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에게 여행은 독자를 직접 만날 소중한 기회다. 시간이 흐르면 그 독자들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가족을 이룬다. 그 가족 안에는 국경도 언어의 장벽도 존재하지 않는다.
문명에서 멀리 떨어진 바다에서 강하고 순수하며 자유로운 생명체가 나와 시선을 교환한다는 것은 하나의 마법이었다.
조금 뒤에야 돌고래들이 그렇게 가까이 다가온 이유를알 수 있었다. 물속으로 뛰어드는 순간 은빛 물고기 떼가돌진해 와 우리를 에워싸기 시작했다. 정어리 떼는 도망치기위해 우리를 이용하려 했던 것이다. 늑대 무리의 공격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는 양 떼처럼.
제니퍼가 슬쩍 내 옆에 와 앉더니 연주에 손을 보탰다. 네 개의 손이 연탄곡을 치듯 피아노 위를 활공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침묵의 대화를 나눴다. 그녀와 내가 공유한 경험이 소리를 통해 다시 하나가 되었다. 피코섬에서의 잊지 못할 경험은 나중에 소설 잠에서돌고래와 만나는 장면을 쓰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우리는 각자 자신만의 행성에서 자신만의 기준을 갖고살아간다. 우리 모두는 자신이 만든 영화의 주인공이며, 그 영화 속에서 자신은 맞고 남들은 틀렸다고 믿는다. 그 푸근한 인상의 노인이 했던 얘기 중에 뭐가 사실이고뭐가 거짓인지는 알 길이 없다. 판단하고 싶지 않다. 그저 이해하려 애쓸 뿐이다………그렇게 또 하나의 기상천외한 인물을 만났고 그 캐릭터를 핀으로 꽂아 수집함에 소중히 간직해 뒀다.
나는 이 만남에서 영감을 얻어 나중에 자폐증이 있는 천재 소녀가 공공 쓰레기 하치장에서 노숙인들을 만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 『카산드라의 거울』을 쓰게 된다. 노숙인들과의 대화를 통해 그동안 몰랐던 것을 알게 되었다. 거리의 사람들은 우리와 함께 살지만 전혀 다른 시간과 공간의 감각을 가진 집단이라는 사실을
글쓰기는 여러 면에서 무술과 비슷하다. 그런 점에서 내가 쓰는 소설은 <권법 소설>이라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글쓰기 무술에서 작가는 모든 형식에 통달해야 한다. 무엇보다 길이가 다른 세 가지 형식을 아무런 제약 없이쓸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줘야 한다.
이 우스갯소리가 먹히는 건, 현재 인류에게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빗댄 은유적인 이야기라는 걸 우리의 무의식이감지하기 때문이다. 차이점을 빌미로 서로 전쟁을 벌이다결국 후손들이 살 수 없을 만큼 뜨거워진 행성에서 마지막을 맞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모두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중 내가 각별한 애착을 느끼는 「수의 신비」는 좁은 사고 체계에 갇힌 한 문명을 다룬 이야기다. 그 문명에 속한사람들은 수에 관한 지식으로 평가받고 그것으로 사회적지위가 결정된다. 특정 숫자까지만 셀 줄 알고 그 이상은미지의 세계로 여긴다는 점에서 그들은 어린아이와 크게다르지 않다. 가장 큰 숫자를 셀 줄 아는 사제 겸 정치인들이 백성들을 지배한다.
‘나는 글로 묘사함으로써 그 세계의 존재 가능성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미래가 우리에게 도래하지 않을 것 같은가? 절대 그렇지 않다. 구습을 버릴 것을 종용하는 고통스러운 위기를이 찾아오기도 하겠지만 <해피 엔딩>은 우리에게 도래할수 있는 미래라고 나는 믿는다. 그건 실현 가능한 미래다.
나는 기원전 4000년, 바깥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모르고 수렵과 채집을 하면서 움집에 사는 1천명의 사람을 데리고 게임을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 기원후 2500년에도달하자 1천 명에 불과하던 작은 부족은 수천만 명의 인구를 보유한 국가로 변해 있었다. 가까운 곳에서 생명체가살 수 있는 대안 행성을 찾기 위해 우주 정복 프로그램을추진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 게임은 선택의 연속이었다. 선사 시대에 무심코 한 사소한 선택이 몇천 년 뒤 어마어마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일명 나비 효과, 기원전 4000년에 조그만 원시 부족이 내린결정이 현대 사회의 운명을 뒤바꿔 놓을 수도 있었다.
게임에 몰두하다 보니 나무』에 실린 단편 「어린 신들의학교의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보고 싶어졌다. 그 단편의 주인공인 신 수습생들은 학교에 가서 인간을 관리하는 법을배운다. 배움이 일정 단계에 도달하면 같은 행성 위에서 각기 문명을 만들어 경쟁을 펼치게 되는데, 가용자원을 총동원해 최고의 문명을 수립 발전시키는 자가 승자가 된다. 나는 그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확장해 타나토노트』와 『천사들의 제국』의 연장선에 있는 장편소설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이해하려고 노력하되 판단하지는 않는다. 이해를 바탕으로 복잡하고 정교한 시계 장치, 다시 말해 현실을 허구의이야기 속에서 재현해 낸다. 그게 내가 소설을 쓰는 방식이다.
생식 본능을 불러일으키는 쾌락의 호르몬들(만약 그런호르몬이 몸에서 분비되지 않았으면 인간은 반대 성을 찾아욕구를 충족시키려고 하지 않았겠지). 인간은 그렇다 치자. 그런데 그 무수하고 다양한 생명체가 존재하는 이유는 대체 뭘까? 셀 수 없이 많은 식물과 동물은 왜 존재하는 걸까? 생물다양성은 왜 필요할까? 이 세상에는 크기와 생김새가 제각각인 개미가 1만 2천 종류나되는데, 과연 그게 다 필요할까?
바로 조절 시스템이 필요한 이유다. 포식자가 존재하는이유다. 모든 종에게는 그것을 먹이로 삼으려는 종이 있다. 인간은 어떠한가? 대형 포식자를 모조리 정복한 인간은? 인간을 위협할 포식자가 과연 존재할까? 아이러니하게도박테리아나 바이러스 같은 미세한 생물이 그 주인공이다. 게다가 인간은 자기 파괴 본능을 지닌 존재다. 인간이라는좋은 동족을 파괴하려는 본능, 그 천성을 통해 자기 조절을달성한다. 도덕적인 관점에서 보면 당연히 옳지 않지만 이는 지구라는 행성 위에 존재하는 인간이라는 종에 행해진선택의 결과다
독자에게 한발 물러나 세계를 바라볼 기회를 준 것이 그책의 성공 요인 중 하나라고 감히 생각한다. 책을 읽으면서. 독자는 주어진 운명을 감내하는 필멸의 존재인 인간>이지닌 좁은 시각에서 벗어나 거시적인 시공간에서 보다 큰주제들을 고민하고, 그에 따라 우리가 가진 행동과 선택의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어떤 시스템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시스템 밖으로 나오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수학자 쿠르트 괴델의 이런 관점이 참 마음에 든다. 내가 사는 프랑스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나는 밖으로나가 러시아와 한국, 코트디부아르, 미국 등지를 여행했다. 인간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비인간의 관점을 택했다. 신또한 이런 관점의 일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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