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므린 손금처럼 어스름한 가냘픈 길, 그 길이 부셔서 마침내 사월 때까지 보고 있어야겠다 이제 취한 물은 내 손금 안에서 속으로 울음을 오그린 자줏빛으로 흐르겠다 그것이 이 가을의 무늬겠다

저녁의 가장 두터운 속살을 주문하는 아코디언 소리가 들리는 골목 토마토를 싣고 가는 자전거는 넘어지고 붉은 노을의 살점이 뚝뚝 거리에서 이겨지는데 그 살점으로 만든 칵테일, 딱 한 잔 비우면서 휘파람이라는 명랑한 악기를 사랑하면 이국의 거리는작은 술잔처럼 둥글어지면서 아프다

박쥐는 가을의 잠에 들어와 꿈을 베꼈고
꿈은 빛을 베껴서 가을 장미의 말들을 가둬두었다
그 안에 서서 너를 자꾸 베끼던 사랑은 누구인가
그 안에 서서 나를 자꾸 베끼는 불가능은 누구인가

당신이 오는 계절,
딸기들은 당신의 품에 얼굴을 묻고
영영 오지 않을 꿈의 입구를 그리워하는 계절

SHP5B 9 S# P# 9*숨죽인 밤구름 바깥으로 상쾌한 달빛이 나들이를나온다 그 빛은 당신이 나에게 보내는 휘파람 같다그때면 춤추던 마을 아가씨들이 얼굴을 멈추고 레몬의 아린 살을 입안에서 굴리며 잠잘 방으로 들어온다

마음속을 걸어가던 달이었을까, 구름 속에 마음을
다 내주던 새의 한 철을 보내던 달이었을까. 대답하지 않는 달은 더 빛난다 즐겁다

익은 속살에 어린 단맛은 꿈을 꾼다 어제 나는 너의 마음에 다녀왔다 너는 울다가 벽에 기대면서 어두운 걸레로 바닥을 닦았다 너의 얼굴에는 여름이 무참하게 익고 있었다 이렇게 사라져갈 여름은 해독할수 없는 손금만큼 아렸다 쓰고도 아린 것들이 익어가면서 나오는 저 가루는 눈처럼 자두 속에서 내린다 자두 속에서 단 빙하기가 시작된다 한입 깨물었을 때 빙하기 한가운데에 꿈꾸는 여름이 잇속으로 들어왔다 이것은 말 이전에 시작된 여름이었다 여름의영혼이었다 설탕으로 이루어진 영혼이라는 거울, 혹은 이름이었다 너를 실핏줄의 메일에게로 보냈다 그리고 다시 자두나무를 바라보았다 여름 저녁은 상형문자처럼 컴컴해졌다 울었다. 나는 너의 무덤이 내가슴속에 돋아나는 걸 보며 어둑해졌다 그 뒤의 울음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자두뿐이었다

오렌지 나무는 아무 말 없이 녹빛 그늘의 눈을 우리에게 주었다 단단한 잎은 번쩍거렸다 나는 너에게둥글게, 임신 말기의 여름에 열리던 아주 둥근 열매처럼 단 한 번만 더 와달라고 말하려다 참았다

내 혀는 가을의 살빛을 모두어 들이면서 말하네,
꼭 그대를 만나려고 호두 속을 들여다본 건 아니었다고

모든 우울한 점성의 별들을 태아 상태로 머물게해요, 얼굴 없는 타락들로 가득 찬 계절이 오고 있어요, 라고

잎사귀 모양을 한 깃털을 떨구고 날아간 문득,
숱이 두터운 눈바람 속, 새이던 당신에게날개의 탄생을 붉게 알려준그 나무 열매의 이름이 알고 싶었다

넝마 같은 세월을 햇빛에 말리며
라디오 속 노래들이 기절한다면
난 무얼 할까
바짝 마른 빨래 없는 계절이 지나가는데
울었던 흔적을 지워줄 내일은 없는데
나는 무얼 할까

