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은 『사막의 고독』은 숨겨진 뜻이나 비밀의 메시지를 담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 책은 세상에서 가장 멋진 장소 가운데 하나인 아치스에서 보낸 길고 달콤했던 시절에 대한 평범하고 단순한 서술일 뿐이다. 이 책이 단순한 외형, 사물의 표면만을 다룰 뿐, 존재의 진정한 실체를 형성하고 있는 통일된 관계의 본질을 밝혀내지 못한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런 사람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나는 표면과 외형에 만족한다는 것이다. 나는 ‘근저에 숨어 있는 실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그런 것을 접한 경험도 없다.

나는 무엇보다도 정확성을 위해 노력했다. 단순한 사실에 일종의 시(詩), 심지어는 진실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사막은 바다만큼이나 깊고 복잡하고 다양하며 광활한 세계다. 대양과 같은 세계다. 무한한 사실들 속에서, 언어는 단순한 사실을 포착하기 위해 강력하고도 느슨한 그물을 만든다. 만약 내가 향나무에대해 충분히 알고 있다면 한 권의 책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일반적인향나무가 아니라 아치스 내셔널 모뉴먼트의 오래된 입구 근처 벌거벗은 사암 바위틈에서 자라는 하나의 특별한 향나무 말이다. 그때내가 시도한 것은 조금 다른 것이었다. 어부가 그물로 바다를 끌어올리는 것처럼, 사막을 책에 담을 수는 없기에 나는 사막이 소재가아닌 매개체로서 등장하는 말의 세계를 만들어 보려고 했다. 그러니까 모방이 아니라 환기가 목표였다.

오늘 아침 나는 해가 뜨기 전에 잠에서 깼다. 나는 머리를 슬리핑백 밖으로 내밀고 성에가 낀 창문을 통해 안개에 덮인 뿌연 바깥 경치를 내다보았다. 난생처음 보는 신비스러운 풍경이었다.

태양은 아직 떠오르지 않았지만 곧 떠오르리라는 기미는 역력했다. 연보라색 구름들이 함대처럼 연녹색의 새벽하늘을 가로지르고있었다. 바람을 타고 흘러가는 구름장의 아랫부분은 불타는 황금색이었다. 남동쪽으로 32km 떨어진 곳에 시에라 라살의 봉우리들이우뚝우뚝 솟아 있었다. 해발 3,600m에서 3,900m에 이르는 이 봉우리들은 모두 눈으로 덮여 있었고, 아침햇살을 받아 장밋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차가운 공기는 건조하며 맑았다. 어젯밤 폭풍우의 잔해인 마지막 안개가 유령처럼 물러나면서 바람과 햇빛 앞에서 점점스러져 가고 있었다.

그곳에 서서 그 괴상하고 기이한 이국적인 바위와 구름과 하늘과공간의 장엄한 경관을 바라보노라니 우스꽝스러운 욕심과 소유욕이 나를 사로잡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 모든 것을 알고 소유하고 싶었다. 또한 한 남자가 한 아름다운 여인을 욕망하듯이 그 모든 경치를 깊고, 완벽하고, 친밀하게 포옹하고 싶었다. 정신 나간 소망일까?
어쩌면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나와 소유권을 다툴 사람이나 그 무엇도 없을 테니까 말이다.

하긴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세 마리의 갈까마귀들이 서로를 향해서 또 새벽을 향해서 깍깍거리며 밸런스드 록 근처, 하늘을 선회하고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그놈들도 나처럼 태양이 다시 돌아온 것을 기뻐하고 있다고. 그들이 주고받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느 먼 행성에 살고 있는 인간 비슷한 존재와 의사소통을 하는 것보다는 이 지구에 사는 새들과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더 먼저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갈까마귀들은 황금빛 하늘을 배경으로 검푸른 날개를 퍼덕거리면서 목쉰 소리로 울고 있다.
어깨 너머로 지직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베이컨이 튀겨지는 냄새가난다.

향나무가 타는 냄새보다 더 향기로운 냄새가 이 세상에 또 있을까. 단테의 천국에서 나는 냄새도 이보다 더 향기롭지는 못할 것 같다. 비 온 후의 산쑥 향기 같은 향나무 연기 냄새를 한 모금 깊이 들이마시니 마술적인 카타르시스 효과가 난다. 마치 음악을 듣는 것처럽, 미국 서부의 때 묻지 않은 낯선 풍경을 감상하는 것처럼. 아무쪼록 이 불이 오래 타기를 빌어 본다.

손전등을 사용하면 또 다른 불리한 점이 있다. 많은 다른 기계장치들처럼 그것은 인간을 주위의 세계와 격리시키는 경향이 있다. 손전등을 켜면 내 눈은 그 빛에 적응되어 그것이 내 앞에 만드는 조그만 빛의 연못만을 보게 된다. 그리하여 나는 주위와 격리된다. 손전등을 주머니 속에 넣으면 나는 내가 걷고 있는 주위 환경의 일부로남는다. 내 시각은 제한되지만 분명한 경계선을 갖지 않는다.

나는 기다린다. 이제 밤이 다시 돌아오고 장엄한 정적이 나를 포옹한다. 별이 다시 보이고 별빛의 세계가 다시 돌아온다. 나는 가장 가까이 있는 인간과 32km 이상 떨어져 있다. 그러나 나는 외로움 대신사랑스러움을 느낀다. 사랑스러움과 조용한 환희 같은 것을 느낀다.

사월의 아침은 청명하고, 맑고, 평온하다. 오후가 되어서야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깔때기 모양의 회오리바람이 빙글빙글 돌면서 먼지와 모래를 불어 올린다. 그런 다음 본격적으로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사막에 미친 사람의 고함소리가 일어나고, 하늘과 태양이 먼지와 모래가 섞인 노란 구름 뒤로 사라져 버린다. 새들도 바람에 날리고 작년에 떨어진 오크나무 잎새들, 꽃가루, 메뚜기의 시체, 향나무 껍데기도 바람에 날린다.

