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 솟은 암벽 사이로 올려다보이는 좁은 하늘에는 구름이 끼어있었다. 비가 올 것 같았다. 비가 오든 햇볕이 쨍쨍 내리쬐든 나에게는 매일반이었다. 물통과 지팡이 그리고 건포도와 자른 쇠고기 조각만을 가지고 협곡 바닥의 단단한 젖은 모래를 밟으며 나는 위쪽으로 올라갔다. 사슴 여러 마리, 코요테 한마리, 발가락이 3개인 커다란 새 한 마리, 물떼새 혹은 도요새 여러 마리의 발자국과 도마뱀 여러 마리와 뱀 한 마리가 지나간 자국이 있었지만 소나 말, 사람의 발자국은 보이지 않았다.

물속을 걸어야 할 때가 많았다. 개울의 수로가 이쪽 암벽에서 저쪽 암벽으로 꾸불꾸불 나 있었기 때문에 1.5km도 올라가기 전에 나는 12번이나 물속을 걸어야 했다. 부츠를 신고 물속을 걷기란 쉽지않았다. 그러나 이 구불구불한 개울의 가장자리를 걷는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개울이 예각을 이루며 구부러져서 절벽을 깎고는 다시 반대편으로 휙 구부러지면서 다시 절벽을 파고들기 때문이었다. 테니스화를 가지고 왔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관심의 대상은 콜럼버스 이전의 그들의 삶이 어떠했을까 하는것이었다. 우리는 사실 그들의 생활방식에 대해서는 꽤 자세히 알고있다. 그들은 옥수수와 콩, 멜론을 재배했고 토끼와 사슴을 사냥했으며 도기와 광주리 그리고 산호와 뼈로 장신구를 만들었고 요새와같은 집을 지었다. 내 관심사는 왜 그런 집을 지었느냐다. 혹시 아나사지족도 20세기의 미국인들처럼 두려움의 구름 아래서 살았던 게아닐까?

두려움, 그것이 그들 삶의 진짜 중요한 요소였을까? 그들에게 어떤 끈질기고 고약한 적이 있었기에 가장 가까운 목초지나 숲, 산으로부터 160km나 떨어진 이 사막의 미궁 한복판에서조차 그들은 저높은 암벽 위에 제비집 같은 집을 지었을까?

오래전에 이 절벽 주거지는 버려졌다. 그 주민들은 그들이 늘 두려워했던 적들에 의해 몰살당한 것일까? 아니면 나쁜 위생 상태와그들이 사용하는 물과 공기의 오염으로 인한 질병으로 서서히 수가줄어들어 결국 사라지고 만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그들의 삶을 회복불능 상태로 만들고 그들을 이곳까지 도주케 한 공포가 그들이사라지게 된 원인이었을까?

끝이 없다는 느낌도 들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앞에 불이보였다. 벌건 등걸 숯불이었다. 고무보트의 윤곽도 보였다. 나를 안심시키는 광경이었다. 잠이 들었던 랠프가 내가 오는 소리에 얼른일어나서 나를 위해 남겨 놓은 메기 고기를 보여 주었다. 젖은 나뭇잎에 싼 메기 고기는 시원했고 아직도 신선했다.

남은 오후 시간 내내 우리는 그늘쪽에 붙어서 이 멋진 강을 따라흘러갔다. 우리는 환상의 세계로 점점 더 깊이 들어갔다. 사암 암벽은 그 어느 때보다 더 높았다. 강물에서의 높이가 300, 아니 600m는되는 것 같았다. 돔의 반쪽 또는 돔 모양을 한 그 꼭대기에 햇빛이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고, 그늘 쪽은 벌겋게 짙은 적색을 띠고 있었다

이 모든 풍경의 중심에 강이 있다. 양쪽 강변에 가는 녹색의 띠를두르고 유유히 흐르는 강이 이 풍경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다. 이곳의 경치는 강이 없었다면 멋지기는 하지만 활기가 없는 풍경이었을 것이다. 살아 있는 강이 이 협곡에 조화와 의미를 주고 있다. "나는 흐르는 것은 무엇이든 좋다"고 아일랜드의 시인이 말했다던가.
우리는 저녁쯤에 유서 깊은 ‘바위 구멍(Hole in the Rock)‘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곳 강가에 상륙해서 밤을 지낼 캠프를 차렸다.