낚시꾼들은 가까운 바다로 나간다 우럭을 잡아서그 자리에서 회 친다 우리의 가장 다정한 조상 네안데르탈인들이 헬무트 씨의 고기를 구울 때, 그 표정으로 낚시꾼들은 우럭의 투명한 살을 저민다 인간의문명에서 시간의 차이를 드러내는 것은 양념이다 그때에는 빨간 초장 푸른 와사비는 없었다 시간을 달이며 고독해지던 간장도

아이는 소를 제 품에 안았다
둘은 진흙으로 만든 좌상이 되어간다
빛의 섬이 되어간다
파리 떼가 몰려온다
파리의 날개들이 빛의 섬 위에서
은철빛 폭풍으로 좌상을 파먹는다
하얗게 남은 인간과 짐승의 뼈가 널린 황무지
자연을 잡아먹는 것은 자연뿐이다.

틀에 갇혀버린 옆 마을의 나치 할아버지,
사각의두줄무늬 늙은 나비, 지던 페르시아 퀸 장미, 위대한가을의 국화, 휠체어에 앉아 있던 아이패드 5의 햇살욕설, 오던 구급차와 가던 장의차, 토해놓은 사랑과죽음으로도 돌이킬 수 없던 나날들, 고양이가 마시던 오후의 커피, 고요히 돌아와 창백한 별의 심장을안아주던 어둠조차 사각의 관 속에 든 정물화가 되어가던 시간을 함께 보내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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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섬 바리시고 네여 도 닦듯 하염없이 튀김 기름 끊는열반 속에 환한 수련 열 듯 고구마는 솟아오르고누런 아가는 양털 보풀이는 싸묵눈길을 간다네 마징가나 은하철도 기름 열반 속 고구마 꽃잎에 뚝뚝 떨어지는기름처럼 눈발은 잠 속을 녹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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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당 언저리 잎 진 산벚나무로 서 있는 내게 주지 스님이삭발하자, 말씀하시고는 길 따라 내려가신 지 여러달 캄캄이다 달도 차서 참나무 숲으로 기운 게 여러번 눈길 밟아 마음도 득달같이 속세로 달아나버렸다가 미끄러져 돌아오는날이 돌마당 갈잎으로 뒹굴었다 긴 머리 질끈 묶고 모과나무 그늘에 서서 시린 산 아래 내 그림자만 만지작거리다가 문득, 놓고 온 것들에 대한 서글픔이 눈앞을 가리는데 어질어질 산벚꽃 핀 자리로 돌아오신 스님 내 눈을 깊이깊이들여다보고는 오늘은 안되겠다 하시며 바랑에 내 설움까지넣고 또 휘청휘청 고갯길 넘어가셨다

동네 할매들과 민화투를 치고 온 그녀가 내민 것은 딸년볼때기에 달린 혹이 그냥 혹이 아니라 불혹이라는 것, 여직결혼을 안하는 것은 남자에게 큰 상처를 받았을 거라는 민화투 토의가 이루어졌다는 것, 삼광도 보이지 않고 홍단도없는 이불 위로 떨어졌다는 내 얼굴, 오는 내내 내 얼굴만 보여야 하는데 살구나무집 앞 살구꽃잎이 허옇게 앞을 가려서그놈이 어떤 놈인지 생각도 잊었다고, 방구들 붙잡고 쭈그려 앉은 내 얼굴 보자마자 그놈이 생각났다는, 도대체 그놈이 누구인지 나도 알 수 없는,

몸에 깃든 병도 없는데 몸이 아팠다 서울 오르기 전, 마른가지에 물 돌듯 그나마 움찔했는데 광화문 한복판 그늘을어깨에 올리고 바람에 꺼질 듯한 촛불을 감싸며 술집 귀퉁이에 쭈그리고 앉아 있다가 집으로 온 뒤 몸이 아팠다일찍이 이유 없이 보름을 골골거리다가 시 한편 쓰고 나면 언제 아팠냐는 듯이 멀쩡해지는 몸 싹이야 이곳저곳에서나는 몸뚱어리지만 세월호 엄마아빠들의 북소리를 듣고 온뒤 몸이 아파 며칠 방구들 지고 누웠다 가슴을 둥둥 쳐대는긴 북소리가 파도를 타고 녹슨 몸 구석구석을 에돌자 곳곳에서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툭툭 터져나왔다

