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권 정보요나스 메카스: 영화작가들과의 대화 2023년 5월 25일 초판 발행 저자: 요나스 메카스옮긴이: 이여로 편집: 임경용감수: 유운성디자인: 신신 인쇄 및 제본: 세걸음펴낸곳: 미디어버스 출판등록 2007년 2월 8일(제313-2007-36호)서울시 종로구 자하문로19길 25 0층mediabus@gmail.com이 책은 모든 저작권을 존중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이미지와 인용문을 복제할 때 법적 원칙인 "공정 사용"을준수했습니다. 사용된 텍스트와 이미지의 모든 출처는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실수를 발견하거나저작권 침해의 증거를 발견한 경우 출판사에 문의하시기바랍니다.
요나스 그레고리, 당신 심장을 계속 뛰게 하는 게 뭔가요? 그레고리 마르코풀로스: 오늘날 예술가는 혁명적이어야 합니다. 예술가는 아무것도 믿을 수 없죠. 혁명을 믿고자신의 예술을 믿습니다. 그는 신도 악마도 아니에요. 그는자신의 정령(Daemon)을 믿습니다. 요나스: 그레고리, 생계는 어떻게 유지하나요? 마르코풀로스: 오늘날, 살아가려면 무언가를 팔아야만하죠. 그리고 팔기 위해선, 상업적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나는 팔 것이 없어요. 난 뮤즈를 떠나게 만드는 상업주의를고발합니다. 예술에서 상업주의는 악마의 저주예요. 그리고상업주의는 오늘날의 사회를 이루는 불가결한 부분이죠. 요나스: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요? 마르코풀로스: 혁명이 일어날 정도는 되어야 우리 사회에서 부정당한 신성한 정신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영화작가이자 한 인간으로서 나는 이러한 이상에 전념합니다. 영화작가로서 난 영화의 유일한 희망이 실험영화에있다고 믿습니다. 링컨 센터에서 레네의 〈뮤리엘〉 같은영화를 보는 슬픈 경험을 하면 매우 우울해집니다. 〈새콤달콤〉은 더 끔찍합니다. 상업적인 영화에서 아방가르드가 계속 왜곡되는 것을 보는 일이요. 둘은 결코 합쳐질수 없습니다. 영원히 혁명적으로 남는 것이 아방가르드의 책무죠.
얼마 전부터 존 존스라는 이름의 영국인 방문객이 미국 예술계를 염탐하고 있다. 미술 갤러리들을 공부하고, 언더그라운드 영화를 보러 오고, 예술가들을 알아가고 있다. 심지어 올덴버그가 <클래스 올덴버그 그림을 걸다>라는 영화에서 공동작업을 하도록 설득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다른 화가, 조각가, 심지어 극작가들(가령 리로이 존스)까지도 조명과 카메라를 갖춘 작업실을 갖추고 영화로 올 준비를 하고 있기에, 나는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관심을 갖기시작했다. 다음은 <클래스 올덴버그 그림을 걸다>에 대한이야기를 나누며 얻은 메모들이다. "이 영화는 나의 해프닝 미학을 영화로 번역하기 위한노력입니다. 대체로 나의 해프닝은 사건들보다 발생한 사물들에 더 관심이 있어요. (사실, 사물 숭배야말로 내가 해프닝을 이해하는 방식입니다.) 사물을 더 선명하게 드러내도록 시간은 늘어집니다. 반복, 슬로모션, 관객을 담는 고요한 상자 속에서 해프닝이 이루어지죠." "해프닝에서 사용하기에는 불완전했던 효과가 클로즈업인데, 이는 사물을 탐구하는 극히 외설적인 기술입니다. 시카고에서 해프닝 작업 <흥겨움>을 선보이는 동안, 불투명한 영사기를 이용해, 실제 사물들의 거대한 클로즈업을 관객들 머리 위 스크린에 던졌어요. 일종의 구체영화인 거죠. 영화는 내게 친밀한 클로즈업을 활용할 수 있게 해줍니다. 내게는 이것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실체예요."
그날 늦은 저녁, 우리는 〈두 목소리>에 출연한 엘렉트라 로벨을 만났다. 그녀는 고작 스무살인데, 2주 전 이오네스코의 연극 〈의자들〉에서는 백십 살의 노인을 연기했다. 그녀는 영화에서 본 것과 매우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내가말했다. "당신 봤어요, 그런데 영화에서는 당신 자신으로1 있지 않았군요." 그녀가 웃으면서 답했다. "우리는 모두 천개의 얼굴을 가졌는 걸요. 문제라면 가장 필요로 하는 얼굴을 사람들이 적시에 찾지 못한다는 것이죠."
