일이었다. 그는 젊은이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도록 하려면, 강의를 대학 교육의 혜택을 받는일부 특권층에 한정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었다. 맥은 실제로 그런 말을 했던 것을 기억하지 못했지만, 하긴 했던모양이었다. 어쨌거나 그의 강연이 일요일에 텔레비전에서 생방송으로 방영될 예정이었다. 따라서 그가 정말로 그런 말을 했었다면, 그건 아주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사색가의면모와 선동가의 면모를 동시에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는 검은 가죽재킷을 새로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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