됐다. 그는 평화주의자의 관점에서 볼 때 개미들의 전투 장면이 불필요하다고 했다. 개미는 경쟁자인 흰개미와도 전쟁을 벌이지만 동족끼리도 싸운다고, 그것이 있는 그대로의자연의 모습이라고 아무리 항변해 봤자 소용없었다. 스타니슬라스는 내 의견을 일축하면서 어차피 서사에 조금도도움이 안 되는 장면들이라고 단정했다. 결국 전투 장면을 모두 빼야 했다. ‘살람보』에서 영감받아 그 장면들을 공들여 쓴 나로서는 가슴이 찢어지는 일이었다.
책은 1991년 3월에 공식 출간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당시 독특한 국제 정세 속에서 언론의 관심이 모두 아버지 조지 부시와 사담 후세인에게 쏠렸던 탓에, 대중은 피에르 살랭제와 에리크 로랑이 공저한 베스트셀러 『걸프전, 그 비밀문서』외 다른 책에는 관심이 없었다. ‘개미』출간을 불과며칠 앞둔 1991년 2월 28일에 1차 걸프전이 끝난 것은 내겐 천운이었다
독자들에게도 강력히 권하고 싶다. 지금 몸과 마음의 문제를 겪고 있다면 당장 글을 써보라고 글을 쓰는 순간 당신을 짓누르던 중압감이 사라지는 게 느껴질 것이다. 「빨리 두 번째 책을 쓰기 시작해. 그러지 않으면 사람들에게 잊힐 거야. 확 타오르고 꺼져 버리는 건 아무 의미가없어.」친구 렌의 조언을 나는 귀담아들었다.
요가가 탄생한 지혜의 나라, 영성의 의미를 깨닫게 해준인도라는 나라가 갑자기 달라 보였다. 타지마할에 도착해서도 가장 <낭만적인 유럽 도시들인베네치아와 프라하에서 느꼈던 것과 똑같은 불편함을 느꼈다.
여행에서 돌아오고 몇 달 후 조나탕이 태어났다. 부모가인도로 신혼여행을 다녀왔기 때문인지 아기는 침착성을 타고났다. 조나탕은 웬만한 일에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쿨한 아이로 자랐다. 가끔 아이를 보면 인도 현자의 환생이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든 아니든 엄마의 강한개성과 아빠의 호기심을 물려받은 아이는 세상일에 무한한관심을 보였다. 무엇보다 삶에의 열정을 지닌 아이였다. 부모가 자식에게 그보다 뭘 더 바라겠나.
프랑스의 생물학자 장바티스트 드라마르크는 루이 16세때 모든 식물종의 목록을 만들어 내놓으며 세상에 이름을알렸다. 그는 식물 표본에 대한 관찰을 통해 소위 <생물 변이설〉을 주창했다. 모든 좋은 자신이 속한 환경의 영향을받아 변화하며, 그런 적응 과정에서 획득한 형질은 다음 세대에 유전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암잘라그가 토마토 학교를 통해 보여 준 것이 바로 그 점이었다.
라마르크 이론의 열렬한 옹호자인 제라르의 영향을 받아나 역시 오랫동안 푸대접을 받아 온 그 영웅적 이론에 매료되었다. 특히 라마르크 철학이 내포한 중요한 정치적 함의를 발견했다. 우리는 누구나 노력을 통해 변화하고 진화할수 있으며, 후손 또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 반면 다윈의관점에서는 모든 것이 유전자 조합이라는 우연에 달려 있다. 과학계에 새로운 흐름으로 등장한 <후생 유전>은 라마르크가 주장한 생물 변이설의 다른 이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환경이 DNA를 변화시킨다.
나중에 나 역시 <신> 3부작을 통해 <라마르크 학과 철학을 설파했다. 그 작품의 밑바탕에는 제라르의 가르침이 깔려 있다. 외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끊임없이 변화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누구나 출생 배경과 무관하게 성공할 수 있다. 시련은 우리를 진화시킬 수도 있고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모든 것은 선택과 노력에 달렸다. 의식적으로 행동하고 외부 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변화를 시도한다면 얼마든지 제라르의 토마토처럼 더 많은 염분을 견딜 수 있을 것이다.
