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자세히 보면, 엘크는 봄철에 흐르는 개울을 따라 멋진 카펫처럼 새로 돋은 풀들을 먹기 위해 그곳에 머물렀다. 개울은 그전해에 두툼하게 쌓였던 눈 덕분에 세차게 흐르고 있었다. 들판을덮었던 눈덩이 때문에 곰은 지난 몇 년보다도 더 오래 굴 안에서겨울잠을 자면서 더 많은 지방을 소모해야 했다. 시야를 더 넓히면, 엘크 떼를 쫓는 늑대 무리 위로 나는 까마귀 떼도 눈에 들어온다. 이 까마귀들은 늑대 무리가 먹이 사냥에 성공하면 자신들이 첫번째로 달려들어 남은 찌꺼기를 차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있다.

나는 상상해본다. 산의 눈이 녹아 약 1400킬로미터를 흘러 미주리강에 합류하고, 미시시피강을 거쳐 뉴올리언스에 도착해 남아메리카에서 오는 배를 띄우는 바다가 되며, 그 배에 실려 온 커피를 컵에 따르며 쌀쌀해지기 시작한 아침에 손을 덥히는 내 모습을.

소로페어에 몸담았던 석 달이 지나자, 나는 그의 말이 옳다는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공존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로지폴소나무도, 늑대도, 까마귀도, 엘크도, 곰도. 이 오지에서 보낸 시간은 삶의 궤도를 수정하는 발판이었다. 나는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과학으로 모든 것을 밝힐 수 있다는 무조건적인 믿음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확실함이라는 제한에서 벗어나, 변화하는 기반 위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이 현실이란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어떨까?
세상이 하나의 형태로 고정된 채 각각이 좁은 예측 범위 안에서움직인다는 고집을 버릴수록 얼마나 큰 안정이 찾아올지 점점 더뚜렷이 보인다. 훌륭한 과학자가 어제 오후에 찾은 답보다 오늘 아침에 찾을 새로운 질문들을 기대하듯, 우리도 편협하지 않은 삶에눈을 뜰 수 있다. 배움은 절대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기뻐하면서.

도교를 따르는 사람들이 믿었듯 한 존재의 자연스러운 삶이자 ‘드러냄’으로 번역되기도 하는 존재의 본성은 먹이사슬에서 그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존재의 삶을 억제할 수도 있다.

현재 생물학자부터 유전학자, 인류학자, 점점 더 많은 과학자가 이제부터라도 자연이나 인간 사회의 전반적인 건전성을 위해경쟁보다는 협력을 고려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버플랭크와 동시대 사람이면서, 1870년에서 1920년까지 미국에서 가장 유명했던 자연 작가이자 위대한 동식물 연구가인 존버로스는 생존에 대한 현실을 직시하게 해주면서도 조금 다른 견해를 내놓았다. "생명에게 도전이란 껍데기를 깨고 나오려는 병아리, 꽃을 피우려는 꽃봉오리, 땅을 뚫고 뻗어나가려 애쓰는 뿌리의투쟁일 뿐이다. 싸움이나 증오가 아니다."

객관성만이 진정한 길이라는 우리 자신의 생각에서 벗어난지도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오늘 밤, 별과 행성을 올려다보며 첫느낌은 이럴 것이다. 저 아름답게 반짝이는 빛들, 오리온자리와 북두칠성, 화성과 목성처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존재들은그들만의 세계에, 나는 나의 세계에 있다고 풍부한 지구의 생명을창조한 힘이 바로 그 별들과 행성의 질량, 궤도, 화학적 성분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을 내가 직접적으로 느끼고 받아들이기까지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삶을 조상들이 어느 정도 물려줬을 수 있다고 말하는 후성유전학 연구는 특히 흥미롭다. 이 신생 분야는 육체적 특징뿐 아니라 극심한 트라우마도 유전체로 전해져 새로운 세대에 특정한 습성이나 질병으로 다시 나타난다고 한다. 예를 들어,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은 코르티솔(외부의 스트레스와 같은 자극에 맞서분비되는 물질 옮긴이)이라는 호르몬 수치가 낮은 편이다. 이들의자손들에게도 전해지는 이 특성은 심각한 스트레스의 잠재적인위험 요소가 된다.

수많은 시인과 예술가가 오랜 시간 우리에게 전하려 했던 메시지도 이런 것이다. 삶이란 엉망진창이더라도 쾌활한 춤이라는사실을 아는 것이 치유다. 삶이란 혼자 추는 춤이 아니며 인간과,
인간이 아닌 다양한 파트너들이 모여 어지럽고 역동적으로 추는왈츠라는 사실을 말이다.

"이 얼마나 강인하고, 활력 넘치고, 의연한가…………! 한낱 겉면에 불과한 인간과 달리 평온한 존재 그 자체를 보여준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 문화가 지속되었던 이유는 매일 자연을접하며 균형감각을 배우고, ‘다른 것‘과 깊이 연결되는 경험을 받아들이며 살았기 때문이다. 이런 삶의 방식을 따르고 살았기에 자연의 거대한 그물을 파괴하지 않고, 생명의 축복을 변색시키지 않을 수 있었다. 그들은 자연을 바라보기만 해도 균형이 파괴된다면엄청난 손실이 뒤따를 것이며 편안한 삶과 안정적인 사회로부터멀어지게 된다는 신념을 키웠다.

또 이렇게 말했다. "이런 경험을 하면, 부정직하고 사소한 일이 가득한 인간 세상에 가지고 돌아갈 어떤 믿음, 작지만 강한 욕망이 생긴다. 자연의 무한한 단순함을 담고 태어난 듯, 순수하고아이 같은 믿음이다. 바람과 햇빛이 있는 열린 공간에서 각자의 생각이나 행동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삶에는 저마다 고유한 정의와아름다움이 있을 거라는 믿음이다."

하지만 살랑살랑 몸을 흔드는 베클러강, 초원의 포근한 색,
우아하게 헤엄치는 비버, 사향쥐 가족은 나를 부드럽게 달래어, 자아가 있던 자리에 경이로운 자연 속 관계들이 든든하게 뿌리내리게 해주었다. 언제나 변함없이 비록 잠시라도 자유로운 현실을 만나 우리는 삶의 가장자리로 나갈 수 있다. 그리고 평소 만나지 못한 거대한 무언가를 두 팔 벌려 끌어안을 수 있다.

우리가 지구에 사는 모든 생명체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거대한 교훈이다. 자연계에 다양한 생물이 존재할수록 생물들이 번성할 수 있다. 나아가 그 생태계는 변화를 마주했을 때 더 높은 회복력을 보여준다. 이 세계는 늘 변화한다. 매 계절 풍부하고 건강한 지구의 모습이 바로 다양성의 힘을끊임없이 보여주는 증거와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