돈 없다면서 바지며 윗도리며 브라자까지 산 어머니 저승가신 아버지 불러다 브라자 보여주려고 무지개색으로 샀느냐고 망사에 야시시한 것이 가슴이 맞아야 내가 입든지 하는데 그러다가 아버지 가시며 남겨둔 돈 다 쓰겠다고 하자어머니 하시는 말씀, 거덜 난다고 목구멍에 거미줄 치지는않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내 돈 내가 쓰는데 옆댕이 붙어살면서 지글지글하게 참견한다고 말년에 과부 돼서 평생 못써본 돈 좀 써보겠다는데 지랄이냐고 병들면 약 들고 무덤들어갈 테니 걱정 말라며 거울 앞에서 이놈 차보고 저놈 차보고 창문 밖에 뚱딴지꽃 쿨럭쿨럭 잔기침 뱉으며 짐짓 모르는 척 딴짓한다

은행잎이 11월 그늘을 끌어들이자 사그락사그락 햇살이궁구르는 길 위로 진눈깨비 날렸다 벼 바심 끝난 논바닥에내려앉은 구름이 웅덩이 속에서 흘렀고 서리 맞은 호박잎이 밭머리에 누렇게 스러져가는 바람을 흔들었다 발자국의로 내려놓은 이파리 위로 번진 노을 가슴에 담아놓고 가도좋은 것을 벚나무 그늘이 깊어서 쓸쓸함이 박새 발가락으로흔들렸다 나를 스치는 것들이 햇살에 부딪쳐 스러지던 날아우, 저승길 걷기에 참 좋은 날

그새 봄까치꽃 환하게 밭모퉁이에 피었다 똥구멍 시리게달렸던 겨울은 전깃줄에 매달린 방패연구멍 속에서 뱅뱅돈다 빈대 잡는다고 불에 탄 꼬리 흔들며 짖어대는 진순이를 뒤로하고 불에 덴 손등에 침발라가며 검불 불사른다 마른 오줌 벽이 검게 그슬린다

달 눈꺼풀이 바르르 떨리는 밤 잠결에 어머니가 한바탕크게 웃는다 자다 말고 일어나 얼굴을 보니 볼이 붉다 내려앉은 초승달이 눈 한가득이다 닭도 울지 않은 새벽녘에 일어나 오줌 누러 가는 어머니 등 뒤에 대고 뭐가 우스워서 자면서 그리 웃었느냐고 물으니 저승 간 느 아버지가 왔다고옆에 누워 내 젖을 만졌다고 간지러워서 웃었다며 지지 않은 달빛 속으로 들어간 부끄러움 한동안 빤히 창밖만 바라보던 어머니 서둘러 화장실로 들어가며 네년 때문에 오줌찔끔거렸다고 속옷 갈아입어야겠다고 잠이나 자지 왜 일어나서 지랄이냐고 괜스레 애먼 나만 타박이다

뒤집어봐야 됫박인 줄 알고 좆 끝으로 밤송이 발라봐야지 좆 끝만 아프지 누구 좆도 안 아프다고 여길 가봐도 저길가봐도 찬밥덩어리인 줄 모르고 이리 기웃 저리 기웃 잔소리는 오만가지 지 잘난 줄만 알고 남 잘난 줄은 모르는 기둥에 고무줄로 매단 빗마냥 이리 튕기고 저리 튕기고 그래도제자리로 잘도 돌아온다고 십년 객지 생활에 철드는가 싶더니 이건 그놈이 그놈이고 그년이 그년이라고 자식새끼 욕해봤자 당신 얼굴에 침 뱉기라 남한테 말도 못하고 산 넘어 가신 아버지

늙으면 병들어 죽는 게 아니란다 벽에 걸린 새끼 사진들여다보다가 외로워서 한밤에 벌벌 한기 느끼다가가는 거란다 가는 순간 귀가 열리는데, 이미 식은 몸뚱이는 저승길가자, 가자 하니 귓구멍에 그저 소쩍새 소리만 들렸을 거라는앞집 황소 아줌마 이불 덮지도 못하고 바짝 쪼그리고 갔다고 장의사 와서 팔다리 펼 때 욕봤을 거란다 고집 세지, 힘세지 이길 장사 없었는데 말다툼도 많이 했는데 정, 정 해도 미운 정이 더 깊다고 보고 싶은 마음 자락 끝에 개 밥그릇 발로차며 성질만 낸다