오후에 고약한 바람이 불 것임을 알기 때문에 오전은 더 달콤하다. 나는 아침 허드렛일을 시작하기 전에 뜨거운 커피를 한 컵 손에들고 맨발로 맨땅을 디딘 채 문턱에 앉아서 해돋이를 바라보곤 한다. 공기는 아직 차지만 트레일러 안의 부탄 히터 덕분에 내 등은 따뜻하고, 떠오르는 태양이 내 앞가슴도 덥혀 준다. 또 커피는 내 내장까지 덥혀 준다. 이때가 하루의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다. 그밖에도아름다운 시간은 많기 때문에 단언할 수 없지만

계절에 따라 아름다운 시간도 달라진다. 한여름에 가장 감미로운시간은 오후의 끔찍한 열기가 사그라진 다음인 해가 지는 시간에 시작된다. 그러나 4월인 지금은 그 반대다. 해돋이와 함께 감미로운 시간이 시작되는 것이다. 겨울이면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이맘때쯤 돌아오는 새들도 나의 생각에 동의하는 것 같다. 어치들이 이 나무에서저 나무로 떼지어 날아다니면서 조잘거린다. 몇 마리의 커다란 갈까마귀가 하늘을 선회하며 꺼억꺼억 울어 댄다. 놈들은 가끔 그 큰 날개를 퍼덕거리며 생쥐를 찾는다. 가끔 절벽 위 어디선가에서 굴뚝새가 또렷한 목소리로 울어 댄다. 플루트의 저음 같은 그 울음소리는아마 새로 마련한 둥지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소리일 것이다. 역시보이지는 않지만 어디선가 산비둘기의 처량한 울음소리도 들린다.
그 울음소리는 잃어버린 짝을 찾으려는 간절한 부름인 것 같다.

내가 이 같은 인간중심의 논리를 펴는 것이 타당한 일일까? 어쩌면 타당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인간이 갖는 중요한 요소를 내 주위의 뱀이나 새들에게 부여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나에게 이로운 일을 하는 것은 순전히 그들의 이기적인 이유 때문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하지만 인간과 인간이 기르는 개 이외의 다른 동물들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고 단순한 합리주의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모슬렘이 여자에게는 영혼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잘못된 생각이다. 인간이 길들이지 않은 다른 많은 동물들도 우리가 모르는 정서를 갖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코요테가 달을 보고 울부짖는 것은무슨 이유 때문이겠는가? 우리에게 어떤 말을 하려는 듯한 돌고래의 행동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내 눈을 향해 곧장 달려올 때그 두 마리 인디고이 품었던 감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때로는 속으로 절반쯤 그것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면서도 우리는 모든 인간은 형제라고 말하기를 좋아한다. 그 말은 맞는 말일 것이다. 그러면 단세포동물이 진화해서 인간이 되었다는 말은 어떻게생각해야 할까? 그 말 역시 아마 맞는 말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말을 듣는 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고통스럽고 괴로울지 모르지만, 우리는 ‘모든 지구상의 생물은 일가친척‘이라는 소식을 퍼뜨려야 한다.

메이데이(mayday, 5월 1일 노동절)다.
금빛 줄무늬를 드리운 진홍색 아침햇살이 밸런스드 록과 아치들과 구멍 뚫린 바위들 너머 그리고 콜로라도의 그랜드 메사 너머에서 빛났다. 새벽 바람이 시에라 라살 봉우리들의 남은 눈을 녹이고있다. 모아브 일대에서 가장 큰 산인 투쿠니키바츠(Tukuhnikivats)도이 바람이 멎지 않는다면, 곧 그 화강암 몸체를 드러내게 될 것이다.
30km쯤 떨어진 곳에서 바람에 날리는 눈이 푸른 스카프처럼 보인다. 이런 날씨에 해발 3,900m가 넘는다는 그곳에 가 있기를 원하는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절벽장미는 아름다울 뿐 아니라 실용적인 식물이다. 이 무렵에는꽃 때문에 숨겨져 있지만, 그 잎새들은 작고 단단하며 수액으로 덮여 있어 혀에 닿으면 쓰다(그래서 키니네나무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이 잎새들은 사슴의 먹이로 인기가 높다. 다른 먹을 만한 것이별로 없기 때문이다(그래서 사슴덤불이란 이름도 갖게 되었다), 인디언들은 옛날에 이 나무의 껍질로 샌들이나 매트, 밧줄을 만들었으며 호인디언의 치료사들은 오늘날에도 이 나무의 잎새를 이겨서 최토제(구토를 일으키는 약)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유카는 그 무시무시한 방어 수단에도 불구하고, 아니면 그 방어수단 때문에 어디에서나 특이해 보이고 또 아름답다. 이 식물은 뉴멕시코 남부의 고원 초지, 그랜드캐니언의 가장자리와 내부, 이곳아치스 공원 일대에 분포하고 있고 유타주의 붉은 모래 지대에서도듬성듬성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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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해안도로는 깨끗하게 잘 포장되어 있었으며 왼쪽으로새파란 바다와 제주 본섬의 산방산과 한라산까지 보여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탁 트인 바다 풍경을 바라보고 걷는다면 킥보드까지도 필요 없고, 개미가 기어가는 속도로 걸어다녀도 하나도 답답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 여름 더위가 채가시지 않은 9월의 뜨거운 뙤약볕이 오른쪽 귀와 어깨에내리꽂혀도 시원한 바닷바람이 불어 청량하게만 느껴졌다.

상주 작가들의 자기소개가 모두 끝난 후, 제주문화재단 이사장님과 팀장님, 스태프분들의 환영 인사가 이어졌다. 이들 사이에서 3개월간 살게 되었다는 사실에 마치 나역시 대단한 예술가가 된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뿌듯한 마음을 한가득 품은 채로 방으로 돌아왔다. (나답지 않게) 청소기로 바닥을 한번 쓴 뒤, 한없이 나답게) 침대에 누웠다. 15킬로그램의 짐을 끌고 서울의 집에서 김포공항, 제주공항을 거쳐 유람선을 타고 가파도까지 오는 여정이 만만치 않았는지 온몸이 무거웠다. 세수를 하고 자야 할 텐데 생각하는 순간, 절로 잠이 쏟아졌다. 오랜만에 꿈 없이잔 깊은 잠이었다.

도대체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하는두려움도 잠시, 나는 이내 다시 가파도의 파도 소리와 따뜻한 햇살이 주는 평화로움에 빠져들었다. 매일 밤 틀어놨던ASMR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생생하면서도 평온한 파도 소리가 나의 모든 감각기관을 파고들었다. 창문을활짝 여니 9월임에도 더운 바닷바람이 옆구리에 감돌았다.
나는 잠옷으로 입고 있던 민소매 티와 반바지만을 걸친 채레지던시 밖으로 나섰다.

‘해는 벌써 중천에 떠 있었고 지하에 지어진 레지던시건물에는 그늘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짧게 낮잠을자기로 마음먹었다. 자고 일어나 곧바로 나머지 원고를 고치리라 다짐하며.

가파도에 와서 나는 풍경 사진을 찍는 습관이 생겼다.
매일 아침 동이 트는 아침의 섬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서,
막 피기 시작한 코스모스 꽃밭과 파도의 장관이 너무 절경이라, 도저히 그 아름다움을 기록하지 않고서는 배길 수가없었기 때문이다. 서울에 있을 때의 내가 바깥 풍경에 전혀관심이 없고 언제나 핸드폰 화면만 들여다보고 사는 사람이었던 걸 떠올려보면 놀라운 변화였다.

