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 좁힐 수 없는 시차를 두고 태어난 어떤 이를 사랑할 때, 행복한 순간 미안해지는 사람이 있을 때, 당신에게도 고쳐 쓸 편지 한 통이 있기를, 여기에서 만난 적 없는 서로의 젊음을 거기에선 나란히 겹쳐보기를. 편지를거듭 고칠수록 두 개의 삶이 다 애틋해지기를. 아마도 그사람과 당신은 좋은 친구가 되었을 것이다. 인숙과 내가그러하듯이.

그 후로 누군가 미워지려고 할 때마다 속으로 마법의 문장, "그런 게 사람이죠"를 중얼거려보았다. 버스가 정류장에 들어오기 전부터 일제히 뛰기시작하는 사람들. 그런 게 사람이죠. 오늘 얼마나 피곤했으면 앉아 가고 싶을까. 라면 사리도, 공짜 귤도, 얼마나먹고 싶었으면, 불쑥 욕심이 났으면 그런데 그런 게 사람이죠.

‘우리 같은 사람들‘과는 상관없다고 여겨지는 바로 그곳에 제자리처럼 깃드는 것. 그게 내가 아는 문학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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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행본 한 권 가격이 요즘 15,000원 안팎이다. 책이 한 권 팔릴 때 저자가 받는 돈, 즉 인세는 대부분 책값의 10퍼센트다. 그러니 한국문학의 기대주는 인세 외에 다른 수입이 없으면 기초생활 수급자 신세고, 한국 소설의 미래도 인세만으로는 먹고살수 없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면 계산기 두들기며 겨우 해외여행을 할 수 있겠다. 대세 작가라도 집 사고 싶으면 강연과 방송에 열심히 나가야 하고.

이야기를 다시 앞으로 돌리면, 출판사 입장에서는 다음 책이손익분기점을 넘을 작가를 알아보는 일이 중요하다. 1만 2만부가 팔리는 작가는 자기 인세로는 외식 즐기기도 빠듯한 주제에출판계에서는 벌써 인기인이다. 출간 계약은 이미 여러 건 맺었을 가능성이 높다. 아직 계약을 맺지 않은, 원고를 금방 받을 수있는 다음 기대주를 찾아야 한다. 그래서 눈에 띄는 신인에게지난번 책 얼마나 팔렸나요? 2쇄 찍었나요?" 하고 묻게 된다(여기서 팁 한가지. 신인이고 2쇄를 찍었다면 주변에 자랑하고 소문을 내라. 그래야 다음 책을 낼 기회를 얻는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자기 책이 얼마나 팔렸는지 작가들이 잘 모른다. 우선 출판사마다 인세를 입금하는 방식이 제각각이다.

어느 책이 다른 책보다 더 많이 팔렸는지 아닌지를 베스트셀러 순위로 가늠하는 일조차 힘들다. 크고 작은 서점에서 팔린 전국적인 도서 판매량 순위를 집계하는 기관은 없다. 여러 대형 서점에서 각각 주간 판매 순위를 발표하지만 서점 규모도 다르고잘 팔리는 책의 종류도 다르다. 심지어 순위 기준도 제각각이다.
어느 서점은 예약 판매를 순위에 포함시키고, 어느 서점은 지난4주간의 누적 판매량을 순위에 반영한다.

독서 문화의 베스트셀러 쏠림 현상은 더 심해질까 약해질까?
소규모 출판 혹은 1인 출판 사업자들은 이 시스템을 통해 예측분석이 가능해지면 모험을 더 많이 벌일까, 아니면 이 땅의 척박함을 확인하고 몸을 사릴까? 값싼 기획물은 늘어날까 줄어들까?
출판사는 사재기 유혹에 더 시달릴까 아닐까? 장기적인 영향과별도로 단기적인 충격이 크지는 않을까?

2021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은 출판유통통합전산망을, 대한출판문화협회는 도서판매정보공유시스템을 만들었다. 두 시스템 모두 도서 판매량을 전체 공개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출판사와 저자에게만 제공하기 때문에, 위 글에서 내가 궁금히 여겼던 효과는 발생하지 않았다. 현 상태에서 도서 판매량을 전체 공개하면 순작용보다 부작용이 더 클 것 같다.
출판유통통합전산망과 도서판매정보공유시스템 공히 아직까지는 시스템 자체에 부족한 점이 많고, 이 문제를 둘러싼 출판계 내부 갈등도 심하다. 그래도 방향은 이 길이 맞는다. 서둘지 않고꾸준히 개선해나가면 좋겠다. 각종 공연 입장권 판매량을 집계하는 공연예술통합전산망도 정착에 시간이 꽤 걸렸다.

분위기가 훈훈했건 흉흉했건 강연을 마치면 녹초가 된다. 나는 서배스천 영거보다 더한 새가슴이라 강연을 마치고도 몇 시간이나 심장이 쿵쾅거려 밤에 잠을 못 이룬다. 어느 날 퀭한 몰골로 돌아온 나를 보고 아내가 전국을 누비는 약장수 같다며 짠하다고 했다. 그런데 그 말을 듣고 강연이 좋아졌다. 그런 길 위의 삶을 오래도록 남몰래 존경하고 또 동경했기에 약장수, 각설이, 풍물패, 서커스단, 엿장수, 두부장수, 칼갈이, 거기에 소설가도 추가요.