존 카바노프: 내게 영화적 과정은, 그것에 가치가 있는 경우는, 몸에서 일어나는 일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이고, 나는 그것을 자성적 에너지, 자성적 흐름에 가까워진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나는 이 미묘한 과정을 상세하게설명해내고 싶습니다. 왜냐면 그게 마음의 본질과 닮았다고 생각하니까요. 달리 말하면, 마음은 상징의 프로그램이아니라 (카바노프는 여기서 스탠 브래키지와 대립한다―JM) 에너지의 구조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내가 영화에서관심을 갖는 일은 마음을 직접적으로 상세히 설명하는 일이에요. 상징을 통해서 마음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요. 나는 마음을 아주 분명하게 형태 잡힌 에너지장의 패턴으로이해합니다. 알겠지만, 나는 카메라로 그것을 직접 표현해내고 싶어요. 질문: 바바라 루빈의 영화가 당신 영화보다 더 자유롭다고 생각해요? 카바노프: 하지만 그건… 보다시피, 정도의 문제예요. 마찬가지로 내 영화도 자유롭지만, 총체적으로 자유로워야한다는 것이 요지입니다.
<제이슨의 초상>에 대하여(제이슨이 아니라 요나스 메카스의 말이다) : 모든 영화제 광고에서 지속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모든 신문사가 취하고 있는 말에 신경이 거슬린다. <제이슨의 초상>이 "남성 매춘부와의 인터뷰"라는 것이다. 이런 광고문은 42번가에 있는 광고 회사들한테는 괜찮을지모르지만, 영화제 보도자료에서 사용된다면, 아주 복잡하고 심각한 영화-소설을 짜증날 정도로 단순화하는 꼴이 된다. 여기 영화 예술가가 그의 이 사례에서는 그녀의 일을아주 잘 그리고 완벽하게 해낸 또 다른 사례가 있다. 영화평론가들, 영화 리뷰어들, 그들은 그들의 일을 하고 있지않다. 그들의 직업에 눌러앉아 있는 게 전부다. 작품을 파고들고, 작품의 여러 차원과 의미를 파고들기보다, 그들은작품을 멍청한 클리셰로 환원한다. <제이슨의 초상>은 남성 매춘부에 관한 영화가 아니다. <제이슨의 초상>은 아주복잡한 인간 존재에 관한 영화로,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의인물만큼이나 복잡하다. 그를 클리셰로, 이것이나 저것으로 바꿔놓을 수 없다. 그는 여느 상황에 처한 사람이다. 그는 또한 아름다운 사람이고, 비극적인 사람이다. 그는 나쁘다. 그래, 하지만 그는 우리들 대다수보다 더욱 낫고 아름답다. 왜냐하면 그는 감히 자기 자신을 열어 보이기 때문이다. <제이슨의 초상>은 이 시대에, 어느 예술 형식에서 보아도 가장 천재적인 내러티브를 가진 작품이다.
포드: 맞아요. 어느 쪽이든 같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이 비정상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아요. 사포[1]와 같이요. 그녀는 그녀 자신을 비정상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녀는 그녀 자신을 사랑의 신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면 그녀가 성애적이었기 때문에요. 요나스: 마지막 질문입니다. 당신은 다른 언더그라운드영화작가들보다 당신 영화를 상업적으로 공개하고, 상업극장에 유통하고, 광범위한 관객들과 만나는 일에 더 열정적이에요. 당신은 홈 무비 개념과는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러한 바람은 의심할 것 없이, 당신이 영화를 어떻게 만드는지 그 내용에 영향을 미칩니다. 포드: 나 자신을 언더그라운드와 동일시하지 않아요. 내게 영감을 주는 영화작가들은 안토니오니, 펠리니, 브뉴엘, 고다르, 그리고 언더그라운드 영화의 폴 모리세이나 앤디 워홀 같은 사람들입니다. 언더그라운드 영화의 나머지사람들은 나를 자극하지 않아요. 그런데 폴이나 앤디, 또나처럼 전적인 자유를 지닌 채 언더그라운드 영화로부터빠져나온 사람들도 있지요.