여자 둘이 사는 집에 술 취한 사내가 대문 밖 진순이와싸움이 붙었다 갈 길 잃었다고 너는 누구고 나는 누구냐고팔짱 끼고 서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데 진순이는 허연 이드러내고 상대가 누가 됐든 집만 지키면 된다고 멍멍 짖어댔다

먼 하늘이 아득해서 바지랑대 걸쳐놓은 빨랫줄도 팽팽해졌다 마른 꽃무늬 속옷이 몇날 며칠 이슬을 받았다 냈다 해도 걷어낼 사람 없는 시름시름 앓는 집 한 철 넘기는 일이 그늘을 당겼다 놓는 감나무처럼 버석거렸다 고추 따다가 어지럼증으로 고꾸라져 받침대에 팔을 찔렸다 우환이 도둑이라돈 잡아먹는 귀신이 문지방 비비며 들락거리고 식은 밥이저승 밥이라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창문 밖에 고추만붉다가, 붉다가 곪아터졌다 빳빳해진 속옷위에 잠자리 앉았다가 날아간다

내가 먼저 가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어 너 혼자 남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증이 일어나 나이 사실에 옆댕이서 젖만져줄 놈 하나 없는데 코골고 자는 모습 보면 안쓰럽기도하고 성질도 나고 내가 니 아비 먼저 보내놓고 사방의 온 병끌어모아 이 고생인데 안 봐도 비디오여 나 가고 나면 가슴쥐어짜고 살 텐데 내가 그 꼴을 저승 가서 어찌 보겠냐 아,
견우직녀도 매년 새 대가리 밟고 손모가지 붙잡는데 너도아무 놈 손모가지라도 끌고 와 그래야 내가 편히 눈감어 온몸이 종합병원인데 너는 어찌 어미 맘을 모르냐 뭣 모르고대가리 벗겨진 콩처럼 튈 궁리만 하고 앉아 있고 사는 게 별거 아니지만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하니 너도 대가리 그만 굴리고 나가서 한 놈만 잡아봐 그러면 어찌 아냐 저승 간 니 아비 새 대가리 밟고 와서 손잡고 예식장 들어가줄지!

돈 많아도 다 헛지랄이여, 돈 간수보다 자식 간수가 우선이지, 그리 돈, 돈, 돈 하더니, 그놈의 돈 때문에 새끼 잃고 며느리가 재산 몽땅 가지고 날랐잖어, 개같이 벌어정승같이쓴다는 말이 오디 그게 말이여 똥이여? 새끼 교통사고로 보내놓고도 장례식장 비용 땜시롱 실랑이하더니 죄받은겨, 그리 촐싹대며 이 집 저 집 일숫돈 받으러 다니고 안 주면 땅문서라도 들고 나오는 사람이었잖어. 지금이 일제시대인 줄아나, 왜 강제로 뺏어가느냐고 그러니 며느리가 게 눈 감추듯이 돈 들고 날지 않고 배기겄어, 돈이 무신 소용이여, 잘벌어 잘 쓰야지, 나는 돈도 없지만 있어도 죽을 때까지 안 줄겨, 나 죽으면 그 돈으로 장례나 치러, 속 끓이지 말고, 정신똑바로 차리고 살어, 손바닥 깔짝 뒤집으면 이승과 저승이바뀌는겨, 암만, 다 그런겨

흔들어 깨운 어머니가 내가 그리 밉냐고 그래서 그리 소리 지르느냐고 그렇게 미우면 나가 살라고 애먼 소리로 새벽 그늘을 뒤집었다 내가 밉다는 할머니와 자기를 미워한다고 생각하는 어머니