친구들은 그럴 줄 알았다며 이미 호텔 주차장에 차를세워놓았으니 얼른 내려오라고 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반바지와 후드 집업을 챙겨 입었다. 무거웠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기분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친구들이 창문을 내린 채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있었다. 스무 살 때부터 봐왔던 내가 잘 아는 그 얼굴들이었다. 대책 없이 긍정적이면서도 언제나 나를 응원해주던친구들의 얼굴을 보며 나는 차에 탔다.

"어! 반딧불이다."
숏컷의 여성분이 유리잔을 든 채 옥상을 누비기 시작했다. 마치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라 괜히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가 곧 빛나는 벌레를 컵 속에 가두었다. 야광별처럼 희미하게 빛나는 반딧불이가 컵 속을 유유히 날아다니고 있는 게 보였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반딧불이의 모습이었다. 김연수 작가님도 아주 오랜만에 반딧불이를 본다며어릴 적에 심심치 않게 동네에서 볼 수 있는 벌레였는데 어느 순간 사라져버렸다고 했다. 나는 줄리아에게 반딧불이를 본 적이 있냐고 물었다. 줄리아는 뭐 그런 당연한 걸 묻냐는 듯한 목소리로 답했다.

김연수 작가님은 여느 때처럼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셨다. 줄리아의 옆에 앉아 있던 숏컷 여성분이 자신을 이슬기라고 소개하며 나의 나이를 여쭈어보셨고 나는 (88년생이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이슬기 작가님의 성함과 인상이뭔가 익숙했다. 줄리아와 불어로 유려하게 대화를 나누는이슬기 작가님을 보다가 나는 문뜩 떠올리고 말았다.

내가 묘사한 작품의 정확히 반대편 전시실에 위치한,
정갈하고 단정했던 작품이 바로 떠올랐다. 엄청난 결례를저지른 것을 깨달은 나는 거듭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슬기 작가님은 괜찮다고, 한꺼번에 네 명이나 전시를 해서 충분히 헷갈릴 수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큰 실수를 저질렀다는 생각에 수치심과 부끄러움이 뒤통수에 넘실댔다.
하는 수 없이(?) 나는 들고 온 제주맥주를 원샷했다. 이슬기작가님께서는 부끄러워하는 나를 배려해서인지 계속 말을걸어주셨다

가파도 사람들은 태풍이 오면 일제히 짐을 싸서 섬 밖으로 나간다. 배가 뜨지 않으면 관광객들이 오지 않고 어업도 할 수 없어 섬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주민들 중 상당수가 서귀포에 별장(?)을 두고 있어 태풍이 올때마다 그곳에 머무른다고 한다. 더불어 가파도의 필수 가전은 ‘노래방 기계‘라고 했다. 거의 모든 가구에 노래방 기계가 보급되어 있으며, 어업이 끝나고 휴농기가 되면 서로의 집에 모여 노래를 부르는 게 유일한 낙이란다. 코로나가오기 전에는 마을회관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윷놀이를 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가파도에 묵는 마지막 주, 나는 매일 산책을 했다.
며칠 만에 공기의 냄새가 바뀌어 있었다. 섬의 식생도바뀌었다. 모르는 꽃과 빛깔이 생겨났다. 억새가 흩날리는방향으로 바람이 불었다. 남쪽 섬이라 가을 겨울이 별로 춥지 않을 줄 알았는데, 바람이 제법 찼다. 오히려 서울보다더 추운 것 같기도 해서 신기했다.
많이 쌀쌀하지만 걷기에 좋은 온도였다. 섬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한마디도 안 하고 계속 길을 걸었다. 바다만보고 있어도, 사방을 바라보기만 해도 온갖 감정이 피어올랐다. 아쉽고도 후련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었다.

몇 번의 물이 더 마르고 또 차올라야 내가 다시 이곳에 올 수 있을까.
가파도에서의 생활이 나에게 자유와 휴식의 동의어가되어주지는 못했다. 그러나 세상 어딘가에 이런 형태의 삶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제 가파도를 떠나야 하지만, 때때로 숨이 막히게 힘든일을 마주할 때마다 소란하고도 고독한 이 공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일 것 같았다.
아주 오랫동안, 어쩌면 죽을 때까지 나는 이곳을 그리워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날, 그 밤, 여수 밤바다는 우리가 꿈꾼 풍경과는 사뭇 달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소설가라는 직업을 가졌음에, 또 함께 이런 이야기를 나눌 친구들이 곁에 있다는 사실에 오랜만에 감사했다.

그렇게 아련한 첫째 날 밤이 지나고, 나는 고소한 냄새를 맡으며 잠에서 깨어났다. 거실로 나가보니 조하나가 머리에 수건을 두른 채 부지런히 뭔가를 만들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조하나는 전날 형제상회에서 시켜 먹고 남은 밥과 문어, 삼겹살과 날치알을 소스로 제공된 참기름에볶아 그럴싸한 볶음밥을 만들어놓았다. 그것은 곡기를 끊은수도자마저도 돌아서게 만들 만큼 훌륭한 맛이었다(과장을조금 보태자면 여수에서 먹은 것들 중 가장 맛있었다). 먹다 남은재료로 이토록 훌륭한 음식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M과김종미, 나는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우며 역시나 전주 출신조하나의 요리 공력은 어디 가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이내 출출해진 우리는 바다김밥에서 사 온 김밥을 집어 먹기 시작했는데 그중 한 종류가 상상 이상으로 매웠다.
매운 것을 잘 먹지 못하는 우리지만 배고픔을 이겨내기 위해 타는 혀를 부여잡고 꾸역꾸역 김밥을 다 먹었다.
남해까지 가는 길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산을 둘러만들어진 구불구불한 도로에 숙취를 앓고 있던 우리는 멀미를 호소하며 연신 창문을 열었다 닫고는 했다.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지만, 이런찰나의 노력들이 모여 결국 우리 인생을 구성하게 되는 게 아닐까? 나는 지금이 순간의 반짝임이 곧 인생이라고 믿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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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 당일 광주 송정역에 내린 나는 까만 세단 옆에기대서 있는 윤주성을 단박에 알아보았다. 마지막으로 본게 윤주성의 결혼식 날이니(심지어 나는 결혼식 사회를 보기까지 했다) 족히 3년 만에 보는 것이었음에도 윤주성은 전혀달라지지 않았다. 평균보다 조금 작은 키에 구부정한 자세,
눈보다 턱이 먼저 마중 나오는, 내가 아는 윤주성의 모습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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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삶이 이토록 달라졌다는 사실이 새삼 묘하게느껴졌다. 한때 우리의 삶은 같다고 봐도 좋을 만큼 완벽히 겹쳐 있었으니까.

