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당 언저리 잎 진 산벚나무로 서 있는 내게 주지 스님이삭발하자, 말씀하시고는 길 따라 내려가신 지 여러달 캄캄이다 달도 차서 참나무 숲으로 기운 게 여러번 눈길 밟아 마음도 득달같이 속세로 달아나버렸다가 미끄러져 돌아오는날이 돌마당 갈잎으로 뒹굴었다 긴 머리 질끈 묶고 모과나무 그늘에 서서 시린 산 아래 내 그림자만 만지작거리다가 문득, 놓고 온 것들에 대한 서글픔이 눈앞을 가리는데 어질어질 산벚꽃 핀 자리로 돌아오신 스님 내 눈을 깊이깊이들여다보고는 오늘은 안되겠다 하시며 바랑에 내 설움까지넣고 또 휘청휘청 고갯길 넘어가셨다
동네 할매들과 민화투를 치고 온 그녀가 내민 것은 딸년볼때기에 달린 혹이 그냥 혹이 아니라 불혹이라는 것, 여직결혼을 안하는 것은 남자에게 큰 상처를 받았을 거라는 민화투 토의가 이루어졌다는 것, 삼광도 보이지 않고 홍단도없는 이불 위로 떨어졌다는 내 얼굴, 오는 내내 내 얼굴만 보여야 하는데 살구나무집 앞 살구꽃잎이 허옇게 앞을 가려서그놈이 어떤 놈인지 생각도 잊었다고, 방구들 붙잡고 쭈그려 앉은 내 얼굴 보자마자 그놈이 생각났다는, 도대체 그놈이 누구인지 나도 알 수 없는,
몸에 깃든 병도 없는데 몸이 아팠다 서울 오르기 전, 마른가지에 물 돌듯 그나마 움찔했는데 광화문 한복판 그늘을어깨에 올리고 바람에 꺼질 듯한 촛불을 감싸며 술집 귀퉁이에 쭈그리고 앉아 있다가 집으로 온 뒤 몸이 아팠다일찍이 이유 없이 보름을 골골거리다가 시 한편 쓰고 나면 언제 아팠냐는 듯이 멀쩡해지는 몸 싹이야 이곳저곳에서나는 몸뚱어리지만 세월호 엄마아빠들의 북소리를 듣고 온뒤 몸이 아파 며칠 방구들 지고 누웠다 가슴을 둥둥 쳐대는긴 북소리가 파도를 타고 녹슨 몸 구석구석을 에돌자 곳곳에서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툭툭 터져나왔다
돈 없다면서 바지며 윗도리며 브라자까지 산 어머니 저승가신 아버지 불러다 브라자 보여주려고 무지개색으로 샀느냐고 망사에 야시시한 것이 가슴이 맞아야 내가 입든지 하는데 그러다가 아버지 가시며 남겨둔 돈 다 쓰겠다고 하자어머니 하시는 말씀, 거덜 난다고 목구멍에 거미줄 치지는않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내 돈 내가 쓰는데 옆댕이 붙어살면서 지글지글하게 참견한다고 말년에 과부 돼서 평생 못써본 돈 좀 써보겠다는데 지랄이냐고 병들면 약 들고 무덤들어갈 테니 걱정 말라며 거울 앞에서 이놈 차보고 저놈 차보고 창문 밖에 뚱딴지꽃 쿨럭쿨럭 잔기침 뱉으며 짐짓 모르는 척 딴짓한다
은행잎이 11월 그늘을 끌어들이자 사그락사그락 햇살이궁구르는 길 위로 진눈깨비 날렸다 벼 바심 끝난 논바닥에내려앉은 구름이 웅덩이 속에서 흘렀고 서리 맞은 호박잎이 밭머리에 누렇게 스러져가는 바람을 흔들었다 발자국의로 내려놓은 이파리 위로 번진 노을 가슴에 담아놓고 가도좋은 것을 벚나무 그늘이 깊어서 쓸쓸함이 박새 발가락으로흔들렸다 나를 스치는 것들이 햇살에 부딪쳐 스러지던 날아우, 저승길 걷기에 참 좋은 날
그새 봄까치꽃 환하게 밭모퉁이에 피었다 똥구멍 시리게달렸던 겨울은 전깃줄에 매달린 방패연구멍 속에서 뱅뱅돈다 빈대 잡는다고 불에 탄 꼬리 흔들며 짖어대는 진순이를 뒤로하고 불에 덴 손등에 침발라가며 검불 불사른다 마른 오줌 벽이 검게 그슬린다
