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와 조시는 고객인 미스 메이슨을 만나는 순간을 기다렸다. 미스 메이슨은 그날이 자신의 예순네번째 생일이라고 했다. 두 사람은 그 말을 듣고 놀란 척했지만 사실은 그녀가 여든 살쯤되는 줄 알았다. 미스 메이슨은 워낙 기운이 없었고 나가서 일을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이가 그것밖에 안 되었다니!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들은 몰래 빠져나가 작은 케이크를 사온 뒤 차를 따라놓고 그녀의 조카 릴
디는 미스 메이슨의 집안에 어떤 사연이 숨겨져 있을지 궁금해하며 조시의 밴에 올라탔다. ‘자매끼리 사이가 별로 안좋은가봐." 조시가 말했다. "릴리라는 조카는 괜찮던데 우리집 마음에 들어했으면 좋겠다."
릴리가 가자 디는 리엄에게 돈을 보여주었다. 그는 믿기지가않았다. 두 사람은 부엌을 뱅글뱅글 돌며 같이 춤을 추었다. 금액이 제법 됐다. 어쩌면 그들은 힘든 시기를 잘 극복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어쩌면이었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릴리는 적응을 아주 잘했다. 앤서니가 보기에는 지나치게 잘했다. 요즘은 집에 있으면 전과 다른 세상처럼 느껴졌다. 그는 이 점에 대해 누나들에게 주기적으로 문자를 보냈지만그들은 이게 얼마나 심각한 사태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생활이 좋지 않은 쪽으로 얼마나 달라졌는지도. 릴리는 세인트브리지병원의 간호사였다. 아침 일곱시 삼십분에 출근했고 퇴근하면 혼자 저녁을 만들어 먹었다. 요즘은 저녁때 아무도 식탁에 둘러앉지 않았다. 엄마와 아빠는 시칠리아지도를 들여다보거나 뒷마당의 오래된 창고에 새로 페인트칠을하거나 일주일에 몇 번 저녁때 중고품 할인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릴리를 돕느라 항상 바빴다.
릴리는 가끔 자기 이모를 찾아갔다. 엄마의 지인인, 근사한 아파트에 사는 이모였다. 그녀는 두 사람이 먹을 저녁을 간단하게준비해 가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는 설명하기 어려웠다. 인상은 성모상처럼 온화했다. 나이는 스물다섯살일 수도, 서른다섯 살일 수도, 마흔다섯 살일 수도 있어 보였다. 사실 가늠하기가 불가능했다. 머리는 곱슬기가 없는 금발이었고 거의 항상 긴 회색 카디건을 입고 다녔다. 냉장고의 전용 칸에 건강식과, 콩이나 코코넛으로 만든 희한한 음료를 보관했다.
헬렌과 로지는 이런 문자를 읽고 엄청 혼란스러워했다. 앤서니가 미친 거 아닌가? 엄마와 아빠가 브리지 게임을 한다고? 냉장고에 전용 칸이 있다고? 어째 그들이 그 집으로 돌아갈길이 요원해 보였다.
헬렌은 모드와 마르코에게 그 집에서 신세를 지는 동안 방값을 내겠다고 했지만 그들은 됐다고, 그럴 것 없다고 했다. 그녀는 친구이고 며칠 머물다 갈 테니 다른 친구들처럼 지내야 된다. 고 했다. 그래서 헬렌은 살림에 보탤 생각으로 먹을 거라도 좀살까 했지만 그들이 식당을 하는 이상 그것도 말이 안 됐다. 헬렌은 그들이 좋아할 만한 다른 걸 생각해보려고 했지만 너무 바빴다. 학교에서는 격무에 시달렸고, 여행사에서는 압력을가했고, 앤서니가 문자로 알려주는 집안 상황은 걱정스러웠다. 퇴근해 토마토소스로 만든 미트볼이나 조갯살을 넣은 파스타 접시 앞에 털썩 주저앉을 때까지 숨 돌릴 틈이 없었다. 그녀는 그집의 작은 손님방에서 깊은 잠을 잤고 아침에 먹은 살라미와 치즈와 갓 구운 바삭바삭한 빵으로 하루를 버텼다.
