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어나서 부러진 나무 밑에서 나왔다. 늙은 문아이는 나에게서 몇 걸음 물러서더니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놈은 여전히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우리는 약 15m의 거리를 두고 서로 마주 서 있었다. 이렇게 마주 서 있는 것도 이것이 마지막일 것이다. 나는 마지막으로해 줄 적당한 말을 생각해 내려고 애썼지만, 입안이 말라 있고 혀는뻣뻣한 데다가 입술마저 말라 터져 있어 한 마디도 뱉어낼 수가 없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나는 말을 등지고 물통이 있는 곳으로 가서물통을 집어 들었다. 물은 마시기 어려울 정도로 뜨거웠지만 그래도나는 그 물을 마셨다. 물을 모두 마시고 나서 남은 몇 방울은 손가락에 쏟아 쑤시는 이마에 발랐다. 그리고는 그 유령 같은 말은 다시 보지도 않고 나는 물통을 어깨에 메고 집으로 향했다. 한 번, 두 번, 나는 나를 따라오는 발자국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돌아보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인간 비버들은 콜로라도강에 또 다른 댐을 만들어야 했다. 후버댐으로 생긴 미드호라는 거대한 진흙 바닥과 증발 탱크만으로 만족할수 없었던 그들은 글렌캐니언에 한층 더 크고 한층 더 파괴적인 또다른 댐을 만들었다. 이 댐으로 인해 생긴 저수지는 단 한 평의 땅에물을 대지도, 단 한 개의 마을에 식수를 공급하지도 않는다. 이 호수의 존재 이유는 단 하나, 발전을 해서 수입을 올림으로써 애리조나, 유타, 콜로라도의 부동산 투기자, 면화 재배자, 사탕무 재배자들에게 간접적인 혜택을 준다는 데 있었다. 물론 댐 건설은 국토개간청의 기술자들과 관리자들에게 일거리를 마련해 준다는 이점도 갖고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걱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랠프가 그런 걱정을 먼저 입 밖에 내주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강처럼 차분하고 머리 위의 하늘처럼 평온한 그는 트럭과 통조림 음식과 이부자리가 놓여 있는 강가 출발 지점 사이에서 몸을앞뒤로 흔들면서 파이프만 빨아 대고 있었다.
서쪽 강변에서 누군가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어떤 사람이 하이트의 나룻배 선착장에서 우리에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경고일까, 잘가라는 인사일까? 그는 한 번 더 소리쳤지만,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기분 좋게 마주 손을 흔들어 주면서 우리는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그가 있는 곳을 지나쳐 갔다. 이제 오랫동안 우리는 인간이라는 족속을 보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구질구질한 집안일과 직업, 속임수와 다툼이 가득 찬 도시를 뒤로한 채 강물 위에 떠 있었다. 도시에 오랫동안 갇혀 있던 사람이 자연의 품에 돌아와 맛보는 기쁨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당국‘이 황야를 아스팔트와 저수지 밑에 질식시켜 버리려고 그렇게 애를 쓰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그들은 그들이 어떤 일을 하고있는지 알고 있다. 그들의 삶과 모든 썩어 빠진 제도가 그들이 하는일에 의지하고 있다. 안전을 위해 스키는 시계방향으로만 탑시다. 모두 함께 즐깁시다.
평화롭게 담배를 피우면서 우리는 오후의 황금빛 햇살이 동편 암벽을 기어오르는 것을 지켜보았다. 해가 서편 암벽 너머로 내려가고있었다. 초저녁 미풍이 강가의 버드나무를 흔들었고 은방울 소리 같은 굴뚝새의 지저귐이 다시 들려왔다.
강은 조용히 우리를 떠받쳐 주고 있었고, 마지막 햇빛이 윈게이트절벽 위 기암괴석에 비치면서 하늘은 점점 더 짙은 검푸른색으로변했다. 우리는 저녁식사와 밤을 보낼 캠프를 생각해야 했다. 뒤쪽에 녹색 버드나무들이 있는 하얀 모래밭이 눈에 들어오자, 우리는 노를 꺼내서 열심히 저으며 강의 흐름을 가로질러 보트를 몰았다. 이런 경우에 으레 그렇듯 우리는 강의 반대편에 있었고, 이 무렵의 강은 폭이 넓었다. 한데 묶인 보트의 상류 쪽에 랠프가 있었으므로 보트의 균형을 잡으려면 내가 랠프보다 갑절은 더 열심히 노를 저어야만 했다.