통 중에서 가장 깊고 속 터지는 통은 울화통인데, 그 속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 것이 아궁이에 불붙은 장작만 하겠느냐만, 어린 새끼 바닷물 속에 넣고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밥알이 넘어가는 어미의 통은 환장통이다 이유도 모르고 바닷속에서 뒤집어졌을 새끼 속은 어두컴컴 보이지 않는데,
아비의 속울음은 부글부글 애끓는 눈물통이다열두살 난 아들 수멍통에 잃어버리고, 한 시절 눈물 위 손바닥으로 노 저어오다 녹내장으로 눈먼 앵두나무집 할매 속은 썩어 문드러진 염통인데, 그 쪼그라든 통이 깔짝깔짝 뛸때마다 살아 있는 자신의 가슴을 퉁퉁 쳐댔단다살아 있는 그 끝까지 수없이 뛰는 가슴을 치며 살아갈 우리의 눈물통은 마를 새 없는데, 어찌 모를까 언젠가 터질 울화! 눈먼 앵두나무집 할매 눈에도 보이는데 눈멀지 않은눈은 붉은 눈물통으로 바라보는데

‘백년 묵은 상수리나무 옆 언덕바지까지 늘어진 지붕이 올씨년스레 똥바가지 뒤집어쓴 수국이 토악질해대던 변소

수수꽃다리 향기 코끝 간질간질하게 재채기 나왔던 변소에서 바지춤을 여미곤 했다 할아버지 돌아가신 뒤 상수리나무 옆 변소는 사라지고 상수리나무도 베어졌다 굵은 밑동은나이테를 올리며 덩그러니 별을 바라보았다

삼대가 걸쳐 살았던 향나무 꺾인 집을 나오면서 자꾸 뒤돌아본 건 감나무에 걸쳐는 바랜 장대 때문이다 마른 호박줄기 엉켜 기지개 한번 켜보지 못하고 주저앉은 비닐하우스늙은 호박이 땅에 닿을 듯 말 듯 바람 줄기 쥐락펴락하는 손힘이 빠진 지 오래다고사리 장마에 고개 내밀다 꺾인 고사리밭은 조릿대가 살얼음빛으로 서걱이고 벙어리 뻐꾸기가 피 토했던 상수리나무의 그늘이 옷깃을 잡는데 사람 숨소리에 기둥도 반듯하게선다는 집, 그러나 처마 처진 지 오래된 아버지의 아버지의아버지의 집 남의 손에 넘기고 돌아오던 날, 내 눈물을 낡은양파 망에 담은 장대가 하늘 높아 더 추운 겨울을 푹, 찌르고있다 까치가 파먹다 찢어진 홍시가 그대로 얼어버린 집에서

비 내린 뒤끝, 서로 먼 산만 바라보다가 눈앞 흩날리는 꽃잎을 바라보다가 류머티즘 관절염으로 구부러진 손가락을꼭 잡은 아들 손으로 눈물을 훔치는 어머니

바라보다가 고라니 까만 눈으로 바라보다가 잡으려 하니그 자리에 별이 스러졌다

툇마루 옹이 빠진 구멍 속
거미의 눈으로 바라보는 내 안의 사랑은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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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악기여
모든 노래하는 것들은 불우하고
또 좀 불우해서
불우의 지복을 누릴 터
끝내 희망은 먼 새처럼 꾸벅이며
어디 먼데를 저 먼저 가고 있구나

마음은 길을 잃고
저 혼자
몽생취사하길 바랐으나
가는 것이 문제였던가. 그래서
갔던 길마저 헝클어뜨리며 왔는가 마음아

이 세상 정들 것 없어 병에 정듭니다가엾은 등불 마음의 살들은 저리도 여려 나 그 살을 세상의 접면에 대고 몸이 상합니다몸이 상할 때 마음은 저 혼자 버려지고 버려진 마음이너무 많아 이 세상 모든 길들은 위독합니다 위독한 길을따라 속수무책의 몸이여 버려진 마음들이 켜놓은 세상의등불은 아프고 대책없습니다 정든 병이 켜놓은 등불의세상은 어둑어둑 대책없습니다