서글프게도 그런 손톱만 한 우위를 악용하는 이들이 있다. 강연료를 묻는 순간 연락이 끊기는 섭외자들이 꽤 많다. 공짜 강연을 바랐을 확률이 매우 높다. 강연장에 와서야 그 강연이 재능기부 행사였음을 알게 됐다는 작가나 번역가도 있다. 끝까지 강연료를 묻지 못했는데 나중에 입금된 금액을 보고 너무 소액이라 속앓이를 했다는 이는 부지기수.

이런저런 사연을 길게 적었으나 요즘은 이 문제를 그다지 고민하지 않는다. 그냥 매니지먼트 업체와 계약을 맺었다. 편하고깔끔하다. 강연 중개 시장도 형성되는 것 같고, 쉽고 자연스럽게양측 요구를 확인하고 의논할 수 있는 플랫폼이 만들어진다는소식도 들린다. 이렇게 발전하나 보다.

슬프게도 강연료나 고료 입금이 늦어지거나, 담당자의 ‘착각‘으로 금액이 적게 입금되거나, 인세 지급이 누락되는 일을 꾸준히겪고 있다. 지난해도 겪었다. 한데 담당자의 ‘착각‘으로 돈을 더리 받는 경험은 한 번도 하지 못했다.

낑낑대며 추천사를 써줬더니 마음에 안 든다며 어느 부분을고쳐달라거나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하는 초보 작가도 있다.
애프터서비스를 요구하는 이도 있다. 내 SNS 계정으로 자기 책을 홍보해달라는 것이다. 힘드는 일도 아닌데 그 정도쯤 못 도와주나 싶은 모양이다.
기분 좋게 추천사를 실은 적도 몇 번 있긴 하다. 내가 내 뜻대로 써서 어딘가에 올린 감상문을 보고 출판사가 연락해 온 경우다. 글 일부를 SNS에 활용하거나 2쇄부터 띠지에 넣고 싶다고했다. 그런 때에는 기쁜 마음으로 동의한다. 그런 상황을 제외하고는 앞으로 추천사 요청은 어지간하면 거절하려 한다.

내 경우 2010년대 중반에 맺은 출간 계약서부터 작가와 출판사가 2차 저작권 수입을 일정 비율로 나눈다는 조항이 들어갔다. 작가 몫을 높게 책정한 출판사는 자신들이 작가의 이익을 그만큼 우선시한다고 말했다. 비율을 다르게 설정한 출판사에서는 그들이 소설 판권을 더 열심히 세일즈하고, 영화사와 협상할때 더 유리한 조건을 받아낸다고 설명했다. 다른 소설가들로부터 이런저런 조언을 듣기도 했는데 무슨 말이 옳은지는 알 수 없었다.

최근에는 자기 판권을 전문 매니지먼트 회사에 맡기는 작가들이 생겼다. 한국저작권위원회의 저작권 상담 센터나 예술인복지재단의 법률상담 카페에서는 창작자들에게 무료로 저작권 관련상담을 해주는데, 이런 공공서비스가 훨씬 더 확대되면 좋겠다.
우리 사이에 무슨 계약서야,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이제 아무도 남지 않았다. 작가건 아니건.

2021년 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지원부 워크숍에 초청받아, 작가들에게 저작권 교육과 상담을 해야 한다는 내용의 강연을 했다. 얼마 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한국저작권위원회와 업무 협약을 체결하고 문학 분야 저작권 교육과 상담 프로그램을추진하기로 했다. 내 강연 때문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뿌듯했다.

내가 어디까지 요구할 수 있는지를 잘 모르겠다. 전에나는 표지에 대해 목소리 내기를 가급적 꺼렸다. 까다로운 작가,
‘진상 저자‘가 되는 게 아닐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첫눈에 마음에 들지 않은 표지가 시간이 지난다고 좋게 보이지는 않았다. 볼 때마다 ‘이건 아닌데‘ 싶고, 나중에는 화가 나기까지 하는 표지도 있다. 심해지면 그 책 자체가 싫어진다. 내가 별난 예외는 아닌 듯하다. 심지어 언론 인터뷰 중에 "이 책 표지 마음에안 들어요" 하고 불만을 터뜨리는 작가도 있을 정도니.

몇 가지 편견을 더 풀어놓자면, 나는 한국 작가가, 특히 문학작가가 자기 책 제목을 영어 단어로 정하는 게 어째 어색하다.
『뤼미에르 피플』을 낸 사람이 떳떳이 할 소리는 아니지만………….
문장형 제목도 그리 좋아하지 않는데 이건 정말 논리적인 이유를 댈 수 없는 개인 취향의 문제인 것 같다. 그럼에도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는 내 인생 책이고…………어떤 제목이 좋은 제목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사람이 공통적으로 하는 설명이 있다. 첫눈에 눈길을 끌되 소설 내용을 다 알 듯한 느낌은 피해야 하고, 다 읽은 뒤에는 ‘아하, 이런 뜻이구나‘ 하고 무릎을 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 부르기 좋고 검색하기 쉬워야 한다는 것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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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살고 있는 진짜 현실 세계는 소설만큼그리 개연성 있게 굴러가지 않는다. 요즘은 세계 전체가 ‘예측하기 어렵다‘의 수준을 넘어, 숫제 맥락들이 사라지는 느낌마저 든다. 프랭크퍼트는 개소리가 넘치는 게 우리 문화의 특징이라고주장하는데,
그와도 상관있지 않을까. 개소리쟁이들이 움직이는세상이라니, 프로 거짓말쟁이로서 참으로 유감이다.

