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지고기압(blocking high)과 온대저기압(extratropical cyclone)은 계절의 규칙을 따르지 않는 유목민의 기질을 닮았다. 먼저 저지고기압은 흐르는 시내 한가운데를 가로막는 바윗덩어리 같은것이다. 물이 내려가다 바위를 만나면 양쪽으로 갈라져 흐른다.
바위가 견고하게 버티는 한 주변의 물 흐름도 같은 모양을 계속유지한다. 바위 바로 뒤편에서는 물살이 바위에 막히고 물의 흐름이 정체된다. 이곳에서는 힘들이지 않고도 가만히 서 있을 수있다. 주변에서는 물살이 빠르게 흘러가 몸을 가누기 힘든 것과는 대조된다.

온대저기압은 저지고기압보다 짧은 주기로 날씨의 변동을가져온다. 삼한사온(三寒四溫)이라는 고사 성어처럼 일주일 사이에 한란(寒暖)의 기복을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온대저기압은편서풍 기류에 실려 흘러간다. 저지고기압이 편서풍대를 남북으로 흔들어대면 그 길을 따라 흐르는 온대저기압도 덩달아 남북으로 춤을 춘다. 시냇물을 따라 흘러내려 가는 보트가 바위를 만나면 물살을 따라 주변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다.

옷차림도 변수다. 옷이 피부를 감싸고 있을 때는 옷의 보온성이나 통풍성에 따라 체감온도가 달라진다. 날씨에 예민한 이들은 매일 일기예보를 보면서 옷차림을 달리하겠지만, 또 다른 이들은 자신의 계절 감각을 따를 것이다. 이들은 때가 되면 얇고 가벼운 옷으로 갈아입는다. 계절 감각을 삐끗하게 하는 건 고온 현상이 지속된 직후에 찾아오는 꽃샘추위다. 이미 세탁해서 장롱깊숙이 처박아놓은 겨울옷을 꺼내 입자니 번거롭고, 그냥 버티자니 춥다. 봄옷으로 버티다가는 감기에 걸리기 십상이다. 따지고보면 꽃샘추위는 햇빛이 대지를 깨우는 계절의 흐름과 때 맞춰발달한 온대저기압의 주기가 맞아떨어지며 나타난다. 온대저기압이 접근할 때는 남풍이 불어와 봄을 재촉하지만, 저기압이 지나갈 때면 차가운 북풍이 내리꽂히며 다시 겨울을 부른다. 몸과마음은 이미 봄을 맞을 채비를 하고 있을 때 역주행하는 날씨가빚어낸 해프닝이다.

전에는 악장마다 연주 시간이 비슷했지만 최근 온난화가 가속화되면서 그 길이도 달라지는 추세다. 봄을 노래하는 1악장은짧아지고, 대신 2악장의 여름은 점점 길어진다. 악장을 다시 육등분한 절기는 우리 선조들이 살았던 시대의 기후와는 맞아떨어졌을지 모르지만 오늘날에는 조금씩 엇박자를 내고 있다. 기후가변화한 탓이다. 거기에 날씨까지 춤을 추면서 우리가 체감하는계절의 시작과 끝도 오락가락한다. 하지만 일 년 전체를 통틀어보면 자연이 긴장과 이완, 강약을 조절해가면서 한 편의 완전한교향악을 우리에게 들려주는 걸 알 수 있다.

계절의 수레바퀴가 굴러가면 지구 곳곳에서 돌림노래가 들려온다. 북반구와 남반구가 마주 보고 서로 다른 성부를 번갈아맡아 합창한다. 북반구가 봄을 노래하면, 반년의 박자를 쉬고 나서 남반구에서 다시 봄이 시작된다. 북반구가 여름으로 가는 동안 남반구는 겨울을 부르며 화음을 맞춘다. 포크댄스를 출 때 짝이 서로 팔짱을 끼고 돌듯이 양 반구의 돌림노래는 지구와 태양이 함께 돌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아름답게 어울리는 것에 황금 비율이 관여한다면 태양 주위를 도는 행성의 운항 규칙과 도미솔의 화음 사이에도 통하는 게있을 것이다. 행성이 태양 주위를 공전할 때 태양과의 거리와 공전 주기 사이에는 일정한 수적 비례 관계가 있다. 마찬가지로 비파 현의 길이를 3분의 2 비율만큼 줄이면 도에서 솔로 음계가 높아진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를 과학으로 인도했던 우주의 질서는악기를 통해 음악으로 재현되고 음악은 세상의 섭리를 다시금 깨우치게 하여 삶을 지탱하는 힘을 주었을 것이다.

람처럼 차어릴 때 자주 불렀던 <반짝반짝 작은 별>은 선율이 단순해서쉽게 따라 부를 수 있다. 누군가가 이 곡을 반복해서 들려준다면금방 싫증을 느끼게 될 것이다. 하지만 모차르트가 내놓은 변주곡을 들으면 연주가 끝날 때까지 쉬지 않고 재잘대는 종달새 소리를 듣는 것처럼 유쾌해진다. 음악의 대가는 주제 선율을 유지하면서도 화성이나 리듬을 조금씩 다르게 12번이나 변형하여 곡의 분위기를 시종 새롭게 이어준다. 한편으로는 민요 가락에 담긴 태아적 모성에 지속적으로 호소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화려한기교와 장식으로 변화를 불러일으키며, 안정과 갈등의 타협을 모색한다. 변하지 않는 것이 새로운 것을 담을 수 있는 공간을 열어주어, 조화와 평화를 느끼게 한다.