상처의 실개천엔 저녁해가 빠지고 바람같이 장난같이시시덕거리며 세월도 빠졌습니다산들은 활처럼 둥글게 사라져버리고 이 실개천 꽃다주름이 어둠을 다림질하며 저만치 저만치 가버릴 때 바닥에서 스며드는 먹물, 저녁해는 물에 빠져나오지 않고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그래서 불러봅니다 킥킥거리며 한때 적요로움의 울음이 있었던 때, 한 슬픔이 문을 닫으면 또 한 슬픔이 문을 여는 것을 이만큼살아옴의 상처에 기대, 나킥킥………… 당신을 부릅니다 단풍의 손바닥, 은행의 두 갈래 그리고 합침 저 개망초의시름, 밟힌 풀의 흙으로 돌아감 당신……… 킥킥거리며 세월에 대해 혹은 사랑과 상처, 상처의 몸이 나에게 기대와저를 부빌 때 당신・・・・・・ 그대라는 자연의 달과 별…………, 킥킥거리며 당신이라고・・・・・・ 금방 울 것 같은 사내의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에 기대 마음의 무덤에 나 벌초하러 진설 음식도 없이 맨 술 한 병 차고 병자처럼, 그러나 치병과 환후는 각각 따로인 것을 킥킥 당신이쁜 당신.………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내가 아니라서 끝내 버릴 수없는, 무를 수도 없는 참혹・・・・・・ 그러나 킥킥 당신

내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 여린 푸른 가시들은 햇빛으로 나를 향해 저의 침을 겨누고 있었지요 나는 일종의 포획된 짐승 같은 거였는데 그러니까 저 수성의 내가 느끼는 건 뭐였겠습니까 나는 저 여린 가시들 속에 그러나 혼곤해 있었는데 가시들이 몸을 뚫고 들어와 나는 꿈틀거리며 가시를 바투어내느라 팥죽같이 끓어올랐는데요 그러나 그렇게 약든 마음은 푸른 여린 가시만이 보였을 터지요 일종의 포획된 짐승이었던 나는 실히 기린이나 한마리 되어 이 세계에 보이지 않는 그러나 지금은 잣이나쏟아내는 거였는데……..

럭키슈퍼마켓 저 적벽에 붙은 한 구멍가게에서 술병가쟁이를 닦아 한잔 한다 늙은 여자가 속옷바람으로 나와 저녁 밤, 찬 찌꺼기를 찌뜨리고 간다한 시절 갈아입지 못한 속옷에서 나는 냄새여

애처로움이여
버스에서 내려 나는 홍제암 그이는 부산다방 이같이
어딘가를 찾아가는 의욕도 필경은 쓸쓸하게 되고 말겠지만
마지막 의욕조차도!

갈꽃이 한 시야를 메우고 저 창창한 여름이 몸을 건너올 때 마음의 꿈, 마음의 집, 나는 서울의 한 횡단보도에서 비명횡사하고 싶어질 때마다 김사인의 매를 생각했다. 이 화상아 정을 주었다 하면 어째 그러나 혈친 같은정을 꾸벅이면서 주고는 어깨를 경사지게 하고는 물 건너듯 무심하게 가버리느냐

뽀얀 물안개가 꼼짝도 않고 그러나 움직임의 경계를지우며 우리가 내버리고 온 다른 등성이를 감싸고 있었는데 다만 연보라의 안개 저쪽에는 어떤 우중인지 그리고 우중 아니래도 상관은 없었습니다.
오다 오다 서럽더라 의내여 바람이여 아버지와 나는인간의 육으로 들어가 즙액의 탕을 만들어내는 곤죽의땀과 그러나 말라 비틀어진 마음의 한켠이 기울어져 이대도록 멀고 긴 길을 나섰는지 모른다고 생각했는데요저 아른거리는 물안개 저편저편이래봤자 손으로 젖히면 열릴 거였지만 그러나 손을 내밀기는 천근처럼 무거웠지요 그러나 아버지는 성큼성큼 물안개를 건너가더니 다시 나오지 않았고 망연히 쳐다보는 나는

201애처로운 저 개를 데리고 한때의 저녁 속으로 당신을남겨두고 그대, 내 늙음 속으로 슬픈 악수를 청하던 그때를 남겨두고 사라지려 합니다, 청년과 함께 이 저녁 슬금슬금 산책이 오래 아프게 할 이 저녁

