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종종 하나의 언어밖에 구사하지 못하죠. 인간중심적인 시선과 사고는 언어의 폭을 좁게 하고, 결국 유연하지못한 글을 쓰게 해요. 우리는 외부와 연결됨과 동시에 그것을자유자재로 응용하여 내면을 확장하거나 자신만의 언어를 구축할수 있어요. 언어의 한계가 곧 내 세계의 한계라는 말이 있듯, 저는가능한 한 많은 언어를 습득하고 더 많은 세상을 보기 원해요. 그것만이 세상과 연결되는 유일한 방식 같아요. 세상에는 안다고믿는 것보다 알아가야 할 게 너무 많아요.
말씨나 솜씨, 글씨, 마음씨 같은 단어가 있어요. 현상 뒤에품고 있는 씨앗들이죠. 분명 어떤 사실 속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공들여 가꾼 무엇이 숨어 있어요. 조심스러운 대화 속에도 타인에대한 배려가 담겨 있고, 한 접시의 음식이 나오기까지 시간과정성을 다한 마음이라든가, 허리를 세우고 숨을 참은 채 한 글자한 글자 눌러쓰는 자세에서도 설핏 떨어져내린 씨앗이 있어요. 마음씨라는 말 속엔 정성과 태도가 있어요. 그런 것을 바라보고쓰려고 노력해요. 그러다 보면 단순히 글을 쓰는 게 아니라글솜씨가 좋아질 수 있지 않을까요.
삶에는 보이지 않는 장면이 도처에 숨겨져 있고, 보물찾기하듯 그것을 찾아보는 것은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점이라 생각해요. 그렇게 수집한 것들과 함께 나만의 고유한언어를 구축하는 것. 쓰고자 하는 사람의 시선과 태도야말로글쓰기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준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요. 그리하여 저는 무엇을 어떻게 쓸까, 가 아니라 살아오며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느꼈는지에 초점을 맞추려 해요. 아무도모르게 외롭게 다져온 내공이 가장 중요한 글감이 되니까요. 아무나 글을 쓸 수는 있지만, 타인과 어떤 차이를 만들어가는 건아무나 할 수 없는 작업이겠지요. 누군가는 그 과정을 통해 훌륭한문장력을 가질 수 있어요. 제게는 문장력보다 통찰력을 갖는 것이더 중요한 힘이에요. 저는 그 방향으로 나아가보려고 하는 것같아요.
한 편의 글을 완성하기까지 하루가 걸렸다면, 글감을얻기까지 어쩌면 우리는 평생이 다 동반되어야 할지도 몰라요. 눈앞에 놓여 있는 삶을 사랑의 시선으로 꼼꼼히 들여다보아야하니까요. 그런데 그것이 삶을 살아가는 단단한 자세가되어줍니다.
만약 아무것도 쓸 수 없다면 가만히 바라보아도 좋아요. 그시간을 애쓰기보다는 그냥 지나가보는 거예요. 쓰지 않더라도꾸준히 바라보면서요. 내 주변을 둘러싼 가장 가까운 장면부터창문 너머 저 멀리 펼쳐진 이야기를. 무언가를 내 의지로 쓰려고하기보다는 외부가 내게 들려주는 말을 가만히 들어보는 거예요. 의자에 오래 앉아 고민하는 것보다 문을 열고 나가 조금 걸어보는것도 좋아요. 삶은 테이블 위에 없고 삶 속에 있으니까요. 삶에서의발견은 분명 살아 있는 문장을 쓰게 해요.
다행히도 저는 절망보다 희망을 더 믿는 편이에요. 눈앞에놓여 있는 좌절보다는 보이지 않는, 아주 실금 같은 몽상과 희망을믿는 편이에요. 이런 용기는 삶의 태도에서 나오고, 글은 그지구력으로 써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망하거나 비교하고 회피하기보다, 조금 더큰 각오로 계속해서 밀고 나가보는 거예요. 그 과정에서 글이라는성과보다 훨씬 더 큰 것을 얻게 되어요. 글이 아닌 나의 성장과아름다운 삶을요.
‘나에게 선명하게 남는 말‘로 시를 시작합니다. 어떤 이유로든그 문장이 저의 마음에 닿았다는 뜻이고, 하얀 종이에 다소느닷없이 시작되어도 괜찮을 거 같습니다.
얼굴을 간질이는 햇살에 눈이 떠졌다. 오랜만의 휴일. 새로운프로젝트를 시작한 이후로 가장 간절했던 시간이다. 여유를 부릴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 해도, 일의 끝을 보기 전까지는 시간을온전히 쉼의 영역으로 가져갈 수 없었으니까. 계속해서 생각은마무리 짓지 못한 일에 머물러 외투 주머니에는 항상 두통약이있어야만 했다. 비과학적인 해석일지 모르지만, 생각이 나아가지못하고 고민의 벽에 가로막힐 때면 어김없이 두통이 시작됐다. 마치 머릿속 어딘가를 꽉 막아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러나오늘은 주머니를 살필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전인 지금은 가장 평평한 기분이니까.
