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 살이 됐을 때쯤 나는 보라색 자전거를 타고 서쪽으로 열블록 정도 떨어져 있는 포타와토미 공원에 가곤 했다. 오크나무가줄지어 서 있고, 아무리 팔을 뻗어도 몸통둘레의 반이 채 되지 않을 정도로 커다란 단풍나무가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늙고 병든 사자, 목청껏 우는 공작 여섯 마리, 전시된 바퀴벌레들(정말이다), 콧김을 뿜어내는 당나귀가 있는 작은 동물원이 있었다.
그포타와토미 공원의 반딧불이와 벌들과 거대한 오크나무는 나를 알에서 깨어나게 해주었다. 세상의 밀물과 썰물로, 재잘거림과윙윙거리는 소리와 쉭쉭거리는 소리는 매일의 음악으로 나를 이끌었다. 호기심을 자극하며 내가 모든 것의 한 부분이라는 경이로운 감정을 느끼게 했다. 나의 침실 창문 밑 화단에 핀 국화는 여름을 느끼는 감각을 일깨웠다. 우리집 단풍나무위홍관조의 화려한깃털 색은 내게 가장 완벽한 빨강이었다. 옆집 칼과 이본 윌슨의집 도로 옆, 사과나무 위에 앉은 비둘기의 노래는 처음 듣자마자왠지 모를 익숙함과 안정감을 안겨주었다.
어떤 식으로 자연을 경험했든, 그 마법은 그냥 사라져버리거나 조용히 떠나가 버리지 않는다. 삶의 여러 단계를 밟아가는 동안우리는 자연에 관한 경험을 다른 것으로 대체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경험을 더하며 쌓아나갈 것이다. 당신이 도시에서 혹은시골에서 삶을 꾸리든 관계없이, 자연은 당신 곁에 있다. 정신적지주가 되어주고, 영감을 주고, 당신이 바라던 것보다 더 나은 존재가 되게 해줄 것이다.
마치 그가 내게 자주 말해주던 농부의 이야기와 비슷하다. 순종들이 출전하는 경주 대회에 밭을 가는 늙은 말을 매년 한 주도빠짐없이 출전시키던 농부가 있었다. 어느 날 농부의 친구는 왜 이기지도 못할 경주에 매번 출전료를 내느냐고 물으며 만류했다. "자네 말이 맞네" 농부는 손으로 턱을 문지르며 이야기했다. "내 말은 이기지 못하겠지. 하지만 친구들과 함께하는 건 분명 좋아할 거야."
무엇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집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에 대해전하고 싶다. 단순히 당신이 자란 곳, 잘 깎인 잔디밭과 시멘트 욕조가 있는 교외의 복층 집이나 벽돌로 지은 아파트, 나무들이 길게늘어선 도시 중심의 하얀 집으로 돌아가는 것만이 아니다. 창고와녹색 트랙터, 보름달처럼 눈이 큰 소가 있는 낡은 농장으로 돌아가라는 것도 아니다. 소중한 우리의 집이란 지구의 경이로움과 맺는본능적인 동지애를 회복할 때 비로소 느낄 수 있는 소속감과 같다.
지나치게 바쁠 때(지금은 끔찍할 정도로 많은 날이 그렇지만), 우리는 그저 잠시 멈춰 서서 하늘을 볼 시간도 없이 쫓기듯 살아간다. 비 냄새를 맡을 시간도, 서로를 격려하며 겨울 보금자리로 향하는거위들을 감상할 잠깐의 시간도 없이. 하지만 생각해봐야 한다. 자연의 지혜와 멀어지는 것은 우리의 주의를 분산시키는 것이 많기때문만이 아닐 수 있다. 우리가 배워온 사고방식 때문이기도 하다. 역사를 통틀어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에 대한 우리의 신념은 문화적 관점, 사회적 관습, 과학적 발견이 결합된 채, 세대를 타고 전해지며 형성되었다. 그러나 자연의 본성과 더불어 세상과 우리 사이의 관계에 대해 우리는 엄청나게 많은 부분을 그저 ‘원래 그런 것‘ 으로 받아들여 왔다.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음에도.
MIT의 시스템 과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 피터 센게는 자연과의 일체성을 잃는 것은 상호 의존을 인지하는 능력을 잃는 것과 같다고 짚어냈다. 우리 대부분이 잘 모르는 사실이다. 상호 의존을 받아들이면 무엇이 세상을 움직이게 하는가에관한 지식을 넘어, 무엇이 세상을 계속해서 움직이게 하는가에 대한 물음에 닿을 수 있다. 그리고 지금 과학이 우리에게 증명하듯, 그 답은 언제나 관계에 있다. 마치 균들이 숲의 토양에 양분을 주고, 그 질소를 양분 삼아 나무들이 싹을 틔우며 성장하고, 그 나무들이 우리가 들이마실 산소를 내뿜는 것처럼.