어린아이의 웃음처럼 맑게 갠 봄날이면 양지바른 풀밭에 땅해주는 것이다.
을 베개 삼아 누워 하늘을 보고 싶다. 구름은 쉴새없이 지나가고여기서 생겼다 저기서 사라진다. 햇살에 하얗게 반짝이는 뭉게구름만 하더라도 어찌나 빠르게 모양이 달라지는지 현기증을 느낄정도다. 하지만 어머니의 품에 안긴 듯 대지의 따스함이 느껴지면 변화무쌍한 구름이 연출해내는 드라마도 마냥 즐겁기만 하다.
날씨의 변주가 아름다운 건 오랜 세월 견고하게 삶의 터전을 지탱해주었던 땅의 숨결이 함께하기 때문일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육안으로 보면 금성은 아이보리에 황색이섞여 우아한 느낌을 주는 반면, 화성은 붉은빛이 감돌아 격렬한느낌을 준다. 그래서인지 고대부터 금성은 아름다움을 상징하는비너스 여신으로 섬겨졌다. 저녁이나 새벽에 환하게 반짝이는 샛별(금성)을 보면서 소원을 빌기도 했다. 반면 화성은 그 붉은빛이피를 연상시킨 탓인지 전쟁의 신으로 숭상받았다.

대기는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 땅은 우주의 먼지가 굳어진 것이고, 우리가 마시는 공기도 흙과 바다에서 유래한 것이다.
언젠가 태양과 이 땅의 수명이 다하면 바닷물이 끓어올라 금성처럼 뜨겁고 무거운 대기가 될지도 모르고, 이산화탄소가 얼어붙어화성처럼 차갑고 가벼운 대기가 될지도 모른다.

당먼지 중에서도 크기가 작은 것들은 숨 쉴 때 몸에 빨려 들어와 폐에 오래 머무르게 되므로, 미세하고 오염된 먼지일수록 각종 호흡기 질환을 유발하거나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오염된 미세먼지가 뇌의 활동을 둔화시킨다는 얘기도 들은 적이있다. 미세먼지 농도가 높은 날에는 가능하면 실내에 머무르며먼지를 많이 마시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문제는 겨울이다. 겨울에는 북쪽에서 남하한 찬 공기가 대기하층부에 깔리기 때문에 대기 안정도가 높아진다. 게다가 밤이길고 남중고도는 낮아서 낮 동안 지면이 받는 일사만으로는 대지가 그렇게 달구어지지 않는다. 겨울에 주변에서 배출한 먼지는위로 확산되기 어려워서 지상 부근에 쌓이고 주변의 먼지 농도가올라간다. 게다가 겨울철에는 우리나라 북서쪽에 있는 만주와 북한에서 땔감을 때면서 배출한 외국산 먼지들이 북서풍을 타고 들어와 국내에서 배출한 먼지와 함께 쌓이므로 미세먼지 농도가 극도로 높아진다. 특히 산업 활동으로 만들어낸 일산화질소, 이산화황 같은 기체들은 햇빛과 작용하여 오존 등의 2차 유해 물질을 잔뜩 만들어낸다. 이런 물질은 두통을 일으키거나 신경계에 장애를유발하기도 한다.

온대저기압이 접근해 오면 먼저 남풍이 따뜻한 공기를 몰고와 포근한 날씨가 한동안 이어진다. 그러다가 높은 구름이 끼기시작하고 점차 낮은 구름이 채워지며 하늘이 어두워지고 나면 이내 비나 눈이 온다. 시들어 있던 이파리가 비를 맞아 푸릇푸릇 탄력을 되찾고, 새들도 저기압이 몰고 온 바람과 돌풍에 대기를 떠도는 곤충을 잡느라 분주하게 떠들어댄다. 막바지에 천둥 번개를동반한 격렬한 소나기가 한바탕 내리고 나면 날이 개기 시작한다. 북풍이 찬 공기를 끌어내리며 하루 이틀은 청명한 날씨가 이어진다. 온대저기압이 지나갈 때마다 날씨의 장단에 맞추어 동식물이 반응하듯이 중위도권에 사는 사람들도 다채로운 춤곡을 즐기는 것 같다.

남반구도 북반구와 마찬가지로 중위도권에는 온대저기압이지나간다.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위도가 서울보다 3도 낮아, 우리 남해안에 해당하는 34도다. 이 지역의 유명한 춤곡인 탱고는 4박자의 중후한 리듬에 애잔한 선율이 넘나든다. 스페인 남부 춤곡과 마찬가지로 탱고의 느린 선율 속에도 마음 저 깊은 곳에 침전해 있는 감정을 되살려주는 마력이 있는 것같다. 미국 남부 뉴올리언스는 제주 서귀포보다 위도가 3도나 낮아, 여름이면 우리 장마철처럼 습하고 더운 기운이 올라오는 곳이다. 게다가 오래전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흑인의 애달픈 삶의흔적이 녹아 있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색소폰과 함께 흘러나오는재즈도 비록 박자와 리듬은 다르지만 선율에서는 고향을 향한 향수를 달래주듯, 아니면 하루의 노고와 피로를 씻어내듯 달콤한안식이 느껴지기도 한다.

인류가 진화해 오는 동안 날씨의 리듬은 우리 몸속에 체화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리듬이 몸의 율동으로 드러날 때에도 지역 특유의 기후라는 프리즘을 거치면서 지역마다 다른 양식으로다듬어졌을 것이다. 세계 각지에서 고장 특유의 음악과 춤을 마주할 때마다 그 안에 투영된 자연의 다채로운 풍미를 느껴보게된다.

흙에는 식물이 뿌리를 내리고, 그 주변에 많은 미생물이 공생한다. 이것들도 숨을 쉬며 대기와 소통한다. 나뭇잎이 광합성을하여 햇빛을 화학에너지로 변환하는 동안에도 뿌리를 통해 흙 속의 수분을 빨아올려 대기 중으로 내보낸다. 그게 아니더라도 더운날에는 사람이 땀을 배출해 열을 식히듯이 식물도 체온을 조절하느라 잎을 통해 수분을 대기 중으로 날려보낸다. 흙과 주변 식물이 대기로부터 받은 물은 다시 수증기가 되어 대기로 되돌아간다.
공기는 하늘에만 떠 있고 물은 땅 위로만 흐른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땅속으로 이어져서 쉬지 않고 순환한다. 그런 점에서 땅은 하늘의 연장선이고 하늘은 땅의 기운이 퍼져가는 곳이다.