겉보기에 윤주성은 멀쩡해 보였다. 언제나처럼 걸걸한목소리로 자주 웃었고, 쾌활하게 학교를 오갔으며, 때문에크게 낙담한 것 같지 않았으나 나는 윤주성이 매우 절망해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이 낙원일 리 없었다. 한 학기라는 시간은 이상의 공간이라고 여겼던 ‘서울‘이 실은 내가 살던 현실을 그대로 옮겨놓은 곳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기에 충분했다. 대학 생활 역시 아름답지 않았다. 당시 부쩍 어려워진 가정 형편 탓에 나는 새벽 5시에 일어나 호텔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곧바로 등교를 했으며, 수업이 끝나면 분당이나 평촌, 강남의 아파트단지에 과외를 하러갔다. 유럽산 그릇이 장식되어 있고 좋은 향기가 나는 과외 학생의집에서 나와 쿰쿰한 냄새가 나고 벽지가 울어 있는 나의반지하 방에 도착하면 밤늦은 시간이었다. 지면보다 낮은곳에 위치한 반지하 창문을 열면 가로등 불빛이 내 방으로새어 들어왔다.

나는 부모님에게 알리지 않고 충동적으로 대학을 그만뒀다. 그리고 아빠가 등록금 내라고 힘들게 마련해주신돈을 몰래 빼돌렸다. 알바에 과외를 하며번쌈짓돈을 모아 미국행 티켓을 샀다. 아무런 대책도 그럴듯한 계획도 없었다. 10대의 내가 서울이라는 낙원을 꿈꾸었듯, 스무 살의나는 뉴욕이라는 꿈의 도시를 그저 낙원이라고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순전히 윤주성만을 믿은 채 말이다.

트리는 푸른 색조의전구가 둘러져 있었으며 자본주의가 뭔지 제대로 보여주겠다는 듯 온갖 휘황찬란한 오너먼트가 달려 있었다. 우리는돈이 없어 아이스링크에는 들어가지 못하는 대신 인파를뚫고 들어가 살면서 본 가장 큰 트리 앞에서 캐논 ‘디지털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근처에 관광객이 너무 많아 내 얼굴이 어딨는지 분간하기도 힘든 사진이 찍혔다. 우리는 카메라 화면에 뜬 사진을 보며 깔깔대고 웃었다.

그렇게 산 넘고 물 건너 힘겹게 닿은 몬토크의 바닷가.
해는 이미 중천에 떠 있었고 눈은 한 톨도 내리지 않았다.
그저 메마른 목초지에 해변이 펼쳐져 있을 따름이었다. 그러나 아연실색할 만큼 파란 바다 앞에서, 세상의 온갖 빛이 다 비추고 있는 것 같은 선명한 빛깔 앞에서 스무 해를살며 앓아온 모든 시름이 다 씻겨 내려가는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이내 바다에서 불어오는 강풍에 귀가 떨어져 나갈 것같은 추위를 느꼈다.) 윤주성 역시 나와 마찬가지였는지 이전에 본 적 없던 환희에 찬 표정으로 ‘좋다‘는 말만 계속 반복했다.

하지만 행복했던 시절은 오래가지 않았다.
다음 해 한국의 정권이 교체되었고, 그 유명한 월스트리트발 세계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휩쓸었다. 층간 소음 때문에 자주 우리 방문을 두드렸던 컬럼비아대학 경제학과에 다니던 남자는 대공황에 맞먹을 만큼 세계경제가 휘청일 거라고 우리에게 말했다. 그의 말이 사실이었는지, 1달러당 950원이었던 환율이 1,400원까지 치솟았다. 결국, 나와 윤주성은 강제로 한국에 송환되었다.

연병장에 서서 인생이 다 끝난 것처럼 걸어가고 있는내게 손을 흔들어주던 윤주성의 표정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고개를 돌리면 언제고 그 자리에 있을 것만 같은 그장난기 어린 얼굴을 말이다

우리는 각자 인생 주기에 맞춰 몇 번 마주치고 가끔은 절망하기도 하며 살아왔다. 윤주성은 대학을 졸업한뒤 서울과 경기도, 대구 등지의 여러 병원에서 일했고, 우리는 1년에 한두 번씩 만나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만날 때마다 매번 예열도 없이 바로 전투 수다에 돌입해, 어제 만난 것 같은 사이란 게 어떤 것인지 몸소 증명하고는 했다.

떼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그저 글을 써서 돈을 벌 수만 있으면 되는 삶.
그것이 스무 살의 내가 간절히 꿈꾸던 삶이었다.
나는 지금 내가 꿈꿔왔던 미래에 당도해 있다는 것을,
윤주성의 말로 인해 새삼 깨닫게 되었다. 설명할 수 없는감정에 가슴이 울렁였다. 마치 오래전의 내가 오늘의 내게작고 반짝이는 돌멩이 하나를 던져놓은 그런 기분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윤주성은 발톱을 깎아줄 고양이들과중성화를 시킬 강아지들이 수십 마리라며 퇴근 시간이 오기 전에 병원에 들러야 한다고 부지런을 떨기 시작했다. 그리고 떡갈비 중 가장 무거운 한 덩이를 내게 떠안기듯 건네고는, 홀연히 차를 몰고 사라졌다. 나는 고소한 떡갈비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봉지를 쥔 채 강연장이 있는 건물로 향했다.

광주(光州)는 빛이 고이는 마을이라는 의미다.
빛이 고이는 마을이라. 그 말을 읽는 순간 처음으로 광주라는 도시가 윤주성과 썩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이터널 선샤인>을 좋아하는 사람, 때때로 마른 입술에 촉촉함을 더해주던 사람, 추억의 소중함을 알고 있는 사람. 그래서 잊고 있던 사소한 추억까지 간직해 반짝이는 모습 그대로 상대에게 전해주는 사람. 그러니까 언제나 밝은 빛을 뿜어내는 사람. 윤주성과 내가 보내온 그 찬란한 시절이 낯선도시에 찰방찰방 고여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생각을 멈추라니, 의사 선생님의 말이 마치 모르는 외국어처럼 들렸다. 세상에서 내가 가장 못 하는 게 있다면생각을 멈추는 일일 거다. 나는 침대에 그저 가만히 누워있기를 곧잘 하지만 움직이지 않는 동안에도 무언가를 계속 생각한다. 대개는 오늘 저녁, 내일, 모레, 먼 미래에 내가해야만 하는 일에 대해서, 하다못해 저녁 메뉴라도 고민한다. 그런 내게 생각을 멈추고 완벽하게 휴식하라는 것은 마치 주식투자로 만 원을 100억으로 만들라는 것만큼이나아득하고 말도 안 되는 과제처럼 느껴졌다.

제주도에서도 배를 타고 내려가야 하는, 인구 300명이채 넘지 않는 외딴섬. 오후 4시면 배가 끊기고, 24시간 편의점도 마땅한 배달 음식도 없고, 노래방도, 밤늦게 운영하는 술집도 없는 그곳만큼 휴식에 적절한 곳이 있을까?