사카린같이 스며들던 상처야
박분의 햇살아
연분홍 졸음 같은 낮술 마음 졸이던 소풍아
안타까움보다 더 광포한 세월아
순교의 순정아
나 이제 시시껄렁으로 가려고 하네
시시껄렁이 나를 먹여 살릴 때까지

기차는 지나가고 밤꽃은 지고밤꽃은 지고 꽃자리도 지네오오 나보다 더 그리운 것도 가지만나는 남네 기차는 가네내 몸 속에 들어온 너의 몸을 추억하거니그리운 것들은 그리운 것들끼리 몸이 먼저 닮아 있었구나

무수한 생이 끝나고 또 시작하는 옛사랑 자취 끊긴 길그 길이 모오든 시작을 주관하고 마침내 마감마저 사해주는 것을

빈 마을인데 텅 빈 마을 들창 놓듯 빈집인데 웬 술 익는 내가 진동하나 했더니 사람은 없고 누렁개가 새끼를낳았구나 아직 어미배가 익숙한 놈들 서로 혀를 내밀고배내피를 핥아내고 있구나 그 핏내가 술 익는 내였구나눈님이 저리도 장할시고 눈님도 저놈들 해털 사이를진저리치며 반짝이는 얼굴을 부벼대고 있더이 이 마을눈이 익을 곳 저 생명 눈부심 손가락 잘리듯 빨갛게 익어가는구나이 치운 날 조선 산천에 햇것들이 몇 개 더 보태져

저문 산길 채이는 밤서리 밟으며
저자 천덕꾸러기 재실이가 내 탯줄을 묻었는데요.
내 탯줄은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요
상여도가 꽃종이 접던 도갓꾼 오줌 기운에

육지의 불빛이 꺼져가는 아궁이 쑥냄새 같은 저녁이었고 모래 구멍엔 낙지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수만의 다리로 머리를 감추고 또한 머리와 다리가 무슨 양성兩性처럼엉기면서 먼 저녁의 구멍을 지탱하고 있었는데요 그 구멍마다 저 또한 어둠이겠지만 엉겨붙어 살아 남는 것들이여 멀리 무덤 같은 인가에도 엉겨붙는 저녁과 밤과 새벽이 있을 거구요 이리 어둑하게 서 있는 나는 저 미역저 파래 저 엉겨붙는 그리움으로 육지를 내치고 싶었습니다 진저리치는 저 파도 저 바위 저 굴딱지처럼 엉겨붙어 엉겨붙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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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함께 일어날 일이다
매일 낮 함께 하늘을 우러르고
매일 저녁 함께 어두워질 일이다

폭풍처럼 폭우처럼 폭설처럼
쓰나미처럼 화산처럼 지진처럼 눈사태처럼
정전처럼 감전처럼 단전처럼 누전처럼
신종플루처럼 광우병처럼 조류독감처럼 구제역처럼
전파가 지구를 뒤덮고 있다.

이 슬픔은 오래 만졌다.
지갑처럼 가슴에 지니고 다녀
따뜻하기까지 하다
제자리에 다 들어가 있다
이 불행 또한 오래되었다.
반지처럼 손가락에 끼고 있어
어떤 때에는 표정이 있는 듯하다
반짝일 때도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있었다
한때 다들 그 섬에 가고 싶어했다
하지만 그 섬에 가본 사람이 없었다
애초에 섬이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 사이 다른 것이 들어섰다
사람과사람 사이에 스마트폰이 있었다
아니 사람과 사람 사이에스마트폰이 있지 않았다
스마트폰과 스마트폰 사이에
사람이 있었다 아니
스마트폰 안에 사람이 들어가 있었다다시

수덕사로 글 쓰러 간 친구 연락 없다
속리산에서 소 키운다는 후배
강화도에서 자연농법 하신다는 선생님
히말라야 하이웨이에서 엽서를 띄운 옛 애인
다들 본지 오래
눈꺼풀 들어올리는 일도
다 중력을 이기는 일내가 저 검은바위 속으로
빨려들어가지 않는 것도
인력에 지지 않는 것