지하 수로나 강을 거쳐 바다로 흘러간 물은 수증기로 증발하여 대기로 옮겨간다. 이 수증기는 어딘가로 이동해 구름이 된다.
구름에서 비나 눈이 땅 위에 내리면 물의 순환 고리가 완성된다.
흙이 없으면 물을 저장하기 어렵고 강줄기도 메마른다. 물을 먹고 사는 땅속 생물의 다양성도 사라질 것이다. 흙이 있기에 물은흙과 대기를 오가며 순환할 수 있고, 이 땅도 생명력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장마철에 북태평양고기압의 가장자리를 따라 남서풍을 타고수증기의 물길이 한반도로 밀려오면 여기저기 집중호우가 쏟아진다. 평소 같으면 비가 와도 한나절이면 날이 개고 하늘이 벗겨지지만 이때는 완전히 다르다. 하늘은 종일 흐리다. 간혹 구름 사이로 해가 비치다가도 이내 구름으로 뒤덮이기 일쑤다. 그 와중에도 하늘색은 쉬지 않고 변화한다. 구름이 진해졌다가 옅어지기를 반복한다. 그런가 하면 잿빛 구름 아래에 검은 구름 조각들이여기저기 떠 있다가 바람을 타고 빠르게 이동한다. 먹구름이 지나는 곳마다 강한 비가 쏟아지다 그치기를 반복한다.

수입한 다른 지역의 산물이나 문화를 가까이에서 느껴볼 수있다고 해도 원산지에 직접 가보는 것만은 못하다. 아무리 영화를 통해 경치 좋은 곳에 가보고 대리 만족을 해본다 해도 현지에서 직접 보는 것만은 못하다. 여행의 묘미란 날씨 박람회의 이곳저곳을 돌아보면서 그곳의 기후에 적응한 현지인이 먹고 입고 자는 대로 체험해보는 데 있을 것이다. 바로 그때 날씨는 화음이 되어 오감의 체험을 더욱 기억할 만한 것으로 만들어줄 테니까.

한편 장마철이 되면 북태평양고기압이 우리나라 쪽으로 확장해 오고, 그 가장자리를 따라 대양의 뜨거운 수증기 물길이 한반도까지 이어진다. 그러면 길목을 따라 비구름대가 계속 만들어지면서 많은 비가 내린다. 그러다가 가을이 되면 북태평양고기압이 물러가고 수증기의 물길도 후퇴하여, 우리나라는 다시 청명한하늘 아래 햇살을 듬뿍 받게 된다.

강물은 쉼 없이 흘러간다. 골짜기의 작은 도랑이 모여 시내를 이루고, 여러 물줄기가 서로 합쳐져 거대한 강이 되어 흘러가는 소리는 한 편의 교향악이다. 물길이 내려가는 동안 큰 바위에부딪혀 돌아가기도 하고, 협곡을 만나 급물살을 타기도 하고, 낭떠러지에서 폭포가 되어 큰 폭으로 떨어지기도 하지만 결국 대해에 도달하고야 마는 것이다. 스메타나는 <나의 조국>이라는 교향시에서 온갖 시련을 넘어 아름다운 강산과 조국을 지켜낸 체코민족의 역사와 전통을 몰다우강의 흐름에 빗대어 그려냈다.

음악은 시간 속에서 흐른다. 흐름 속에서만 음악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그 아름다움을 붙잡기 위해 흐름을 멈추면 음악도 끝난다. 하나의 강은 대기의 물길을 통해서 또 다른 강과 이어져 흐른다. 물이 흐르지 않으면 더 이상 강이 아니듯이, 바람이 불지 않으면 대기의 강물을 따라 흐르는 음악도 들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강이 흘러왔듯이, 대기의 물길도 오랜 세월 강과 강을 건너고 바다와 바다를 건너 지금까지 흘러왔고, 또 앞으로도 그렇게 흘러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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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솟은 암벽 사이로 올려다보이는 좁은 하늘에는 구름이 끼어있었다. 비가 올 것 같았다. 비가 오든 햇볕이 쨍쨍 내리쬐든 나에게는 매일반이었다. 물통과 지팡이 그리고 건포도와 자른 쇠고기 조각만을 가지고 협곡 바닥의 단단한 젖은 모래를 밟으며 나는 위쪽으로 올라갔다. 사슴 여러 마리, 코요테 한마리, 발가락이 3개인 커다란 새 한 마리, 물떼새 혹은 도요새 여러 마리의 발자국과 도마뱀 여러 마리와 뱀 한 마리가 지나간 자국이 있었지만 소나 말, 사람의 발자국은 보이지 않았다.

물속을 걸어야 할 때가 많았다. 개울의 수로가 이쪽 암벽에서 저쪽 암벽으로 꾸불꾸불 나 있었기 때문에 1.5km도 올라가기 전에 나는 12번이나 물속을 걸어야 했다. 부츠를 신고 물속을 걷기란 쉽지않았다. 그러나 이 구불구불한 개울의 가장자리를 걷는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개울이 예각을 이루며 구부러져서 절벽을 깎고는 다시 반대편으로 휙 구부러지면서 다시 절벽을 파고들기 때문이었다. 테니스화를 가지고 왔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관심의 대상은 콜럼버스 이전의 그들의 삶이 어떠했을까 하는것이었다. 우리는 사실 그들의 생활방식에 대해서는 꽤 자세히 알고있다. 그들은 옥수수와 콩, 멜론을 재배했고 토끼와 사슴을 사냥했으며 도기와 광주리 그리고 산호와 뼈로 장신구를 만들었고 요새와같은 집을 지었다. 내 관심사는 왜 그런 집을 지었느냐다. 혹시 아나사지족도 20세기의 미국인들처럼 두려움의 구름 아래서 살았던 게아닐까?

