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불안이 나의 목을 조른다. 그럴 때면 벽에 붙은마야콥스키의 사진이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죽는 수도 있어, 죽는 방법도 있어"라고 말한다. 나는 로르카를 힐끗 바라본다. "죽임을 당하는 방법도 있긴 있지"라고 그는 말하지만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그의 입술도 움직이지 않는다. 이윽고 나는 파베세를 생각한다. 산다는 이 일, 산다는 이수수께끼로 물불 안 가리고 괴로워했던 그를. 그러면 불안이 한번 더 거세게 나의 목을 조른다. 이러고 누워만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 당장 바람 부는 거리로 나가 정처 없이 쏘다녀야만 할 것 같은 느낌.
도덕은 자신의 가치체계의 정통성을 따라서 새로운 가치나 자신의 율에 어긋나는 가치에 대해서는 비정통성을 주장하고, 자신의 정당성을, 따라서 상대방의 부당성을 주장함으로써 자기 보존과 자기 수호의 속성을 굳히고, 그리하여상대적으로 도덕적이지 않은 모든 것에 강경하고 경직된 태도를 취한다. 기존의 도덕률은 마치 합법적 정통성 위에 세워진 전권을 부여받은 최고 권력구조와도 같아서, 그 권력에 위배되는 것을 반역으로 몰아붙인다.
그러나 한편으론, 도덕이란 게 물론 한 집단의 대다수가되도록 행복하게 되도록 탈없이 살아가기 위하여 하나의정신적 규범으로서 의지해야 할 바이긴 하지만 그 싹은 여전히 개인의식의 혹은 개인 양식의 계보 속에서 찾아내야하지 않을까? 결국 한 가치는 인간이 자신이 살아온 삶을정당하게 그리고 정직하게 재고 평가함으로써(평가하지 않는 한 가치는 태어날 수 없다) 생겨나는 것이며, 그것은 또한 자신이 살아온 것에 비추어 자신이 살아가야 할 바의 지표를 정하기 위하여 생겨나는 것이 아닐까? 가치는 선험적으로 혹은 만고불변으로 존재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우리의삶에 대한 평가 작업에 의해서 ‘태어나는‘ 것이다. 따라서가치는 우리의 평가 활동의 방향에 따라서 달라질 수도 있다. 그러므로 어떤 인간, 어떤 일에 기존 도덕률의 이름으로성급하게 유죄를 선고하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결국 무엇이 도덕적인가, 무엇이 비도덕적인가 하는 물음의 ‘무엇이는 삶이 정당하게 그리고 정직하게 요구하는 바에 따라 변할 수밖에 없다.
한 인간의 행동에 서로 모순된 판단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가치관의 차이일 것이다. 그리고 사람에 따라서는, 기존도덕률에 의해 유죄 선고된 새로운 가치관을 몸소 행복하게실현함으로써 그 가치관의 옳음을 보여주거나 혹은 기존 도덕률의 응징에 따라 스스로 철저하게 파멸함으로써 그 기존도덕률이 썩어 있음을 보여줄 수도 있으리라. (1982)
이윽고 대전의 불빛이 점점 더 가까이 점점 더 밝게 다가왔고, 마침내 우리는 대전역에 내렸고, 약간의 활기와 대화를 되찾았다. 하지만 곧장 외삼촌댁으로 가지 않고 그 추운날씨 속에서 우리는 짙은 안개에 휩싸여 아주 묽은 점액질처럼 흐리게 빛나는 시가지의 불빛을 헤치며 마치 두 마리의 눈먼 물고기처럼 오래도록 유유히 그러나 암담하게 헤엄쳐 돌아다녔다.
내 머릿속에서 어머니는 한없이 걸어가신다. 내게 등을돌린 채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서, 점점 작아지면서 멀어지는 그러나 결코 내 시야에서 아주 사라지지는 않는 그 뒷모습. 그리고 이 지구 한편을 고즈넉이 울리며 걷는 그 신발 끄는 소리. 그래서 가끔은 어머니가 지구 반대편으로 그렇게 끝없이 걸어가 마침내 지구를 한 바퀴 돌아 내게 등을돌렸던 바로 그 지점까지 되돌아와서 조용히 내 문을 두드리며 "얘야, 내가 돌아왔다" 하고 말씀하실 것 같은 환상에사로잡히기도 한다. 그럴 때의 내 어머니는 내게 뒷모습만보이며 한없이 걸어가는 게 아니라 내 앞에 가만히 되돌아와 선 채 정면으로 나를 향해 밝고 환하게 웃는 모습이다.
사람은, 가령 물에 빠져 죽을 때 같은 경우엔, 자신이 살아온 한평생을 한순간의 비전 속에 다 보게 된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던가 읽었던 적이 있다. 그런데 내가 체험한 바로는 사람은 가장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통해 자신의 지나간 삶을 아주 짧은 한순간에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지극히 선명한 영상으로 보게 되고, 그러고도 살아야 할 앞날에대한 어떤 본능적인 계획을 한순간의 청사진으로 보게 되는 것 같다. 물론 그 청사진은 오랜 혹은 짧은 시간 뒤에 또다시 변경될 수 있는 것이긴 하겠지만, 말하자면 가까운 사람의 죽음은 살아 있는 한 인간의 시각을 충격적으로 교정시켜줄 수도 있는 것이다. 나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두 달반이 되었고 그동안 그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해 밖에서는오히려 의식적으로 더 잘 웃고 더 잘 떠들면서도 혼자가 되기만 하면 멍청하니 슬픈 생각들의 진창에 푹 빠진 채 누워있기만 했고, 그러나 그 와중에도 모든 게 소리 없이 달라지기 시작했음을 이제 나는 느낀다.