세상이 점점 더 복잡해지고, 직업 분야가 점점 더 세분화, 전문화되어서 리얼리즘 소설 쓰기가 그만큼 어려워졌다는 생각도 한다. 문학의 힘이 약해진 데에는 그런 요인도 있지 않을까 싶다.
소설이 현실 세계의 깊은 구석을 잘 살피지 못하게 되면서, 전문직업인 필자들의 에세이가 주목받게 된 것 같기도 하다.
그러한 환경 변화 속에서 전업 소설가로서, 더 발로 뛰어야 한다는 생각도 한다. 직업 세계가 깊어진 만큼 사람을 찾아 섭외하고,
먼 곳에 있는 이와 연락하고, 관련 정보를 검색하는 기술도 발전했다. 한 세대 전의 소설가가 국립중앙도서관이나 국회도서관에가야 얻을 수 있었던 답을 이제는 집에서 클릭 몇 번으로 찾을 수있다. 취재하는 소설가로 남자고 다짐해본다.

주제가 뭐냐는 질문에 이렇게 난감해하는 우리들이 한없이 순진하고 쓸데없이 심각한 걸까? 모터쇼나 가전쇼 무대에 오른 이들이 신제품을 발표하면서 주제가 뭔지를 말하는 데 어려워하는모습을 본 적이 없다. 다들 이번 신차의 콘셉트는 가족이라고, 이번 새 휴대전화는 휴머니티와 연결을 주제로 했다고 당당하게말한다. 제아무리 막장 드라마라도 홈페이지에 가보면 기획 의도가 ‘우리 시대 사랑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자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다들 주제가 뭐냐는 질문이 뭐가 중요하냐는 분위기다.
주제? 가족이야. 가족 좋잖아. 됐지? 그러면 이제 우리 마케팅 포인트를 보라고. 이 차는 트렁크가 엄청 넓어! 가족을 위한 세단이라니까. 어쩌면 직업인의 자세는 바로 이래야 하는 것일지도모른다.

한편으로는 나 또한 누구를 비판할 처지가 아니다. 동료 작가들의 활동을 보면서 용기와 위안이 아니라 시기와 질투심을 느끼는 순간이 자주 생겼다. 지금 당장 당신의 SNS 계정을 삭제해야 할 10가지 이유』의 저자 재런 러니어는 자신 역시 그랬다고 고백한다. 러니어는 소셜 미디어들이 집단 내 서열에 집착하는 인간 본능의 스위치를 켠다는 가설을 제안하기도 한다.

반면 ‘하면 도움이 될 테지만 억지로 할 필요는 없다’는 정도의 유보적인 의견도 있었고, 홍보 목적으로 운영하는 계정은 어차피 별 매력이 없으니 좋아서 하는 게 아니면 안 하는 편이 낫다는 답도 있었다. 일반 단행본 작가라면 필수지만 소설가라면모르겠다, 인상적으로 운영되는 작가의 SNS가 딱히 없어 보인다는 답도 있었다.

지금 우리의 세계와는 미묘하게 달라진 평행우주를 배경으로 한다. 연합군이 독일을 이기기는 했지만 이스라엘은 건국되지 않았고, 유대인들은 미국 알래스카의 자치 지구에 집단 거주하고 있다(실제로 미국은 그런 계획을 검토한 바 있었다).
「알래스카의 아이히만」 한국판에는 원자폭탄이 떨어진 일본 도시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가 아니라 히로시마와 기타큐슈라고 서술하는 대목이 나온다. 그렇게 써서 소설 속 배경이 독자가 살고있는 세계가 아닌 평행우주임을 드러내려는 의도였다. 기타큐슈는 실제 역사에서도 미국이 원래 폭격 후보지로 삼았던 곳이다.
일본 출판사 측은 해당 대목의 기타큐슈를 나가사키로 바꿔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어릴 때부터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대해배워온 일본 독자들은 이 설정을 쉽게 이해하지 못할 거라면서.
원폭 피해지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인 것은 한국 독자에게도 상식인데….… 이 서술은 나름 중요한 장치인데………. 결국 일본 출판사의 의견을 따르기는 했지만 그 판단이 옳았는지는 여전히 자신이 없다.

딱히 통계나 근거는 없지만 최근에는 드라마업계가 영화업계보다 소설가들을 더 열심히 물색하는 느낌이다. 내가 만난 프로듀서들의 설명은 이러했다. 첫째, 한국 드라마의 장르와 소재 폭이 넓어지면서 프로듀서들이 기존 작가군에서 외부 스토리텔러로 눈을 돌리게 됐다. 둘째, 작가가 연출자보다 우위에 있는 한국드라마 제작 환경을 바꾸고 싶어 하는 프로듀서들이 많다. 셋째,
인기 드라마 작가들의 몸값이 너무 높아졌다.
반대편에서 바라보면 기괴한 현실이다. 수많은 지망생들이 영화와 드라마 시나리오 작가를 꿈꾸며 분투 중인데 이토록 커다란 미스매치가 존재한다. 영상업계와 문학계에서 작가들의 데뷔방식이 어떻게 다른지, 영화 제작자들이 왜 공모 방식을 선호하않는지 등에 대해서는 논픽션 『당선, 합격, 계급』에 취재해 쓴바 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찾아보시길.

칼럼 원고가 쌓이면서 그런 우려는 점차 사라졌다. 내 식견이그사이 풍부해졌다기보다는, 다른 ‘지식인‘들의 처지도 나와 다를 바 없다고 여기게 되어서다. 깐깐하게 따져보면 그네들 역시자기 전문 분야의 지식을 일종의 문학적 비유로 활용해 상식적인 주장을 펼치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가끔은 그들이 한 분야에깊이 몸담고 있기에 오히려 그 견해를 경계해야 할 때도 있다.