두려움, 그것이 그들 삶의 진짜 중요한 요소였을까? 그들에게 어떤 끈질기고 고약한 적이 있었기에 가장 가까운 목초지나 숲, 산으로부터 160km나 떨어진 이 사막의 미궁 한복판에서조차 그들은 저높은 암벽 위에 제비집 같은 집을 지었을까?

오래전에 이 절벽 주거지는 버려졌다. 그 주민들은 그들이 늘 두려워했던 적들에 의해 몰살당한 것일까? 아니면 나쁜 위생 상태와그들이 사용하는 물과 공기의 오염으로 인한 질병으로 서서히 수가줄어들어 결국 사라지고 만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그들의 삶을 회복불능 상태로 만들고 그들을 이곳까지 도주케 한 공포가 그들이사라지게 된 원인이었을까?

끝이 없다는 느낌도 들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앞에 불이보였다. 벌건 등걸 숯불이었다. 고무보트의 윤곽도 보였다. 나를 안심시키는 광경이었다. 잠이 들었던 랠프가 내가 오는 소리에 얼른일어나서 나를 위해 남겨 놓은 메기 고기를 보여 주었다. 젖은 나뭇잎에 싼 메기 고기는 시원했고 아직도 신선했다.

남은 오후 시간 내내 우리는 그늘쪽에 붙어서 이 멋진 강을 따라흘러갔다. 우리는 환상의 세계로 점점 더 깊이 들어갔다. 사암 암벽은 그 어느 때보다 더 높았다. 강물에서의 높이가 300, 아니 600m는되는 것 같았다. 돔의 반쪽 또는 돔 모양을 한 그 꼭대기에 햇빛이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고, 그늘 쪽은 벌겋게 짙은 적색을 띠고 있었다

이 모든 풍경의 중심에 강이 있다. 양쪽 강변에 가는 녹색의 띠를두르고 유유히 흐르는 강이 이 풍경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다. 이곳의 경치는 강이 없었다면 멋지기는 하지만 활기가 없는 풍경이었을 것이다. 살아 있는 강이 이 협곡에 조화와 의미를 주고 있다. "나는 흐르는 것은 무엇이든 좋다"고 아일랜드의 시인이 말했다던가.
우리는 저녁쯤에 유서 깊은 ‘바위 구멍(Hole in the Rock)‘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곳 강가에 상륙해서 밤을 지낼 캠프를 차렸다.

나는 강을 바로 발 밑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지점으로 걸어갔다.
구불구불한 오솔길이 보였고 협곡의 어귀에 녹색 식물들이 부채 모양을 이루고 있는 것도 보였다. 그러나 버드나무 그늘 깊숙이 있는뉴컴과 보트는 보이지 않았다. 이 위에서는 그동안 내 귀를 떠나지않던 강물 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았고, 사막의 정적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었다. 사막의 소리라고나 할까? 발자크는 어느 책에선가 이렇게 썼다. "사막에는 모든 것이 있고 동시에 아무것도 없다.
신은 있지만 인간은 없다."

시간은 천천히 흘러갔지만 충분히 더디다고는 할 수 없었다. 우리여행의 끝이 가까워져 올수록 협곡의 세계는 시시각각으로 더 아름다워졌다. 우리는 잊었다고 생각했지만 잊을 수가 없었다. 그 사실은 스트론튬(금속원소의 일종)처럼 우리 골수에 스며들어 있었다. 글렌캐니언을 볼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 말이다. 우리는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아니, 감히 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우리 심장을 먹고, 우리 창자를 씹고, 무력한 분노 속에 우리 자신을소진해 버리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들어가면서 우리는 네군도단풍과 미루나무로 이루어진 작은 숲을 보게 된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바위가 깎여 만들어진 넓은 방이 보인다. 위쪽 끝에 맑은 물이 고인 깊은 못이 있고 못 주위는 푸른 초목으로 둘리어 있다. 그 못 옆에 서면 입구의 작은 숲이보인다. 방은 높이가 60m가 넘고 길이가 150m, 너비가 60m이다. 천정과 300m 위의 바위 틈에서 빛이 새어 들어온다. 그 틈은 이 건조한 지역에 가끔 소나기가 내릴 때만 흐르는 작은 시내에 의해 생긴것이다."

우리가 기대한 폭우는 내리지 않았다. 우리는 짐을 캔버스천으로덮어 놓고 하얀 모래언덕에 파인 우묵한 구덩이에 슬리핑 백을 펴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잠을 청했다. 잠이 들면서 나는 빠르게 지나가는 구름사이로 한 움큼의 별들이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소용돌이치는 강물에 다시 보트를 띄운 우리는 어렵지 않게 잔잔한 물로 빠져나왔다. 우리의 작은 보트는 잘 견뎌 주고 있었다. 바위에 그렇게 여러 번 부딪치고 모래나 부러져 나간 나무 그루터기 위로 그렇게 여러 번 끌고 왔는데도, 펑크난 곳 하나 없고 공기가 새는곳도 전혀 없었다. 그러나 아직 여행은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상관없다. 우리는 이런 사태를 예견했다. 우리는 우리가있는 곳에서 글렌캐니언 댐 공사장까지 모터보트로 불과 몇 시간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또 그 자연의 다리가 있는 곳까지 가려면 오솔길을 걸어 협곡을 10km쯤 올라가야 한다는 것도알고 있었다. 그 거리는 자동차에 익숙해진 보통의 관광객들에게는달나라에 가는 것만큼이나 멀게 느껴질 것이다. 즉, 이 야영지를 조금만 벗어나면 관광객의 흔적은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오솔길 옆에는 맑은 시내가 흐르고 에메랄드빛 못이 줄지어 있었다. 그중 어떤 것은 들어가 헤엄을 칠 수 있을 정도로 컸다. 물이 너무나 맑아서 바닥의 모래 알갱이 위를 지나는 작은 물고기 떼의 그림자를 볼 수 있었다. 협곡의 암벽에서 물이 새어나오거나 솟아 흘러 시냇물을 이루었다. 물이 나오는 곳마다 이끼, 고사리, 야생화들이 자라서 독특하게 공중에 매달린 정원을 만들었다. 암벽 너머에는돔과 아치 등이 나바호산의 사암비탈을 이루고 있었다.