물론 글을 쓰는 순간들은 대부분 매우 괴로웠다. 마음을문자로 옮기는 일은 그 자체로 고통을 수반하는 일이기도 하고, 담고자 했던 것들이 대체로 기쁜 순간보다는 나와 내 주변, 사회와 세상의 아픈 구석인 경우가 많아 그렇기도 하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이 넓은 세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만으로그건 감내할 만한 고통이었고, 동시에 기쁨이었다.
당신만의 달리기와 결과를 알 수 없는 새로운 산책을 온마음으로 응원하며 투명한 유리컵과 퍼즐, 창가의 바람과 곶감을이제 당신 앞에 건넨다. 아, 어떤 질문이 들었을지 모를 쪽지하나도
"너는 자꾸 결론을 정해놓고 가려고 해. Not-Knowing의상태에서 출발해야 Knowing이 나오는 거야. 지금은 절대로 알 수없는 거라고. 일단 계속 써! 이해했어?"
글을 통해 과거의 나와 미래의 내가 연결된다는 게 가끔은신비롭게 느껴진다. 지금 쓰는 글은 나중에 또 무엇이 될까? 내서랍 속에 잠든 쓰다 만 노트들도 언젠가는 이야기가 되어 세상밖으로 나오게 될까?
그래서 나는 외부로 향해 있는 시선을 ‘나’로 돌리는 작업에 관심이 많다.
"우리, 잘 쓰려고 하지 말아요. 책이라는 말이 부담을 준다면인쇄물이라는 말로 바꿔보면 어떨까요? 그리고 아무에게도 주지말고 우리끼리만 교환해요.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이아니라 나를 위한 기록집이라고, 내가 보려고 만드는 거라고생각해봐요. 우리가 하려던 건 내가 써온 일기를 모아서 다시 한번보는 거예요." 나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자기만의 이야기를 스스로 열고 닫아본 사람은 계속해서이야기를 짓는 것 같다. 쓸모가 없을 거라고 생각한 조각들이하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것. 그것을 몸으로 느껴보면, 창작의결과가 아닌 과정의 재미를 느끼고 나면, 그 사람은 계속 창작하는사람‘으로 살아간다고 믿는다. 나는 모든 사람이 창작자의정체성을 지니고 살아갔으면 좋겠다. 모든 사람이 창작하는직업을 갖기 바란다는 말은 아니다. 꼭 전문적인 작가가 되지않더라도, 많이 팔리는 책을 쓰지 못해도, 살면서 나의 이야기를쓰고 한번씩 마감하는 루틴을 갖는다는 건 꽤 매력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예술철학자 맥신 그린(Maxine Greene)이 자주 한말이다. ‘나‘라는 사람은 아직 현재진행형이고 새로운 가능성은언제나 열려 있다는 것이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도 이와 비슷하다. 나의 세계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고, 내 안에 닫혀 있는 문을계속해서 열어보고 싶다. 글을 쓸 때마다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너는 이 이야기를 왜 하고 싶어?‘ 그렇게 묻고 답하다 보면 내가모르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 그이야기가 내게 왜 중요했는지 알게 된다.
그렇게 해서 저는 한 줄에서 두 줄, 두 줄에서 다섯 줄 쭉문장을 이어붙여 한 편의 글을 만들어나갔습니다. 감정에서글감을 찾다보니 하루 중에 겪는 일, 만나는 모든 사람이 나에게오면 글이 될 수 있었어요. 거기서 중요한 점은 내가 그 사건과사람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대한 관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것입니다. 인간은 대개 자신의 감정에 취하면 객관적으로스스로를 보기 어렵습니다. 누가 옆에서 ‘너 지금 뭔가에 홀린 것같아. 정신 차려!‘라고 일깨워줄 때가 아니고서야 판단력이 흐려져내가 무얼 하는지조차 모를 때가 있지요. 하지만 글로 남겨둔기록은 거짓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럴 때일수록 남겨둔 문장은마음을 추측해보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보통 제가 마음을 들여다보는 글을 쓸 때는 ‘현실직시 - 감정 알아차리기 - 감정의 이유 찾기 - 스스로를 이해하고객관화하기‘의 과정을 거치고 있어요.
글을 쓸 때는 보통 ‘계획하기‘ 단계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글쓰기를 계획할 때는 무엇에 대해 쓸 것인가(주제), 이 글을 왜쓰는 것인가(목적), 이 글은 누가 읽을 것인가(독자), 이렇게 세부분에 대한 고민이 충분히 이루어져야 합니다. 저는 흔들리는 제마음에 대해 쓰면서 고요한 호수 같은 마음을 만들고 싶었고, 저와비슷한 어려움을 가진 독자들에게 닿기를 바라며 글을 썼습니다. 글쓰기에는 왕도도 없고 정답도 없습니다.
|