앤서니는 집이 달라졌다 하고 로지는 런던은 다르다고 했다. 헬렌의 일상은 전과 다를 게 없었다. 집에서보다 맛있는 아침을 먹고 다니기는 했지만, 멀쩡한 여자에게 어울리는 남자가 없다는 고민은 여전했다. 그런데 다들 모든 게 달라졌다고 호들갑을 떠는 이유가 뭘까?
모드와 마르코처럼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들은 다른 사람은 거의 안중에도 없었다. 주방에서 같이 웃고서로를 어루만지다가도 나가서 손님을 상대할 때면 프로로 변신했다. 집에서는 아주 조그만 소파에 딱 붙어앉아서 속닥였다. 헬렌은 둘이서만 있을 수 있게 가끔 외출을 했다. 그들은 너무 착해서 그녀를 집에 혼자 두고 나가지 못했다. 헬렌은 그렇게 죽고못사는 상대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감정이었다.
애들을 그냥 내보내기만 하면 안 된다는 거야. 그러면 애들이 아무것도 배우질 못하지. 현재 상황을 통해 과거에 어떤 부분이 잘못됐었는지를 가르쳐줘야 해."
디가 세인트잘라스 크레센트의 집으로 돌아가보니 사위 로넌이 릴리와 같이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릴리는 당장 벌떡 일어나 디의 짐을 받아들고 잘 다녀왔느냐고 인사했다. 로지라면 돋보기 거울에서 얼굴을 들지 않았을 것이다. 헬렌이라면 맡고 있는 프로젝트에서 눈을 떼지 않았을 것이다. 앤서니라면 이어폰을 낀 채로 그녀를 향해 웃어 보였을 것이다. 릴리 이전에는 어느 누구도 디가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릴리가 정말 궁금해했기 때문에 로넌도 관심을 보였다.
그는 슬프고 외로워 보였지만 디는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개입은 금물이었다. 그게 원칙이었다. 모든 친구들이 입을 모아 충고하길 양쪽 모두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했다. 아이들은 어차피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할 테고, 뭐가 됐든 의견을 밝혔다가는 세상에서 가장 몹쓸 부모가 될 거라고. 아무 말 없이 그냥 계속 고개를 끄덕이며 웃기만 하라고 했다.
로넌이 런던에 올 일이 있다면 왜 일요일에 올 수 없을까? 회사에서 무슨 일을 시켰길래 런던에 온다는 걸까? 엄마가 점심때그렇게 파티를 벌이는 이유가 뭘까? 로지도 그 자리에 참석하고싶었다.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휑하니 뚫린 느낌이었다. 이게 어쩌면 사람들이 말하는 향수병일까?
헬렌은 벌떡 일어나 작은 부엌 뒷방으로 갔다. 방은 완전히 개조되어서, 벽에는 흰색 페인트를 칠했고 창문에는 빨간색과 하얀색 커튼을 달아놓았다. 한쪽 벽에는 주홍색 커버를 씌운 소파베드가, 다른 쪽 벽에는 행거가 세 개 있었다. 헬렌은 그녀의 이름표가 달린 행거에 원피스, 블라우스, 스커트가 깔끔하게 걸려있는 것을 보았다. 행거 아래에 상자가 있었고 모두 그녀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신발과 속옷인 듯했다.
다는 딸의 말투를 알아차렸다 한들 티를 내지 않았다. "아, 지난 이 주 동안 했지. 너희 아빠가 얼마나 열심히 정리하99셨는지 몰라.‘ "너희들 마음에 든다면 나도 뿌듯하다."리엄은 헬렌이 보기에 바보 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왜 그러셨어요?" 헬렌은 냉랭한 눈빛으로 물었다. "너희들이 가끔 자고 가고 싶어할 경우에 대비해서 방이 하나있으면 좋겠다 싶었지."디는 방 이야기를 하며 즐거워하는눈치였다. "그리고 빨간색이랑 하얀색으로 꾸미면 환해 보이고좋을 것 같았어." "하지만 그 행거들은.....…?" 헬렌은 이게 다 무슨 일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물론 가정을 일구는 것이 꽃길이기만 한 건 아니었다. 디는 언제든 가져갈 수 있도록 깔끔하게 정리된 자기들 옷을 보고 아들과 딸이 지은 표정을 목격했다. 그녀는 엄청난 죄책감을느꼈고 그 생각을 하느라 밤잠을 설쳤다. 아이들을 집에서 떠나보내는 것 때문이 아니었다. 진작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 생활비를 부담하는 부분에 대해 서로 합의하지 않았던 것 때문이었다. 그게 그녀의 엄청난 실수였다.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처음부터 분명하게 짚고 넘어갈텐데.