이 골짜기에도 역시 시내가 흐르고 있었고 아까보다 훨씬 더 작았지만 군데군데 우묵하게 패인 샘이 있었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작은 샘들을 지나자 시내는 작아져 거의 사라지다시피 하고 대신 물이 고인 웅덩이들이 햇볕을 받고 있었다.

*모든 탁월한 것은 귀한 만큼 어렵다"고 한 현인은 말했다. 어려움과 귀함이 제거될 때 탁월함은 어떻게 될까? 말, 말… 말의 유희에시달리다보니 목이 말랐다. 협곡 건너편에 또 하나의 샘이 있었다.
다리의 서편 받침 아래 있는 선반 바위 밑에서 물이 솟아나오고 있었다. 나는 비탈을 내려갔다가 다른 쪽 비탈을 다시 올라간 후 누군가가 남겨 놓고 간 깡통들 가운데 하나를 주워서 그것으로 이끼 사이로 흘러내리는 물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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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어나서 부러진 나무 밑에서 나왔다. 늙은 문아이는 나에게서 몇 걸음 물러서더니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놈은 여전히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우리는 약 15m의 거리를 두고 서로 마주 서 있었다. 이렇게 마주 서 있는 것도 이것이 마지막일 것이다. 나는 마지막으로해 줄 적당한 말을 생각해 내려고 애썼지만, 입안이 말라 있고 혀는뻣뻣한 데다가 입술마저 말라 터져 있어 한 마디도 뱉어낼 수가 없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나는 말을 등지고 물통이 있는 곳으로 가서물통을 집어 들었다. 물은 마시기 어려울 정도로 뜨거웠지만 그래도나는 그 물을 마셨다. 물을 모두 마시고 나서 남은 몇 방울은 손가락에 쏟아 쑤시는 이마에 발랐다. 그리고는 그 유령 같은 말은 다시 보지도 않고 나는 물통을 어깨에 메고 집으로 향했다.
한 번, 두 번, 나는 나를 따라오는 발자국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돌아보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인간 비버들은 콜로라도강에 또 다른 댐을 만들어야 했다. 후버댐으로 생긴 미드호라는 거대한 진흙 바닥과 증발 탱크만으로 만족할수 없었던 그들은 글렌캐니언에 한층 더 크고 한층 더 파괴적인 또다른 댐을 만들었다. 이 댐으로 인해 생긴 저수지는 단 한 평의 땅에물을 대지도, 단 한 개의 마을에 식수를 공급하지도 않는다. 이 호수의 존재 이유는 단 하나, 발전을 해서 수입을 올림으로써 애리조나,
유타, 콜로라도의 부동산 투기자, 면화 재배자, 사탕무 재배자들에게 간접적인 혜택을 준다는 데 있었다. 물론 댐 건설은 국토개간청의 기술자들과 관리자들에게 일거리를 마련해 준다는 이점도 갖고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걱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랠프가 그런 걱정을 먼저 입 밖에 내주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강처럼 차분하고 머리 위의 하늘처럼 평온한 그는 트럭과 통조림 음식과 이부자리가 놓여 있는 강가 출발 지점 사이에서 몸을앞뒤로 흔들면서 파이프만 빨아 대고 있었다.

서쪽 강변에서 누군가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어떤 사람이 하이트의 나룻배 선착장에서 우리에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경고일까,
잘가라는 인사일까? 그는 한 번 더 소리쳤지만,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기분 좋게 마주 손을 흔들어 주면서 우리는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그가 있는 곳을 지나쳐 갔다. 이제 오랫동안 우리는 인간이라는 족속을 보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구질구질한 집안일과 직업, 속임수와 다툼이 가득 찬 도시를 뒤로한 채 강물 위에 떠 있었다. 도시에 오랫동안 갇혀 있던 사람이 자연의 품에 돌아와 맛보는 기쁨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당국‘이 황야를 아스팔트와 저수지 밑에 질식시켜 버리려고 그렇게 애를 쓰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그들은 그들이 어떤 일을 하고있는지 알고 있다. 그들의 삶과 모든 썩어 빠진 제도가 그들이 하는일에 의지하고 있다. 안전을 위해 스키는 시계방향으로만 탑시다.
모두 함께 즐깁시다.

평화롭게 담배를 피우면서 우리는 오후의 황금빛 햇살이 동편 암벽을 기어오르는 것을 지켜보았다. 해가 서편 암벽 너머로 내려가고있었다. 초저녁 미풍이 강가의 버드나무를 흔들었고 은방울 소리 같은 굴뚝새의 지저귐이 다시 들려왔다.

강은 조용히 우리를 떠받쳐 주고 있었고, 마지막 햇빛이 윈게이트절벽 위 기암괴석에 비치면서 하늘은 점점 더 짙은 검푸른색으로변했다. 우리는 저녁식사와 밤을 보낼 캠프를 생각해야 했다.
뒤쪽에 녹색 버드나무들이 있는 하얀 모래밭이 눈에 들어오자, 우리는 노를 꺼내서 열심히 저으며 강의 흐름을 가로질러 보트를 몰았다. 이런 경우에 으레 그렇듯 우리는 강의 반대편에 있었고, 이 무렵의 강은 폭이 넓었다. 한데 묶인 보트의 상류 쪽에 랠프가 있었으므로 보트의 균형을 잡으려면 내가 랠프보다 갑절은 더 열심히 노를 저어야만 했다.