어요그래, 또 한 해가 간다. 또한 해가 간다고 말하면서 누군가가 하품 섞어 눈물을다 또한 해가 간다고 말하면서 누군가가 숙면을 위한 한 잔의 술을 들고 잠자리에 눕는다. 그러나 누군가가 말하든 말하지 않는 또 한 해가 간다는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또 한 해가 간다. 1984년이 우리를떠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참으로 용감하다면 우리 편에서 먼저 1984년을 떠나야 할 것이다. 교수
그러나 떠난다는 것은 무엇인가? 떠난다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로, 자기 자신의 현실속으로 되돌아오기 위한 것이다. 끝과 시작처럼 떠난다는것과 되돌아온다는 것은 하나이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떠남으로써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그렇게 무수히 떠나고 무수히 되돌아오면서 많은 시간을, 그것도 대부분 괴로움과 불행의 시간을 바침으로써 우리가얻게 되는 것은 어쩌면, 행복이란 별도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불행이 없는 것이 행복이라는 조금은 쓴, 그러나 넉넉한인식뿐일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인간은 상처투성이의 삶을통해 상처 없는 삶을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하는 모순의 별아래 태어났는지도 모른다. 상처 없는 삶과 상처투성이의삶 꿈과 상처.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일상을 더욱 굳건하게받쳐주는 원리, 한 몸뚱이에 두 개의 얼굴이 달린 야누스의원리이다.
그리고 가장 짧은, 그러나 가장 아름다운 30세라는 시는 이렇다. (내가 이 시를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인용하는것은 ‘find‘라는 동사 때문이다. 물건처럼, 자신의 의지나행동을 표현하지 못한 채 상대방의 눈에 문득 뜨이기만을기다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듯한 이 동사를 구체적인 한 단어로 꼭 집어 옮겨놓기가 나로서는 힘들기 때문이다.)
그 배들이 그토록 아름다워 보였던 것은 ‘일상으로부터의떠남‘ ‘먼 곳으로의 여행‘을 늘 예비하고 있었기 때문인지도모른다. 그 부둣가에 서서, 가장 멀리로는 차츰 남빛을 때기 시작하는 하늘 꼭대기와 그 밑의 불그스름하게 물든 하늘 밑바닥과 바다, 그리고 수많은 배가 물살에 밀려 흔들리는 풍경을 바라보면서 이따금씩 말라르메의 바다의 미풍이라는 시를 속으로 읊조리기도 했다.
시골 마을에서 살던 어릴 적 나의 별명은 더펄개였다. 그시절 시골 아이들은 대개 위생 때문에 머리를 짧게 깎았지만나는 어깨 아래까지 머리를 기르고 다녔기 때문이다. 내가 살던 시골은 사람들의 성이 거의 같은 이른바 씨족사회로서 윗말, 아랫말, 건넛말로 이루어져 있었다. 내가 긴 머리칼을 출렁거리면서 친구를 찾아 혹은 심부름으로 윗말에서 아랫말로 아랫말에서 건넛말로 달려갈 때면 사람들은 머리칼이 더펄거리는 것을 보고 멀리서도 그게 나라는 것을알고 "저기 더펄개가 가는군" 하고 말했다.
태어나 성장하고 늙어가는 그 인생행로에서 사람은 자신의 고유한 이름 외에 새로운 호칭에 여러 번 부딪히게 된다. 자신의 고유한 이름이 아닌 새로운 호칭들은 어느 날 누군가에 의해 처음으로, 그야말로 느닷없이 날벼락처럼 가해진다. 그리고 그 순간 사람들은 자신의 위치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시 속에서나 현실 속에서나 나는 나 자신이 많이 받지 못했던 것에 앙심을 품고 있었던 사람이지만, 처음으로 선생님으로 불린(물론 그것은 단순한 사교적 호칭이었지만) 그순간 나는 나 자신이 그동안 나를 둘러싼 세계로부터 마땅히 받아야만 했었을 것들을 얼마만큼 받지 못했든 간에, 이제 무조건적으로 받는 시기는, 그리고 못 받았다고 앙앙 우는 시기는 끝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눈치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나 자신이 나를 둘러싼 세계에 무엇인가를 줄 만큼 성숙한 인간이 못 되었다는 사실에 내가 선생님으로 불렸다는 게 몹시도 거북스러웠다.
올겨울 나의 꿈은 드디어 가장 멀리 제주도까지 날아갔다. 유난히도 춥고 유난히도 몸이 아픈 이 겨울, 영하 20도를 향해 곤두박질치는 이 서울이라는 세상에서 볼 때, 아나운서의 말에 의하면 "10여 년 만의 강추위로 영하 4도(!)까ㅣ내려갔다"고 하는 제주도란 곳은 얼마나 따뜻한 나라냐! 내가 자꾸만 서울에서 멀리 떠나 사는 꿈을 꾸는 것은 혹시, 서울에서 잘살지 못하는 나의 무능력을 ‘전원으로 돌아가자‘라는 능동적 의지로 위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 하는, 슬며시 솟아오르는 의혹을 그러나 발뒤꿈치로 슬쩍 뭉개버린 채, 나는 여전히 눈물나게 따뜻한 나라 제주도의 꿈에 코를 처박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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