나는 강을 바로 발 밑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지점으로 걸어갔다.
구불구불한 오솔길이 보였고 협곡의 어귀에 녹색 식물들이 부채 모양을 이루고 있는 것도 보였다. 그러나 버드나무 그늘 깊숙이 있는뉴컴과 보트는 보이지 않았다. 이 위에서는 그동안 내 귀를 떠나지않던 강물 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았고, 사막의 정적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었다. 사막의 소리라고나 할까? 발자크는 어느 책에선가 이렇게 썼다. "사막에는 모든 것이 있고 동시에 아무것도 없다.
신은 있지만 인간은 없다."

시간은 천천히 흘러갔지만 충분히 더디다고는 할 수 없었다. 우리여행의 끝이 가까워져 올수록 협곡의 세계는 시시각각으로 더 아름다워졌다. 우리는 잊었다고 생각했지만 잊을 수가 없었다. 그 사실은 스트론튬(금속원소의 일종)처럼 우리 골수에 스며들어 있었다. 글렌캐니언을 볼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 말이다. 우리는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아니, 감히 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우리 심장을 먹고, 우리 창자를 씹고, 무력한 분노 속에 우리 자신을소진해 버리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들어가면서 우리는 네군도단풍과 미루나무로 이루어진 작은 숲을 보게 된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바위가 깎여 만들어진 넓은 방이 보인다. 위쪽 끝에 맑은 물이 고인 깊은 못이 있고 못 주위는 푸른 초목으로 둘리어 있다. 그 못 옆에 서면 입구의 작은 숲이보인다. 방은 높이가 60m가 넘고 길이가 150m, 너비가 60m이다. 천정과 300m 위의 바위 틈에서 빛이 새어 들어온다. 그 틈은 이 건조한 지역에 가끔 소나기가 내릴 때만 흐르는 작은 시내에 의해 생긴것이다."

우리가 기대한 폭우는 내리지 않았다. 우리는 짐을 캔버스천으로덮어 놓고 하얀 모래언덕에 파인 우묵한 구덩이에 슬리핑 백을 펴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잠을 청했다. 잠이 들면서 나는 빠르게 지나가는 구름사이로 한 움큼의 별들이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소용돌이치는 강물에 다시 보트를 띄운 우리는 어렵지 않게 잔잔한 물로 빠져나왔다. 우리의 작은 보트는 잘 견뎌 주고 있었다. 바위에 그렇게 여러 번 부딪치고 모래나 부러져 나간 나무 그루터기 위로 그렇게 여러 번 끌고 왔는데도, 펑크난 곳 하나 없고 공기가 새는곳도 전혀 없었다. 그러나 아직 여행은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상관없다. 우리는 이런 사태를 예견했다. 우리는 우리가있는 곳에서 글렌캐니언 댐 공사장까지 모터보트로 불과 몇 시간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또 그 자연의 다리가 있는 곳까지 가려면 오솔길을 걸어 협곡을 10km쯤 올라가야 한다는 것도알고 있었다. 그 거리는 자동차에 익숙해진 보통의 관광객들에게는달나라에 가는 것만큼이나 멀게 느껴질 것이다. 즉, 이 야영지를 조금만 벗어나면 관광객의 흔적은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오솔길 옆에는 맑은 시내가 흐르고 에메랄드빛 못이 줄지어 있었다. 그중 어떤 것은 들어가 헤엄을 칠 수 있을 정도로 컸다. 물이 너무나 맑아서 바닥의 모래 알갱이 위를 지나는 작은 물고기 떼의 그림자를 볼 수 있었다. 협곡의 암벽에서 물이 새어나오거나 솟아 흘러 시냇물을 이루었다. 물이 나오는 곳마다 이끼, 고사리, 야생화들이 자라서 독특하게 공중에 매달린 정원을 만들었다. 암벽 너머에는돔과 아치 등이 나바호산의 사암비탈을 이루고 있었다.

이 골짜기에도 역시 시내가 흐르고 있었고 아까보다 훨씬 더 작았지만 군데군데 우묵하게 패인 샘이 있었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작은 샘들을 지나자 시내는 작아져 거의 사라지다시피 하고 대신 물이 고인 웅덩이들이 햇볕을 받고 있었다.

*모든 탁월한 것은 귀한 만큼 어렵다"고 한 현인은 말했다. 어려움과 귀함이 제거될 때 탁월함은 어떻게 될까? 말, 말… 말의 유희에시달리다보니 목이 말랐다. 협곡 건너편에 또 하나의 샘이 있었다.
다리의 서편 받침 아래 있는 선반 바위 밑에서 물이 솟아나오고 있었다. 나는 비탈을 내려갔다가 다른 쪽 비탈을 다시 올라간 후 누군가가 남겨 놓고 간 깡통들 가운데 하나를 주워서 그것으로 이끼 사이로 흘러내리는 물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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