그해 여름
폭염주의보가 경보로 바뀐 날
양짓말 늙은 삼촌은
비닐하우스에서 나오자마자
제초제를 병째 들이켰다고 한다벌
컥벌컥 들이마셨다고 한다

이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우리 생의 뿌리는 미래에 있다.
저 칙칙한 과거가 아니라 미래에 있다.
렇다면 미래에서 돌아보자
미래로 가서 지금 여기를 뒤돌아보자
두번째 생일인 오늘을
두번째 생일 아침에 지은
우리의 새 이름을

자기 고집을 피우는 순간
수직을 버리고 한쪽으로 기우뚱하는 순간
땅에 뿌리박은 자기 자리에서 벗어나는 순간
풍향계는 바람의 역사를 놓친다

더 큰 소리로 말해그해 가을 처음 들어간 연극부빙 둘러선 낯선 부원들우두둑우두둑 스트레칭에 이어아에이오우 발성 연습 시간아에이오우 아에이오우 턱관절까지 푼 다음더 큰 소리로 말해를 가장 낮은 데서 시작해목소리의 끝까지 밀어올려야 했다

마음약한 좋은 자들이
스스로 강해지는 약자다
그런 약자들이 세상을 바꾸는 강자다

색안경을 끼자
자기 얼굴에 어울리는 선글라스를 쓰자
색안경을 써야 더 잘 보인다
문제는 색안경을 내가 골라야 한다는 것
내가 고른 것을 당당하게 쓰고 다녀야 한다는 것
그리고 타인의 색안경을 칭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일과 일 사이가 일보다 크지 않아서
보가정이 가족보다 크지 않아서
결국 생활이 생존보다 크지 않아서

그리고 밥인데요, 남녀 벗이 사십구재 때 함께 나눈 이야기라며 이런 문자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요지를 옮기면 이렇습니다. 밥이라는 게 원래 공양이라는 뜻이다. 자기희생이라는 뜻. ‘너는 내 밥이야‘란 말을 습관적으로 내뱉는데사실은 ‘너‘ 때문에 내가 산다는 얘기 아닌가. 지금 우리가누군가의 밥이 되지 않고 저 혼자만 먹으려 하니까 세상이지옥으로 변한 거다. 그러니 우리가 서둘러 돌아가야 할 곳은 저 밥의 마음, 공양의 정신이다. 긴말 필요 없다. 내가 먼저 누군가의 밥이 돼야 한다. ‘네가 내 밥이다‘에서 ‘내가 네밥이다‘로 전환해야 한다. 우주 질서를 떠받치는 가장 중요한 원리가 자기희생인데 그게 결국 밥이다. 알고보니 선생님께서 남기신 말씀이더군요.

음식 만들기도 긴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자기 혼자 먹는음식에 정성을 다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랑하는사람을 위해 준비하는 음식이라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식재료에서 상차림까지 온갖 신경을 다 씁니다. 낯선 사람도 식탁에서 마주하면 달라집니다. 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식탁이 환대의 식탁이라고 생각합니다. 환대에서 우애로!

혼자가 연락했다혼자가 먼저 신호를 보내왔다우리가 모닝커피를 마시며 미팅할 때밥상머리 교육 확대 방안에 관해 논할 때세대 간 대화 촉진 지원 프로젝트를 기획할 때인류세의 미래를 주제로 한 국제회의에 참가할 때혼자가 혼자 있었던 것이다우리가 산책로 공원 광장을 늘려야 한다고모든 공동주택의 설계 기준부터 바꿔야 한다고거대 도시를 마을공동체로 전환해야 한다고 외칠 때전세계 기득권 세력의 완고한 프레임을 바꾸고시민의 삶의 방식을 바꾸는 감성적 담론을 마련할 때그레타 툰베리 같은 청년들에게 부끄러워할 때노년세대의 행동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모색할 때지구 평균 기온 상승과 관련된 빅데이터를 분석하고지구촌 모든 대통령궁 앞에서 치켜들 피켓을 고민할 때양자역학과 저항운동을 연결시킬 수 없을까 궁리할 때혼자는 혼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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