최면 상태에서도 사고는 여전히 작동 중이었던 것이다. 나는 내가 하는 최면이라는 경험을 관찰자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최면사가 내 <정신의 하드 디스크> 속 파일들에는 살짝 손을 대게 놔뒀지만 핵심 프로그램에는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가령 어릴 때 엄마가 벌레에 물리면 긁지 말라고 했던 말 같은 것. 따라서 최면사는 내 의지에 반해 어떤 행동도 강제할 수가 없었다. 나는 최면 상태에서도자유 의지를 상실하지 않았다
소설은 독자에게 머릿속에서 펼쳐지는 영화의 감독이 되라고 한다. 이 때문에 소설은 영화보다 훨씬 위력적이다. ‘영화가 관객에게 영화 속 이미지를 받아들이는 수동적인역할을 맡긴다면, 소설은 독자에게 스스로 장면을 만들어낼 것을 적극적인 역할을 할 것을 주문한다. 소설 독자는스스로 주인공을 캐스팅하고 카메라 숏의 스케일을 결정하고, 음악과 음향 효과를 만들고, 조명을 선택한다. <설명하기보다 보여 주는 이야기가 좋은 소설이다. 이를 위해 설명적인 대화는 최소화하고 상황만 독자에게 제시해 스스로 장면을 연출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사인받을 책을 내밀며 많은 독자가 이렇게 말했다. 「우리아이가 책이라면 질색인데, 이걸 읽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한마디 적어 주시겠어요?」 나는 고심하다 이렇게 적었다. <이 책은 절대 읽지 말것.>
솔직히 고백하자면, 『타나토노트』를 쓴 가장 큰 이유는내 존재의 마지막 날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였다. 〈좋아, 지금 내가 죽는 건 비극이 아니야, 이건 다른 세계로의 이행에 불과해〉, 이런 생각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있을까? 그러기 위해선 죽음을 끝이 아니라 <테라 인코그니타(미지의 세계)>에 도달하기 위한 하나의 단계로 봐야했다. 콜럼버스가 수평선 너머의 세계로 탐험을 떠나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듯이 등장인물들이 죽음을 전혀 <특별하지 않은〉 새로운 개척지로 바라보게 만들어야 했다.
우연이었는지 필연이었는지 모르지만 마침 그 일본인 편집자의 가정부가 한국 여성이었다. 그녀는 개미』 출간이무산된 이유를 듣고 집주인에게 자신이 한국어 번역본을얼마나 재밌게 읽었는지 얘기해 줬다. 일본인 출판사 대표는 그제야 번역이 뭔가 미심쩍다고 판단해 진상 파악에 나섰고, 결국 도카타는 자신이 랭보 시로 덧칠하는 바람에 줄거리가 뒤죽박죽된 것 같다고 실토했다.
나는 아프리카에서 르루 교수한테 들었던 말을 수시로머리에 떠올렸다. <판단하지 말고 이해하기 위해 애쓸 것일본에서는 내 책이 큰 호응을 받지 못했다. 무엇보다 나는일본을 다녀온 뒤에 한국이라는 나라를 전보다 더 많이 사랑하게 되었다.
우리가 돼지고기 맛을 좋아하는 이유는 조상들의 식인풍습이 유전자에 남아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콩키스타도르들을 따라 멕시코에 다녀온 한 스페인 수도사가 인육을 먹어 보니 돼지고기와 맛이 비슷하더라는 말을 했다는것을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난다.
부침을 거듭하면서 작가라는 직업이 단거리 경주가 아닌마라톤임을 깨닫게 되었다. <한 방> 터뜨리는 게 중요한 게아니라, 규칙적인 리듬을 유지하면서 지치지 않고 꾸준히쓰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내게는 끊임없는 자기 쇄신을통해 독자들에게 새로움을 선사할 의무가 있다. 그때부터 매년 10월 첫 번째 수요일에 새 책을 선보이기로 나 자신과 약속했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엄격한 글쓰기 규칙을 정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