이후 보름가량의 기다림 끝에 가파도 레지던시로부터소식이 날아들었다. 다음 계절부터 레지던시에 기거할 수있다는 희소식이었다. 그러나 두 달 뒤, 레지던시가 수리 및보수에 들어가 내년으로 입주 기간이 변경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아쉬웠지만 그럴 수도 있지 생각했다.

그러나 인생의 다른 모든 계획처럼 출간 일정도 내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늘어난 집필 기간과 출판사의 사정에의해 출간 일정은 한도 끝도 없이 밀려나버렸다.

못 가봤어, 못 가봤다고! 도대체 몇 번을 말해?" 나는 비실비실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창밖으로 펼쳐진 푸른 바다를 바라보았다. 바다는 거짓말처럼 고요하게 빛나고 있었고, 이 모든 풍경이 왠지 시트콤의 한 장면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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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을 들은 K는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나로서는....… 역술인이 영화 <트루먼 쇼>처럼 내 삶에 CCTV를달아놓은 게 아닌지 의심이 될 정도였다.
"너 앞으로도 계속 이대로 가면, 죽을 때까지 일만 하다 병나서 간다고 하신다! 쉬어! 좀 쉬라고!"
K는 더 자지러지게 웃기 시작했다.

어쩌면, 내게 있어 여행은 ‘휴식‘의 동의어나 유의어가아니라, 일상의 시름을 잊게 해주는 또 다른 자극이나 더큰 고통에 가까운 행위가 아닐까? 환부를 꿰뚫어 통증을잊게 하는 침구술처럼 일상 한중간을 꿰뚫어, 지리멸렬한일상도 실은 살 만한 것이라는 걸 체감하게 하는 과정일수도 써놓고 보니 (피학의 민족 한국인답게 몹시) 변태적인 발상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이 또한 나에게 가까운 진실인 것만 같다.

영국에서의 첫날 밤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최저가의 방을 예약한 우리는 무려 30명이 한방을 쓰는 도미토리에서 잤다. 완벽히 불협화음인 오케스트라의 협주를듣는 것처럼 전 세계 사람들의 다채로운 코골이를 들으며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그곳에서 나는 내가 잠귀가몹시 밝고 예민한 편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이쯤 되니 없던 괴물이라도 만들어 호수에 풀어놔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투어에 참가한 사람들이 너도나도 목이 길쭉한 괴물 모양의 기념품을사는데 Y와 나는 꿋꿋이 아무것도 사지 않은 채 빈손으로돌아왔다.

다음 날 아침, 화장실에 다녀온 이후 나의 통증은 씻은 듯이 나았다. 계산해보니 여행을 시작한 이후로 닷새 만에 처음으로 큰일을 본 것이었다. 평생 변비라는 것을 모르고 살았던 내가 유럽에 와서야 ‘가스가 찬다는 것‘의 감각을 처음으로 느끼게 되었다. 그 생경한 감각을 맹장염으로오인한 거였다. 나는 Y에게 달려가 나의 무사함을 알렸고,
Y는 한숨을 쉬며 그럴 줄 알았다고 했다. 나는 그 누구보다도 밝고 해사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여행자보험 안 들길 잘했다!?

나는 거의 졸도할 정도로 놀랐다. Y가 원체 성실하고꾸준한 사람이라는 것은, 그래서 남들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성취하고 살아왔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문자그대로 하루도 빠짐없이 공부를 해왔을 줄이야. 그것은 성실함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거의 초인에 다다른 그 경지에 나는 Y를 조금은 존경하게 되었다.

우리의 여행은 그 후로도 온갖 해프닝으로 점철되었다. 유럽 5개국을 오가는 힘든 여정에, 한 달 동안 200만원도 쓰지 않았을 정도로 극도로 절약한 고생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한 번도 싸우지 않았다. 다만 많이 웃었다. 후에 생각해보면 초저가의 예산에 맞춰 힘겹게 계획을 짜고 통역을 하며 나를 끌고 다닌 Y가 아무것도 하지않고 졸졸 따라다니는 나를 견뎌준 것이었다.

그렇게 말하는 Y의 말이 진실인지, 정말 열몇 살의 그때부터 내가 부커상에 노미네이트되는 작가가 될 것이라고 예견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오랜 시간 동안 나 자신조차 확신할 수 없었던 내 삶을, 궤적을 누군가 믿고 지켜봐주고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 고마웠다. 이제는 그 옛날 강남역 맥도날드 때처럼 서로 마주 보고 있지 않으니, 나는 마음껏 울 수 있었다

일ㄹ
송지현의 다른 다짐들처럼 공허하게 흩어져버릴 헛소린 줄 알았는데, 지현은 정말 그길로 강원도 동해로 가 살기 시작했다(그리고 그곳에서도 아주 적은 양의 소설을 쓰고 아주 많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냈다. 나는 꿔준 돈보다 턱없이싼 아파트를 받아 온 지현의 아버지와 자신의 창조적 역량을 과대평가한 송지현 덕분에 여름마다 동해로 휴가를 갈수 있었으며, 때문에 일생의 대부분을 경기도에서 살아온송지현을 강원의 딸로 여기게 되었다(하나 송지현은 약 2년여의 강원도 생활을 뒤로하고 빈손으로 다시 경기도의 집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ㄷ그러나 우리의 꽃가마 프로젝트는 시작부터 난관에부딪혔다. 봉천동, 상가 앞의 골목이 너무 좁아 초보 운전인 내가 운전하기에 몹시 까다로웠다. 나는 개미가 기어가는 속도로 차를 몰며 음식물 쓰레기통을 치지 않기 위해여러 번 심호흡을 했다. 그렇게 간신히 건물 앞에 당도해비상등을 켜고 차를 주차해놓았는데, 송지현에게서 문자가왔다. 소설 합평이 길어져 당초 예상했던 시간보다 30분정도 수업이 늦게 끝날 것 같다고. 나는 좁은 골목에 차가 지나갈 때마다 숨이 넘어갈 것 같은 공포를 느끼며 30분을세 시간처럼 버텼다.

자정이 훌쩍 넘은 시간이었고 내비게이션 속 예상 도착 시간은 점점 늦어지고 있었다. 잘 시간이 다가오자 눈이건조해 앞이 점점 흐려졌다. 이윽고 차는 대관령에 도달했고 순간 태어나서 본 것 중 가장 짙은 안개가 도로를 덮쳐왔다. 가시거리가 5미터도 채 되지 않았다. 나는 너무 당황해 소리를 질렀다.
"아무것도 안 보여! <디 아더스> 같아!"