요나스: 당신의 초기작들은 어떤가요? 다시 상영할 생각이 있나요? 브라차 있어요. 하지만 과정을 반대로 되돌려야 합니다. 토라에서 나 자신과 마주하는 일이 그랬으니까요. 우주에 창조주가 있다고 믿는 것과 반대입니다. 우주에는 질서가 있어요. 그리고 누군가 그 질서를 발견하면 그것에 대항하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우주의 질서와 자신을 일치시키고 자신의 모든 행동으로 우주를 돕습니다. 요나스: 당신은 다니엘 콘벤디트와 다음 영화 이야기를계속 나눠왔죠. 주제를 말해줄 수 있을까요? 브라차: 강제 수용소의 경험을 다루는 영화를 만들려고합니다. 모든 유대인과 모든 사람이 1939년부터 1945년까지 독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직접적으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정신과 마음으로 제2차 세계 대전을 직접 이해하지 못하면 그것은 완전히 재발할 거예요. 그리고 그것이 내가 하고 싶은 경험이고요. 난 강제 수용소로 가서 죽은 사람들의 피를, 땅에서 올라오는 선혈을 느끼고 싶습니다. 그 경험의 필수적인 부분을 가지고 싶어요. 그러면 그경험에서 배울 수 있겠죠. 신의 뜻처럼.
바니오니스: 항상 연극 작업을 해요. "쉬는 시간에만영화 연기를 합니다. 지금은 밀티니스 극장으로 돌아가 스트린드버그의 <죽음의 춤을 연습하고 있어요. 밀티니스 극장의 연극은 레퍼토리 연극이라, 내가 출연하는 보르헤르트, 뒤렌마트 등이 레퍼토리로 공연할 때면 나도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소비에트 연방의 영화 배우 대부분이 연극을 해요. 심지어 영화배우 연극이라 불리는 극도 있습니다. 영1화 스튜디오가 운영하고, 영화 촬영에 들어가지 않은 배우들로만 운영됩니다. 서구에서는 대체로 영화배우가 한가할때 연극을 하는데 우리는 반대예요. 연극일을 쉴 때 영화를 합니다.
그것이 나만의 프레임입니다. 그게 나의 진동이고요. 이렇게 말해보죠. 그건 나만의 상상력이자 나만의 육체라고요. 의식의 제한된 가능성과 관련해서요. 그리고 그 안에서 당신이 원하는 무엇이든 상상할 수 있어요. 나요나스: 그리고 이 흔들리는 프레임, 마지막 7부는, 내가 보기에, 일곱 부분을 하나로 통합합니다. 각 부를 독립적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는데, 당연히 나도 그렇게 보았습니다. 각 부는 각자의 무언가를 해요. 하지만 실제로, 각 부 화가 함께 모여 이뤄내는 것을 보고 나서 7부를 함께 보았을 것때, 〈하팍스 레고메나>는 정말이지 기념비적인 작품이 되었습니다. 이 작품의 풍성함 속에서, 이 작품이 마음에 남겨있 놓는 것 안에서, 이 작품을 보고나서 말이에요. 설령 당신이 지금까지 묘사한대로 보지 않았대도요ㅅ a그 할프램프턴: 나는 항상 이런 일에 관심이있어요. 부분들이로 만들어진 거대한 무언가를 볼 때 일어나는 일들에요. 그런데 전체를 부분들 속에서 보면, 이어지는 부분들은 우리가 익히 보았던 것을 변형시킵니다.
버팔로 대학교의 제럴드 오그래디 교수의 초대를 받고(미미국 독립영화작가들의 청각적 역사‘라는 제목이 붙은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케네스 앵거가 잠시 미국에 돌아왔다. 그는 버팔로 대학교, 피츠버그의 카네기 연구소,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에 들렀다. 앵거와 학생들 모두에게 행복한 행사였다. 그는 새 영화 <루시퍼 라이징>의 발췌본을 가져왔고, 환영 행사에 아주 기뻐했다. 그리고 케네스 앵거가 뉴욕에 왔다. 여기서 그는 아주다른 상황을 마주했다. 한 배급사가 자기 영화를 허락 없이대여하고 판매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또 다른 배급사들도 불법 프린트 판매에 개입한 것을 발견했다. 케네스는영화를 완성하기 위해 절망적으로 고투를 벌였고 그러기위해 동전 한 푼까지 다 써왔기 때문에, 자신이 사기를 당하고, 속고, 이 문제로 새 작업의 완성이 쓸데없이 지연된다고 느꼈다. 그는 관련 배급사들에게 법적인 조치를 취하며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고 느꼈다. 우리는 사실이 드러나길 기다릴 것이다. 한편, 그런데도 나는 예술가의 분노를 신뢰한다. 케네스가 뉴욕에 머무는 동안 다음의 대화를 녹음했다. 1967년 이후 미국 언론에 앵거가 전한 첫 번째 인터뷰이기에, 거의 편집하지 않았다.