필요하다면 사람이 이곳에서 평생을 사는 것도 가능하다는 데 우리는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그러자면 우선 이 끔찍한 정적, 이 무서운 평온에 신경계를 적응시켜야 할 것이다. 이곳의 정적은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강과 협곡은 그 고유의 음악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혼잡과 와글거림이 전혀 없다는것 그것이 문제라면 문제일 것이다. 처칠이 말한 ‘끔찍한 평온‘, 그런 상태가 아주 오랫동안 지속된다면 과연 견딜 수 있을까? 또 이런세계를 알고 난 다음에 속세로 다시 복귀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동편 암벽이 뚫려 있는 곳을 지났다. 지류가 흘러드는 곳이다. 레드캐니언 크리크일까? 알 도리가 없고 모른다고 하나도 문제될 것이 없다. 이곳에는 급류가 없다. 물이 보일락 말락 움직일 뿐이다. 모래로 된 강바닥의 잔주름에 대응해서 잔물결이 일고 있다. 협곡 너머로는 매끄러운 통바위로 된 암벽이 솟아 있다. 암벽의 색깔은 분홍색, 노란색, 오렌지색 등 다양하며 어떤 부분은 ‘사막의 니스‘라고하는 산화철로 덮여 있는가 하면 유기물의 흔적인 검정색 줄이 수적으로 쳐져 있는 곳도 있다

우리는 그날 저녁 조그만 시내가 북서쪽에서 흘러와서 강과 합류하는 지점 근처의 모래밭에다 두 번째 캠프를 쳤다. 홀스 크리크일까, 불프로그 크리크일까? 가끔 쓸 만한 지도를 준비해 오지 않은 게후회되기도 했다. 하류쪽 멀지 않은 곳에서 세찬 급류가 내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가 첫날 통과한 것보다 훨씬 더 고약한 것인 듯했다. 내일 그곳을 지날 일이 조금 걱정됐다.

우리에게로 되돌아오는 소리가 멀어지며 사라졌다. 거리에 의해변화된 그 소리가 너무나 이상하고 아름다워서 우리는 홀린 채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모래밭을 지났다. 하얀 깃털 같은 갈대꽃과 어린 타마리스크의 연약한 꽃들이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태양과 바람과 물에 의해 은색으로 변한 강물에 떠내려 온 통나무들 사이에서 미풍에 나부끼고있었다. 다른 좁은 협곡들에서는 감벨 오크나무 덤불과 회색 코끼리코 모양의 가지와 밝은 녹색의 잎사귀가 있는 미루나무가 바람에흔들리고 있는 광경도 더러 볼 수 있었다.

게으르고, 어리석고, 쓸데없는 꿈이다. 우리가 이런 꿈을 꾸면서이 신비로운 강을 떠내려 가고 있는 동안, 공사장의 일꾼들은 그 어마어마한 장비들을 다루면서 밤낮으로 바삐 움직이며 기한을 맞추려고 시간과의 경주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의 작업이 끝나는 날미국민들은 귀중한 무엇인가가 파괴되고 말았다는 사실을 깨닫게될지도 모른다.

황야라는 말은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우리 조상들이 알았던 잃어버린 아메리카에 대한 감상적인 향수만은 아니다. 황야라는말은 과거와 미지의 세계, 우리 모두의 고향인 대지의 자궁을 암시한다. 그것은 잃어버렸으면서 아직 있는 어떤 것, 외지면서도 동시에 아주 가까이 있는 어떤 것, 우리 피와 신경에 묻힌 어떤 것, 우리를 초월한 무한한 어떤 것을 뜻한다. 우리가 흘려버려서는 안 될 낭만을 뜻하기도 한다. 낭만적 관점이 전적으로 진실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진실의 필요한 일부인 것만은 분명하다.

낙원은 사자가 양들처럼 누워있고(그러면 그들이 무엇을 먹겠는가?),
천사들이 바보같이 끝없는 원을 그리며 돌고 있는, 기쁨과 한결같은완벽만이 있는 정원이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초기 교회의 교부들이 우리에게 설교하려고 했던, 시공을 초월한 환상의 영역은 현대에 와서는 무시와 무관심의 대상이 되어 망각의 영역으로 물러나고말았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내가 지금 쓰고 있고 찬양하고자 하는 낙원은 지금 여기 우리와 함께 있는, 실제로 존재하고 만질 수 있는, 우리가 서 있는 실재하는 세계인 것이다.

해가 넘어가고 우리가 뿌옇게 푸른 황혼 속을 새소리들을 들으며흘러가고 있을 때, 나는 에스칼랑트강을 잊지 않고 두 눈을 커다랗게 뜬 채 합류점이 나타나나 지켜보고 있었다. 마침내 앞쪽, 정확히말해서 오른편 언덕쪽 강변에 커다란 협곡의 입구가 보였다. 그곳에는 미루나무 등의 나무들도 우거져 있었다. 나는 즉시 그곳이 합류점이 분명하다고 직감하고 이곳을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우리는 강변을 향해 노를 저었다.