달 눈꺼풀이 바르르 떨리는 밤 잠결에 어머니가 한바탕크게 웃는다 자다 말고 일어나 얼굴을 보니 볼이 붉다 내려앉은 초승달이 눈 한가득이다 닭도 울지 않은 새벽녘에 일어나 오줌 누러 가는 어머니 등 뒤에 대고 뭐가 우스워서 자면서 그리 웃었느냐고 물으니 저승 간 느 아버지가 왔다고옆에 누워 내 젖을 만졌다고 간지러워서 웃었다며 지지 않은 달빛 속으로 들어간 부끄러움 한동안 빤히 창밖만 바라보던 어머니 서둘러 화장실로 들어가며 네년 때문에 오줌찔끔거렸다고 속옷 갈아입어야겠다고 잠이나 자지 왜 일어나서 지랄이냐고 괜스레 애먼 나만 타박이다
뒤집어봐야 됫박인 줄 알고 좆 끝으로 밤송이 발라봐야지 좆 끝만 아프지 누구 좆도 안 아프다고 여길 가봐도 저길가봐도 찬밥덩어리인 줄 모르고 이리 기웃 저리 기웃 잔소리는 오만가지 지 잘난 줄만 알고 남 잘난 줄은 모르는 기둥에 고무줄로 매단 빗마냥 이리 튕기고 저리 튕기고 그래도제자리로 잘도 돌아온다고 십년 객지 생활에 철드는가 싶더니 이건 그놈이 그놈이고 그년이 그년이라고 자식새끼 욕해봤자 당신 얼굴에 침 뱉기라 남한테 말도 못하고 산 넘어 가신 아버지
늙으면 병들어 죽는 게 아니란다 벽에 걸린 새끼 사진들여다보다가 외로워서 한밤에 벌벌 한기 느끼다가가는 거란다 가는 순간 귀가 열리는데, 이미 식은 몸뚱이는 저승길가자, 가자 하니 귓구멍에 그저 소쩍새 소리만 들렸을 거라는앞집 황소 아줌마 이불 덮지도 못하고 바짝 쪼그리고 갔다고 장의사 와서 팔다리 펼 때 욕봤을 거란다 고집 세지, 힘세지 이길 장사 없었는데 말다툼도 많이 했는데 정, 정 해도 미운 정이 더 깊다고 보고 싶은 마음 자락 끝에 개 밥그릇 발로차며 성질만 낸다
여자 둘이 사는 집에 술 취한 사내가 대문 밖 진순이와싸움이 붙었다 갈 길 잃었다고 너는 누구고 나는 누구냐고팔짱 끼고 서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데 진순이는 허연 이드러내고 상대가 누가 됐든 집만 지키면 된다고 멍멍 짖어댔다
먼 하늘이 아득해서 바지랑대 걸쳐놓은 빨랫줄도 팽팽해졌다 마른 꽃무늬 속옷이 몇날 며칠 이슬을 받았다 냈다 해도 걷어낼 사람 없는 시름시름 앓는 집 한 철 넘기는 일이 그늘을 당겼다 놓는 감나무처럼 버석거렸다 고추 따다가 어지럼증으로 고꾸라져 받침대에 팔을 찔렸다 우환이 도둑이라돈 잡아먹는 귀신이 문지방 비비며 들락거리고 식은 밥이저승 밥이라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창문 밖에 고추만붉다가, 붉다가 곪아터졌다 빳빳해진 속옷위에 잠자리 앉았다가 날아간다
내가 먼저 가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어 너 혼자 남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증이 일어나 나이 사실에 옆댕이서 젖만져줄 놈 하나 없는데 코골고 자는 모습 보면 안쓰럽기도하고 성질도 나고 내가 니 아비 먼저 보내놓고 사방의 온 병끌어모아 이 고생인데 안 봐도 비디오여 나 가고 나면 가슴쥐어짜고 살 텐데 내가 그 꼴을 저승 가서 어찌 보겠냐 아, 견우직녀도 매년 새 대가리 밟고 손모가지 붙잡는데 너도아무 놈 손모가지라도 끌고 와 그래야 내가 편히 눈감어 온몸이 종합병원인데 너는 어찌 어미 맘을 모르냐 뭣 모르고대가리 벗겨진 콩처럼 튈 궁리만 하고 앉아 있고 사는 게 별거 아니지만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하니 너도 대가리 그만 굴리고 나가서 한 놈만 잡아봐 그러면 어찌 아냐 저승 간 니 아비 새 대가리 밟고 와서 손잡고 예식장 들어가줄지!