헬렌은 교무실에서 샌드위치를 먹었다. 마르코와 모드의 집에는 항상 먹을 게 많았다. 살라미와 치즈와 롤빵을 챙기기만 하면됐다. 그러면 점심값을 아낄 수 있었다. 휴대전화가 울렸다. 여행사였다. 계약서에 적힌 보험 조항에따라 문제가 전부 해결됐고 헬렌은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녀는 짊어지고 있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느낌이었고 다시제대로 숨을 쉴 수 있게 됐다.
앤서니는 자평하길 무난한 성격이었지만 친구들과 같이 사는집은 정말이지 너무 더러웠다. 욕조에는 시커멓게 때가 꼈고 부엌은 다 먹었거나 거의 다 먹은 포장용기로 넘쳐났다. 쓰레기 버리는 날을 수도 없이 놓쳤고 그러면 그 상태로 이주 동안 지내야 했다.
이후로 모든 일이 아주 순식간에 진행됐다. 디는 조시에게 비디오를 빠르게 돌리는 느낌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노상 집안을 들락거렸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하는 게 불가능했다. 로넌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런던에서 돌아와 뒷방 행거에 걸린로지의 옷을 챙기기 시작했다. 디는 그가 상자에 담긴 로지의 신발과 핸드백을 투명한 비닐봉지에 애지중지 담는 것을 지켜보았다. 로넌은 디에게 다림질을 가르쳐달라고 하고는 디가 칼라를어떤 식으로 놓아야 하는지 보여주는 동안 엄숙한 표정으로 주시했다. "생각보다 복잡하네요." 그가 말했다.
로넌은 저녁 식탁을 꽃으로 장식하고, 오븐에 넣을 수 있게 캐서롤을 준비하고, 샐러드는 이미 완성해서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로지의 원피스는 모두 다려서 얼마나 주름 하나 없이 매끈한지 그녀가 볼 수 있게 얌전히 방에 걸어놓았다. 그런 다음 공항으로 갔다. 로넌은 할말을 준비해놓았지만 로지가 달려와 품에 안기자 모두 잊어버렸다. "집으로 돌아온 걸 환영해." 그가 한 말은 이게 전부였다.
사람들 사이에 서 있던 로지와 헬렌과 앤서니는 어안이 벙벙했다. 엄마와 아빠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때가 되면 낙엽이 떨어지듯 아이들이 집을 떠났다고? 그들의 기억으로는 그렇지 않았다. 그 시간들은 갑작스럽고 충격적이고 심란했다. 엄마와 아빠는허드렛방에 페인트를 칠하고 삼남매의 옷을 모조리 거기로 옮겼다. 그들이 집에 찾아가는 건 일요일 점심으로 제한되다시피 했다. 그들의 집인 줄 알았던 곳에서 방값이라는 말이 나왔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게 무슨 상관일까? 부모님은 행복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두 분은 실제로 ‘때가 되면 낙엽이 떨어지듯‘ 모든 일이 일어났다고 믿고 있었다. 내일이면 두 분은 이 주 동안 시칠리아 여행을 다녀올 것이었다. 잔을 들고, 두 분의 건강을 위하여. 어쩌면 모든 게 잘되려고 그런 건지 몰랐다. 지금도, 앞으로도, 집안 가득 북적거리던 가족들이 갑작스럽게 흩어진 것에 대해서는 함구하기로 하자. 어쩌면 낙엽을 떨어뜨리느라 바람의 도움이 살짝 필요했던 건지도 모른다. 그뿐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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