요나스: 내가 본 푸티지, 당신이 이 국가에 가지고온것을 보면, 당신은 자연을 구성하는 요소들의 이미지와 함께, 자연의 힘을 통해서 많은 일을 해내는 것 같습니다. 앵커: 맞아요. 완벽히 그렇습니다. 그건 은유예요. 나는남자 배우나 여자 배우를 한 명의 사람과 동일시하지 않도록 애써왔습니다. 나는 자연을 통해 움직이고 싶어요.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자연의 요소들입니다.
(필름 보존 문제에 대해 짧게 이야기를 나눴다. 앵거의원본 필름 중 일부는 현상소와 배급사들에 의해 심각하게손상되었다. 지금 사람들이 필름 보존에 점차 관심을 가지면서 앤솔로지 필름 아카이브 역시 비판을 받고 있다고 케네스에게 말했다.)요나스: 우리가 진실로 존경하는 작품들의 보존에 신경을 쓰지 않는 건 그 작품들에 대한 배신이라고 생각해요. 앵커: 그건 지붕이 없고 비가 들이치는 도서관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같죠. 요나스: 내일이면 모든 것이 사라질 거예요. 앵커: 지금 제작되는 필름들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사람들도, 몇 년만 지나면 자신들 역시 똑같은 처지에 놓인다는 걸 깨닫게 될 겁니다. 필름은 이상한 예술 형식입니다. 사막의 신기루나도깨비불처럼 무언가를 약속해요. 불멸을약속하죠. 무언가를 볼 수 있고, 돌아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1896년에 만들어진 뤼미에르의 푸티지도 볼 수 있어요. 거기서 뤼미에르는 왕과 왕비와 마차가 등장하는, 사람들이 실크 모자를 쓰고 돌아다니는 사라진 세계 전체를 다시불러옵니다. 그리고 그 이미지들을 바라보면서, 프루스트의 세계로 들어가듯 그 세계로 되돌아갈 수 있어요. 하지만그건 보존하고 지키기 위한 싸움입니다. 아마도 그건, 보다시피… 만약 영화를 마술사들의 것으로 바라본다면,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겁니다.
정치인들이 말한 건 모두 위선이었다고요. 하지만 나는 무언가를 믿어야 한다고, 어떤 가치를 가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념 없이, 그리고 그걸 유지하려는 노력 없이 산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예술가로서 자신이 설정한기준을 가지고 소통이나 공예의 형태로 그걸 추구해나가야합니다. 내 말은, 멋진 삶을 만들고, 살고 싶다는 거예요. 몇년 전이라면 TV에서 일하고 있었을지도 모르죠. 그런데 알다시피, TV에서는 그런 일을 하는 게 불가능했을 겁니다.
여하간, 세상은 파괴와 창조 사이에, 선인과 악한 사이에, 악당과 좋은 사람들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 같아요. 역설인 것이죠. 우리가 몹시도 타락한 시대에 살고 있다는 점만 제외하면요. 지금은 로마 시대와 같습니다. 정말옛날 고대 로마 같아요. 심지어 정부도 도둑놈들이에요. 누군가는 이 모든 게 그저 위선일 뿐이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브래키지: 렘브란트, 베토벤, 차이코프스키, 세 번째는 좀이상한가요! 차이코프스키는 지나치게 감상적이라거나 대중적이라거나 뭐라나 그런 이유로 심하게 공격받는 사람 중 한명이죠. 나는 그의 방향성이 오늘날의 예술에서 상당히 옹호되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내 말은, 베토벤을 말할 때, 차이코프스키를 함께 말해야 한다는 거예요. 아니면 결국 학계에서베토벤으로 만들어 온 기념비들에 갇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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