그러고 나는 인파를 뚫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주차장을 향해 달렸다. 지역 행사의 특성상 조금이라도 타이밍을잘못 잡았다간 주차장에서 수십 분 동안 대기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30년 차 드라이버처럼 능숙하고 잽싸게 차를 뺀 후, 주차장 입구에 있으니얼른 나오라고 지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현은 백은선의차를 타면 되니 먼저 식당에 가 있으라고 다급하게 말했다. 나는 겨울이면 언제나 죽고 싶다고 난리를 치던 송지현이 이제는 목숨 귀중한 것을 알게 되었나 보다, 생각했다.

30분쯤 차를 달려 도착한 해안은 과연 절경이었고, 사람도 많지 않아 가만히 바다를 구경하기 좋았다. 해안가로내려가 파도를 만끽하던 우리는 놀랍게도 한 무리의 청둥오리가 바다에서 수영하는 것을 목격했다. 청둥오리의 정체를 두고 여러 의견이 오갔다. ‘오리는 원래 호수나 강에서식하는 것 아닌가?‘ ‘옆의 경포대에서 살던 오리가 세력다툼에 밀려 이곳까지 이주한 것이다.‘ ‘아니다, 철새인 청둥오리가 동남아로 떠나기 전 바다에 들러 잠시 쉬고 있는 것이다‘ 등등.

해가 져버린 시각, 온수풀 안에는 커플들만이 즐비했다. 나는 저마다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고고한 학처럼 핸드폰을 들어 홀로 셀카를 찍었다. 어떤 각도로 사진을 찍어도 애정 행각을 벌이는 커플들의 모습이 잡혔고, 갈수록 자괴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안되겠다 싶어 일행에게 얼른 수영장으로 올라오라고 문자를하던 도중, 그만 수영장에 핸드폰을 빠뜨리고 말았다.
그렇게, 2년 동안 내 삶의 모든 날아이폰SE2는 영면에 들었다

그조차 너무나 유행의 첨단 같은 느낌이라 우리는 강릉이 새로운 마포임이 분명하다는 나름의 결론을 내리게되었다(심지어 진짜 마포에도 지점이 있었다. 술자리는 갈수록무르익었고 시간은 밤 10시, 직원 한 분이 조심스럽게 우리에게 다가와 영업이 종료되었다고 말해주셨다. 우리는 쫓기듯 밖으로 나와 허망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강릉의 마포 부부는 몹시 초조한 표정이었다. 연신 핸드폰으로 주점을 검색했지만 일요일 밤, 문을 연 곳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번화가 주변을 배회하며 문연 주점을 찾아다녔다. 몇 번이고 영업시간 종료가 임박한가게를 마주하고 난 후, 나는 조용히 중얼댔다.
"강릉은 마포와 같다. 영업시간만 빼고…………"

그때 옆에 앉아 있던 백은선이 말했다.
"나도 너 우는 거 본 적 있는데?"
내 눈물의 트리거가 되어준 송재랑도 덧붙였다.
"오빠, 나랑 술 마실 때도 운 적 있어."
그렇게 하나씩 퍼즐을 맞춰보니,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심지어 태어나서 두 번째 보는 나디아조차 내가 술자리에서 우는 것을 본 적이 있다고 했다.
지금껏 누군가 주사가 있냐고 물어보면 나는 교양 있는 사람들의 현대 서울말로 차분히 말하곤 했다.
"졸려서 집에 가요. 귀소본능이 남다르거든요. 연어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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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권 정보요나스 메카스: 영화작가들과의 대화
2023년 5월 25일 초판 발행
저자: 요나스 메카스옮긴이: 이여로
편집: 임경용감수: 유운성디자인: 신신
인쇄 및 제본: 세걸음펴낸곳: 미디어버스
출판등록 2007년 2월 8일(제313-2007-36호)서울시 종로구 자하문로19길 25 0층mediabus@gmail.com이 책은 모든 저작권을 존중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이미지와 인용문을 복제할 때 법적 원칙인 "공정 사용"을준수했습니다. 사용된 텍스트와 이미지의 모든 출처는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실수를 발견하거나저작권 침해의 증거를 발견한 경우 출판사에 문의하시기바랍니다.

요나스 그레고리, 당신 심장을 계속 뛰게 하는 게 뭔가요?
그레고리 마르코풀로스: 오늘날 예술가는 혁명적이어야 합니다. 예술가는 아무것도 믿을 수 없죠. 혁명을 믿고자신의 예술을 믿습니다. 그는 신도 악마도 아니에요. 그는자신의 정령(Daemon)을 믿습니다.
요나스: 그레고리, 생계는 어떻게 유지하나요?
마르코풀로스: 오늘날, 살아가려면 무언가를 팔아야만하죠. 그리고 팔기 위해선, 상업적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나는 팔 것이 없어요. 난 뮤즈를 떠나게 만드는 상업주의를고발합니다. 예술에서 상업주의는 악마의 저주예요. 그리고상업주의는 오늘날의 사회를 이루는 불가결한 부분이죠.
요나스: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요?
마르코풀로스: 혁명이 일어날 정도는 되어야 우리 사회에서 부정당한 신성한 정신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영화작가이자 한 인간으로서 나는 이러한 이상에 전념합니다. 영화작가로서 난 영화의 유일한 희망이 실험영화에있다고 믿습니다. 링컨 센터에서 레네의 〈뮤리엘〉 같은영화를 보는 슬픈 경험을 하면 매우 우울해집니다. 〈새콤달콤〉은 더 끔찍합니다. 상업적인 영화에서 아방가르드가 계속 왜곡되는 것을 보는 일이요. 둘은 결코 합쳐질수 없습니다. 영원히 혁명적으로 남는 것이 아방가르드의 책무죠.

얼마 전부터 존 존스라는 이름의 영국인 방문객이 미국 예술계를 염탐하고 있다. 미술 갤러리들을 공부하고, 언더그라운드 영화를 보러 오고, 예술가들을 알아가고 있다. 심지어 올덴버그가 <클래스 올덴버그 그림을 걸다>라는 영화에서 공동작업을 하도록 설득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다른 화가, 조각가, 심지어 극작가들(가령 리로이 존스)까지도 조명과 카메라를 갖춘 작업실을 갖추고 영화로 올 준비를 하고 있기에, 나는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관심을 갖기시작했다. 다음은 <클래스 올덴버그 그림을 걸다>에 대한이야기를 나누며 얻은 메모들이다.
"이 영화는 나의 해프닝 미학을 영화로 번역하기 위한노력입니다. 대체로 나의 해프닝은 사건들보다 발생한 사물들에 더 관심이 있어요. (사실, 사물 숭배야말로 내가 해프닝을 이해하는 방식입니다.) 사물을 더 선명하게 드러내도록 시간은 늘어집니다. 반복, 슬로모션, 관객을 담는 고요한 상자 속에서 해프닝이 이루어지죠."
"해프닝에서 사용하기에는 불완전했던 효과가 클로즈업인데, 이는 사물을 탐구하는 극히 외설적인 기술입니다.
시카고에서 해프닝 작업 <흥겨움>을 선보이는 동안, 불투명한 영사기를 이용해, 실제 사물들의 거대한 클로즈업을 관객들 머리 위 스크린에 던졌어요. 일종의 구체영화인 거죠.
영화는 내게 친밀한 클로즈업을 활용할 수 있게 해줍니다.
내게는 이것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실체예요."