해는 한 시간 전에 이미 넘어갔고, 달이 암벽 위에 나타나려면 한시간을 더 기다려야 했다. 우리가 들어선 그 커다란 협곡은 동굴 안처럼 어두웠다. 더 깊숙이 들어간 우리는 어둠 속에서 깎아지른 암벽에 닿아 있는 하얀 모래사장 같은 곳을 보았다. 우리는 그곳으로다가가 상륙한 다음, 보트를 안전하게 묶어 놓고 죽은 나뭇가지들을찾아 불을 지폈다

바람이 불어 공기가 신선하고 시원했다. 달빛에 알몸을 드러낸 나는 그 시원한 공기를 한껏 마시면서 절벽 어딘가에서 울어 대는 기분 나쁜 부엉이 울음소리를 들었다. 그런 다음 다시 잠자리에 들었고 이번에는 바람소리와 물소리를 자장가 삼아 잘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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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에 있는 솔트 크리크가 바로 그런 개울이다. 물은 겉보기
‘에는 마실 수 있을 것처럼 맑은데 맛을 보면 소금물처럼 짜다.
목이 말라 죽을 지경인 당신은 아무리 짜더라도 그 물을 마시는것이 물을 전혀 못 마시는 것보다는 나을 거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 소량을 마시면 갈증이 가시지 않을 것이며많이 마시면 당신의 신체는 지나친 소금기를 제거하기 위해 더 많은 물을 소비하게 된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몸 안의 수분의 상실을가져와서 탈수증세를 가속화시킨다. 탈수증세는 처음에는 기운이없고 나른함을 느끼게 하고 다음에는 땅에 쓰러지게 하며 결국에는목숨을 앗아간다.

역시 놀라운 다른 샘들이 있다. 모아브 동북쪽에 괴물과 귀신의형상을 한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있는 지역이 있다. 쥐라기 후기에형성된 지형이다. 이곳에 어니언샘이라고 불리는 작은 물웅덩이가있다. 근처에 야생 양파 몇 개가 자라고 있는데 더욱 놀라운 것은 제철이면 황금색 프린세스 플룸(princess plume)이 눈에 띈다는 것이다.
이것은 셀레늄이 있다는 증거인데 셀레늄은 우라늄이 있는 곳에서흔히 발견되는 독성 물질이다. 샘에 가까이 다가가면 공중에서 유황냄새가 나지만 뜨뜻하지도 차지도 않은 물 자체는 맑아서 마셔도될 것처럼 보인다.

미국의 사막에는 이와 비슷한 샘이 많이 있다. 데스밸리(Death Valley)에 있는 배드워터 연못이 그 한 예다. 협곡지대에도 이런 위험한 샘이 몇 개 있다. 탐광자인 버넌 픽은 몇 년 전 샌라파엘스웰에서 우라늄을 찾다가 더티데빌강의 발원지에서 독이 있는 샘 하나를 발견했다. 당시 그는 물이 절실히 필요했다. 물을 마시지 않으면 죽을 지경이었다. 그는 마실 만한 물을 만들기 위해서 그의 물통으로 여과기비슷한 것을 만들었다. 못으로 물통에 구멍을 여러 개 뚫은 다음 모닥불에서 나온 숯을 물통에 채우고 그것으로 물을 걸렀다. 그것이그 물을 얼마나 정화했는지 그로서는 측정할 수단이 없었지만, 그는그 물을 마셨다. 물을 마시고 병이 들긴 했지만 죽지는 않았다. 그는아직도 살아서 그 이야기를 하고 있다

포화 같은 번개가 구름 사이에서 번쩍이고 천둥소리가 대기를 뒤흔든다. 오존 냄새도 난다. 구름이 서로 번개를 교환하고 있더라도비는 내리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 번개는 뷰트(butte, 꼭대기가 평평한외딴 산)와 산봉우리들을 때리기 시작한다. 불이 밝혀진 신경줄 같은번개가 하늘과 땅을 연결해 준다.

내 머리 위로 구름이 모여들고 있고, 대부분의 하늘이 구름으로덮여 있지만 서쪽에서는 아직도 햇빛이 비치고 있다. 머리 위의 구름이 더 두꺼워지더니 포탄이 대리석 계단에 떨어지는 소리 같은요란한 폭음과 함께 구름이 쩍 갈라지고 구름의 배가 열린다. 이제도망치기에는 너무 늦었다. 비가 마구 쏟아진다.
마치 양동이로 쏟아붓듯이 비가 쏟아진다. 작은 돌멩이 같은 물방울들이 바위에 부딪쳐 요란한 소리를 내고 향나무에서 열매를 떨어뜨리고, 내 셔츠를 등에 붙여 버리고, 우박처럼 내 모자를 두드리고는 챙으로 폭포수처럼 떨어진다

비록 폭풍우처럼 장엄하진 않지만 더욱 기묘한 것은 갑자기 밀어닥치는 홍수다. 홍수는 비가 그친 후 별 예고도 없이 협곡과 언덕에서 밀어닥친다. 어떤 때는 비가 그치고 한 시간 이상이 지난 후에 홍수가 밀어닥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놀랍고 한편으로는 기뻐서 나는 뜨거운 개울 바닥에그대로 서서 그 괴물 같은 물결이 나를 향해 달려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 물결은 높이 30cm의 초승달 모양의 입술을 앞세우고 식식소리를 내며 마치 거대한 아메바가 좋은 먹잇감의 발자국을 따라가는 것처럼 오른쪽 왼쪽으로 방향을 돌리며 나를 향해 달려왔다. 토마토 수프나 피 같은 그 물결은 사람이 달리는 속도로 나를 향해 다가왔다. 나는 옆으로 비켜서서 그것이 지나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표사가 무서운 것은 분명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는 아직 기계건동물이건 사람이건 간에 표사에 빠져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경우가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그러나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을는지 모른다. 나는 기회가 왔을 때 내 친구 뉴컴을 가지고 만족할 만한 실험을 해보지 못한 것을 가끔 후회하곤 한다. 그런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당시 그가 필요했다. 그는야영장의 솜씨 좋은 요리사였다

사막에 비가 내리고 웅덩이가 생기면 다른 양서류들도 등장한다.
저녁에 천둥과 번개가 치면서 약간의 비가 내린 후 밤에 연못에 나가 보면, 개구리들이 이 임시로 생긴 연못 가장자리에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들은 몸뚱이는 물에 담그고 머리만 내놓고 울고 있다. 이들은 공기주머니 개구리들이다. 한 번 울 때마다 턱밑의 주머니가 풍선처럼 부풀었다가 꺼진다.