해외 도서전에 같이 참가하는 소설가들과는 친해질 수밖에 없다. 공항 로비에서 함께 멍하니 앉아 있다가 같이 비행기에 오르고, 타지에서 저녁에 함께 맥주를 마시고, 푸석푸석한 얼굴로 호텔 조식 뷔페에서 커피도 함께 마시고, 그렇게 며칠씩 밥을 함께먹으며 "한국 소설의 특징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같은 질문에 함께 난감해하다 보면, 그렇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요즘 문학 동인을 하나 만들려고 몇몇작가들에게 메일을 보내고 있다. 무리 지어 다니는 건 내 체질과맞지 않지만, 함께해야 힘이 실리는 일도 있는 것 같다. 결성하려고 하는 동인의 이름은 ‘월급사실주의‘다. 운동권문학, 민중문학과 거리를 두는, 우리 시대에 맞는 리얼리즘 노동문학 소설을 쓸작가들을 모은다. 먼저 소설가 열 명이 앤솔로지를 내는 일부터시작하려는데 지금까지 나를 포함해 일곱 명이 모였다.
동인의 취지와 목표, 대강의 규칙을 설명하는 메일을 공들여 써서 친분이 있는 소설가들에게 보냈다. 내가 쓴 다섯 통의 메일을다 합하면 거의 단편소설 한 편 분량이었다. 어느 분은 "유료 뉴스레터로 만드셔도 되겠던데요" 하고 농담을 했다.
‘이분은 꼭 같이하고 싶다. 이분이라면 동참해주지 않을까‘ 하는소설가 중에 거절 의사를 밝힌 분도 있었다. 아쉽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런가 하면 ‘이분이 관심 있어 할까 스스로도 고개를 갸웃하며 보낸 메일에 흔쾌히 참여 의사를 밝힌 작가님도 있었다. 모를 일이다. 동인의 첫 소설집이 일종의 문학적 선언이 될텐데, 책을 내고 나면 함께하겠다는 뜻을 밝히는 분들이 더 계시지 않을까 기대한다.

한 번 더 강조하지만 이는 절대로 한국문학계 특유의 문제가아니다. 카뮈도 프랑스 문단에서 왕따를 당했다. 실존주의에 대한 견해 차이로 사르트르와 틀어지고 알제리 독립을 반대하며
‘마이 웨이‘를 고수한 점도 한몫했지만, 노벨문학상 수상이 따돌림의 결정적 원인이었다. 20대에 『이방인』을 쓰고 40대에 노벨상을 받은, 젊고 잘생기고 인기 많은 소설가를 시기하지 않기가어려웠으리라(이 얘기는 유기환의 『알베르 카뮈』에 나오는데 재미도있고 의미도 있고 두껍지도 않은, 숨은 보석 같은 책이다. 카뮈의 팬이라면 꼭 읽어보시기 바란다).

나쁜 평가는 좋은 평가와 일대일로 상쇄되지 않는다. 우리는그렇게 생겨먹었다. 인간이 그렇게 진화했다. 내게 우호적인 사람들보다 나를 공격하려는 사람들에 주의를 기울이는 게 안전에훨씬 더 중요하니까. 그래서 인간은 부정 신호를 긍정 신호보다더 크게 받아들이며, 비판을 극복하는 데에는 대략 그 네 배의칭찬이 필요하다고 한다.

한때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무라카미 하루키와 무라카미 류를 나란히 세우는 것이 유행이었다. ‘투 무라카미스"라고도 했다. 지금은 아무도 그런 말을 쓰지 않고, 하루키와류를 비교하지도 않는다. 두 작가의 위상이 너무 달라졌다. 나는 그 분기점 또한 『노르웨이의 숲』이었다고 본다.

『노르웨이의 숲』같은 작품을 가진 소설가에게는 누구도 ‘재기발랄한 젊은 작가‘라는 표현을 더는 쓰지 못한다. 책이 엄청난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온갖 폄하를 당하고 의심을 받았지만, 거기에는 절대로 깎아내릴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아마 앞으로도 깎아내릴 수 없으리라.
37세에서 40세 사이에 하루키에게 일어난 일을 나는 혼자 권텀 점프‘라고 부른다. 물리학자들이 이 비유를 들으면 기겁하겠지만, 이미 경영학자들이 멋대로 그 양자 세계 현상을 경제 용어로 전용해서 쓰고 있으니까 뭐.

플롯에 대한 고민은 주제에 대한 고민에 비하면 약과다. 뭔가말하고 싶은 게 있는데 그게 뭔지 뚜렷이 짚을 수 없어서 헤맨기간이 길었다. 지금은 안다-2021년 한국 사회의 기원에 대해말하고 싶다. 지금은 제법 정연하게 그 이야기를 할 수 있다. 다행히.

이 원고가 어떤 평가를 받을지 잘 팔릴지 아닐지. 내가 퀀텀점프를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실패할 수도 있고, 그러면마음에 얼마간 타격을 입겠지. 하지만 커다란 시합에 출전하는젊은 운동선수들과 달리, 소설가에게는 기회가 자주 오고 현역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기간도 상당히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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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직업에 불쉿 업무는 어느 정도 포함돼 있다. 소방관들도 연말이면 자기 역량 평가 보고서 따위를 쓰면서 짜증 내지 않을까? 신문기자를 예로 들자면, 대체로 보람있는 직업이지만 어떤 부분은 확실하게 불쉿이다. 다음 날 뻔히공표될 정책 내용을 전날 미리 알아내려고 몸과 마음을 갈아취재해야 하는 날들이 있다. ‘발표 자료 우리가 하루 앞서 먼저 빼냈다! 우리 매체가 이렇게 취재력이 대단하다!‘ 이렇게 자랑하기 위해서.