필요하다면 사람이 이곳에서 평생을 사는 것도 가능하다는 데 우리는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그러자면 우선 이 끔찍한 정적, 이 무서운 평온에 신경계를 적응시켜야 할 것이다. 이곳의 정적은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강과 협곡은 그 고유의 음악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혼잡과 와글거림이 전혀 없다는것 그것이 문제라면 문제일 것이다. 처칠이 말한 ‘끔찍한 평온‘, 그런 상태가 아주 오랫동안 지속된다면 과연 견딜 수 있을까? 또 이런세계를 알고 난 다음에 속세로 다시 복귀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동편 암벽이 뚫려 있는 곳을 지났다. 지류가 흘러드는 곳이다. 레드캐니언 크리크일까? 알 도리가 없고 모른다고 하나도 문제될 것이 없다. 이곳에는 급류가 없다. 물이 보일락 말락 움직일 뿐이다. 모래로 된 강바닥의 잔주름에 대응해서 잔물결이 일고 있다. 협곡 너머로는 매끄러운 통바위로 된 암벽이 솟아 있다. 암벽의 색깔은 분홍색, 노란색, 오렌지색 등 다양하며 어떤 부분은 ‘사막의 니스‘라고하는 산화철로 덮여 있는가 하면 유기물의 흔적인 검정색 줄이 수적으로 쳐져 있는 곳도 있다
우리는 그날 저녁 조그만 시내가 북서쪽에서 흘러와서 강과 합류하는 지점 근처의 모래밭에다 두 번째 캠프를 쳤다. 홀스 크리크일까, 불프로그 크리크일까? 가끔 쓸 만한 지도를 준비해 오지 않은 게후회되기도 했다. 하류쪽 멀지 않은 곳에서 세찬 급류가 내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가 첫날 통과한 것보다 훨씬 더 고약한 것인 듯했다. 내일 그곳을 지날 일이 조금 걱정됐다.
우리에게로 되돌아오는 소리가 멀어지며 사라졌다. 거리에 의해변화된 그 소리가 너무나 이상하고 아름다워서 우리는 홀린 채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모래밭을 지났다. 하얀 깃털 같은 갈대꽃과 어린 타마리스크의 연약한 꽃들이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태양과 바람과 물에 의해 은색으로 변한 강물에 떠내려 온 통나무들 사이에서 미풍에 나부끼고있었다. 다른 좁은 협곡들에서는 감벨 오크나무 덤불과 회색 코끼리코 모양의 가지와 밝은 녹색의 잎사귀가 있는 미루나무가 바람에흔들리고 있는 광경도 더러 볼 수 있었다.
게으르고, 어리석고, 쓸데없는 꿈이다. 우리가 이런 꿈을 꾸면서이 신비로운 강을 떠내려 가고 있는 동안, 공사장의 일꾼들은 그 어마어마한 장비들을 다루면서 밤낮으로 바삐 움직이며 기한을 맞추려고 시간과의 경주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의 작업이 끝나는 날미국민들은 귀중한 무엇인가가 파괴되고 말았다는 사실을 깨닫게될지도 모른다.
황야라는 말은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우리 조상들이 알았던 잃어버린 아메리카에 대한 감상적인 향수만은 아니다. 황야라는말은 과거와 미지의 세계, 우리 모두의 고향인 대지의 자궁을 암시한다. 그것은 잃어버렸으면서 아직 있는 어떤 것, 외지면서도 동시에 아주 가까이 있는 어떤 것, 우리 피와 신경에 묻힌 어떤 것, 우리를 초월한 무한한 어떤 것을 뜻한다. 우리가 흘려버려서는 안 될 낭만을 뜻하기도 한다. 낭만적 관점이 전적으로 진실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진실의 필요한 일부인 것만은 분명하다.
낙원은 사자가 양들처럼 누워있고(그러면 그들이 무엇을 먹겠는가?), 천사들이 바보같이 끝없는 원을 그리며 돌고 있는, 기쁨과 한결같은완벽만이 있는 정원이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초기 교회의 교부들이 우리에게 설교하려고 했던, 시공을 초월한 환상의 영역은 현대에 와서는 무시와 무관심의 대상이 되어 망각의 영역으로 물러나고말았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내가 지금 쓰고 있고 찬양하고자 하는 낙원은 지금 여기 우리와 함께 있는, 실제로 존재하고 만질 수 있는, 우리가 서 있는 실재하는 세계인 것이다.
해가 넘어가고 우리가 뿌옇게 푸른 황혼 속을 새소리들을 들으며흘러가고 있을 때, 나는 에스칼랑트강을 잊지 않고 두 눈을 커다랗게 뜬 채 합류점이 나타나나 지켜보고 있었다. 마침내 앞쪽, 정확히말해서 오른편 언덕쪽 강변에 커다란 협곡의 입구가 보였다. 그곳에는 미루나무 등의 나무들도 우거져 있었다. 나는 즉시 그곳이 합류점이 분명하다고 직감하고 이곳을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우리는 강변을 향해 노를 저었다.
해는 한 시간 전에 이미 넘어갔고, 달이 암벽 위에 나타나려면 한시간을 더 기다려야 했다. 우리가 들어선 그 커다란 협곡은 동굴 안처럼 어두웠다. 더 깊숙이 들어간 우리는 어둠 속에서 깎아지른 암벽에 닿아 있는 하얀 모래사장 같은 곳을 보았다. 우리는 그곳으로다가가 상륙한 다음, 보트를 안전하게 묶어 놓고 죽은 나뭇가지들을찾아 불을 지폈다
바람이 불어 공기가 신선하고 시원했다. 달빛에 알몸을 드러낸 나는 그 시원한 공기를 한껏 마시면서 절벽 어딘가에서 울어 대는 기분 나쁜 부엉이 울음소리를 들었다. 그런 다음 다시 잠자리에 들었고 이번에는 바람소리와 물소리를 자장가 삼아 잘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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