아무렇게 되든 그건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다. 결국에는 시간과바람이 모든 도시와 폐허들을 모래언덕 밑에 묻어 버릴 것이고 그위를 푸른 눈과 금발의 유목민들이 양과 말을 몰며 유랑하게 될 테니 말이다.

7월, 창문은 모두 활짝 열려 있고 블라인드가 미풍에 덜거덕거리고 있지만 열기는 끔찍하다. 트레일러 안이 마치 아궁이 속과 같다.
살인적으로 건조한 열기가 바닥의 리놀륨을 뒤틀리게 하고 밖에 내놓은 빵을 30분 이내에 토스트처럼 만들며 내 서류에 양피지와 같은 잔금을 만든다.

기둥에 걸린 온도계는 화씨 110도(섭씨 43도)를 가리키고 있지만,
미풍이 불고 습기가 거의 없는 그늘 속에서는 이런 온도도 견딜 만하며, 상쾌하기까지 하다. 나는 테이블 앞에 앉아서 부츠와 양말을벗고 모래 속에 발가락을 묻는다. 이제 태양을 겁낼 것이 없다. 편안하다. 기쁨까지도 느껴진다. 순수하고 포근한 동물적 만족감이다.
나는 향나무 가지 차양 밑에 편안하게 자리 잡고 앉아서 햇볕에 달구어져 죽어 가고 있는 분홍색 세상을 바라본다.

평생 아스팔트와 송전선의 경계를 벗어나 보지 못한 사람도 황야를 지키고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우리는 황야에 발을 들여놓든 들여놓지 않든 간에 황야를 필요로 한다. 우리는 그곳에 갈 필요를 느끼지 않더라도 피난처를 필요로 한다. 예를 들면 나는 평생 알래스카에 가보지 못할수도 있지만 그곳이 거기 있다는 사실을 고맙게 생각한다. 우리가 희망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도피의 가능성도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다. 그런 가능성이 없다면 도시 생활은 모든 사람을 범죄자나 마약 상용자, 또는 정신병자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태양이 맹렬하게 열기를 내뿜는다. 빛 속에 익사할 지경이다. 4월과 5월에 붉은 모래언덕을 수놓았던 꽃들은 이제 모두 시들어 버렸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몇 그루 해바라기 외에는 모두 씨앗으로 변해 버리고 말았다. 절벽장미도 시들었고, 유카도 꽃을 활짝 피웠다가 시들어 말라 버렸다. 씨앗을 담은 꼬투리도 터지고 빈 껍데기만매달려 있을 뿐이다. 모든 것을 말려 버리는 5월의 바람이 푸르렀던모든 것을 태워 황색과 적갈색으로 바꿔 버렸다. 그러나 여름의 뇌우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그것이 닥치면(곧 닥칠 것이다) 대지는 다시 초록색으로 되살아날 것이다. 몽고의 스텝지대에서 들어온 외래종 식물인, 즙이 많고 따끔거리고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회전초가 돋아날 테니까 말이다.

붉은 개미들조차도 정오에는 그들의 둥지 안에서 나오지 않는다.
물론 막대기로 둥지를 쑤시면 나와서 대항한다. 당연히 나는 이런장난을 해보았다.
꽃들도 꽃잎을 오므리고 나뭇잎도 안으로 오그라든다. 모든 것이움츠러들고 오그라들고 시든다. 어디선가 죽어 가는 오래된 미루나무의 말라 버린 가지가 둥치에서 떨어져 나간다. 나뭇가지 찢어지는소리가 마치 여인의 비명처럼 들린다.

나는 눈을 반쯤 감고 (그러지 않으면 햇빛이 너무 강하다) 나무와 외로이뜬 구름 그리고 바위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리고 진리를 보여 달라고 내 나름대로 기도를 올린다. 태양으로부터 오는 신호에 귀를기울이지만, 그 멀리서 들려오는 음악은 인간의 귀가 듣기에는 너무높고 순수하다. 나는 나무를 응시하지만 아무런 대답도 받지 못한다. 나는 맨발을 테이블 밑의 모래와 바위에 문지르면서 그 딱딱함과 저항력으로부터 위안을 받는다. 이어 나는 구름을 올려다본다.

협곡을 탐험하기에 이보다 더 부적당한 날은 없을 것 같았다. 미친 말이라도 이런 장소에서 여름을 견딜 수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협곡으로 나 있는 오솔길을 따라 나왔다가 다시돌아간 말의 발자국은 여전히 거기 있었다. 문아이는 아직도 이 근처에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내가 도착하기 불과 몇 분 전에 놈이 왔던것처럼 발자국은 또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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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도 사막에서 오래 살다 보면 다른 동물들처럼 물의 냄새를 맡을 줄 알게 된다. 적어도 물과 관련된 것들의 냄새를 맡을 수 있게된다. 예를 들면 미루나무의 특이하고 기분 좋은 냄새를 맡을 수 있게 된다. 미루나무는 협곡지대에서는 생명의 나무이다. 아득한 옛날에 화재로 인해 적갈색, 담황색, 적색으로 구워진 벌거벗은 바위투성이인 이 황야에서 이 고마운 나무의 싱그러운 반투명의 녹색(가을에는 밝은 황금색)만큼 눈에 즐겁고 가슴을 확 트이게 하는 장엄한 경관은 없다. 그것은 물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물뿐만 아니라 그늘을의미하기도 한다. 이 지역에서는 햇볕을 피할 수 있는 곳이 때로는물만큼이나 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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