누구를, 혹은 무엇을 위한 헌신인가. 불쉿 업무와 불이 아닌업무는 이 질문으로 대충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마케터나 평론가에게 헌신하는 게 소설가의 일인가? 당연히 아니다. 그렇다면독자를 위해? 나는 그것도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위로나 공감이소설가의 임무라고 보지 않는다.

내 아버지는 술집에서 친구에게 안정효의 하얀 전쟁』괜찮다. 한번 읽어보라고 권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말을 마치자마자 옆자리에 있던 남자가 "내가 안정효요"라며 인사를 해왔단다. 이후에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는 모른다. 아버지 성격상 ‘작가님 팬이에요! TV에 나온 것도 봤어요!‘라고 하지는 않았을 거같고, 몹시 어색한 시간이 이어졌을 거 같은데……… 안정효 작가님은 그런 상황도 다 대비하고 "나 안정효요"라고 말을 거신 걸까? 아니면 설마 그저 기뻐서?

그렇게 몹시 생산 효율이 낮은 두 달을 보낸 뒤 결심했다. 다음해 여름에는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문학관이나 문화관에 가보자. 가서 전기 요금 걱정 없이 에어컨 바람 펑펑 쐬면서방에 틀어박혀 글을 쓰자. 가을에 멋진 원고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거다.

발표 뒤에는 작가들의 토론과 청중과의 질의응답 시간이다.
한국어로도 이야기하기 힘든 무지막지하게 심오한 주제를 놓고외국어 통역을 거쳐 대화를 하다 보면 논의가 산으로 가기 일쑤다. 몇몇 제3세계 발표자와는 한국어를 영어로 옮긴 뒤 그걸 그작가의 언어로 다시 통역해서 겨우 소통한다. 청중 중에는 마이크를 잡고 5분 이상 강의에 가까운 질문을 던지는 분도 있는데이때는 사회자도 통역도 작가도 모두 난감해진다.

학술대회와 달리 문학포럼에서는 그런 연극도 중요하다. 그지루한 주제 발표를 끝까지 참고 견디며 진지하게 포럼에 참여하는 많은 독자들을 보고서야 깨달았다. 그곳이 독자를 응원하기 위한 자리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2단계 통역을 거치는 소설가와 시인의 대화는, 기묘한 치어리딩 행위이기도 하다는 것을
‘요즘 나 말고 또 문학을 읽는 사람이 있나‘라고 불안해하는독자들 앞에 서서 작가들이 ‘아직 문학 죽지 않았습니다, 우리가열심히 쓰고 있습니다‘라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어쩌면 그게 문학포럼의 진정한 목적인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좀 덜 지루하게, 축제처럼 꾸미면 좋겠다.

요즘은 문학포럼들에 대해 단순히 지루하다는 불만 이상의 한층 더 깊은 회의감을 느끼곤 한다. 내건 간판은 거창하고 일견 시의적절하다. 사회 이슈에 어떻게든 대응하고 싶은, 문학의 역할을 말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다가온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오가는 이야기들이 그런 소망에 부응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세미나 장소 어느 구석 자리에 앉아 있으면 민주주의의 후퇴에대해서든, 중산층 붕괴에 대해서든, 혹은 인공지능에 대해서든,
토론을 하면 할수록 문학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보인다. 나는문학의 힘을 믿으므로, 그런 때 무력한 문학인들을 미워하기 시작한다. 문학의 잘못이 아니라고, 우리가 멍청하기 때문이라고.

내 소설을 각색한 연극 댓글부대」와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을 보면서도 확실히 느꼈다. ‘와, 정말 좋은 연극이다‘ 생각하면서도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 전자는 두 번째 관람할 때도 그랬고, 후자는 두 번 볼 엄두를 못 냈다. 극단 동과 남산예술센터에 이 자리를 빌어 죄송하다고, 사죄 말씀을 드리고싶습니다.

비유하자면 내게는 소설의 절정부를 만들어내는 일이 바둑에서 승부수를 던지는 일처럼 여겨진다. 그 수를 두고 나면 바둑의규칙에 따라, 이후로는 외길 수순이 펼쳐진다. 주인공이 결단을내리면, 세계를 움직이는 힘에 따라 그의 운명도 결정된다. 아마도 이게 나의 세계관이고 내가 세상을 보는 방식인 모양이다.
그 세계는 회색으로, 선과 악이 섞여 혼란스럽다. 한 인간의 내부도 그렇고 그를 둘러싼 외부 환경도 그렇다. 그리고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한 사람의 행복이라든가 정의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 고로 ‘이후로는 착한 사람들이 아무 일 없이 행복하게 살다가 늙어서 편안히 죽었답니다‘라는 결말도 없다. 그 우주에는그런 일을 보장해줄 하느님이 없다. 역사의 심판도 없다. 그 세계는 기댈 곳이 없다.