우리는 자연이다. 이 명백한 사실 위에 단단히 발을 딛고 자연은 ‘저기‘, 우리는 ‘여기‘에 있다는 오랜 환상을 걷어내면, 우리를 가장 괴롭게 했던끈질긴 문제들을 해결할 새로운 빛을 볼 수 있다. 더불어 우리가필요한 모든 것이 내면 가장 깊은 곳에 이미 존재한다는 확신을얻을 것이다.
여느 위대한 과학자들이 그랬듯, 아인슈타인은 그 어떤 문제도 그것이 처음 드러난 차원의 관점으로만 보아서는 풀 수 없다는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직 완전히 정의되지 않은, 창의적인공간인 숲을 통해 자신을 한 차원 높은 곳으로 끌어올리고자 했다. 숲속 수수한 나무들이 뿜어내는 거대한 신비로움을 마주하며아인슈타인은 그가 ‘진정한 예술과 과학의 원천‘이라고 여겼던 존재들과 만날 수 있었다. 제자들에게 조언할 때도 지식을 얻는 것과신비로움을 가까이 두는 것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반드시 신비로움을 택해야 한다고 했다.
끈 이론의 독보적인 권위자이자 지구에서 가장 총명한 사람이라고 불리는 현대 물리학자 에드워드 위튼은 신비로움이 인간존재의 가장 근본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제인 구달 또한 진실과 과학만으로는 삶을 설명할 수 없다고 여겼다. "세상에는 신비로움이 넘칩니다. 경외해야 할 것이 너무도 많습니다." 신비로움에 다시 곁을 내준다면, 우리는 그것이 자리 잡는 곳을 관찰하고 배우며 좀 더 지혜로워질 것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신비로움이 머무는 그곳에는 경이로움이 가득하다.
우리는 사실 오늘 길을 걸었지만, 땅을 밟지는 않았다. 신발에 있는 전자의 자성이 도로에 있는 전자를 밀어내므로, 조금 과장하면 우리는 사는 동안 한 번도 땅에 발을 딛지 않는 것이다. 그저공중에 떠 있는 상태처럼. 만약 우리가 지구에서 로켓을 타고 우주의 끝을 찾기 위한 여행을 시작한다면, 1000년 동안 한 시간에 약160킬로미터 속도로 날아간다 해도 우주의 끝에 단 1인치도 가까워질 수 없는 셈이다. 이런 오랜 이야기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자.
인식은 모든 것의 주고받음이라는 큰 틀에 자연이 속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확장된다. 주고받음이란 신비로운 밀물과 썰물이며, 철학자 닐 에번든이 ‘맞바꿈의 리듬Rhythm of Exchange‘이라 말했던 나타남과 사라짐이다. 하나가 말하면 다른 하나는 듣는다. 하나가 땅을 밟으면 다른 하나는 땅을 박차고 날아오른다. 한 부분이차오르면 다른 부분은 기운다. 하나가 죽으면 다른 하나가 태어난다.
그러므로 세상이란 흐르는 거대한 강과 같아 똑같은 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는 곳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관점으로 세상을 보기까지 왜 그렇게 힘든 시간을 거쳐야 했을까? 먼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제인 구달, 칼 세이건과 같은 사람들이 자신만의인식을 구축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로부터 영감을 얻으며매 순간 신비로움을 받아들일 때, 사회는 중요한 체계들을 벽장 안에 정리하는 데만 몰두해 있었다.
시간이 흐르며 분명 아이는 정원에 핀 꽃들 위에 앉은 나비를지켜보며 그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나비가 꽃의 꿀에 닿을 수 있는 입을 가진 유일한 곤충이라는 객관적 사실을.
카슨은 이렇게 말했다. "사실이 지식과 지혜를 품은 씨앗이라면, 감각을 통해 받아들이는 인상과 감정은 그 씨앗이 자라는 데꼭 필요한 기름진 토양과 같습니다."
그때의 나는 당신을 어머니의 작은 텃밭에 여섯줄짜리 완두콩 나무로 데려가 작은 삽으로 흙을 파낸 뒤, 작은 덩어리와 이리저리 얽힌 뿌리를 보여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또 과학 선생님이셨던 롱에네커 선생님의 가르침 덕에, 나는 당신에게 뿌리혹은 박테리아라는 또 다른 생명체의 산물이며, 그 박테리아 중 한 종류는흙에서 질소를 끌어내 저장할 수 있다는 것, 더 나아가 질소는 가장 훌륭한 비료라는 사실도 말해줄 수 있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