그날 늦은 저녁, 우리는 〈두 목소리>에 출연한 엘렉트라 로벨을 만났다. 그녀는 고작 스무살인데, 2주 전 이오네스코의 연극 〈의자들〉에서는 백십 살의 노인을 연기했다. 그녀는 영화에서 본 것과 매우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내가말했다. "당신 봤어요, 그런데 영화에서는 당신 자신으로1
있지 않았군요." 그녀가 웃으면서 답했다. "우리는 모두 천개의 얼굴을 가졌는 걸요. 문제라면 가장 필요로 하는 얼굴을 사람들이 적시에 찾지 못한다는 것이죠."

존 카바노프: 내게 영화적 과정은, 그것에 가치가 있는 경우는, 몸에서 일어나는 일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이고, 나는 그것을 자성적 에너지, 자성적 흐름에 가까워진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나는 이 미묘한 과정을 상세하게설명해내고 싶습니다. 왜냐면 그게 마음의 본질과 닮았다고 생각하니까요. 달리 말하면, 마음은 상징의 프로그램이아니라 (카바노프는 여기서 스탠 브래키지와 대립한다―JM) 에너지의 구조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내가 영화에서관심을 갖는 일은 마음을 직접적으로 상세히 설명하는 일이에요. 상징을 통해서 마음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요. 나는 마음을 아주 분명하게 형태 잡힌 에너지장의 패턴으로이해합니다. 알겠지만, 나는 카메라로 그것을 직접 표현해내고 싶어요.
질문: 바바라 루빈의 영화가 당신 영화보다 더 자유롭다고 생각해요?
카바노프: 하지만 그건… 보다시피, 정도의 문제예요.
마찬가지로 내 영화도 자유롭지만, 총체적으로 자유로워야한다는 것이 요지입니다.

<제이슨의 초상>에 대하여(제이슨이 아니라 요나스 메카스의 말이다) : 모든 영화제 광고에서 지속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모든 신문사가 취하고 있는 말에 신경이 거슬린다. <제이슨의 초상>이 "남성 매춘부와의 인터뷰"라는 것이다. 이런 광고문은 42번가에 있는 광고 회사들한테는 괜찮을지모르지만, 영화제 보도자료에서 사용된다면, 아주 복잡하고 심각한 영화-소설을 짜증날 정도로 단순화하는 꼴이 된다. 여기 영화 예술가가 그의 이 사례에서는 그녀의 일을아주 잘 그리고 완벽하게 해낸 또 다른 사례가 있다. 영화평론가들, 영화 리뷰어들, 그들은 그들의 일을 하고 있지않다. 그들의 직업에 눌러앉아 있는 게 전부다. 작품을 파고들고, 작품의 여러 차원과 의미를 파고들기보다, 그들은작품을 멍청한 클리셰로 환원한다. <제이슨의 초상>은 남성 매춘부에 관한 영화가 아니다. <제이슨의 초상>은 아주복잡한 인간 존재에 관한 영화로,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의인물만큼이나 복잡하다. 그를 클리셰로, 이것이나 저것으로 바꿔놓을 수 없다. 그는 여느 상황에 처한 사람이다. 그는 또한 아름다운 사람이고, 비극적인 사람이다. 그는 나쁘다. 그래, 하지만 그는 우리들 대다수보다 더욱 낫고 아름답다. 왜냐하면 그는 감히 자기 자신을 열어 보이기 때문이다. <제이슨의 초상>은 이 시대에, 어느 예술 형식에서 보아도 가장 천재적인 내러티브를 가진 작품이다.

포드: 맞아요. 어느 쪽이든 같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이 비정상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아요. 사포[1]와 같이요. 그녀는 그녀 자신을 비정상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녀는 그녀 자신을 사랑의 신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면 그녀가 성애적이었기 때문에요.
요나스: 마지막 질문입니다. 당신은 다른 언더그라운드영화작가들보다 당신 영화를 상업적으로 공개하고, 상업극장에 유통하고, 광범위한 관객들과 만나는 일에 더 열정적이에요. 당신은 홈 무비 개념과는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러한 바람은 의심할 것 없이, 당신이 영화를 어떻게 만드는지 그 내용에 영향을 미칩니다.
포드: 나 자신을 언더그라운드와 동일시하지 않아요.
내게 영감을 주는 영화작가들은 안토니오니, 펠리니, 브뉴엘, 고다르, 그리고 언더그라운드 영화의 폴 모리세이나 앤디 워홀 같은 사람들입니다. 언더그라운드 영화의 나머지사람들은 나를 자극하지 않아요. 그런데 폴이나 앤디, 또나처럼 전적인 자유를 지닌 채 언더그라운드 영화로부터빠져나온 사람들도 있지요.

요나스: 당신의 초기작들은 어떤가요? 다시 상영할 생각이 있나요?
브라차 있어요. 하지만 과정을 반대로 되돌려야 합니다. 토라에서 나 자신과 마주하는 일이 그랬으니까요. 우주에 창조주가 있다고 믿는 것과 반대입니다. 우주에는 질서가 있어요. 그리고 누군가 그 질서를 발견하면 그것에 대항하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우주의 질서와 자신을 일치시키고 자신의 모든 행동으로 우주를 돕습니다.
요나스: 당신은 다니엘 콘벤디트와 다음 영화 이야기를계속 나눠왔죠. 주제를 말해줄 수 있을까요?
브라차: 강제 수용소의 경험을 다루는 영화를 만들려고합니다. 모든 유대인과 모든 사람이 1939년부터 1945년까지 독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직접적으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정신과 마음으로 제2차 세계 대전을 직접 이해하지 못하면 그것은 완전히 재발할 거예요. 그리고 그것이 내가 하고 싶은 경험이고요. 난 강제 수용소로 가서 죽은 사람들의 피를, 땅에서 올라오는 선혈을 느끼고 싶습니다. 그 경험의 필수적인 부분을 가지고 싶어요. 그러면 그경험에서 배울 수 있겠죠. 신의 뜻처럼.

바니오니스: 항상 연극 작업을 해요. "쉬는 시간에만영화 연기를 합니다. 지금은 밀티니스 극장으로 돌아가 스트린드버그의 <죽음의 춤을 연습하고 있어요. 밀티니스 극장의 연극은 레퍼토리 연극이라, 내가 출연하는 보르헤르트, 뒤렌마트 등이 레퍼토리로 공연할 때면 나도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소비에트 연방의 영화 배우 대부분이 연극을 해요. 심지어 영화배우 연극이라 불리는 극도 있습니다. 영1화 스튜디오가 운영하고, 영화 촬영에 들어가지 않은 배우들로만 운영됩니다. 서구에서는 대체로 영화배우가 한가할때 연극을 하는데 우리는 반대예요. 연극일을 쉴 때 영화를 합니다.