얼마 전에는 인터뷰를 하다가 ‘주인공들이 도망치는 결말이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듣고 보니 그런 것 같았다. 그들은 소설이 시작할 때 있던 자리로 돌아가지 않는다. 가족으로 고향으로 돌아오는 상업 영화의 캐릭터들과는 다르다.
하지만 나도, 주인공들도 어디로가야하는지는 모른다. 그저 억울하고 구도(求道)라 표현하려니 너무 쑥스러운데, 하여튼 우리는 길을 찾는다.

한데 내가 구상한 이 동화의 마지막 장면조차 해피엔딩은 아니다. 주인공 소녀가 회색 수면양말을 떠나보내는 것이다. 소녀와사이가 서먹한 동생이나 사촌동생한테 수면양말을 넘겨주는 장면이 어떨까. 어린 독자들에게는 슬프고 아쉬운 일일 테지만, 그게 미학적으로나 주제 면에서나 좋을 것 같다.

이거 이렇게 써도 괜찮은가. 놀랍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이게 마이클 코널리 개인의 배짱인지, 아니면 언론과 출판의 자유를 폭넓게 보호하는 수정 헌법 1조가 있는 나라의 힘인지 잘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한국 소설가들은 외국 작가들에 비해 실존인명, 지명, 단체명을 쓰기 꺼리지 않나… 막연히 추측한다(혹이와 관련한 정량 분석을 실시한 논문이 있으려나). 한국 소설에서는대신 가상의 도시나 영문 알파벳 이니셜이 상대적으로 많이 나오는 것 같던데……….

나는 진짜로 수정 헌법 1조가 이런 차이의 원인인가 싶어서창작물 관련 국내 명예훼손 소송 사례를 조사해본 적도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상식선에서 불만을 터뜨릴 수준은 전혀 아니었다. 창작물이라는 이유만으로 아예 명예훼손죄를 피해 갈 수는없었지만, 어지간하면 법원은 뭐라 간여하지 않았다.

본문에 언급한 소설은 지난해 출간한 재수사인데, 사실 이 작품에서도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기관이나 건물 이름이 적지 않게 나온다. 한국에너지관리원‘이라든가, ‘희망교도소‘라든가, ‘신도림 엘리시움시티‘라든가. 내가 지어낸 서술을 실존 대상의 특징으로 독자들이 착각할 위험성이 있는 경우라 이렇게 명칭을바꿨다. 한편 내 소설에서 종종 등장하는 ‘현수‘과 ‘뤼미에르빌딩‘은 각각 서울 마포구 현석동과 신촌 르메이에르 3차 빌딩이모델이다. 역시 소설 속 묘사와 실제 모습은 많이 다르다.

「베스트셀러」는 그다지 흥행에 성공하지 못한 걸로 안다. 표절 시비라는 게 일반 관객에게는 피부에 와 닿기 어려운 공포이기 때문이리라. 차라리 연쇄 살인마나 외계 생명체에 대한 공포가 더 실감 나지.

유명 미국 드라마와 자신의 원고가 비슷해 고민이라는 청중에게도 장은수 대표의 이 글을 언급하며, 같은 식으로 대답했다. 더구나 영상 매체와 활자매체 차이도 있으니 그리 염려할 필요는없을 것 같다고. 다만 단서를 하나 달았다. 추리소설에서 어떤 트릭이라든가, SF에서 독특한 세계관이 닮았다면 예외가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일관성 있게 설명하지는 못하겠지만 특정 장르에서는 문장만큼이나 그런 장치가 독창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내 경우에는 어디서 아이디어를 얻었는지 ‘작가의 말‘에서 시시콜콜 밝히는 편이다. 다소 비겁한 방어라는 기분도 드는데, 소설가가 그런 출처를 밝힐 의무는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 언급을 하지 않는다고 뭔가를 숨기는 게 아니다. 내가 그러는 데에는 솔직히 ‘작가의 말‘을 쓰기가 너무 싫다는 이유가 더 크다.
몇몇 소설이나 영화, 만화, 드라마 같은 콘텐츠의 표절 논란에대해서는 대중의 의혹 제기가 나로선 도저히 납득이 안 가는 경우도 많았다. 창조적 변용이니 포스트모더니즘이니 하는 헛소리로 명백한 잘못을 덮으려 한 도둑놈들 때문에 그런 적대적 환경이 조성됐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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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와 조시는 고객인 미스 메이슨을 만나는 순간을 기다렸다.
미스 메이슨은 그날이 자신의 예순네번째 생일이라고 했다.
두 사람은 그 말을 듣고 놀란 척했지만 사실은 그녀가 여든 살쯤되는 줄 알았다. 미스 메이슨은 워낙 기운이 없었고 나가서 일을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이가 그것밖에 안 되었다니!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들은 몰래 빠져나가 작은 케이크를 사온 뒤 차를 따라놓고 그녀의 조카 릴

디는 미스 메이슨의 집안에 어떤 사연이 숨겨져 있을지 궁금해하며 조시의 밴에 올라탔다.
‘자매끼리 사이가 별로 안좋은가봐." 조시가 말했다.
"릴리라는 조카는 괜찮던데 우리집 마음에 들어했으면 좋겠다."