돈 많아도 다 헛지랄이여, 돈 간수보다 자식 간수가 우선이지, 그리 돈, 돈, 돈 하더니, 그놈의 돈 때문에 새끼 잃고 며느리가 재산 몽땅 가지고 날랐잖어, 개같이 벌어정승같이쓴다는 말이 오디 그게 말이여 똥이여? 새끼 교통사고로 보내놓고도 장례식장 비용 땜시롱 실랑이하더니 죄받은겨, 그리 촐싹대며 이 집 저 집 일숫돈 받으러 다니고 안 주면 땅문서라도 들고 나오는 사람이었잖어. 지금이 일제시대인 줄아나, 왜 강제로 뺏어가느냐고 그러니 며느리가 게 눈 감추듯이 돈 들고 날지 않고 배기겄어, 돈이 무신 소용이여, 잘벌어 잘 쓰야지, 나는 돈도 없지만 있어도 죽을 때까지 안 줄겨, 나 죽으면 그 돈으로 장례나 치러, 속 끓이지 말고, 정신똑바로 차리고 살어, 손바닥 깔짝 뒤집으면 이승과 저승이바뀌는겨, 암만, 다 그런겨
흔들어 깨운 어머니가 내가 그리 밉냐고 그래서 그리 소리 지르느냐고 그렇게 미우면 나가 살라고 애먼 소리로 새벽 그늘을 뒤집었다 내가 밉다는 할머니와 자기를 미워한다고 생각하는 어머니
통 중에서 가장 깊고 속 터지는 통은 울화통인데, 그 속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 것이 아궁이에 불붙은 장작만 하겠느냐만, 어린 새끼 바닷물 속에 넣고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밥알이 넘어가는 어미의 통은 환장통이다 이유도 모르고 바닷속에서 뒤집어졌을 새끼 속은 어두컴컴 보이지 않는데, 아비의 속울음은 부글부글 애끓는 눈물통이다열두살 난 아들 수멍통에 잃어버리고, 한 시절 눈물 위 손바닥으로 노 저어오다 녹내장으로 눈먼 앵두나무집 할매 속은 썩어 문드러진 염통인데, 그 쪼그라든 통이 깔짝깔짝 뛸때마다 살아 있는 자신의 가슴을 퉁퉁 쳐댔단다살아 있는 그 끝까지 수없이 뛰는 가슴을 치며 살아갈 우리의 눈물통은 마를 새 없는데, 어찌 모를까 언젠가 터질 울화! 눈먼 앵두나무집 할매 눈에도 보이는데 눈멀지 않은눈은 붉은 눈물통으로 바라보는데
‘백년 묵은 상수리나무 옆 언덕바지까지 늘어진 지붕이 올씨년스레 똥바가지 뒤집어쓴 수국이 토악질해대던 변소
수수꽃다리 향기 코끝 간질간질하게 재채기 나왔던 변소에서 바지춤을 여미곤 했다 할아버지 돌아가신 뒤 상수리나무 옆 변소는 사라지고 상수리나무도 베어졌다 굵은 밑동은나이테를 올리며 덩그러니 별을 바라보았다
삼대가 걸쳐 살았던 향나무 꺾인 집을 나오면서 자꾸 뒤돌아본 건 감나무에 걸쳐는 바랜 장대 때문이다 마른 호박줄기 엉켜 기지개 한번 켜보지 못하고 주저앉은 비닐하우스늙은 호박이 땅에 닿을 듯 말 듯 바람 줄기 쥐락펴락하는 손힘이 빠진 지 오래다고사리 장마에 고개 내밀다 꺾인 고사리밭은 조릿대가 살얼음빛으로 서걱이고 벙어리 뻐꾸기가 피 토했던 상수리나무의 그늘이 옷깃을 잡는데 사람 숨소리에 기둥도 반듯하게선다는 집, 그러나 처마 처진 지 오래된 아버지의 아버지의아버지의 집 남의 손에 넘기고 돌아오던 날, 내 눈물을 낡은양파 망에 담은 장대가 하늘 높아 더 추운 겨울을 푹, 찌르고있다 까치가 파먹다 찢어진 홍시가 그대로 얼어버린 집에서
비 내린 뒤끝, 서로 먼 산만 바라보다가 눈앞 흩날리는 꽃잎을 바라보다가 류머티즘 관절염으로 구부러진 손가락을꼭 잡은 아들 손으로 눈물을 훔치는 어머니
바라보다가 고라니 까만 눈으로 바라보다가 잡으려 하니그 자리에 별이 스러졌다
툇마루 옹이 빠진 구멍 속 거미의 눈으로 바라보는 내 안의 사랑은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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