그것이 나만의 프레임입니다. 그게 나의 진동이고요.
이렇게 말해보죠. 그건 나만의 상상력이자 나만의 육체라고요. 의식의 제한된 가능성과 관련해서요. 그리고 그 안에서 당신이 원하는 무엇이든 상상할 수 있어요.
나요나스: 그리고 이 흔들리는 프레임, 마지막 7부는, 내가 보기에, 일곱 부분을 하나로 통합합니다. 각 부를 독립적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는데, 당연히 나도 그렇게 보았습니다. 각 부는 각자의 무언가를 해요. 하지만 실제로, 각 부 화가 함께 모여 이뤄내는 것을 보고 나서 7부를 함께 보았을 것때, 〈하팍스 레고메나>는 정말이지 기념비적인 작품이 되었습니다. 이 작품의 풍성함 속에서, 이 작품이 마음에 남겨있
놓는 것 안에서, 이 작품을 보고나서 말이에요. 설령 당신이 지금까지 묘사한대로 보지 않았대도요ㅅ
a그
할프램프턴: 나는 항상 이런 일에 관심이있어요. 부분들이로 만들어진 거대한 무언가를 볼 때 일어나는 일들에요. 그런데 전체를 부분들 속에서 보면, 이어지는 부분들은 우리가 익히 보았던 것을 변형시킵니다.

버팔로 대학교의 제럴드 오그래디 교수의 초대를 받고(미미국 독립영화작가들의 청각적 역사‘라는 제목이 붙은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케네스 앵거가 잠시 미국에 돌아왔다. 그는 버팔로 대학교, 피츠버그의 카네기 연구소,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에 들렀다. 앵거와 학생들 모두에게 행복한 행사였다. 그는 새 영화 <루시퍼 라이징>의 발췌본을 가져왔고, 환영 행사에 아주 기뻐했다.
그리고 케네스 앵거가 뉴욕에 왔다. 여기서 그는 아주다른 상황을 마주했다. 한 배급사가 자기 영화를 허락 없이대여하고 판매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또 다른 배급사들도 불법 프린트 판매에 개입한 것을 발견했다. 케네스는영화를 완성하기 위해 절망적으로 고투를 벌였고 그러기위해 동전 한 푼까지 다 써왔기 때문에, 자신이 사기를 당하고, 속고, 이 문제로 새 작업의 완성이 쓸데없이 지연된다고 느꼈다. 그는 관련 배급사들에게 법적인 조치를 취하며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고 느꼈다. 우리는 사실이 드러나길 기다릴 것이다. 한편, 그런데도 나는 예술가의 분노를 신뢰한다.
케네스가 뉴욕에 머무는 동안 다음의 대화를 녹음했다.
1967년 이후 미국 언론에 앵거가 전한 첫 번째 인터뷰이기에, 거의 편집하지 않았다.

요나스: 내가 본 푸티지, 당신이 이 국가에 가지고온것을 보면, 당신은 자연을 구성하는 요소들의 이미지와 함께, 자연의 힘을 통해서 많은 일을 해내는 것 같습니다.
앵커: 맞아요. 완벽히 그렇습니다. 그건 은유예요. 나는남자 배우나 여자 배우를 한 명의 사람과 동일시하지 않도록 애써왔습니다. 나는 자연을 통해 움직이고 싶어요.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자연의 요소들입니다.

(필름 보존 문제에 대해 짧게 이야기를 나눴다. 앵거의원본 필름 중 일부는 현상소와 배급사들에 의해 심각하게손상되었다. 지금 사람들이 필름 보존에 점차 관심을 가지면서 앤솔로지 필름 아카이브 역시 비판을 받고 있다고 케네스에게 말했다.)요나스: 우리가 진실로 존경하는 작품들의 보존에 신경을 쓰지 않는 건 그 작품들에 대한 배신이라고 생각해요.
앵커: 그건 지붕이 없고 비가 들이치는 도서관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같죠.
요나스: 내일이면 모든 것이 사라질 거예요.
앵커: 지금 제작되는 필름들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사람들도, 몇 년만 지나면 자신들 역시 똑같은 처지에 놓인다는 걸 깨닫게 될 겁니다. 필름은 이상한 예술 형식입니다.
사막의 신기루나도깨비불처럼 무언가를 약속해요. 불멸을약속하죠. 무언가를 볼 수 있고, 돌아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1896년에 만들어진 뤼미에르의 푸티지도 볼 수 있어요.
거기서 뤼미에르는 왕과 왕비와 마차가 등장하는, 사람들이 실크 모자를 쓰고 돌아다니는 사라진 세계 전체를 다시불러옵니다. 그리고 그 이미지들을 바라보면서, 프루스트의 세계로 들어가듯 그 세계로 되돌아갈 수 있어요. 하지만그건 보존하고 지키기 위한 싸움입니다. 아마도 그건, 보다시피… 만약 영화를 마술사들의 것으로 바라본다면,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겁니다.

정치인들이 말한 건 모두 위선이었다고요. 하지만 나는 무언가를 믿어야 한다고, 어떤 가치를 가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념 없이, 그리고 그걸 유지하려는 노력 없이 산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예술가로서 자신이 설정한기준을 가지고 소통이나 공예의 형태로 그걸 추구해나가야합니다. 내 말은, 멋진 삶을 만들고, 살고 싶다는 거예요. 몇년 전이라면 TV에서 일하고 있었을지도 모르죠. 그런데 알다시피, TV에서는 그런 일을 하는 게 불가능했을 겁니다.

여하간, 세상은 파괴와 창조 사이에, 선인과 악한 사이에, 악당과 좋은 사람들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 같아요. 역설인 것이죠. 우리가 몹시도 타락한 시대에 살고 있다는 점만 제외하면요. 지금은 로마 시대와 같습니다. 정말옛날 고대 로마 같아요. 심지어 정부도 도둑놈들이에요. 누군가는 이 모든 게 그저 위선일 뿐이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브래키지: 렘브란트, 베토벤, 차이코프스키, 세 번째는 좀이상한가요! 차이코프스키는 지나치게 감상적이라거나 대중적이라거나 뭐라나 그런 이유로 심하게 공격받는 사람 중 한명이죠. 나는 그의 방향성이 오늘날의 예술에서 상당히 옹호되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내 말은, 베토벤을 말할 때, 차이코프스키를 함께 말해야 한다는 거예요. 아니면 결국 학계에서베토벤으로 만들어 온 기념비들에 갇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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