릴리가 가자 디는 리엄에게 돈을 보여주었다. 그는 믿기지가않았다. 두 사람은 부엌을 뱅글뱅글 돌며 같이 춤을 추었다. 금액이 제법 됐다. 어쩌면 그들은 힘든 시기를 잘 극복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어쩌면이었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릴리는 적응을 아주 잘했다. 앤서니가 보기에는 지나치게 잘했다. 요즘은 집에 있으면 전과 다른 세상처럼 느껴졌다.
그는 이 점에 대해 누나들에게 주기적으로 문자를 보냈지만그들은 이게 얼마나 심각한 사태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생활이 좋지 않은 쪽으로 얼마나 달라졌는지도.
릴리는 세인트브리지병원의 간호사였다. 아침 일곱시 삼십분에 출근했고 퇴근하면 혼자 저녁을 만들어 먹었다. 요즘은 저녁때 아무도 식탁에 둘러앉지 않았다. 엄마와 아빠는 시칠리아지도를 들여다보거나 뒷마당의 오래된 창고에 새로 페인트칠을하거나 일주일에 몇 번 저녁때 중고품 할인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릴리를 돕느라 항상 바빴다.

릴리는 가끔 자기 이모를 찾아갔다. 엄마의 지인인, 근사한 아파트에 사는 이모였다. 그녀는 두 사람이 먹을 저녁을 간단하게준비해 가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는 설명하기 어려웠다. 인상은 성모상처럼 온화했다. 나이는 스물다섯살일 수도, 서른다섯 살일 수도, 마흔다섯 살일 수도 있어 보였다. 사실 가늠하기가 불가능했다. 머리는 곱슬기가 없는 금발이었고 거의 항상 긴 회색 카디건을 입고 다녔다. 냉장고의 전용 칸에 건강식과, 콩이나 코코넛으로 만든 희한한 음료를 보관했다.

헬렌과 로지는 이런 문자를 읽고 엄청 혼란스러워했다.
앤서니가 미친 거 아닌가? 엄마와 아빠가 브리지 게임을 한다고? 냉장고에 전용 칸이 있다고? 어째 그들이 그 집으로 돌아갈길이 요원해 보였다.

헬렌은 모드와 마르코에게 그 집에서 신세를 지는 동안 방값을 내겠다고 했지만 그들은 됐다고, 그럴 것 없다고 했다. 그녀는 친구이고 며칠 머물다 갈 테니 다른 친구들처럼 지내야 된다.
고 했다. 그래서 헬렌은 살림에 보탤 생각으로 먹을 거라도 좀살까 했지만 그들이 식당을 하는 이상 그것도 말이 안 됐다.
헬렌은 그들이 좋아할 만한 다른 걸 생각해보려고 했지만 너무 바빴다. 학교에서는 격무에 시달렸고, 여행사에서는 압력을가했고, 앤서니가 문자로 알려주는 집안 상황은 걱정스러웠다.
퇴근해 토마토소스로 만든 미트볼이나 조갯살을 넣은 파스타 접시 앞에 털썩 주저앉을 때까지 숨 돌릴 틈이 없었다. 그녀는 그집의 작은 손님방에서 깊은 잠을 잤고 아침에 먹은 살라미와 치즈와 갓 구운 바삭바삭한 빵으로 하루를 버텼다.

앤서니는 집이 달라졌다 하고 로지는 런던은 다르다고 했다.
헬렌의 일상은 전과 다를 게 없었다. 집에서보다 맛있는 아침을 먹고 다니기는 했지만, 멀쩡한 여자에게 어울리는 남자가 없다는 고민은 여전했다. 그런데 다들 모든 게 달라졌다고 호들갑을 떠는 이유가 뭘까?

모드와 마르코처럼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들은 다른 사람은 거의 안중에도 없었다. 주방에서 같이 웃고서로를 어루만지다가도 나가서 손님을 상대할 때면 프로로 변신했다. 집에서는 아주 조그만 소파에 딱 붙어앉아서 속닥였다. 헬렌은 둘이서만 있을 수 있게 가끔 외출을 했다. 그들은 너무 착해서 그녀를 집에 혼자 두고 나가지 못했다. 헬렌은 그렇게 죽고못사는 상대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감정이었다.

애들을 그냥 내보내기만 하면 안 된다는 거야. 그러면 애들이 아무것도 배우질 못하지. 현재 상황을 통해 과거에 어떤 부분이 잘못됐었는지를 가르쳐줘야 해."

디가 세인트잘라스 크레센트의 집으로 돌아가보니 사위 로넌이 릴리와 같이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릴리는 당장 벌떡 일어나 디의 짐을 받아들고 잘 다녀왔느냐고 인사했다. 로지라면 돋보기 거울에서 얼굴을 들지 않았을 것이다. 헬렌이라면 맡고 있는 프로젝트에서 눈을 떼지 않았을 것이다. 앤서니라면 이어폰을 낀 채로 그녀를 향해 웃어 보였을 것이다. 릴리 이전에는 어느 누구도 디가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릴리가 정말 궁금해했기 때문에 로넌도 관심을 보였다.

그는 슬프고 외로워 보였지만 디는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개입은 금물이었다. 그게 원칙이었다. 모든 친구들이 입을 모아 충고하길 양쪽 모두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했다. 아이들은 어차피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할 테고, 뭐가 됐든 의견을 밝혔다가는 세상에서 가장 몹쓸 부모가 될 거라고. 아무 말 없이 그냥 계속 고개를 끄덕이며 웃기만 하라고 했다.

로넌이 런던에 올 일이 있다면 왜 일요일에 올 수 없을까? 회사에서 무슨 일을 시켰길래 런던에 온다는 걸까? 엄마가 점심때그렇게 파티를 벌이는 이유가 뭘까? 로지도 그 자리에 참석하고싶었다.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휑하니 뚫린 느낌이었다.
이게 어쩌면 사람들이 말하는 향수병일까?

헬렌은 벌떡 일어나 작은 부엌 뒷방으로 갔다. 방은 완전히 개조되어서, 벽에는 흰색 페인트를 칠했고 창문에는 빨간색과 하얀색 커튼을 달아놓았다. 한쪽 벽에는 주홍색 커버를 씌운 소파베드가, 다른 쪽 벽에는 행거가 세 개 있었다. 헬렌은 그녀의 이름표가 달린 행거에 원피스, 블라우스, 스커트가 깔끔하게 걸려있는 것을 보았다. 행거 아래에 상자가 있었고 모두 그녀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신발과 속옷인 듯했다.

다는 딸의 말투를 알아차렸다 한들 티를 내지 않았다.
"아, 지난 이 주 동안 했지. 너희 아빠가 얼마나 열심히 정리하99셨는지 몰라.‘
"너희들 마음에 든다면 나도 뿌듯하다."리엄은 헬렌이 보기에 바보 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왜 그러셨어요?" 헬렌은 냉랭한 눈빛으로 물었다.
"너희들이 가끔 자고 가고 싶어할 경우에 대비해서 방이 하나있으면 좋겠다 싶었지."디는 방 이야기를 하며 즐거워하는눈치였다. "그리고 빨간색이랑 하얀색으로 꾸미면 환해 보이고좋을 것 같았어."
"하지만 그 행거들은.....…?" 헬렌은 이게 다 무슨 일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물론 가정을 일구는 것이 꽃길이기만 한 건 아니었다.
디는 언제든 가져갈 수 있도록 깔끔하게 정리된 자기들 옷을 보고 아들과 딸이 지은 표정을 목격했다. 그녀는 엄청난 죄책감을느꼈고 그 생각을 하느라 밤잠을 설쳤다. 아이들을 집에서 떠나보내는 것 때문이 아니었다. 진작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 생활비를 부담하는 부분에 대해 서로 합의하지 않았던 것 때문이었다. 그게 그녀의 엄청난 실수였다.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처음부터 분명하게 짚고 넘어갈텐데.

헬렌은 교무실에서 샌드위치를 먹었다. 마르코와 모드의 집에는 항상 먹을 게 많았다. 살라미와 치즈와 롤빵을 챙기기만 하면됐다. 그러면 점심값을 아낄 수 있었다.
휴대전화가 울렸다. 여행사였다. 계약서에 적힌 보험 조항에따라 문제가 전부 해결됐고 헬렌은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녀는 짊어지고 있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느낌이었고 다시제대로 숨을 쉴 수 있게 됐다.

앤서니는 자평하길 무난한 성격이었지만 친구들과 같이 사는집은 정말이지 너무 더러웠다. 욕조에는 시커멓게 때가 꼈고 부엌은 다 먹었거나 거의 다 먹은 포장용기로 넘쳐났다. 쓰레기 버리는 날을 수도 없이 놓쳤고 그러면 그 상태로 이주 동안 지내야 했다.

이후로 모든 일이 아주 순식간에 진행됐다.
디는 조시에게 비디오를 빠르게 돌리는 느낌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노상 집안을 들락거렸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하는 게 불가능했다.
로넌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런던에서 돌아와 뒷방 행거에 걸린로지의 옷을 챙기기 시작했다. 디는 그가 상자에 담긴 로지의 신발과 핸드백을 투명한 비닐봉지에 애지중지 담는 것을 지켜보았다. 로넌은 디에게 다림질을 가르쳐달라고 하고는 디가 칼라를어떤 식으로 놓아야 하는지 보여주는 동안 엄숙한 표정으로 주시했다.
"생각보다 복잡하네요." 그가 말했다.

로넌은 저녁 식탁을 꽃으로 장식하고, 오븐에 넣을 수 있게 캐서롤을 준비하고, 샐러드는 이미 완성해서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로지의 원피스는 모두 다려서 얼마나 주름 하나 없이 매끈한지 그녀가 볼 수 있게 얌전히 방에 걸어놓았다. 그런 다음 공항으로 갔다.
로넌은 할말을 준비해놓았지만 로지가 달려와 품에 안기자 모두 잊어버렸다.
"집으로 돌아온 걸 환영해." 그가 한 말은 이게 전부였다.

사람들 사이에 서 있던 로지와 헬렌과 앤서니는 어안이 벙벙했다. 엄마와 아빠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때가 되면 낙엽이 떨어지듯 아이들이 집을 떠났다고? 그들의 기억으로는 그렇지 않았다.
그 시간들은 갑작스럽고 충격적이고 심란했다. 엄마와 아빠는허드렛방에 페인트를 칠하고 삼남매의 옷을 모조리 거기로 옮겼다. 그들이 집에 찾아가는 건 일요일 점심으로 제한되다시피 했다. 그들의 집인 줄 알았던 곳에서 방값이라는 말이 나왔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게 무슨 상관일까?
부모님은 행복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두 분은 실제로 ‘때가 되면 낙엽이 떨어지듯‘ 모든 일이 일어났다고 믿고 있었다. 내일이면 두 분은 이 주 동안 시칠리아 여행을 다녀올 것이었다.
잔을 들고, 두 분의 건강을 위하여.
어쩌면 모든 게 잘되려고 그런 건지 몰랐다.
지금도, 앞으로도, 집안 가득 북적거리던 가족들이 갑작스럽게 흩어진 것에 대해서는 함구하기로 하자. 어쩌면 낙엽을 떨어뜨리느라 바람의 도움이 살짝 필요했던 건지도 모른다.
그뿐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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